몇 년전 어디서 옮겨온 글인지
내 핸드폰에 저장되어 있기에 올려 봅니다
카페가 조용해서~~
《백석 시인과 통영, 그 죽일 놈의 사랑》
밀실 정치의 요람이었던 요정 대원각을
시주받아 세운 절이 서울의 길상사다.
시주자는 시인 백석의 여인이었던
故 김영한 여사다. 이 땅의 시인들이 가장
사랑하는 시인으로 꼽히는 백석 시인은
기생이었던 그녀를 만나자마자 사랑에 빠졌고
'자야'라는 애칭을 붙였다. 자야는 백석의 詩
'나와 나타샤와 흰 당나귀' 속 나타샤의 모델로
알려져 있다. 백석과 헤어진 뒤 그녀는 백석을
그리며 평생 홀로 살았다고 한다.
자야의 믿음처럼 백석이 가장 사랑한 여인은
그녀 였을 수도 있다. 하지만 나그네 백석의
詩 속 나타샤란 여인이 자야 만을 지칭하는
것은 아닐 것으로 생각한다.
詩 란게 원래 그렇다.
자야도 나타샤고, 자야 전에 사랑한 여인도
나타샤고, 자야 후에 만난 여인도 나타샤다.
스물 넷, 청년 백석이 사랑한 나타샤는
'난' 이라는 소녀였다.
이순신 장군 사당인 통영 충렬사 건너
쌈지공원에는 백석의 시비가 서 있다.
시비에 새겨진 시는 <통영 2>다.
저 머나먼 북쪽 땅 정주가 고향인 백석 시비가
남쪽 끝자락 통영에 서 있는 이유는 뭘까.
다 그 죽일 놈의 사랑 때문이다.
백석은 참으로 많은 여인의 애간장을 태우고
다닌 사내지만 통영의 에자 '난'에게는 도리어
큰 상처를 입었다.
<통영 2> 는 서울 살던 백석이 난이라는 여자를
만나서 통영까지 왔다가 못만나고 그녀가 살던
집과 동네만 하릴없이 기웃거리다 충렬사 입구
돌계단에 쪼그려 앉아 서글픈 심사로 쓴 것이다.
백석은 '통영'이라는 제목의 詩 세 편을 남겼다.
백석이 남쪽 끝 항구도시 통영에 대해 詩를
세 편이나 남긴 것은 그만큼 그 여자 '난'에 대한
그리움이 컸기 때문이다.
당시 <조선일보> 기자였던 백석은 1935년
절친한 친구 허준의 결혼식 축하 모임에서
같은 신문사 동료인 신현중의 소개로 당시
이화고녀 학생이던 통영 여자 난 (본명 박경련)을
만나 사랑에 빠진다.
백석은 스물 셋, 난은 열 여덟, 꽃다운 나이였다.
백석은 후일 그의 산문<편지>에서 난의 모습을
이렇게 그린다
"남쪽 바닷가 어떤 낡은 항구의 처녀 하나를
나는 좋아하였습니다.
머리가 까맣고 눈이 크고 코가 높고 목이 패고
키가 호리낭창하였습니다"
난은 신현중의 누나의 제자였던 터라 신현중과는
잘 아는 사이였다. 백석은 내친 김에 신현중과
함께 허준의 통영 신행길을 따라 나섰다.
사랑하게 된 여인의 고향과 집을 보고 싶었던 것이다.
그 때 쓴 詩가 1935년 12월 <조광>에 발표된
<통영> 이다.
"녯날엔 통제사가 있었다는 낡은 항구의
처녀들에겐 녯날이 가지 않은 천희千姬라는
이름이 많다
미역오리같이 말라서 굴 껍질처럼 말없이
사랑하다 죽는다는 이 천희의 하나를
나는 어느 오랜 객줏집의 생선가시가 있는
마루방에서 만났다
저문 유월의 바닷가에선 조개도 울을
저녁 소라 방 등이 불그레한 마당에
김 냄새 나는 비가 내렸다"
1936년 1월 백석은 통영 출신의 천희 중 하나인
난을 만나기 위해 통영을 방문한다.
