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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를 키운 나의 집 - 윤소원 민족사관고
내가 태어나고 10살 때까지 살았던 곳은 바다가 보이고 오래된 건물들이 즐비한 곳, 부산이었다. 부모님이 직장을 서울로 옮겨 생전 처음 상경을 했다가, 서울 집값이 너무 비싸 한강 하류가 보이는 옆 동네 신도시 김포로 갔다. 지금은 고등학교가 횡성 산골짜기에 있어 강원도에 살고 있다. 열일곱 인생 치고 나름 전국을 돌아다닌 셈이다. 집. 나의 집. 갈매기가 날아다니는, 바다가 아름다운 부산 이야기를 먼저 해 볼까 한다.
부산은 우리 외가, 친가가 모두 있는 곳이다. 내가 살았던 아파트 옆 동에 외할머니, 외할아버지가 살았고, 차 타고 조금만 가면 친가가 있었다. 가까이 사셨기 때문에 특히 외할머니와의 추억이 많다.
외할머니는 여섯 자매 중의 둘째였고, ‘내조의 여왕’ 수준이 아니라 ‘살림의 여신’ 그 자체였다. 가끔 말썽부리시는 외할아버지를 군말 없이 내조했고, 혼자서 두 남매를 훌륭한 어른으로 키워냈다. 할머니의 이름은 경자. 서울 경, 아들 자. 서울의 아들이라는 뜻이다. 아이러니하게도 할머니는 한 평생 부산에서 살았고, 이름자에 있는 서울에서 살아보지도 못했다. 시대의 소용돌이에 휘말려 우리 할머니는 나의 할머니, 우리 엄마의 어머니로 남지만 우리 할머니는 멋진 가수이고, 미슐랭 5스타급 요리사이며, 훌륭한 재봉사임에는 틀림이 없다. 나는 그렇게 다재다능한 할머니 밑에서 2살 아래 여동생과 함께, 모든 사랑을 듬뿍 받으며 자랐다.
할머니는 집안일을 끝내고 시간이 날 때마다 우릴 데리고 나들이를 갔다. 우리를 당신이 일하시는 옷 공장의 옷으로 예쁘게 깔맞춤해서 선글라스까지 씌우고 나가, 사진을 엄청 찍어댔다. 그런데 신기하게도 그 사진들이 다 너무 예뻤다. 우리는 할머니와 태어나서 10년을 함께했고, 아빠의 이직으로 서울로 올라가야 했을 때 할머니가 많이 서운해 했다.
그때 즈음, 외할머니, 외할아버지, 삼촌, 숙모, 우리 자매와 부모님이 함께 광안대교 앞으로 저녁 식사를 간 적이 있다. 선선하게 부는 바람이 잔잔하게 파도치는 밤바다를 끌어당겼다. 나와 여동생은 자주색 원피스를 하나 입고, 화려한 불빛으로 빛나는 광안대교 아래를 쏘다녔다. 어른들은 광안대교 앞에 돗자리를 깔고 앉아, 술잔을 기울이면서 얘기를 나눴다. 그때로부터 벌써 10년이 다 되어가는데, 난 아직도 그 날의 광안대교를 잊지 못한다. 완벽한 나의 유년. 부모님, 조부모님, 나의 가족이…그 날의 달보다 훨씬 눈부시게 빛나던 광안대교. 주변의 다른 사람들도 가족끼리 옹기종기 앉아 다시 오지 않을 지도 모르는 그 밤을 즐기고 있었다. 그때 나는 정말 어렸고, 지금 돌아보면 아무것도 모르는, 고향을 떠난 적이 없어 고향이 뭔지도 모르는 그런 나이였다. 하지만 그때, 광안리의 우리 가족을 보면서 난 ‘아, 이런 게 집이구나’라는 생각을 어렴풋이 했던 것 같다. 집. 내가 알고 내가 주인공이 되는 나의 고향. 나는 그곳에서 더없이 사랑받았다. 광안대교, 부산 그날의 파도는 내가 학교 생활을 하면서 부딪쳤던 훨씬 더 거센 파도를 그날의 잔잔한 파도로 만든다. 나의 집은 내가 어디 있든 언제나 나를 지탱한다.
