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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름 산행 함백산에서
소나무의 붉은 몸통과 달리 하얀 자작나무가 숲을 이루고 있어 대조를 이룬다. 정선 고한의 싸리재로 일명 두문봉재다. 왼쪽은 야생화의 보고로 알려진 금대봉이다. 오른쪽 은대봉으로 접어들어 함백산으로 간다. 숲속으로 들어서니 밖에서 보기와는 달리 펑퍼짐하며 야생화가 산재해 있다. 우거진 갈참나무 사이로 햇살이 스며들어 조명처럼 환하게 비춘다. 고산지대라 공기가 산뜻하게 느껴지며 더위보다는 선선하니 좋다. 함백산(1573m)은 같은 태백산 줄기에 속한 탓인지 태백산(1567m)보다 6m나 높지만 큰 틀에서는 그냥 태백산의 범주에 들 만큼 서자취급을 받아왔지 싶다. 함백산은 양질의 석탄이 많이 매장되었던 곳이다.
아주 까마득한 시절 같지만 그리 멀지 않았던 연탄시대에는 그 어느 곳보다 각광을 받았던 곳 중에 하나다. 석탄 산업이 몰락하다시피 하고 폐광하면서 지금은 어디쯤이 탄광이었는지 흔적을 찾아보기 쉽지 않다. 은대봉(상함백)을 지나고 중함백을 지나 백두대간을 가고 있다. 백두대간은 중심을 꽉 잡았다. 이런저런 사사로운 것에 흔들리지 않는다. 국토의 근간을 이루는 등뼈역할에 늠름하게 기개를 뽐내고 있지 않는가. 주목(朱木(주목))이다. 일기 탓인가 가지가 많이 죽어 보기에도 안쓰럽다. 하지만 주목은 그때 그 모습 그대로 별 다른 표정이 없다. 천 년을 살아가면서 보고도 못 본 척 알고도 모른 척 그냥 표정조차 아끼고 있나 보다.
저 나무도 수백 년을 좋게 살아왔을 텐데, 좀처럼 제 모습을 거대하고 화려하게 꾸미거나 자랑스럽게 내놓지 않는다. 오히려 작달막할 만큼 작은 키에 몸통마저 파이고 상해 외과수술을 받고 인조섬유로 채웠다. 한여름에 땡볕을 받으며 목이 마르거나 한겨울 눈보라가 쳐대고 폭풍에 시달리며 가지가 부러져도 그냥 무표정이다. 가슴이 썩고 패여도 수도라도 하는 양 그 날이 그날이 듯 묵묵히 자리를 지키고 있는 것이다. 고작 한 계절을 전부인 양 사는 들꽃이 아니고 백 년을 산다고 떠벌리며 시건방을 떠는 나무가 아니다. 저만한 배짱과 뚝심의 인내력이 없이 아무나 천 년을 지키고 귀티가 주르르 흐르도록 살아가는 것이 아니다.
그래, 늠름한 뼈대의 백두대간에 귀티가 흐르는 주목이다. 그야말로 깊은 산속 자연 속에 생생한 모습을 보고 있다. 같은 하늘 아래 같은 곳에서 같이 숨을 들이마시고 토하려니 이보다 자랑스러움이 어디 있겠는가. 마음껏 들이마시고 마음껏 토해보자. 그리고 가슴에 가득 담아보자. 푸른 하늘 짙푸른 산자락 저 깊은 계곡 저 불쑥불쑥 솟아오른 봉우리들 하나하나에 기백이 담겨 함께 조화를 이루면서 아름다움을 만들어 낸다. 삼복의 중복을 넘어 말복으로 가고 있지만 오늘 하루의 더위쯤은 그냥 백두대간의 함백산자락에서 이열치열로 뿌리면서 새로운 모습들을 보고 즐기고 있다. 아직껏 때 묻지 않은 순수의 자연 속에서 노닐고 있다.
함백산 정상이다. 두문동재에서부터 난무하던 잠자리가 은대봉에 따라왔나 싶더니 끝내 축하비행이라도 하는 것일까. 아니, 저희들끼리 흥에 겨워 날고 있다. 살랑거리는 바람에도 시원하다 못해 금세 써늘한 피서지다. 함백산은 한라산, 지리산, 설악산, 덕유산, 계방산에 이어 여섯 번째로 높은 산으로 웅장하다. 사방을 둘러보는 것만으로도 많은 산을 거느리고 있지 싶다. 중함백 너머 은대봉과 금대봉이 의좋은 형제 같은 그림이다. 능선을 타고 백두대간을 굽이굽이 가면 매봉산이다. 풍력발전기가 들어오고 고랭지 채소밭이 시퍼렇다. 하늘을 올려다본다. 흰 구름이 떠가고 검은 구름이 떠가고 파란 하늘과 영역다툼 중에. 햇살이 비집고 나온다.
심산에 작은 풀꽃 하나가 누구를 보여주기 위함이 아님을 안다. 하지만 지금의 너의 모습이 그리 곱디고울 수가 없다. 지나는 바람 한 줌이 누구를 위해 부채질을 하지 않음을 안다. 하지만 그리 시원할 수가 없다. 우리는 꼭 누군가를 위하여 무엇을 하는 것만은 아니다. 그래도 그 누군가는 그 혜택을 받기도 하고 피해를 입기도 한다. 비록 평상시의 그 모습이라 할지라도 이렇게 이따금씩 찾아와서 보노라면 신비롭기만 하다. 만항재로 간다. 함백산은 야생화축제장이다. 말나리, 동자꽃, 노루오줌, 잔대, 마타리, 쑥부쟁이, 고들빼기, 개미취 등 수많은 꽃들이 주황, 노랑, 보라, 혹은 하얗게 피고 지며 작은 꽃이지만 어찌 사연이 없으랴 싶다. - 2013. 07. 27. 문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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