통영에서는 아직도 처녀를 '천희' 혹은 '처니'라고
부른다.
하지만 통영 '천희' 난은 겨울방학이 끝나가자
서울로 상경해 버린 탓에 서로 길이 엇갈린다.
이 때 쓴 詩가 바로 앞에 올린 <통영 2>다.
백석은 3월에도 다시 통영을 방문하지만,
이때도 결국 난을 만나지 못한다.
대신 난의 외사촌 오빠 서병직에게 융숭한 대접을
받게 된다. 이 때 쓴 詩가 서병직에게 헌사한
<통영-남행시초 2>다.
"통영 장 낫대 들었다
갓 한 닢 쓰고 건시 한 접 사고
홍공단 댕기 한 감 끊고
술 한 병 받아 들고
화륜선 만져보려 선창 갔다
오다 가수내 들어가는 주막 앞에
문둥이 품바타령 듣다가
열 이레 달이 올라서
나룻배 타고 판데목 지나간다 간다
서병직씨에게
백석은 난을 만나지 못한 섭섭함을 술과
품바타령과 통영시장 구경으로 달랬던가 보다.
또 한 번의 엇갈림, 하지만 사랑의 엇박자는
여기서 그치지 않았다.
1936년 12월 백석은 친구 신현중과 함께 다시
통영을 방문해 난의 어머니에게 난과 혼인할
뜻이 있음을 전한다. 이 때의 상황은 2010년
통영시에서 발간한 <여행통영>에 세밀하게
나와 있다.
1937년 난의 어머니 서씨는 서울에 사는 오빠
서상호를 만나 난의 혼사문제를 상의하고
백석에 대해 알아봐 줄 것을 청한다.
서상호는 통영출신의 독립운동가였고 해방 후
2대 국회의원을 지낸 통영의 유력자였다.
난은 외삼촌 서상호의 집에서 돌봄을 받으며
학교에 다니고 있었다.
서상호는 고향 후배 신현중에게 백석에 대해
묻는다. 그때 신현중은 숨겨주어야 할 친구
백석의 비밀을 발설하고 만다.
그것은 백석의 어머니가 기생출신이라는 소문이
있다는 사실이었다.
그 때문에 백석과 난의 혼사는 깨져 버린다.
대신 그 자리에서 신현중은 서상호에게 자신이
난과 혼인할 뜻이 있음을 밝히고 단번에 승낙을
받는다.
1937년 4월 7일 신현중과 난은 혼인을 한다.
백석은 믿는 도끼에 발등을 찍혔다.
친구의 배신을 뒤늦게 알게 된 백석의 마음은
과연 어떠했을까
백석은 후일 여러 글에서 믿었던 친구에게
버림받은 아픔을 토로한다.
큰 상실감이 백석의 여러 시와 산문을 통해
드러난다. 통영에 왔을 때 백석은 그 시원한
대구국을 먹었던 기억이 남았던 모양이다.
"내 사랑하는 어여쁜 사람이
어느 먼 앞대 조용한 개포가에
나즈막한 집에서 그의 지아비와 마주앉아
대구국을 끓여놓고
저녁을 먹는다
벌써 어린 것도 생겨서
옆에 끼고 저녁을 먹는다"
<'흰 바람벽이 있어' 중>
사랑이 깊으면 외로움도 깊어라
충렬사 건너 백석의 시비 앞에서
나그네는 드라마 보다 더 극적인
엇갈린 사랑과 우정의 드라마를 본다.
언제나 현실은 삶을 배신하기 일쑤다.
현실보다 더한 막장 드라마가 어디 있으랴.
사랑앞에서는 국경이 없다지만
사랑앞에서는 우정 또한 없다.
고금에 사랑때문에 친구끼리 등을 돌리는 것은
흔한 일이다.
