댓글로 달려다가 글이 길어질까 해서 답글을 달게 되었습니다.
먼저, 승강제의 기본 취지가 승격에 있는지, 혹은 강등에 있는지를 보는 기준에 따라 그 의미가 달라질 수 있다고 봅니다.
우리나라에서는 프로 팀을 운영하는 모든 팀들이 우승을 목표로 해서 구단을 운영하지요.
그러다 보니 팬에 대한 서비스보다는 승리에 대한 욕구가 좀 더 크다고 볼 수도 있습니다.
프로 스포츠 세계에서 오랫동안 회자되는 '우승이 곧 팬 서비스다.' 라는 논리인데요, 문구 그대로 보면 틀린 말은 아닙니다만 이는 어떻게 보면 즐기기 위한 스포츠보다는 이기기 위한 스포츠를 강요하는 면이 있는 것도 사실입니다.
우승을 하기 위해서는 모든 팀들이 승강제의 1부 리그에 잔류하고 싶을테고 그러다 보면 어떤 팀도 강등을 원하지 않는 것은 당연하기도 합니다. 그리고 이를 중심으로 본다면 승강제의 기본이 승격에 있다는 주장도 일견 타당해 보이기도 합니다. 하지만 이런 방식이 과연 전체적인 틀거리에서 옳은 것이냐 라고 누군가 묻는다면 'yes'라고 말하기도 쉽지 않은 것이 사실이지요.
한 팀이 승격하면 한 팀이 강등됩니다.
승격한 팀이 승격이라는 것을 통해 자신들의 스토리를 만들어 낸다면 동시에 강등된 팀 역시 강등을 통해 자신만의 스토리를 만들어 내는 것이 프로 스포츠가 팬들에게 줄 수 있는 감동의 메시지겠지요.
문제는 축구를 포함하여 한국에 있는 프로 스포츠 가운데 이러한 강등이라는 요소는 그리 쉽게 경험해 볼 수있는 요소가 아니었습니다.
저 또한 축구팬의 한 사람으로서 승강제, (좀 더 정확하게 말하면) 강등이 축구팬에게 가져다 줄 스토리가 어느 정도까지 인지 매우 궁금합니다.
여담이지만 축구와 관련되어 이와 비슷할 수도 있는 사건이 있었습니다.
우리가 표면적으로 알고 있는 프로 축구 슈퍼리그의 출범과 관련된 일인데요, 다들 아시다시피 최초의 프로 팀인 할렐루야가 탄생했고 이어서 프로 2호 팀인 유공이 출범하면서 2팀 간에 '그들만의 리그'를 펼치고 있던 가운데 83년에 슈퍼리그가 출범하면서 전국민적인 흥행을 기록하는 이변이 벌어지게 됩니다. 그리고 이러한 돌풍은 불과 2년을 넘지 못 하고 찻잔 속의 태풍으로 변하고 말았다는 것이 우리가 흔히 알고 있는 정설입니다.
그렇다면 한 번쯤 생각해 보아야 할 부분이 있지요.
첫번째, 83년에 있었던 프로 축구의 흥행이 과연 슈퍼리그라는 새로운 컨텐츠로 인한 것이었는가.
두번째, '찻잔 속의 태풍'으로 그친 이유는 무엇때문이었는가.
이 부분과 관련하여 이글루스의 바셋님께서 쓰신 칼럼 (basset.egloos.com/1852501)이 있기에 링크로 대신 걸도록 하겠습니다.
이 칼럼에서 필자는 초창기 슈퍼리그의 대성공은 슈퍼리그라는 컨텐츠로 인한 것이 아니라 몇 해전부터 한국 축구 사상 최초로 도입되기 시작한 지역 연고제 도입과 슈퍼리그 출범, 그리고 이에 따른 축구팬들의 욕구가 맞아 떨어지면서 이루어진 것이라는 것을 쉽게 짐작해 볼 수 있습니다.
반대로 슈퍼리그의 쇠락은 이러한 요소 가운데 지역 연고라는 핵심 요소가 사라지면서 자연히 나타난 결과물이라는 것이 대체적인 요지입니다.
이를 30년이 지난 지금의 상황에 비추어 보면 우리가 얻을 수 있는 것은 무엇일까요.
현재 승강제의 도입이 시도되고 있는 이유가 몇 가지 있습니다.
첫째, 해외 축구의 영향으로는 AFC의 아시아 챔피언스 리그 출전권 제한이 있습니다.
둘째, 양적으로 팽창된 K리그에 대해 질적으로 변화된 모습을 요구하는 자본 출자자들의 입장이 있습니다.
셋째, 협회의 지속적인 유소년 투자로 인해 양적으로, 질적으로 늘어난 우수한 축구 인재들의 일자리를 마련해 달라는 축구계 내부의 입장이 있습니다.
