칠원면 무흔리 山90에 있는 구고사는 영축총림 통도사의 말사이다. 그리 오래된 절집은 아니다. 무기리에서 양달마을을 거쳐 지금은 흔적마저 사라져 버린 칠원초등학교 산정 분교 터를 지나면 음달 마을이다. 양달마을 인근 돈담 저수지 위 계단식 논에서는 소가 끄는 쟁기로 논을 가는 농부의 소 부리는 소리가 봄을 재촉하고 있었다. 따뜻한 봄볕이 하염없이 내리는 논둑에는 쑥을 캐는 아낙들의 울긋불긋한 모습들이 한 폭의 그림을 연상하게 했다.
음달 마을을 통과하는 콘크리트 포장길로 들어서면 보이는 어느 집 대문 앞의 농주(農酒: 농사일을 할 때 농가에서 일꾼들을 위하여 빚은 술) 판매라는 허름한 합판조각 간판이 정겹게 느껴졌다. 구고사로 가는 구불구불한 산길은 계절 따라 길 양쪽 산자락에 꽃과 나무들이 아름다움을 연출한다.
구고사는 근래에 불사가 이루어진 팔작지붕의 대웅전과 2층에 범종이 걸려있는 종각은 있으나, 일주문도 없는 작은 절집이다. 해맑은 소년 같은 모습의 주지 진명 스님은“1930년대부터 절집의 명맥은 이어졌으나 본격적인 불사는 1983년부터 시작했다”고 설명했다. 구고사에는 지정문화재는 없지만 종각 아래쪽 화단에 석종형 부도1기가 외롭게 서 있는데, 원래 이곳에 있던 것은 아니고 인근 절터를 발굴할 때 옮겨왔다.
요사채로 가는 석축화단에는 출토장소를 알지 못하는 비로자나불상이 작은 돌 판에 부조된 2기가 있다. 방안에 두고 싶은 앙증스럽고 귀엽게 생긴 불상이다. 구고사를 처음 찾았던 것은 아니지만, 절집 식구들과 안면이 없는데도, 만나는 사람마다 공양(점심)을 하고 가라고 하는 정겨움이 묻어나는 곳이다.
정갈한 음식에 떡과 과일을 곁들인 점심을 먹고 산을 찾아 대웅전 뒤쪽 나무 계단을 올라서니, 천막 안 법당에서 불상을 향해 절을 하는 사람들이 보였다. 천막 안에는 신라시대 석불로 추정된다는 약사여래불을 중심으로 양쪽에 2기의 불상이 나란히 있다. 중심불상은 나발이 없고 귀가 아래쪽으로 치우쳐 있으며 코는 비틀어져 있어 서민적이며, 해학적 모습이다. 불상의 옷차림은 우견편단으로 왼손에 몽통한 물건을 들고 있고, 목 부분이 깨어져 시멘트로 붙인 흔적이 뚜렷하다.
오른쪽에 있는 불상은 얼굴의 모습이 뚜렷하고 오른손을 가슴까지 올려 정병을 들고있고, 머리에는 관을 쓰고 있다. 왼쪽 불상은 오른쪽 불상과는 반대로 왼손을 가슴까지 올리고 있으나 근래에 제작된 것으로 보였다. 구고사에 있는 약사여래불상은 토속적인 모습을 띠고 있어 민간신앙의 대상이었던 것으로 추정할 뿐 정확한 내력은 알 수 없다. 이곳을 찾는 신도들은 미륵불이라고 부르고 있었다.
천막법당을 나와 뒤쪽으로 이어진 희미한 오솔길을 따라가니, 양지쪽에는 봄의 전령들이 고개를 내밀고 있었고, 겨울을 견디어 낸 앙상한 나뭇가지에서도 생명의 기운들이 힘차게 올라오고 있었다. 가파른 산길을 오르며 시원한 바람이 친구도 되고, 이마에 땀방울이 맺히면 바위에 앉아 쉬기도 하면서 상봉에 올라서니, 철쭉으로 유명한 천주산 쪽에서 온 등산객들이 삼삼오오 짝을 지어 점심식사를 하고 있었다.
구고사 뒤쪽 능선에서 양미재를 거쳐 천주산 반대방향으로 가면 작대산(해발 649m)이다.
작대산은 천주산 능선이 양미재에서 숨을 고른 후, 불끈 솟아올라 고만고만한 산봉우리들이 만든 곳에 정상이 있다. 칠원면 쪽으로는 서쪽 능선을 내리면서 돈담 저수지에 계류를 흘리고 있다. 작대산의 북쪽 능선을 따라가면 깊은 계곡에 장춘사를 안고있는 칠북면의 중심산 역할을 하는 무릉산(해발 556m)이 있다.
구고사에서 자동차를 버리고 양미재에서 작대산을 거쳐 무릉산으로 가는 길은 사람들의 발길이 뜸해 깨끗하고 아기자기한 길들이 반복된다. 등산로를 따라 무릉산이 안고있는 장춘사를 답사하려면 하루는 족히 발 품을 팔아야 하지만, 자동차 여행에서는 느낄 수 없는 또 다른 답사기행의 즐거움을 맛 볼 수 있다.
심재근(옛그늘문화유산답사회 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