서울에서 1년을 살고, 경제적인 문제로 우린 김포로 이사 갔다. 처음에는 가기가 싫었다. 11살의 윤소원은 참 어이없게도 좋아하는 남자애가 있었다. 지금으로부터 6년 전, 김포는 휑하고 정말 별 게 없었다. 상가는 텅 비어 있었고 사람도 없었다. 하지만 부모님은 김포의 괜찮은 집을 보러 매주 주말 김포에 오셨고, 나는 부모님 손에 이끌려 맛있는 것만 먹고 갔다. 그렇게 떠나기 싫었던 서울. 아빠가 처음 우리의 새 집을 보여줬을 때, 나는 그 밤 풍경에 반해버리고야 말았다. 소위 말하는 그 ‘한강뷰’는 아니지만, 한강 하류의 평화롭고 잔잔한 모습이, 한강 너머 일산의 가로등과 어우러져 하나의 불빛쇼가 매일 밤 나의 방 앞에서 펼쳐지는 것 같았다. 그 밤 풍경은 좋아하던 남자애도 다 필요 없게 만들었고, 변화를 두려워하던 11살은 그렇게 새로운 집을 찾았다. 그때까지만 해도, 모든 가족들이 계셨던 부산을 대체할 나의 ‘집’은 없을 줄 알았다. 나의 오리지널리티는 항상 그곳에, 오랜 가족들과의 시간들이 책장에 꽂힌 책처럼 빼곡히 담긴 그곳에 있을 것만 같아서. 그게 ‘집’이니까. 이 드넓은 세상에 대해 아는 것 없이, 그때 나는 나의 부산이 내 세상의 전부인 줄 알았다.
김포는 부산과 정말 다른 곳이었다. 낡아빠진 건물 하며, 검은 전깃줄도 없었다. 전부 새 건물, 새 도로에 규격을 딱딱 맞춘 건물들까지. 처음에는 너무 낯설었다. 신도시라 그런지 건물들 크기가 전부 일정한 게 무섭기까지 했다. 맑은 날이면 눈부신 햇빛 조각이 떨어진 한강 하류를 낀 김포에서 1년, 2년, 3년…이 흘렀다. 난 그곳에서, 많은 걸 깨달았다. 내가 공부를 꽤나 한다는 사실, 내가 운동은 좀 못한다는 사실, 내가 영화를 끔찍이 좋아한다는 사실, 내가 글쓰기를 좋아한다는 사실, 예술을 사랑하는 나의 소울메이트를 만났다는 사실, 영어를 통해 세상과 소통하기를 좋아한다는 사실, 사회의 인정을 받고 싶어 한다는 사실, 남에게 크리스마스 카드를 줄 때 남이 기뻐하는 모습을 보며 웃음이 나온다는 사실. 나의 영원한 고향 부산에서 난 ‘가족’을 배웠다면 이제 완연한 십대에 접어든 난 ‘나’를 배웠다. 난 누군가를 기쁘게 하기를 정말 좋아한다는 걸 배웠다. 난 이곳에서 더없이 사랑스럽고 착한 친구들을 많이 만났고, 새로운 사람들과의 관계 속에서 끊임없이 변화하고 발전하는 ‘나’를 찾았다.
그때 그 아이 - 임소윤 삼척여고
침대 밖으로 한 발자국도 나가기 싫은 추운 겨울이 오면 사람들은 장롱 깊숙한 곳에서 겨울 옷을 꺼내며 마지막과 새로움에 대한 기대로 가득한 눈으로 들뜬 매일을 보낸다. 비단 아이들뿐만 아니라 어른들도 마찬가지다. 1년의 마지막을 누구와 보낼지 생각하며 크리스마스에 어떤 케이크를 먹을지 고민하며 어쩌면 아이일 때로 돌아간 듯한 모습을 보이기도 한다. 그치만 아이들과 어른들의 차이는 이미 소원을 이뤄주는 산타는 사실 동화 속에만 존재한다는 것을 알고 있다는 점이 아닐까.
