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혜사 성령님
성경 말씀: 이사야 40:1-8; 요한복음 14:16-18
요약
보혜사는 위로자입니다. 보혜사 성령님은 보혜사 예수님과 같이 말해집니다. 하나님은 예수님을 보혜사로 세상에 보내셨고 또 성령님을 보혜사로 세상에 보내셨습니다. 하나님은 세상에 보내신 보혜사로 함께하십니다. 따라서 보혜사는 하나님의 함께로 말해집니다. 즉 언약의 보혜사입니다. 새 언약은 보혜사로 하나님의 함께를 보입니다. 예수님을 따르는 제자들에게, 예수님은 보혜사시고 성령님 또한 보혜사십니다. 그들은 보혜사와 함께 세상에 삽니다.
위로의 보혜사
보혜사 성령님은 예수님이 하나님께 구해서 하나님께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보내실 참의 영이십니다. 예수님을 대신해 제자들과 영원히 함께 머물 위로자십니다. 그분은 그들에게 모든 것을 가르치시고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말씀하신 모든 것을 그들 기억에 불러올 것입니다.
이것은 예수님이 세상으로부터 떠나실 때 제자들에게 말씀하신 것입니다. 예수님은 예수님이 그들의 보혜사셨고 성령님은 예수님을 후 다른 보혜사로 그들에게 오실 것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들은 보혜사 예수님을 후 보혜사 성령님과 함께하게 되었습니다.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그들은 보혜사와 함께할 것을 말씀하셨습니다. 예수님은 그들을 고아로 남겨두지 않겠다고 하셨습니다. 그들은 보혜사 없이 세상에 지낼 수 없었습니다. 달리 말하면 그들은 독자적으로 세상에 살 수 없었습니다.
예수님의 제자로 사는 것은 보혜사와 함께 사는 것입니다. 세상에서 예수님을 따름은 보혜사와 함께함을 뜻합니다. 예수님이 홀로 말해지면, 역사적 인물, 개인으로 여겨집니다. 그러나 보혜사로 의식되는 예수님은 함께로 말해집니다.
보혜사는 함께로 말해집니다. 그분은 하나님의 약속으로 말해집니다. 하나님은 예수님을 보혜사로 세상에 보내셨습니다. 예수님을 한 개인으로 세상에 보내지 않으셨습니다. 예수님의 제자들과 함께함은 보혜사로 서사됩니다. 즉 복음서에서 예수님은 보혜사십니다.
성령님은 보혜사십니다. 즉 그분은 함께의 성령님이십니다. 그러므로 성령님의 은사는 개인으로 누려진다거나 성령님의 은사는 개인의 신장으로 언급된다는 것은 말해질 수 없습니다. 영적 은사는 개인이 아닌 함께로 누려집니다. 성령님은 보혜사로서만 말해집니다.
위로는 위로자로부터 누려집니다. 사람은 자신을 위로할 수 없습니다. 따라서 종교적으로 개인의 마음은 평정에 이를 수 있지만 위로되지 않습니다. 위로는 함께로 누려집니다. 홀로의 위로는 생각될 수 없습니다.
예수님이 보혜사임이 말해지는 한, 예수님은 독자적인 개인일 수 없습니다. 그리고 보혜사 성령님은 대상적으로 다루어질 수 없습니다. 예수님과 성령님이 “보혜사”로 불러지는 한, 함께로 서사됩니다. 보혜사로서 예수님의 활동과 보혜사로서 성령님의 역사는 제자들과 함께로 보입니다.
보혜사 예수님과 보혜사 성령님은 객관적으로 서술되지 않습니다. 제자들과 사도들과 함께하는 활동으로 서사됩니다. 제자들이나 사도들은 그들의 독자적 의도로 될 수 없습니다. 그렇더라도 그들은 세상과 관계를 갖지 않습니다. 세상에서 제자들은 그들 스승과 관계를 갖습니다. 그러나 예수님과 제자들은 어떤 관계도 갖지 않습니다. 특히 성령님과 사도들은 관계로 말해지지 않습니다.
