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처 : [추천괴담] 우산 속 : 네이버 블로그 (naver.com)
"붉은 여자에게 말을 걸어서는 안 된다."
그건 내가 살고 있는 마을에서 언제부터인지 떠돌게 된 도시전설이었다.
붉은 우산을 쓰고 붉은 옷을 입고 붉은 신발을 신은 여자.
말을 걸면 유혹해서 황천으로 끌고 간다거나 빙의한다거나 결말이 애매모호하다.
그리고 그 여자는 지금 내 눈앞에 있다.
나는 눈을 뗄 수가 없었다.
너무나도 아름다웠다.
우산으로 가려져 보이지 않았던 얼굴이 한순간 이쪽을 돌아본 순간 나는 사랑에 빠졌다.
지금까지 단 한 번도 첫눈에 반한 적은 없었다. 아무리 아름다운 여성이라도 나는 냉정하게 볼 자신이 있었다.
그런 내가 이토록 쉽게 사랑에 빠질 정도로 그 여성은 매력이 넘쳐흘렀다.
그 여성은 신비한 여성이었다.
반드시 비가 내리는 날에 그 여자가 나타났다.
플랫폼, 비에 젖지 않는 곳인데도 불구하고 계속 그 여성은 우산을 쓰고 있었다.
늘 나는 반대편 플랫폼에 서 있었기에 나는 멀리서 바라볼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나는 드디어 참지 못하고 통근 도중인데도 불구하고 그 플랫폼으로 걸어가려고 했다.
"여!"
뒤에서 누가 어깨를 두드려서 돌아보니 동료가 허연 숨을 토해내며 서 있었다.
"어, 안녕."
"뭐야, 아침부터 멍하니 있고는. 일할 때도 그러다간 큰 실수한다?"
동료가 웃었다.
나는 황급히 그녀를 눈으로 쫓았지만 이미 열차에 타고 가 버렸다.
만원전철 안에서 동료랑 같이 꽉 끼여서 갔다. 역에 내리자 동료가 한숨을 쉬었다.
"하, 매일 아침 힘들다. 그냥 확 지방 시골 지사에 좌천되고 싶은 기분이야."
"그렇지. 일하기 전부터 힘들지."
인생 대부분을 무익한 시간으로 허비하고 안식을 얻기 위해 가족을 만들고 더더욱 시간을 허비한다. 겨우 가족과 유익한 시간을 보낼 나이가 되었을 때에는 자신이 있을 곳이 없어지는 건 흔한 일이다.
젊은데도 그런 비관적인 생각하지 말라고 동료가 웃는다.
하지만 실제로 내가 그렇다. 내가 좀처럼 고향에 들르지 않는 이유도 그런 차가운 집으로 돌아가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다.
현실 도피.
하지만 나는 눈을 돌릴 용기는 없다.
연애도 거의 관심이 없고 오는 사람 막지 않고 가는 사람 잡지 않으니 당연히 여성들은 정나미가 뚝 떨어지기 마련이다.
연애는 귀찮다. 그래서 나는 요 몇 년 동안 애인을 만들지 않고 홀로 생활했다.
그런 내가 첫눈에 반했다.
꼭 그녀랑 이야기하고 싶다.
나를 봐주었으면 좋겠다.
그리고 어느 날 저녁.
드물게도 정시에 퇴근했다. 거래처에서 바로 돌아가도 좋다고 하기에 나는 평소에 타지 않는 시간에 전철을 타고 귀가하게 되었다.
그 여성은 여전히 붉은 우산에 붉은 옷, 붉은 구두를 신고 있었다. 비도 내리지 않는데 우산을 쓰고 인파에 섞여 있다. 나는 필사적으로 그녀를 쫓아갔다.
내가 말을 거니 여자는 놀란 듯이 돌아보았다.
"비도 내리지 않는데 왜 우산을 쓰고 있습니까?"
"저 피부가 민감해요. 조금이라도 햇빛을 쬐면 물집이 나서."
그런 피부병이 있다는 걸 들어본 적이 있다.
그리고 나는 그녀가 환상이 아니라 실체를 가진 여성이라는 걸 알고 기쁨을 감추지 못했다.
도시전설이라니 한심하기는. 역시 그녀는 실제로 존재하는 여성이었다.
내 집요한 헌팅에 못 이겨서 그녀는 메일주소를 교환해 주었다.