나도 이제 그러한 어른의 세계로 나아 가야만 한다. 내가 한 일과 말에 책임을 지며 살아가야만 하는 그런 어른 말이다. 나는 아주 어린 꼬꼬마였을 때부터 단 한 번도 어른이 되기를 바란 적이 없었다. 학교에서 친구들과 함께 싸우고 삐지며 속이 상해도, 친구 하나 원할 때 바로 만나지 못 하는 어른은 되고 싶지 않았다. 맛있는 포도 주스 대신에 쓰디쓴 보리차를 마시는 어른은 되고 싶지 않았다. 어린 나에게 어른은 무지개빛으로 빛나는 예쁜 학교가 아닌 회색빛의 못생긴 건물로 가야만 하는 이들이었다.
중학교에 가고, 고등학교에 가서도 이 생각은 조금의 변화도 없었다. 공부와 기대 속에 벅찬 하루를 보내며 이 모든게 끝나길 바라던 고3일 때에도 말이다. 내 친구들이 다들 하루빨리 어른이 되어 예쁜 구두도 신고 화장도 하고 남자친구도 만들거라며 포부를 밝힐 때에도 그저 하루가 여기서 멈추기를 바랐다. 그냥 어린이 순간에 머물고 싶다는 생각만이 온몸을 휘감았다. 피터팬이 뿌려준 요정 가루로 하늘을 날아 영원히 어른이 되지 않는 네버랜드는 내게 환상적인 꿈의 나라였다.
그럼에도 이제는 정말 어른이 되어야만 하기에, 기왕에 새롭게 받게 되는 어른이란 명찰을 빛낼 수 있도록 노력하는 수밖엔 없음을 받아들여야 했다. 내가 아이일때 보았던 힘들어 보이는 어른이 아니라 동경하는 어른의 모습은 아니더라도 어른이 되기를 거부하고 싶어지지는 않는 어른이 되어 보일 것을 매번 다짐했다. 어른이 되었지만 아이들을 공격하며 살아가는 해적 후크선장보다는 아이이길 포기하고 어른으로의 성장을 이룬 웬디가 훨씬 더 멋지게 보이는 것처럼 말이다.
무제 - 권정우 대성고
메기 하나 기웃댄 데 송사리떼 왔구나
떨거지 조금 남아 먹을 것도 없거늘
얼씨구 눈에 불켜고 냉큼 와 집어간다
개돼지 똥밭에서 흰가루 소복할 제
빼입은 주인님은 노름하러 가셨는지
개돼지 죽고나서야 빗자루 들겠는가
봄날의 명랑한 날 구름이 드리웠다
산새 왈 다람쥐 탓, 다람쥐 왈 산새 탓
차라리 하느님께서 폭풍우나 내리시길
책 펼쳐 속을 보니 여백만 가득하다
건너 몇 놈 바라보니 글자가 저깄는데
고얀 놈 지들끼리만 깔깔대며 떠든다
이것은 연필이다 순하지만 굳세다
뭉개면 뭉개지고 힘 주면 부서지는
그러나 늘 곧게뻗는, 네가 내겐 대나무
대성 - 이시현 대성고
녹지 않을 것 같았던 눈도 어느새 녹고
거리 사이사이에 햇빛이 비춰 공기가 뎁혀지니
땅 깊이 얼어있던 봄기운이 스멀스멀 올라온다
추위는 큰 뜻을 위한 시련이고
흰 눈은 큰 이룸을 위한 재료였으니
따스한 햇살로 시련 이기고
녹아내린 땅에 꽃을 피우라
뿌리 내리듯 기반 다지고
큰 뜻 큰 이룸을 위해서
너라는 꽃으로 세상을 아름답게 하라!
출처 : 강원도민일보(http://www.kado.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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