요한복음은 성령님을 보혜사로 말함으로, 예수님이 보혜사이신 점으로 이끕니다. 성령님이 사도들의 보혜사임으로, 예수님은 제자들의 보혜사이십니다. 이렇게 예수님은 보혜사로서 서사됩니다. 즉 요한복음에 예수님은 역사적 인물이 아닌 보혜사입니다.
기억의 보혜사
예수님은 보혜사 성령님은 참의 영이라고 하십니다. 성령님은 어떤 세상의 영과도 구별된 하나님의 영이십니다. 그러나 단지 구별됨을 말함은 어떤 내용도 줄 수 없습니다. 보혜사 성령님은 참의 영이심으로, 참의 드러남으로 구별됩니다.
요한복음 7:17은 이 점을 명시적으로 보입니다: “진리로 거룩하게 하옵소서. 아버지의 말씀은 진리니이다.” 여기서 참과 거룩함의 고리가 표현됩니다. 참은 하나님의 말씀이 이루어짐으로 구별되게 드러납니다. 성령님은 참의 영이십니다.
구별됨은 참의 드러남으로 보이고, 자의적 규정으로 보이게 되지 않습니다. 이스라엘 백성의 성전은 그들의 구조물이었습니다. 그것을 거룩함으로 규정은 자의적이었습니다. 그것은 세상 조건의 변화에 따라 파괴되었을 수 있습니다.
요한복음은 참 생명은 하나님의 말씀 안에 있고, 그것은 성육신으로 세상에 드러난다고 말합니다. 따라서 참은 예수님의 성육신된 생명으로 말해집니다. 그 참을 말하는 영은 참의 영, 보혜사이십니다. 보혜사 성령님은 보혜사 예수님의 참을 말씀하십니다. 보혜사 성령님이 보혜사 예수님의 말씀하시는 점에서, 성령님은 구별됩니다.
예수님을 말함은 참이 세상에 말해짐으로 구별되게 보입니다. 예수님의 참은 구별되게 보입니다. 예수님의 성육신된 참 생명은 수명으로 사는 사람들에게 참을 보입니다. 이것이 세상에 구별됨을 말하는 내용입니다.
예수님을 역사적 인물로 서술은 구별됨을 보일 수 없습니다. 단지 세상에 산 한 사람의 특징을 보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의 성육신된 생명의 서사는 참을 보입니다. 보혜사 성령님이 예수님을 성육신된 참 생명으로 서사함으로, 그분은 구별됨을 보입니다.
보혜사 성령님은 참 생명으로 예수님의 기억을 불러옵니다. 요한복음은 보혜사 성령님에 의해 참으로 기억된 된 예수님의 서사입니다. 복음서에서 예수님은 사실적으로 기억되는 인물이 아닙니다. 예수님은 보혜사 성령님에 의해 참 생명으로 기억되는 보혜사 예수님이십니다.
거꾸로 말하면, 예수님은 보혜사 성령님에 의해 기억됨으로, 보혜사로 서사됩니다. 아무도 개인적으로 예수님을 보혜사로 서사할 수 없습니다, 개인들은 개인들을 말할 수밖에 없습니다. 한 개인으로 기억되는 것은 그 개인에게 적용되는 범주에 의합니다.
개인은 개인들과 관계된 개인들을 말합니다. 이 때문에 제자들은, 보혜사 성령님에 의해 인도되지 않았으면, 예수님을 단지 개인으로 접했습니다. 따라서 그들은 예수님과 개인적 관계만 서술할 것입니다. 개인은 누구든 개인으로만 봅니다.
이 점에서 보혜사 성령님에 의한 인도가 말해집니다. 예수님을 따르는 제자들은 보혜사 성령님에 의해 인도됩니다. 그러면 그들은 예수님을 개인이 아닌 보혜사로 따릅니다. 그들은 더 이상 개인들로 머물지 않습니다.
참의 보혜사
보혜사 성령님은 무엇보다 하나님으로부터 오신 하나님의 영이어야 합니다. 그분은 하나님으로부터 오신 하나님의 영으로 세상의 영으로부터 구별됩니다. 따라서 다음 구절을 주의해야 합니다: “하나님의 영은 이것으로 알지니 곧 예수 그리스도께서 육체로 오신 것을 시인하는 영마다 하나님께 속한 것이요(요일 4:2).”
