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창조물의 천연계 속에 나타나신 창조주
죄가 들어오기 전에는, 우리의 첫 조상들의 마음에 하나님의 품성에 대한, 그들의 지각을 흐리게 하는 한 점의 구름도 없었다. 그들은 하나님의 뜻에 완전히 일치되었다. 하나의 덮개로서 아름다운 빛, 하나님의 빛이 그들을 두르고 있었다.
이 분명하고 완전한 빛이, 그들이 접근하는 모든 것을 비추었다.(8T 255.1) 천연 계는 그들의 교과서였다. 에덴동산에서 하나님의 실존(實存:실제로 나타내 보이심)은 입증(立證:확정)되었고, 그분의 특성들은 그들을 두르고 있는, 천연계의 사물에 나타났다.
그들의 눈이 머무는 모든 것은, 그들에게 말해 주었다. 하나님의 보이지 아니하는 것들, “곧 그의 영원하신 능력과 신성”(롬1:20)이 그 만드신 만물에 분명히 보여 알게 되었다.(8T 255.2)
그러나 태초에는 하나님께서 천연 계를 통하여, 식별될 수 있었던 것이 사실이지만, 인류의 타락 후에는 하나님에 대한 완전한 지식이 천연 계를 통하여, 아담과 그의 후손들에게 계시되지 않았다. 천연 계는 죄 없는 상태에 있는 인류에게, 그의 교훈을 전달할 수가 있었다.
그러나 범죄는 어두운 그림자를 세상에 가져와서, 천연 계와 천연계의 하나님 사이를 가로막았다. 만일 아담과 하와가 그들의 창조주께 불순종하지 않고, 완전한 정직의 길에 머물렀더라면, 그들은 계속해서 하나님의 솜씨를 통하여, 그분을 배우게 되었을 것이다.
그러나 그들이 유혹자의 말을 듣고, 하나님께 범죄 하게 되자, 하늘의 흠 없는 의복의 광채는, 그들에게서 떠나갔다. 하늘의 빛을 빼앗기자, 그들은 더 이상 하나님의 솜씨에 나타난, 그분의 품성을 식별[분별]할 수 없었다.(8T 255.3)
그러나 천연계의 사물의 아름다움에서, 또한 그것들이 우리의 필요와 행복에 놀랍게도 적합(適合:꼭 알맞음)하다는 데서, 우리는 하나님께서 여전히 우리를 사랑하시며, 그분의 자비가 여전히 세상에 나타나는 것을 배울 수 있다.(8T 256.3)
그리고 인류의 불순종 때문에, 천연 계 자체에도 변화가 초래되었다. 죄의 저주로 훼손당한 천연 계는, 창조주에 관하여 불완전한 증거밖에는 할 수 없다. 천연 계는 그 자체의 완전한 상태에서, 창조주의 품성을 드러낼 수가 없다.(8T 256.1)
천연 계는 능력이 무한하시고, 자비와 긍휼과 사랑이 많으신 분께서, 세상을 창조하시고 그것을 생명과 기쁨으로, 충만케 하셨다는 사실을 증거 한다. 비록 망가진 상태일지라도, 만물은 위대한 대예술가의 솜씨를 드러낸다.
비록 죄가 천연계의 사물들의 모습과 아름다움을 망가뜨렸을지라도, 비록 그것들에게서 공중의 권세 잡은 자가, 활동한 흔적들을 보게 될지라도, 그것들은 여전히 하나님께 대하여 말한다. 찔레와 엉겅퀴와 가시나무와 가라 지에게서, 우리는 죄의 선고의 법칙[죄의 본질의 선포와 형벌]을 읽을 수 있다.
영혼을 파괴시키는 일에 있어서, 사단은 풋내기가 아니다. 만일 그가 남녀들을, 먹고 마시는 일에 나쁜 습관으로 인도할 수만 있으면, 그들의 정신과 저열한 정욕을, 거의 자기가 지배할 수 있음을 잘 안다. 태초에는 사람이 땅의 소산(所産:소산물-경작한 작물)을 먹었다.
