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 이 평전을 읽었을 때 웬지 그렇게 정이 가지는 않았다. 즉 작가가 지나치게 객관적인 입장을 유지하고자 애쓴 나머지 덩의 인간적인 측면이나 사상적인 측면보다는 덩이 어떻게 정권을 잡아갔는지, 그리고 정권을 유지했는지하는 부분만 조명했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현대 중국의 밑그림을 그린 덩의 일대기는 흥미로웠고 오늘날의 우리에게 시사해주는 바가 적지 않은 인물이기에 책을 덮지 않았다.
작은 농촌에서 태어난 덩은 16세의 나이에 프랑스에 유학을 갔지만 생활이 어려워 수학을 사실상 포기하고 공산주의에 심취한다. 이때 덩은 그의 인생에 지대한 영향을 미치게 될 주은래, 리리싼 등 20세기 중국 공산당의 거물이 될 인물들을 만난다. 그는 프랑스 유학 생활과 이후의 소련 생활로 혁명가가 될 기반을 닦는다. 이후 덩은 중국으로 귀국하여 활동을 시작한다.
그의 귀국 당시 마오의 공산당은 국민당과 대치하고 있었고 그와 그가 소속한 공산당은 장제스의 국민당에 밀리고 밀려 대장정을 하게 된다. 그러나 1937년 일본이 중국에 침략하자 국민당과 공산당은 손을 맞잡아 국공 합작이 이뤄지게 되고 덩은 공산당 군대를 지휘하여(군사적 지휘라기보다는 정치적,조직적인) 일본군과 국민당 군을 괴롭혔다. 1945년 일본의 패망 이후 국민당과 공산당의 갈등은 첨예해져 내전에 이르게 된다. 이 때 덩은 전쟁터에서 군을 지휘함으로써 당내의 싸움에 휘말리지 않고 실적을 쌓아나간다. 결국 장제스의 국민당은 본토를 버리고 대만으로 쫓겨가고 내전의 공신 덩은 서남부의 실력자로 부상한다.
덩은 공산당의 주석 마오쩌둥의 신임을 받았지만 두 차례의 큰 시련을 겪는다. 하나는 60년대 대약진운동이 3년대기근으로 실패하였을 때 덩은 백묘흑묘 즉 희건 검건 쥐를 잘 잡는 고양이가 좋은 고양이라는 실용주의 노선을 선택했는데 이때문에 실각한 것이다. 다른 하나는 주은래 사후 사인방에 의해 실각하여 사실상 가택연금당한 것이다. 이러한 시련에도 불구하고 덩은 복권되었고 마오 사후 후계자로 선택된 화궈펑(華國鋒)을 밀어내고 권력을 장악한다.
그러나 덩은 주석의 자리를 거절하고 제2인자의 지위에 머물지만 최고의 권위와 실권을 가지고 실용주의적인 개혁조치들을 단행한다. 그 결과 1980년대 이후 중국의 경제는 급성장하였고 구소련의 몰락 이후 미국을 견재할 수 있는 유일한 나라로 부상하였다.
덩은 마오의 사상을 옹호함과 동시에 이를 윤색하였다. 즉, 공산주의 사상을 유지하되 경제적 개방과 개혁을 추진함으로써 중국을 경제 대국으로 변모시킨 것이다. 덩을 수정주의자로 혹은 공산주의를 왜곡한 자로 비판하려는 사람이 있다 하더라도 그가 정치적 능력으로 권력투쟁에서 승리하였고(쉽게 권력을 물려받은 화궈펑과는 달리) 그의 실용주의 노선이 효과적이었다는 것을 부인할 수는 없을 것이다.
첫댓글 읽고싶었는데 왜 못읽었지??? 잊고있었던거 같네요. ㅋ 덩샤오핑하면 저우언라이가 생각나네요. 제가 굉장히 좋아하는 인물이거든요... 그들 둘을 비교 분석해보는것도 잼있을거 같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