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쁜 아내
이 정 숙
매일 뉴스를 보면 둘만 낳아서 잘 기르자는 켐페인이 한창 뜨겁던 시절, 난 첫 딸을 출산 했다. 홀시어머니에 외아들에게 시집온 나는, 어서 아들을 낳아야 한다는 무거운 책임감에 짓눌려 있었다. 둘째애기는 무슨 수를 써서라도 아들을 낳아야 했다.
우리 부부는 첫 딸을 낳자마자 ‘아들딸 마음대로 낳으세요’ 란 책 제목에 이끌려 그 책을 사다가 날마다 머리를 맞대고 연구했다. 그것도 부족할까봐 소문난 한의원도 찾아가서 한약도 지어서 먹고, 날짜요법, 시간요법, 음식요법등등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다 동원해서 최선을 다해 둘째를 임신했다. 검사를 해서 아들이면 낳고 딸이면 낳지 않겠다는 굳은 각오로···.
그러나 그렇게 간절한 마음으로 최선을 다 했는데도 불구하고, 99%가 딸이라는 의사의 말에 난 마음의 동요 없이 유산을 결심했고, 남편과 시어머님은 두말없이 허락을 하셨다. 병원의 간호사 선생님은 다시 한번 더 생각해 보라고 자꾸 나를 설득했지만, 난 재고의 뜻이 없었다. 지금 생각하면 그것이 얼마나 내리기 어려운 결정인데 그때는 아무생각이 따로 없었다.
8시간에 걸친 사투를 하면서, 난 이제 내 힘으로는 도저히 아들을 낳을 자신이 없었다. 이제 몸이 회복되는 데로 절에 가서 부처님 전에 백일 정성을 들여보고 싶은 마음밖에 없었다. 그러나 그때 까지 따로 절에 다녀본 일이 없던 나는 이웃에 사시는 아주머니한테 절에 가실 때 나 좀 꼭 데리고 가 달라고 부탁을 했다.
처음으로 찾아간 부처님 전에 엎드려 난 참회의 기도를 했다. 앞서 보낼 수밖에 없었던 수자령 영가에게 미안한 마음으로······.아가야 미안해 더 좋은 부모 만나서 다시 태어나 행복하게 잘 살아라. 아가야 미안해 아가야 미안해......눈에선 하염없이 눈물이 흘렀다. 그칠줄 모르는 눈물은 그 후10년이상 계속 되었다. 지금도 기도중에 눈물이 많이 나지만···.
그 득남기도후 우연찮게 임신이 되었다. 난 더 이상 유산은 할 수 없었다. 아들이든 딸이든 부처님께서 점지해 주시는 자식이니, 정성껏 키우겠다는 각오로 8개월이 될 때까지 병원을 찾지 않았다. 해산이 가까워져 병원을 찾아갔더니 다행히 산모도 애기도 모두 건강하다고 하신다.
그 해 음력 12월 29일 드디어 나는 아들을 출산했다.
난 나의 임무를 완수 했다는 기쁜 마음으로 남편을 쳐다보며,
“이제 됐지요?”하고 물었다. 남편은 말없이 빙그레 웃으며 손가락 두 개를 들어 보인다. 평소 자식이 서 너 너댓명은 되어야 한다고, 늘 입버릇처럼 말하더니 아들 하나를 더 낳으라는 신호다. 그 순간 난 너무 서운했다. 난' 당신 수고 했소 이제는 되었소' 이 한마디가 얼마나 듣고 싶었는데...... 남편은 끝내 그 한마디를 하지 않는다. 그 이후 서운한 마음은 두달이 넘도록 나를 힘들게 했다.아무리 욕심이 뻗치더라도 우선은 힘들었을 아내를 위로해주고 치하해 줄 수 있는 마음 조차 없는 무정한 남편같으니라구!!! 원망하는 마음이 속으로부터 올라오기 시작했다.
어머님의 기쁨은 말로 형언하기 어렵다. 친정집에는 딸을 낳았다고 속이고(속이면 애기한테 좋다고)신 바람이 나셨다. 산바라지 끝나고 서울 가시더니 손자를 안겨준 하례품으로 한약을 두 재나 지어서 보내 주셨다. 남편 것과 내 것으로······. 그런데 이상하게 한약을 먹고 나서부터 모유가 잘 나오지 않는다. 난 너무 이상해서 동네 한약방에 들러서 지어준 한약을 내 보였더니(당시에는 달여서 오는 것이 아니고 화제를 집에서 약탕기에 넣고 달였음) 이약은 산모에게는 좋으나 젖이 잘 나오진 않겠단다. 그래서 더 이상 그 약을 먹지 않았는데도 불구하고 그 이후 모유가 돌아서 나오지 않는다. 아이는 젖에서 입을 뗄 줄 모른다. 하루 종일 젖을 물고 놓지 않으려고 하고 젖은 더 이상 불지를 않고 참 난감했다. 돼지발에 땅콩을 넣어서 푹 끓여 먹으면 먹은 만큼만 젖이 나오고 또 끝이다. 그 때가 한 달 십일 된 때다. 하는 수 없이 이웃집에 문의해서 암죽을 끓여 주는 방법을 선택했다.