그녀의 이름은 마호.
피부가 약한 그녀하고는 낮에 데이트를 할 수 없었지만 밤에는 만날 수 있었다.
하지만 그녀는 통금이 심한지 9시 전에는 보내줘야 했다.
집에 보내주겠다고 말하면 그녀는 역까지만 바래다줘도 괜찮다고 완강히 거부했다.
그녀는 아직 날 받아들이지 못하나 보다.
그녀에게 몇 번이고 좋아한다고 고백해서 키스까지 갔지만 그 후로는 진전이 없었다.
그게 더욱 나를 불타오르게 했다.
어느 비 오는 날 밤, 그녀는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늘 내가 불러야 나오던 그녀가 직접 플랫폼에서 내 귀가를 기다리고 있었던 것이다.
그녀는 여전히 플랫폼인데도 붉은 우산을 쓰고 있었다.
"기다리고 있어 주었구나. 기뻐."
내가 그렇게 말하자 그녀는 미소를 지었다.
오늘은 그녀가 자기 집까지 같이 돌아가자고 말했다. 나는 환희했다. 드디어 그녀가 허락해 주었다.
전철이 플랫폼에 들어오니 그녀가 우산을 접고 내 손을 잡아끌었다. 꿈만 같았다. 나는 비틀비틀 그녀 뒤를 따라갔다.
"위험해!"
느닷없이 누가 내 손을 잡아끌어서 나는 뒤로 넘어질 뻔했다.
그리고 코앞에 쌩하고 지나가는 전철.
손을 잡아당겨준 건 동료였다.
"그녀는? 무사해?"
나는 바로 동료에게 물었다.
"허? 무슨 말을 하는 거야. 네가 비틀거리니까 걱정되어서 와 보니 느닷없이 특급열차에 뛰어들려고 했다고. 대체 무슨 일이 있었던 거야?"
"여자, 여자가 있었잖아? 붉은 옷에 붉은 우산을 가지고 있던 여자. 그거 내 애인이야. 그녀는 어딨어?"
"그런 여자 없어. 너 머리 괜찮냐?"
농담이지?
나는 지금까지 있었던 일을 전부 말했다. 지금까지 건너편 플랫폼에 붉은 우산을 쓴 여자가 있었다는 것. 말을 걸어서 사귀기로 했다는 것.
"나도 지금까지 계속 너랑 같은 역에서 탔는데 그런 여자는 본 적이 없어. 그렇게 눈에 띈다면 금방 알아차렸을 거야."
동료가 그렇게 대답했다.
그녀는 환상이었던 건가.
그날 이후 그녀는 전혀 연락해오지 않았고 전화번호도 없는 번호라고만 나왔다.
실의에 빠진 내게 저녁, 오마가도키*라고 불리는 시간대에 그녀는 다시 나타났다.
(*해가 지는 낮과 밤의 경계, 인간과 마물이 분간되지 않는 시간대.)
그녀는 드물게도 우산을 쓰고 있지 않았다.
우산을 쓰지 않으면 피부가 문드러진다고 하지 않았나.
그녀는 멍하니 저녁놀을 바라보고 있었다.
그리고 나는 위화감을 느꼈다.
오가는 사람들의 그림자가 길게 늘어나는데도 불구하고 그녀의 발밑에는 그림자가 없었다.
나는 겨우 깨달았다.
그리고 그녀가 알아차리지 못하도록 몰래 뒤로 다가가서 그녀에게 말했다.
"그림자는 어쨌어?"
그녀가 우산을 쓰고 인파에 섞인 이유는 이걸 숨기기 위해서였다.
자신에게 그림자가 없는 걸 숨기기 위해서. 이상한 복장을 하고 있으면 자연스레 발밑에 있는 그림자가 아니라 그녀의 모습만 주목할 테니까.
그리고 그 모습을 볼 수 있는 사람은 한정되어 있을 것이다.
그날부터 그녀는 계속 나랑 살고 있다.
그게 내 바람이었으니까.
인간에게 정체를 들킨 마물은 계속 그 인간이 하는 말을 들어야 하니까.
첫댓글 저기요 결말 뭔데요
~로맨틱 해피엔딩~
여자분은 맘에 들었던거냐고 그럼 됐어
여성분 행복하신거 맞죠? 그럼 다행입니다
결국 열차에 뛰어들었나보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