그러나 죄가 죽은 동물의 고기를 음식으로, 사용하도록 만들었다. 이런 식사는 참된 품위와 도덕적 순결의 정신에, 정면으로 역행한다. 위장 속에 섭취된 물질[동물의 독성]이 흡수되어 피와 살로 변한다....(Te 161.1)
우리가 순종할 때 우리는 행복한 가정을 가질 수 있다. 어린이들에게 하나님의 계명을 영원히 가르치라. 이것은 이스라엘 당시에 매우 중요한 것이었으며, 오늘날도 똑같이 중요하다.
계명을 지킨다고 하는 여러분의 모든 공언이, 그대들에게 성[예루살렘 성]에 들어가도록 하지는 않을 것이다. 그것을 마음에 매고, 모든 행위에 그것을 실행하라. 그것을 모두 살피시는 분이 계시며, 그분은 내가 너희 앞에 열린 문을 두었다고 말씀하신다.
이것을 통해 영원한 언약의 표, 약속의 무지개로 덮여진 채, 자비와 진리가 같이 만난 것을 보여 주며, 그것을 바라보는 자들에게서, 주께 대한 찬양이 흘러나오는, 하나님의 보좌가 보여 졌다.(2SAT 97.4)
오늘날 우리가 바라보는 천연계의 사물들은, 에덴의 아름다움과 영광에 관하여 다만, 희미한 개념만을 우리에게 제공한다. 그럴지라도 아름다운 것이 많이 남아 있다. 그리스도를 떠나가면, 우리는 여전히 천연계의 언어를 올바로 해석할 수 없다.
인간이 배워야 할 가장 어렵고 굴욕적(屈辱的:굴욕을 당하고 깨달음)인 공과(功過:과실과 공로)는, 인간의 지혜를 의존할 때에, 그 자신은 무능하다는 것과, 천연 계를 정확하게 읽고자 하는, 그의 노력이 분명히 실패로 끝난다는 것이다. 천연 계를 하나님 위에 놓지 않고서는, 그것을 혼자서 해석할 수 없다.
그는 천연 계 숭배에 바쳐진 제단들 중에서, “알지 못하는 신에게”라고 기록된 한 제단을 가진, ‘아덴’ 사람들과 유사(類似:비슷)한 상태에 놓여 있다. 하나님은 정말로 그들에게 알려지지 않았다. 그분은 거룩한 교사[하나님의 아들]의 지도 없이, 천연계의 연구에 임하는 모든 사람에게 알려지지 않으신다.
그들은 분명히 잘못된 결론에 도달할 것이다.(8T 257.2) 인간적인 지혜로는 하나님을 알지 못한다. 세상의 현명한 사람들은, 그분의 창조된 업적에서 그분에 관한, 불완전한 지식을 수집한다.
그러나 이 지식이 그들에게 하나님에 대하여, 고상한 생각을 제공하지 않는 한, 정신과 영혼을 향상시켜 주고, 인간 전체를 그분의 뜻에, 일치되게 해 주지 않는 한, 사람들을 우상 숭배자가 되게 한다. 그들은 눈먼 상태에서 천연 계와 천연계의 법칙을, 천연계의 하나님보다 더 높이게 된다.(8T 257.3)
참 과학에는 하나님의 말씀의 가르침과 반대되는 것이, 전혀 있을 수가 없다. 그 둘은 다 같이 창시자가 동일하기 때문이다. 그 둘을 정확하게 이해하게 되면, 그것들이 언제나 조화를 이루고 있음이 판명될 것이다. 천연 계에서나 계시에서나 간[어느 것이든지 간]에 진리는, 그 모든 표현에 있어서 그 자체가 조화를 이룬다.