넷째, 합리적인 시스템을 갖추어 주길 바라는 사회적 시대적 요구 사항들이 있습니다.
이러한 주변 각계의 요구 사항에 드디어 K리그가 화답하기 시작하고 있는 것이 작금의 승강제를 둘러 싼 논의로 보여 집니다.
80년 대 초 슈퍼리그의 개막 당시 축구계에 보여 주었던 축구팬들의 이상 열기에 대해 당시 축구인들은 그 이유가 어디에 있었는지 전혀 알지 못 했습니다. 다만 축구도 프로화되었기 때문이라는 어정쩡한 생각만 하다가 시간이 흐르면서 인기가 쇠락해지자 그러면 그렇지 라는 패배주의적 생각에서 벗어나지 못 했던 것이 당시 상황이었어요.
지금과 비교할 수도 없을 만큼 열악했던 당시의 국내 축구 입장에서 본다면 과연 지역 연고라는 컨텐츠 하나로 축구팬들의 관심을 끌 수 있겠는가 라는 생각이 드는 것도 당연해 보이기도 합니다.
지금에 와서 본다면 축구에 있어서의 지역 연고는 당연한 것이지만 당시에는 그렇게까지 심각하게 생각해 보지 않았다는 점을 본다면 현재 논의되고 있는 승강제 도입이 실패했을 경우, 앞으로 10년이 지났을 때 후대인들에게 어떠한 비판을 들을 지를 역사의 반면 교사로 생각해 보면 어떨까요.
만약 당시 실업리그가 주도했던 연고 정착 시스템과 협회가 주도했던 슈퍼리그가 적절하게 접목됐다면 어쩌면 승강제는 당시에 정착되었을 것이고 K리그의 위상도 지금과는 자못 달랐을 것이라는 생각이 드는군요.
당시에도 각 리그의 이권 다툼과 근시안적인 행정으로 인한 지역 연고의 실패가 향후 30년 동안 국내 축구의 운명을 결정짓게 되었는데 현재의 승강제 논의 단계에서 벌어지고 있는 각 구단들 사이의 이견이 과거의 재판이 되지 말라는 보장도 없기에 우리 축구팬들은 촉각을 곤두세울 필요가 있어 보입니다.
승격의 환희가 있다면 강등의 절망도 있어야 스토리가 만들어 집니다. 그리고 프로 산업은 이러한 이야기꺼리를 가지고 성장해 나가며 국민들의 마음 속에 자리잡을 수 있을 것입니다.
당장의 강등이 무서워 팀을 해체한다면 그 팀은 K리그에 들어 올 자격이 없는 팀입니다.
왜냐하면 프로 산업의 생리를 전혀 이해하지 못하고 있는 팀이기에 그런 팀은 있어 봤자 리그 전체에 도움을 주지 못 합니다.
오히려 다시 승격하기 위해 지역 팬들과 함께 하는 이야기꺼리를 만들어 가는 모습에서 진정한 프로 의식이 싹트기 때문이지요.
짧게 시작한 글이 쓰다 보니 장황한 답글이 되었군요.
앞으로 K리그에 도입될 승강제가 축구판에 어떠한 감동과 메시지를 전해 줄 수 있을 지 기대됩니다.
첫댓글 항상 tri ry님의 글로부터 많은 것을 알고 배우고 합니다. 좋은 글 감사합니다. ^^
도움이 되셨다니 다행입니다.
댓글 감사드립니다. ^^
삭제된 댓글 입니다.
먼저 댓글에 감사드립니다.
제가 위와 같은 글을 쓴 이유는 꼬망님과 같이 축구에 뜻있는 분들과 여러 생각들을 나누고 싶은 생각때문입니다.
7-80년대에 설사 그러한 혜안과 철학을 가진 축구 지도자가 있었다고 해서 축구가 답을 내놓았을 지는 저도 잘 모르겠습니다. 그만한 자본과 운영 인력, 그리고 사회적 공감대가 쉽게 마련되었을 거라 생각되지는 않기 때문이지요.
그 당시 분들은 그 분들 나름대로의 고민이 있었고 이를 후대인 우리에게 숙제로 남겨 놓았습니다. 역시 우리는 우리 나름대로의 해결 방법을 제시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되며 이는 다가올 후대에게 부끄럽지 않기 위한 우리 자신의 몫인 셈이지요.
한 가지 분명한 것은 승강제는 반드시 필요하고 이를 위해서는 지금이 가장 적기라는 점입니다.
승강제가 될까라는 의구심에서 논의를 시작하는 것이 아니라 승강제는 어떤 식으로든 한다 라는 확신 속에서 방법론을 찾아 볼 때 보다 긍정적인 답안이 나올거라 생각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