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석의 소리
추석의 나무 대문이 문이 ”삐걱“ 소리를 낸다. 대문 안에는 쾌청한 날씨가 놀고 있다.
깨끗한 장독대에는 큰 독 항아리 작은 단지마다 간장 된장 각종 젓갈이
제 몸 녹여 발효시킨 소리가 숨죽이고 있다.
술 항아리를 열면 "뽀르록 뽀르록" 소리는 뿌연 술독 밑에 통째로 먹이 삼킨 뱀이 내는 소리 같아
나는 얼른 항아리 뚜껑을 닫는다,
뒤 곁 바지랑대에는 여름의 찌든 살 비늘과 땀범벅이 된 이불잇 욧잇을 양잿물에 삶아
빨아 널은 옥양목 천이 구름 올라타는 흉내를 내며 훠이 훠이 바람 부르는 소리를 낸다.
그날 저녁에 푸새한 천을 다듬이질 소리는 온 동네 집 집마다
각기 다른 타악기로 내는 소리는 아름다운 교향악이다.
집안에는 또 다른 난타는 새 창호지를 방문에 붙인 후 마른 뒤
창호지가 어느 정도 말랐을 때 손가락으로 방문을 두드린다.
문 창살 칸마다 크기가 달라 "도동 통" "통통" "도락 도락"
방문 자체가 온갖 종류의 악기가 되는 것이다.
지금 생각해도 아름다운 것은 이슥한 밤, 달빛을 보며 방문 창호지를 튕기면
초가집 지붕 위 뾰얀 박꽃 터지는 소리를 듣는 것이다.
그리고 이 타악기 소리는 겨울바람이 불 때마다 바람 세기에 따라
험하게도 정답게도 들리는 문풍지 소리다.
추석이 가까워지자 음식 준비로 내는 그릇 소리는
전자 오르간이 내는 소리보다 더 경쾌했다.
녹두 빈대떡을 부칠 때 돼지기름 녹인 두꺼운 철판에 "지지찍 지찍" 기름 끊는 소리는
복더위가 여름을 지지는 소리 같아 아무리 냄새가 좋아도 곁에 가기가 두려웠다.
그리고 상인들의 악쓰는 소리는 비가 오는 논에 온갖 개구리들이 모여
"와글와글", 글자 그대로 악마 구리 끓는 소리였다.
시장에 해가 뉘엿뉘엿 지려 하자 배추 무를 손수레에 끌고 팔던
어중간한 나이의 아주머니 아저씨는 못가는 고향 생각이 나는지 노상에서 막걸리
한 대접씩 들고 노래를 노래를 서로 한 구절씩 주고받는다. 판소리다.
전라도 분이라야 제대로 부를 수 있다는 육자배기인가?
어린 내가 처음 접하는 판소리다
어지간하게 술에 취한 두 분은 어깨를 ‘으쓱’하는 추임새도 넣는 것이다.
이분들은 한산해진 장터를 무대 삼아 고향에 가지 못하는 애틋한 심정을
선조들의 한이 서린 판소리에 얹어
그리움을 외롭고도 서러운 감정을 멋지게 승화시키는 것이다.
그리고 나에게는 색다른 소리가 있다.
나는 토란을 너무 좋아해 엄마가 토란 탕을 위해 미리 삶아서 건진 토란을
몰래 부엌에 들어가 한 개씩 집어 조선간장에 쿡 찍어 빨리 도망가는 것이다.
얼마나 맛이 있던지...
엄마한테 걸리면 내 등짝에서 "철썩 소리가 난다. 지금도 귀에 맛있는 소리로 남아있다.
그것뿐만이 아니다. 추석이 지나고 엄마하고 목욕탕에 갔을 때
엄마의 둥근 궁둥이가 뽀얗고 예뻐 내가 살며시 만지면 엄마가 내 손을 때린다.
그 후 세월이 지나 난 달항아리를 보았다.
뽀얗고 둥그스름한 항아리를 보자 난 엄마 궁둥이가 생각나 손을 대려고 하자
예전 목욕탕에서 맞았던 "찰싹" 소리가 들려 멈칫했다.
난 그 항아리를 사서 집에 놓고 보는데 손만 대려고 하면 어김없이 "찰싹" 소리가 들린다.
오래전 들었던 정겨운 소리가 지금은 희미한 옛사랑의 그림자 위 허공을 맴돌고 있다.