그러나 하나님의 성령으로 빛을 받지 못한 마음은, 그분의 능력에 관하여 언제나 암흑 속에 놓이게 될 것이다. 이런 이유 때문에 과학에 관한 인간적인 견해가, 하나님의 말씀의 가르침과 그처럼 자주 상치(相馳:서로 어긋나게) 된다.(8T 258.2)
창조의 사업은 과학으로, 결코 설명될 수 없다. 어떤 과학이 생명의 신비를, 설명할 수 있을까?(8T 258.3) 하나님께서 세상을 존재하게 하실 때, 물질을 창조하지 않으셨다는 이론은 근거가 없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세상을 조성(造成:창조하시어 만들어 완성)하시면서, 이미 존재하는 물질에 의존하지 않으셨다. 오히려 만물은 물질적인 것이나 영적인 것이나 간에, 주와 여호와의 음성을 따라 그분 앞에 섰고, 그분의 목적대로 창조되었다.
하늘과 하늘에 있는 모든 천군, 땅과 그 가운데 있는 만물은, 그분의 손으로 된 업적(業績:창조의 능력)일 뿐 아니라, 그것들은 그분의 입 기운으로 존재하게 되었다.(8T 258.4)
(히11:3) 믿음으로 모든 세계가 하나님의 말씀으로 지어진 줄을 우리가 아나니 보이는 것은 나타난 것으로 말미암아 된 것이 아니니라.
(시33:6,9) 6 여호와의 말씀으로 하늘이 지음이 되었으며 그 만상을 그의 입 기운으로 이루었도다.
9 그가 말씀하시매 이루어졌으며 명령하시매 견고히 섰도다.
위대하신 여호와께서 땅의 기초를 놓으시고, 온 세상을 미(美:아름다움)의 옷으로 입히시고, 사람에게 유용한 것들로 세상을 채우셨으며, 육지와 바다의 온갖 경이로운 것들을 창조하셨다. 엿새 동안에 위대한 창조 사업은 완성되었다. 그리고 “그 지으시던 일이 다하므로...
일곱째 날을 복 주사 거룩하게 하셨으니, 이는 하나님이 그 창조하시며, 만드시던 모든 일을 마치시고, 이 날에 안식하셨음이더라,”(창2:2,3). 하나님께서는 그분의 손으로 이루신 것들을 보시고, 만족히 여기셨다.
모든 것이 완전하였으며, 거룩하신 창조주께 걸 맞는 것들이었다. 그분은 피곤한 자로서가 아니라, 그분의 지혜와 선하심의 열매와, 그분의 영광의 나타남을 기뻐하시는 자로서 쉬셨다.(FLB 31.2) 이 세상을 창조하신 동일한 창조의 능력이, 아직도 우주를 붙들고 천연계의 운행을, 지속하도록 작용하고 있다.
하나님의 손은 모든 유성(遊星:행성)들이, 자기 궤도를 따라 하늘 가운데로, 운행케 하신다. 해마다 태양을 중심으로 하여, 지구가 공전하는 힘이나, 지구 안에 있는 모든 생물이 번식하는 힘은, 본래 지구 자체가 가지고 있는 힘에 의해서 되어 지 는 것이 아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모든 원소들을 통제하신다. 하나님께서는 구름으로 하늘들을 가리 우시고, 땅에 비를 내리신다. 그분께서는 골짜기마다 열매를 맺게 하시며, “산에 풀이 자라게 하신다.”(시147:8).
그분의 능력을 통해서 식물이 번식하며, 잎이 돋고 꽃들이 핀다.(CT 185.3) 인간의 철학은 세상을 창조하는 데 무한정의 기간이 소요되었다고 단언(斷言:확정)한다. 하나님께서 그 문제를 그렇게 진술(陳述:자세히 설명)하시는가? 그렇지 않다.
그분은 “이는 나와 이스라엘 자손사이에 영원한 표징이며 나 여호와가 엿새[이 여섯은 어떤 이들이 주장하듯 긴 무한정의 기간이 아니다. 왜냐하면 그럴 경우 넷째 계명에 명시된, 그 날(안식일)을 우리가 지킬 방도가 없을 것이기 때문이다] 동안에 천지를 창조하고, 제 칠일에 쉬어 평안하였음이니라.”고 말씀하신다.