애기는 자다가 배가 고프면 곧바로 운다. 그때까지 남편은 밤에 애기가 울면 잠을 못 잔다고 어머님 방에서 잘 때다. 오늘 밤부터 남편이 옆에서 잔다고 하니, 난 신경이 더 쓰였다. 잠자러 들어가기 전에 암죽을 끓여서 머리맡에 놓아두고 자다가 애기가'앙 '울면 얼른 먹여야지 생각하고 고단한 몸을 자리에 눕혔다. 어떻게든 애기도 울리지 않고 남편 잠도 방해하지 않으리란 비장한 각오로 잠이 들었다.
한숨을 잤는지 어쨌는지 잠결에 아기우는 소리가 들린다. 예민한 성격의 남편 때문에 불도 켤 수 없다. 캄캄한 방에서 난 본능적으로 머리맡에 놓아둔 젖병을 들어, 뚜껑을 열고 아기 입에 우유병 꼭지를 물렸다고 생각하는 순간, “아니 이게 뭐냐”면서 남편이 소리를 지른다. 난 깜짝 놀라서 “왜 그러냐”고 하니까 빨리 불을 켜란다. 갑자기 밝아진 방안은 이게 어찌된 일인가. 애기는 빈 입이고, 남편의 목에 푸르죽죽한 암죽이 그냥 다 쏟아져 있는 것이 아닌가?
아불싸 세상에! 애기에게 젖병뚜껑을 열어서 물린다는 것이 그만, 잠결에 병뚜껑을 아예 열어서 남편의 목에 다 부어 버린 것이 아닌가? 자다가 날벼락을 맞은 셈이다. 우선은 미안한 마음에 얼른 닦아주고 옷을 갈아입고 다시 잠들게 했지만, 나는 지금도 그때를 생각하면 미안한 마음 보다는 웃음이 저절로 난다. 그런 나는 참 나쁜 아내 인가 보다.
첫댓글 선생님 글 잘읽었습니다,
저도 첫 딸을 낳고 나니 시부모님은 아예 오시지도 않았습니다.
요즘은 아들만 있는부모는 오히려 걱정이 된다는 세상입니다.,
다행이 아들도 있고 딸도 있으니까 선생님은 행복하시겠습니다.
그렇습니다. 선생님 감사합니다.
아효...그런 아픈 경험이 있으셨군요 선생님.
암죽먹고 자란 그아기 물론 지금 건강 하겠지요?
실은요...저도 암죽을 먹고 자랐답니다. 해서 더욱 안쓰럽습니다.
감상 잘 하고 갑니다 선생님.
ㅎㅎㅎ선생니도 좋은 음식을 드시고 크셨네요. 사실은 저의 아들이
키가 무지커요. 난 그 때 그 죽이 도움이 되었다고 생각하거든요.
이 담에 손자가 태어나도 죽 먹이고 싶어요.ㅎㅎㅎ
애기도 울리지 않고 남편 잠도 방해하지 않으리란 비장한 각오를 다지셨으니
오히려 좋은 아내네요. 잠결에 실수를 했을 뿐이죠~
맞아요. 잠결에 실수. 근디 왜 미안하지가 않은지 그거이 참 요상해요.ㅋㅋㅋ
나쁜 아내라니요~~ 여자가 겪는 노심초사~~ 안타깝고, 재미있고~ 잘 보았습니다.
맞아요, 저 나쁜아내가 아닌것 맞죠? 그래서 야속한 남편으로 제목을 바꿔 봤어요.ㅎ
재미있는 수필 잘 읽었습니다, 아드님을 낳은 것도 축하 드리구요.
고맙습니다. 선생님.^*^~
아들 낳으려고 애쓰던 시절 아들만 쑥쑥 둘을 낳아 세상부러울 것이 없었는데 그게 목메달감이랍니다. 크~
딸 아들 골고루 두신 선생님이 부럽습니다.
일단 딸, 아들을 낳으신 것만으로도 좋은 아내 랍니다.
요즈음 선생님글을 자주 대하니 반갑고 대견합니다.
건강하시고 건필하소서,
선생님 감사합니다. 일학기 문학기행 때 뵌 이후 뵙지못해서 보고 싶어요.
선생님 글 재미있고 유익하게 잘 읽고 있습니다. 제가 닮아가고 싶은 노후랍니다. ㅎㅎㅎ
나쁜 아내라고 씌여진 보자기를 풀어보니
온통 좋은 아내라는 증거들이 줄줄 풀어져 나옵니다.
너무 착하고 예쁘고 사랑스런 아내 초생달님!
풀어내시는 글마다 가슴이 찡 합니다.
수고 하셨습니다.
랑랑 선생님 감사합니다. 칭찬의 말씀만 많이 주시고, 부끄럽습니다.
흐흐, 큰 애기는 지금도 잘 계시나요? 하하 잼나네요.
지금도 그 여세는 그칠줄을 모릅니다. ㅎㅎ
아들 딸 잘 낳으셨으니 행복하십니다. 재미있고 솔직한 표현들이 읽기에 좋았습니다. 앞으로도 좋은 글 많이 보여주세요.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선생님 아직 너무 부족해서 부끄럽지만 그래도 자꾸 써서 언젠가는 저도 수필다운 수필을 꼭 쓰고 싶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