하늘을 본다. 한결 높아진 푸른 하늘에서는
불규칙적인 날씨에도 불구하고 다가오는 규칙적인 리듬. 가을 심장의 박동소리가 들린다,
22년 9월 6일 낭만 씀
첫댓글 모두가 정겨운 소리군요
이제는 명절때 마다 여행 다닌다는 풍속이라니
이런 정겨운 소리는 민속촌이나 박물관에서 찾아야 할듯 합니다
추석 명절이면 붐볐던 오래전 제 본가를 떠올렸습니다
단풍들것네님 안녕하세요
그리 멀지도 않은 지난 세월이건만
이 정겨운 소리는 아득합니다
댓글을 감사드리며 이번 추석 즐겁게 보내시기를 바랍니다
추석음식에는 본문 처럼 토란국이 나오는데?
나도 미사리강님 처럼 토란을 좋아합니다
토란은 왜 감자나 고구마 처럼 널리 유행하는 음식이 안되었는지 안타깝습니다
며칠후 추석에 토란국을 먹을 기대를 해봅니당
충성 우하하하하하
태평성대님 안녕하세요
토란 좋아하시는 분을 만나니 반갑습니다
전 정말 토란을 좋아해 추석에는 딴 음식 제치고 토란만 먹습니다
태평성대님 이번 추석에도 토란 맛있게 드시고 건강하시기를 바랍니다
다듬이 방망이 두두릴때엔
일정한 리듬으로 두드려 밤새
두둘겨도 피곤이 거의 없었지요.
메주콩 익으면 메주만들어 달아
말리고..
이번엔 꼭 제방에 문지방 새 창호지로 갈아 주어야 겠다는 생각 입니다.
잘읽었습니다.
어머나 지금 한지 바른 방문을 사용하고 계시나봐요
예전 형태의 의 식 주 생활도구를 보면 정겹습니다
댓글 감사드리고 늘 건강하시기를 바랍니다
잊었던 추석의 소리가
미사리강님이 들어 보라고
귀를 열어보라고 하십니다.
아버지가 절구통에
떡치는 소리도 들리잖아요.
놋그릇이 반짝반짝 하도록
기왓장 깨어서
펼쳐진 가마니 위에 놓였습니다.
추석이 일찍 드는 해엔
아버지가 사다 주신 새 원피스 입고 싶어서
긴 소매 원피스를 입고서
'다망구' 하던 소리도 들려옵니다.
먼 아득해진 어린 시절의 추석의 소리가
점차 가까이로 다가 옵니다.
미사리강님, 추석명절 잘 보내셔요.^^
콩꽃님 안녕하세요
명절이 가까우니 옛날 생활하던 것이 그리워 글을 올렸어요
정말 안반에 메로 떡치는 소리도 있고
아이들 놀던 소리도 들리네요
댓글 감사드리며 이번 추석 즐겁게 보내시기 바랍니다
잊었던 소리를 떠올리게 해 주셨네요.
제가 들었던 소리는 술 익는 소리.
이불 홋청 바람에 날리던 소리 ,
창호지 손으로 튕겨보던 소리 .
........
추석빔 사달라고 조르던 철없던
제 칭얼거림이 들려 옵니다 .
추석 명절 잘 보내세요.
아녜스님 안녕하세요
예전 추석은 우리 엄마들이 너무 고달픈 시간을 보내신 것 같습니다.
거기다 설빔해 달라고 엄마를 조르던 어린 시절이 떠올라 콧마루가 시큼해집니다
댓글 감사드리며 이번 추석 잘 보내시기를 바랍니다
서울에서 줄곧 살았기 때문에 다른 소리들은 정겹긴 해도 추억으로
연결되지는 않습니다. 그런데 창호지는
초등학교 때까지 창호지 바른 문이 있는 한옥에서 살았기 때문에
가을이면 새 창호지를 문에 갈아 붙이시던 아버지가 떠오르면서 눈물이 나네요.
겨울 바람 많이 부는날 들리던 문풍지 소리 저도 많이 그립습니다.
헤도네님 안녕하세요.
한옥 집의 방금 바른 방문은 얼마나 깨끗하고 환했는지요
방문에 꽃과
곷잎으로 장식한 낭만이 가득한 방문이었지요
지금 생각해도 정겹고 그리운 방문에 바른 창호지입니다
댓글 감사드리며 추석 잘 보내시기를 바랍니다
추석이 내는 소리가 참 여러가지군요.
어떤 소리보다 듣기 좋은 소리는 가족이 모여 내는 웃음소리겠지요.
가족들과 함께 보내는 행복한 추석 되시기 바랍니다.
화암님 안녕하세요
정말이지 가장 듣기좋은 소리는 모여서 내는 웃음 소리라는 말씀에 공감합니다.
많은 식구들이 함께 모여 내는 웃음이 이 사회의 근본 원동력이었던 것을 요
전부 정겹습니다.
댓글 감사드리며 주석 잘 보내시기를 바랍니다
좋은 글 감사합니다
영산마을님 안녕하세요.
전형적인 가을 날씨입니다
졸필 보시고 댓글까지 주셔서 넘 감사합니다
추석 잘 보내시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