신명기 5장을 주의 깊게 읽어보라. 하나님께서는 다시 말씀하신다. “안식일을 기억하여 거룩히 지키라 ... 이는 엿새 동안 나 여호와가 하늘과 땅과 바다와 그 가운데 모든 것을 만들고 제 칠일에 쉬었음이라 그러므로 나 여호와가 안식일을 복되게 하여 그 날을 거룩하게 하였느니라.”(CTr 18.2)
하나님께서는 실제적인 6일 동안에 세상을 만드셨고, 실제적인 제 칠일에, 그가 만드신 모든 일로부터 안식하시고 쉬어 평안하셨다. 그와 같이 그분께서는 일할, 엿새를 사람들에게 주셨다.... 안식일을 구별하심으로써, 하나님께서는 한 기념물을 사람들에게 주셨다.
그분은 일곱 날 중에 어느 한 날, 아무 한 날을 떼어놓으시지 않고, 한 특정일, 제 칠일을 구별 하셨다. 그리고 안식일을 준수함으로써, 우리는 하나님을 살아계신 하나님, 하늘과 땅의 창조주로, 우리가 인정하고 있음을 보여 준다.(CTr 18.5)
넷째 계명인 안식일은, 에덴동산에서 제정되었다. 하나님께서 세상을 만드시고 지상에 사람을 창조하신 후에, 사람을 위하여 안식일을 제정하셨다. 아담이 범죄하고 타락한 후에도, 하나님의 율법에서 삭제(削除:지워서 없애버림)된 것은 없다.
십계명의 원칙은 타락하기 전에도 있었으며, 또한 그 특성은 거룩한 지위에 있는 무리의 상태와 부합되었다. 타락한 후에도 이 계명의 원칙은 변개(變改:변경)되지 않았으나, 타락한 상태에 있는 사람에게 적합하도록 하기 위하여 추가(追加:이후 첨가)해 주셨다.(SR 145.2)
안식일은 창조사업을 기념하기 위하여, 모든 인류에게 주어졌다. 위대한 여호와께서는 땅의 기초를 놓으시고, 온 세상을 아름다움의 옷으로 입히시고, 땅과 바다의 온갖 경이로운 것들을 창조하시면서, 안식일을 제정하시고, 그것을 거룩하게 하셨다....
하나님께서는 모든 경이로운 일들을 마치시고, 그분께서 안식하신 그날을 구별하시고 복 주셨다. 그리고 하나님에 의해 거룩하게 된, 이 안식일은 영원한 언약으로 지켜져야 할 것이었다. 그것은 세상역사가 끝날 때까지, 시대에서 시대로 계속해서 존속할 것이었다....(CTr 355.2)
세상을 창조하시고 그 가운데 짐승을 두신 후에, 아버지와 아들께서는 인간을 자신의 모양(模樣:모습)대로, 만들려는 목적을 수행(遂行:계획을 이루려)하셨다. 그분은 땅과 그 위에 모든 생명을 함께 창조하셨다.
그리고 하나님께서 그분의 아들에게, “우리의 모양대로 사람을 만들자”(창1:26)라고 말씀하신다. 아담이 창조주의 손에서 나왔을 때, 그는 고결(高潔;고상하고 순결)하였으며, 아름답게 조화를 이루었다. 그는 오늘날 이 땅에 사는 사람들보다, 두 배 이상 컸고 균형이 제대로 잡혔다.
그의 용모는 완벽하고 아름다웠다. 안색은 너무 희거나 창백하지 않았고, 건강미 넘치는 홍조를 띄어, 혈색이 좋았다. 하와는 아담과 키 차이가 크게 차이나지 않았다. 그녀의 머리카락은 어깨에 살짝 닿았다. 그녀 역시 고상하였고, 완벽한 조화를 이루었으며 빼어나게 아름다웠다.(BLJ 227.4)
성부와 성자께서는 이미 숙고하신 위대하고 경이로운 사업,—세상을 창조하시는 일—을 실행하셨다. 창조주의 손에서 나온 세상은 지극히 아름다웠다.
