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정하 장로
평생 한국YFU(Youth For Understanding)를
이끌어온 신정하 장로가 있다.
그에게 특별한 동기가 있었다.
휘문고 3학년 때 6.25가 일어났다.
당시 젊은이들은 의용군으로 불려 나갔는데,
자기는 의용군으로 가기 싫어 숨어 지냈다고 하였다.
그러다가 잡혀서 60명이 함께 북으로 끌려갔다.
무리는 낮에는 자고, 밤에만 이동하였다.
일산 지나고, 문산 지나고, 임진강을 건넜다.
처음에는 감시가 심했는데 북한 지역으로 넘어가니
감시가 소홀해졌다.
그는 성탄절에만 교회에 나갔던 입장이지만
이번에는 하나님께 살려달라고 기도하였다.
“하나님, 저를 구해주시면 하나님의 일을 하겠습니다.”
임진강을 건넌 며칠 후에도 여느 때처럼 밤새 걷다가
새벽에 어느 국민학교에서 도착해 잠을 잤다.
누군가 흰옷 입은 사람이 깨우더란다.
“정하야, 정하야, 어서 일어나 도망쳐라.”
그래서 퍼뜩 깨서 사방을 보니
사람들은 깊은 잠에 골아 떨어졌고,
그래서 운동장 끝에 있는 화장실에 가서
망을 보다가, 죽을 걸음으로 도망쳤다.
가는 곳마다 도망가는 학생인 줄 뻔히 알면서도
도와주었다고 한다.
그는 무사히 살아서 서울로 돌아왔다.
신정하는 해양대학 출신으로
해군 장교로 군대 생활을 하였다.
진해의 군인교회를 다니면서
무엇이 하나님의 일인가,
어떻게 하나님과 약속을 지킬 것인가를 고민하였다.
그때 예수님께서 문둥병자(한센인)를 사랑하시고,
고쳐주셨다는 말씀을 들었다.
또 문둥병에 걸린
한하운 시인의 시를 보고 감동을 받았다.
그는 외항선을 타면 많은 돈을 벌 수 있었지만,
월드비전이란 미국 기독교사회복지기관에 취직하여,
젊은 날 한센인 복지 사업에 헌신하였고,
음성환자의 정착촌 사업을 지원하는 책임자로 일하였다.
예나 지금이나 구라(救癩) 사업은
그리스도인이 맡아서 하였다.
일본도 마찬가지였다.
자연스레 일본 그리스도인들과
구라 사업에 협력하게 되었고,
한-일 한센인들이 교류하는 일을 도왔다.
그러던 중 한 일본인이 제안하였다.
‘우리가 한국에 빚을 졌는데,
이를 갚기 위해서 신 선생에게 제안을 한다’면서,
‘일본처럼 한국에서도 YFU사업을 시작할 수 있도록
신 선생을 국제YFU에 추천하겠다’고 한 것이다.
결국 이 일이 계기가 되어 한국YFU를 통해
미국을 비롯해 세계로
청소년 교환학생의 문이 열렸고,
특히 일본과의 교환학생은
모두 장학생으로 선발하게 되었다.
신정하 장로 이야기는 한 사람의 삶을 통해
민족의 아픔과 세계를 향해 문을 여시는
하나님의 계획을 엿보게 한다.
하나님은 그 사람을 사용하셔서
선한 계획을 이루어 가신다.
<옮긴 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