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나 카레니나] 5부 27
교사와의 수업 다음으로 아버지와의 수업이 있었다. 아버지가 오실 때까지 세료자는 책상 앞에 앉아서 가위로 장난을 치며 생각에 잠겨 있었다. 산책하는 동안 어머니를 찾는 것은 세료자가 좋아하는 일 중 하나였다. 그는 죽음이라는 것을 대체로 믿지 않았으며, 특히나 어머니의 죽음은 믿지 않았다. 비록 리지야 이바노브나가 그렇게 일러 주었고, 아버지까지 확인해 주었어도 그랬다. 그래서 어머니가 죽었다는 얘기를 전해 들은 뒤에도 그는 산책을 하는 동안 어머니를 찾곤 했다. 통통하고 우아한 검은 머리의 여자는 다 어머니였다. 그런 여자가 눈에 띄면, 세료자의 가슴속에서는 애틋한 감정이 북밭쳐서 숨이 막히고 눈물이 솟을 지경이었다. 그리고 그는 그녀가 자기한테 다가와 베일을 벗어 올리기를 가만히 기다리곤 했다. 얼굴이 모두 드러나고 그녀가 미소를 지으면서 자기를 끌어안으면, 그녀의 냄새를 맡고 그 손의 부드러운 감촉을 느끼며 행복의 눈물을 흘릴 터였다. 언젠가 저녁때 어머니의 다리를 베고 눕자 어머니가 그에게 간지럼을 태우길래 까르르 웃으며 그녀의 반지 낀 흰 손을 깨물었던 때처럼 말이다. 나중에 어머니는 죽지 않았으며, 아버지와 리지야 이바노브나가 그에게 어머니는 죽은 것이나 다름없다고 말한 까닭은 어머니가 좋은 사람이 아니기 때문이라는 걸(이 점은 그는 결코 믿을 수가 없었는데, 왜냐하면 어머니를 사랑했기 때문이다) 유모로부터 우연히 알게 되고도, 그는 예전과 똑같이 어머니를 찾거나 기다리곤 했다. 오늘 여름 궁전에는 보랏빛 베일을 쓴 어느 귀부인이 있었다. 그는 죄어드는 가슴으로 어머니이길 고대하면서 그녀가 좁다란 길을 따라 자기네 일행에게 다가오는 모습을 눈으로 좇았다. 그 귀부인은 세료자 곁에 채 다가서기도 전에 어디론가 자취를 감춰 버렸다. 오늘 그 어느 때보다도 강렬하게 어머니를 향한 사랑이 북받치던 세료자는 아버지를 기다리는 중이라는 걸 망각하고는, 책상 귀퉁이를 주머니칼로 온통 그어 대며 반짝이는 두 눈으로 자기 앞을 응시한 채 어머니 생각에 빠져 있었다.
“아버님께서 오고 계십니다!” 바실리 루끼치의 말에 그는 퍼뜩 정신을 차렸다.
세료잔느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아버지에게 다가가 손에 입을 맞추고는 그의 얼굴을 주의 깊게 응시하면서 알렉산드르 네프스끼 훈장을 받아서 기뻐하는 기색을 찾아보려 했다.
“산책은 잘 했니?” 알렉세이 알렉산드로비치가 안락의자에 앉아 구약성서를 앞에 가져와 펼치면서 말했다. 알렉세이 알렉산드로비치는 그리스도교인이라면 누구든지 성스러운 역사를 확실하게 알아 둬야 한다고 세료자에게 수차례나 일렀으면서도, 그 자신 또한 구약 성서에 한해서는 책을 들추며 원문을 참조하곤 했다. 세료자도 그 점을 눈치채고 있었다.
“네, 아주 즐거웠어요, 아빠.” 세료자가 비스듬히 앉은 채 의자를 흔들면서 말했다. 의자를 흔드는 건 금지되어 있었다. “나젠까를 봤어요(나젠까는 리지야 이바노브나가 양육하고 있는 그녀의 조카딸이었다). 나젠까가 그러는데, 아빠가 새 훈장을 받으셨다고요. 기쁘시죠, 아빠?”
“첫째, 제발 의자 좀 흔들지 말아라.” 알렉세이 알렉산드로비치가 말했다. “둘째, 귀중한 건 상이 아니라 노력이란다. 네가 이 말을 이해해 주면 좋겠는데 말이야. 네가 말일 상을 받기 위해서 노력하고 공부한다면, 그 노력은 힘들게 느껴질 거다. 하지만(알렉세이 알렉산드로비치는 118장의 서류에 서명을 하는 지루하기 짝이 없는 노동을 수행하면서 의무감으로 스스로를 이겨 낸 그날 아침나절을 떠올리며 말했다) 일이 좋아서 노력한다면, 그 속에서 자신을 위한 상을 발견하게 될 거야.”