성육신은 하나님의 영으로만 말해집니다. 따라서 그것은 세상에 구별됨을 보입니다. 성육신은 어떤 출생과도 구별됩니다. 그런 구별됨은 하나님의 영으로만 말해질 수 있습니다. 세상의 영으로 구별됨이 아닌 신화적 막강함이 말해질 수 없습니다.
세상의 영은 참의 영이 아닌 힘의 영입니다. 세상은 변화함으로, 변화를 야기하는 힘의 내용이 기본입니다. 그러므로 세상의 영은 우선 사건을 일어나게 하는 힘을 다룹니다. 참이 아닌 힘으로 말해지는 영은 세상의 영입니다.
참은 구별되지만, 힘은 비교됩니다. 따라서 구별됨은 힘으로 보아질 수 없습니다. 힘이 추구되는 한, 길은 더함에 향해집니다. 사람들은, 힘을 추구하기 때문에, 세상 영에 의해 유혹됩니다. 즉 그들은 비교되는 것으로 유혹됩니다.
힘의 영의 세상에 참의 영은 구별됩니다. 참의 영은 성령님이십니다. 예수님이 참 생명으로 성육신 된 것을 들려주는 분이 하나님의 영, 성령님이십니다. 참은 세상에서 예수님은 하나님으로부터 오신 분임을 언급하지 않고 말해질 수 없습니다.
이 점에서 보혜사 성령님의 다루는 것은 중요합니다. 그분은 예수님에 의해 소개되셨음으로, 예수님과 직접적으로 연결됩니다. 영의 다룸이 예수님으로 시작되지 않고 세상에서 체험하는 것으로 시작되면, 힘을 사용하는 내용이 그것에 반영됩니다. 그러면 영적 은사는 구별됨으로 다루어지지 않고 힘으로 다루어집니다.
사도행전 2장에 오순절의 서사는 성령님의 오심을 증거 합니다. 방언의 출현, 예수님에 대한 고백, 그리고 교회의 이루어짐의 서사는 성령님이 역사에 대해섭니다. 그러나 그것으로 구별됨의 의미는 분명히 보이지 않습니다.
그러나 사도 요한은 성령님의 구별됨을 밝히려 합니다. 영의 모호한 다룸은 그 만큼 혼돈을 초래할 것이기 때문입니다. 사람들은 체험된 영적 힘을 과시하려고 합니다. 그들은 영의 구별됨에 관심을 갖지 않습니다.
영의 구별됨이 예수님의 참으로 다루어지지 않으면, 영의 어떤 내용도 종교적이 됩니다. 종교성은 거룩함을 다루지 않습니다. 종교는 수련으로 향상의 뜻을 지님으로, 구별됨보다 나아짐을 향해집니다. 그러므로 종교적 거룩함은 구별됨보다 나아짐에 대해 표현됩니다.
일상 삶에서 성인(聖人)은 구별됨보다 나아짐의 뜻을 지닙니다. 보통 사람보다 위에 있는 사람을 성인으로 불러집니다. 그러므로 성인은 보통 사람들로부터 구별된다고 말해지게 되지 않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의 성자(聖子)됨은 구별됨을 뜻합니다. 예수님을 믿는다는 뜻은 구별됨을 전제합니다.
하나님 아버지,
타락된 세상에 사는 저희는 위로를 바랍니다.
위로자로 예수님을 이어 세상에 오신 위로자 성령님에 의해 인도되는
위로를 바랍니다.
죽음에 처한 타락된 세상에서 위로는 저희 마음에 갇힐 뿐입니다.
보혜사 성령님의 인도하심으로 아버지와 함께로 위로되게 하옵소서.
예수님을 기억함으로 위로되게 하옵소서.
참으로 인도됨으로 위로되게 하옵소서.
아버지와 함께로 위로되기에
죽음에 속박한 타락된 세상을 극복하게 하옵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하옵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