백석의 친구 신현중 또한 난이를 연모했으니
어찌 그만을 탓하랴. 친구는 사랑의 전쟁에서
승리한 것 뿐이다.
백석에게는 미안한 일이지만 사랑의 실패 덕분에
우리는 백석의 그 아름다운 시편들을 얻게 됐다.
난과의 사랑에 성공했다면 백석은 아마 통영에
정착해 살았을지도 모를 일이다.
그렇다면 시인이 아니라 혹 선원이나 선주가
되지는 않았을까.
우리는 빛나는 시인 한 사람을 잃을 뻔 했다.
그러나 이런 상상이 정작 백석 자신에게는
아무런 위로가 되지 못할 것은 자명하다.
계관 시인의 명성을 잃을지언정 연모하는
사랑을 얻고 싶은 것이 남자가 아닌가...
첫댓글 옮겨오신거여도 좋아요
다행입니다
좋다고 하니
글 올려놓고 조심스러웠는데~^^
신소재님 백석에대한 글 고맙습니다.
글을읽으면서 백석의모습과 우리가수님이오버랩됩니다
백석이사랑한 통영
사랑하였으므로행복하엿네라 라는 세기의로맨스가생각납니다
유치환선생님과 이영도의사랑
이래서통영은그리운고장입니다
안녕하십니까 예운님~
우리가수님께서 올해 24살이죠
백석의 나이24세때 난이라는 통영처자를
사랑하여 열병을 알았나봅니다
우리가수님도 올해 24세,
백석시인을 좋아하고
그의 시도 좋아하신다고 알고 있어요
제가 몇 년전 읽은 글이 저장되어 있어서
가수님 생각나서 오늘 올려 보았습니다.
좋은 저녁 되십시요 감사합니다^^
@신소재.경남창원 저도 그대목 읽으면서 가수님도 24살인데
사랑의 열병을 앓을 나이구나 했어요.
아름답고 우아하고 쪽진머리가 어울리는 그런 처자를 만나야하는데
기대해 봐야죠. 가수님 안목을 믿어봅시다.
흰바람벽님이
에밀스닉네임을 흰바람벽으로 지으셨다던 기억도 납니다
네,부산에 흰바람벽님 계십니다
우리카페에 보석같은 분이죠^^
신소재님 언제인가 읽었던
글 같지만 다시 읽으니
새록새록 재미집니다
감사합니다
네, 안녕하세요 반가워요
저도 몇 년전 읽고는
제 개인밴드에 저장을 해 놓았는데
오늘 우연히 밴드를 뒤적이다가
백석 시인은 우리 가수님 좋아하는 시인이시라서
글 올려보았습니다
좋은 날 되십시요^^
우리가수님 이 좋아하시는 백석시인 이력을 알게해 주셔서 감사드립니다 우리가수님 도 예쁘고 착한 아가씨가 생겼으면 이런생각 해봅니다 👍🦕🙏
우리가수님도 이쁜 아가씨와 사랑할 나이
백석보다 더 멋진 우리가수님
우리 가요 역사를 새로 만들어가는
멋진 뮤지션입니다.
@신소재.경남창원 암요 그렇고 말고요 대한민국 가요사에 길이 남으실 귀하고 소중하신 단 한분 조명섭가수님 응원합니다 👍 🤴👏👏👏
신소재님 백석시인
울가수님 좋아하는분인라
더 관심이가며
계속 울가수님 이 떠울라요!
넘좋네요!ㅎ
그렇죠?
이 글을 볼때마다
어쩌면 우리가수님이
백석을 닮았다는 생각이 듭니다
24세 꽃서비
사랑의 열병을 앓아도 좋은 아름다운 청춘!
울가수님 이야기는 밤을새도 모자라죠!ㅎㅎ
백석을 담고싶은
울 명섭이 ~~^^
그렇습니다
밤을 새고 또 새도 모자라지요.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