다정하고 쾌활하게 빛나던 세료자의 두 눈이 생기를 잃고 아버지의 시선 아래로 수그러들었다. 아버지가 아들을 대할 때마다 구사하는 말투, 아주 오래전부터 익숙한 그 말토를 세료자는 이미 흉내 내는 법까지 터득하고 있었다. 세료자가 느끼기에, 아버지는 자기와 대화할 때면 언제나 그 어떤 상상 속의 소년을 대하는 듯 굴었다. 책에서나 나올 법한, 하지만 자기와는 전혀 닮지 않은 소년이었다. 그래서 세료자도 항상 아버지와 있을 때면 책에 나오는 그런 소년인 척 꾸며 대곤 했다.
“내 말 이해하겠지?” 아버지가 물었다.
“네, 아빠.” 세료자가 상상 속의 소년인 척하며 대답했다.
수업 내용은 복음서의 몇몇 구절을 암송하고 구약의 첫 대목을 복습하는 것이었다. 세료자는 복음서의 구절들을 꽤 많이 알고 있었다. 그러나 그 내용을 암송하며 세료자는 관자놀이에서 너무 심하게 구부러져 있는 아버지의 이마뼈를 바라보는 데 정신이 팔려 그만 머릿속이 헷갈렸고, 그래서 한 구절이 시작되는 대목에서 같은 단어로 된 다른 구절의 끝 대목을 갖다 붙이고 말았다. 알렉세이 알렉산드로비치가 보기에는 아들이 암송하는 구절을 이해하지 못하는 게 분명했기에 부아가 치밀었다.
그는 인상을 찌푸리더니 세료자가 이미 여러 차례 들었으며, 너무나 명확하게 이해하고 있기 때문에 오히려 절대로 외울 수 없는 것을 설명하기 시작했다. 말하자면, ‘갑자기’가 행위의 양상을 가리키는 상황어라는 것과 비슷한 종류의 설명이었다. 세료자가 겁먹은 눈으로 아버지를 바라보면서 생각했던 건 오로지 한 가지, 간호 가다 그랬던 것처럼 외웠던 것을 다시 되풀이해 보라고 시키지 않을까 하는 걱정이었다. 그 생각에 너무나 겁을 먹는 바람에 이제 그는 아무것도 종잡을 수가 없었다. 그러나 아버지는 되풀이해 보라고 시키지 않고 구약 수업으로 넘어갔다. 세료자는 역사적 사건들 자체에 대해서는 이야기를 썩 잘해 냈다. 그러나 몇몇 사건들이 어떤 미래를 예시하느냐는 질문에 답해야 할 때가 되자, 그 수업 때문에 이미 벌을 받은 적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머릿속이 하얗게 되었다. 태초의 족장들에 관한 대목에 이르자 그는 아무 말도 못 한 채 우물쭈물 하면서 책상에 가위질을 하거나 의자를 흔들어 댔다. 살아서 하늘로 올라간 에녹 말고는 그들 중에 아는 이가 하나도 없었다. 예전에는 다 외운 그 이름들을 지금은 에녹을 빼고는 까맣게 잊어버렸는데, 이는 특히 구약에서 그가 가장 좋아하는 인물이 에녹이기 때문이기도 했고, 에녹이 산 채로 승천했다는 일화가 그가 지금 아버지의 시곗줄과 반쯤 채워진 조끼의 단추를 가만히 응시하며 온 정신을 쏟고 있던 길고 긴 상념의 행로와 접목되었기 때문이었다.
사람들이 그토록 자주 언급하는 죽음을 세료자는 전혀 믿지 않았다. 그는 자신이 사랑하는 사람들이, 특히 자기 자신이 죽을 거라는 사실을 믿을 수 없었다. 그런 건 그에게 전적으로 불가능했고, 납득할 수 없는 일이었다. 그러나 사람들은 그에게 모두가 다 죽을 거라고 말했다. 심지어 자신이 신뢰하는 사람들에게 물어도 그들마저 그 사실을 확인해 주는 것이었다. 유모 역시 내켜하지는 않았지만 같은 말을 했다. 하지만 에녹은 죽지 않았다. 그런즉 모두가 죽는 건 아니었다. ‘어째서 모든 사람들이 하느님 앞에서 똑같이 공을 세우고서 살아서 하늘로 올라가지 못하는 겁니까?’ 세료자는 생각했다. 나쁜 사람들, 즉 세료자가 좋아하지 않는 사람들은 죽을 수도 있지만, 좋은 사람들은 모두 에녹처럼 될 수 있었다.
“그래, 어떤 족장들이 있었지?”
“에녹, 에노스요.”
“그건 이미 얘기했잖아. 형편없구나, 세료자, 아주 형편없어. 그리스도교인에게 무엇보다 중요한 것을 알려고 애쓰지 않는다면….”아버지가 자리에서 일어서며 말을 이었다. “도대체 뭐가 네 관심을 끌 수 있단 말이냐? 정말 못마땅하구나. 뾰뜨르이그나찌치(그는 주임 교사였다)도 너를 못마땅하게 여기고 있어…..너에게 벌을 내려야겠다.”
아버지와 교사 두 사람 모두 세료자를 불만족스럽게 생각했으니, 실제로 그가 공부를 아주 못하는 것은 사실이었다. 그러나 그가 무능한 소년이라고는 결코 말할 수 없었다. 반대로, 세료자는 교사가 그에게 본보기로 드는 학생들보다 더 재능 있는 학생이었다. 아버지의 관점에서 볼 때는 가르쳐 주는 것을 배우려 들지 않는 아이였지만, 본질을 말하자면 그는 그런 걸 배울 수 없었다. 그의 마음속에는 아버지나 교사가 제기하는 것보다 더 절실한 욕구가 잠재하고 있었다. 그 두 가지 욕구가 충돌하자 그는 곧바로 자신의 교육자들에게 반발하지 않을 수 없었던 것이다.
아홉 살 먹은 어린애였을지언정 세료자는 자신의 마음만은 잘 알고 있었고, 그것은 그에게 소중했다. 눈꺼풀이 눈동자를 소중히 간직하듯이 그는 자신의 마음을 소중히 간직했다. 그리고 사랑의 열쇠가 없으면 아무도 마음속에 들이지 않았다. 그를 훈육하는 이들은 그가 공부를 하려 들지 않는다고 불평했지만 세료자의 마음은 지식욕으로 충만했다. 그리고 그에게 가르침을 주는 이는 까삐또니치, 유모, 니젠까, 바실리 루끼치였지 교육자들이 아니었다. 아버지와 주임 교사가 자신의 물레방아에 흘러내리길 고대하던 물줄기는 이미 다 새어 나가 다른 곳에서 흐르며 제 일을 하고 있었다.
아버지는 리지야 이바노브나의 조카인 니젠까에게 못 가게 함으로 써 세료자에게 벌을 내렸다. 그러나 이 벌은 오히려 세료자에게 행운이었다. 그러나 이 벌은 오히려 세료자에게 행운이었다. 기분이 좋았던 바실리 루끼치가 풍차 만드는 법을 보여 주었으니 말이다. 위에 올라타 뱅뱅 돌 수 있는 풍차를 어떻게 만들지 궁리하고 공상하느라 그날 저녁은 통째로 흘러가 버렸다. 풍차 날개에 두 팔로 매달리면 될까? 아니면 몸을 거기에 묶은 다음 뱅뱅 돌면 되는 걸까? 저녁 내내 어머니 생각은 하지 않았다. 하지만 잠자리에 들자 불현듯 어머니가 떠올랐다. 세료자는 내일, 자신의 생일에 맞춰서 어머니가 이제 숨바꼭지를 그만두고 곁에 와주기를 소리 내어 기도했다.
“바실리 루끼치, 본래 하던 거 말고 내가 또 뭘 기도드렸는지 아세요?”
“공부를 더 잘하게 해달라고요?”
“아니요.”
“장남감을 갖게 해달라고요?”
“아니에요, 못 알아맞히실 거예요. 멋진 건데 비밀이에요! 기도가 이루어지면 말씀드릴게요. 아직 못 맞혔죠?”
“네, 모르겠네요. 도련님이 얘기해 보세요.” 바실리 루끼치가 평소답지 않게 미소를 지었다. “이제 그만 누우세요, 촛불을 끌 테니.”
“그런데 저는요, 촛불을 끄면 지금 눈앞에 보이는 거랑 기도드렸던 게 더 잘 보여요. 이것 좀 봐, 하마터면 비밀을 말할 뻔했네!” 세료자가 쾌활하게 웃음을 터뜨렸다.
촛불을 내가자 세료자는 어머니의 소리를 듣고 느꼈다. 어머니는 세료자를 위에서 내려다보며 사랑 가득한 눈길로 그를 어루만지고 있었다. 그러나 풍차와 주머니칼이 나타나더니 모든 게 뒤섞여 버렸다. 곧 그는 잠이 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