지면에는 산과 언덕과 평야가 있었고, 그 가운데에는 강과 호수가 흩어져 있었다. 땅은 그저 넓다란 들이 아니라, 구릉(丘陵:작거나 큰 언덕)과 산으로 경치의 단조로움을 피하고, 그러면서도 지금처럼 높거나 가파르지 않고, 그 모양이 짜임새 있고 아름다웠다.
바위는 높거나 뾰족이 드러나지 않고, 모두 지구의 골격을 이루어, 땅속에 묻혀 있었다. 물은 골고루 흩어져 흘렀으며, 언덕과 산과 매우 아름다운 평야는, 각종 풀과 꽃과 거대하고, 늠름한 나무들로 꾸며졌고, 그 나무는 오늘날의 것보다 몇 배 크고, 훨씬 더 아름다웠다.
공기는 신선하고 건강 적이었으며, 땅은 훌륭한 궁전과 같았다. 하나님께서 지으신 이처럼 기이하고, 아름다운 모습을 바라보며, 천사들은 매우 즐거워하였다.(LHU 47.2) 하나님은 인성을 통하여 사람들에게 접근하심(히1:3;요1:1-3,14;빌2:5-8)(막16:6;눅22:44;롬5:12-19;히3:1-3 주해참조)—
그리스도만이 하나님을 대표할 수 있었다. 태초로부터 아버지와 함께 계셨던 그분, 보이지 않는 하나님의 본체의 형상이셨던 그분만이 능히 이 일을 하실 수가 있었다.
어떤 말로도 하나님을 이 세상에다 계시하실 수가 없었다. 순결한 생활과 하나님의 뜻을, 완전히 신뢰하고 복종하는 생활과, 가장 높은 스랍 천사라 할지라도, 움 추러들 수밖에 없는 욕된 삶을 통하여, 하나님 자신을, 인간에게 계시하여야 하였다.
이렇게 하기 위하여, 우리 구주께서 신성 위에다, 그의 인성의 옷을 입으셨다. 그는 인간의 신체와 정신 기능을 이용하셨다. 이렇게 함으로써만 인간의 이해를 받을 수가 있었기 때문이었다.
인성을 갖고 있어야만, 인간의 마음에 이를 수가 있었다. 그는 하나님께서 그를 위하여 예비하신 인간의 몸을 가지고, 하나님의 품성을 생활로 나타내었다. 그는 하나님의 생활을, 인간의 육체 가운데 구현함으로써, 세상을 축복하셨다.
이렇게 해서 그는 신성과 인성을 결합시키는 능력을 가졌다는 것을 보여 주었다.(7BC 924.6) 우리의 시조[아담 하와]가 쫓겨난 순결하고도 아름다운 에덴동산은, 하나님께서 세상을 홍수로 멸망시키기로 작정하실 때까지 세상에 남아 있었다.
하나님께서는 그 동산을 만드시고, 특별히 축복하셨으며 그 후에 그분의 놀라운 섭리 가운데서, 그 동산을 이 세상에서 철수시키셨으나, 거두어 가시기 전보다 더욱 아름답게 단장하여, 다시 이 세상에 돌려주실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이 땅에 내리신, 그 저주를 받지 않은 완전한 창조물의, 한 표본(標本:본보기가 되는 에덴동산)을 보존(保存:보호 간수하고 영원히 남기게) 하기로 계획하셨다.(LHU 350.2) 두 가지 율법(갈3:19;엡2:15;골2:14;히9:9-12;10:1-7)
하나님의 백성들, 곧 하나님께서 자기의 특별한 보배라고 부르신 사람들은 두 가지 율법, 곧 도덕률과 의문의 율법을 특권으로 받았다. 도덕률은 세상을 창조하신, 살아계신 하나님을 계속 기억하도록 하기 위하여, 그의 창조를 가리켜 보이고 있다.
그 율법의 요구는 각 시대의 모든 사람에게, 구속력이 있고 항상 있을 것이며, 영원토록 있을 것이다. 의문의 율법은, 사람이 도덕률을 범했기 때문에 주어진 율법으로써, 미래의 구속을 가리켜 보이는, 희생과 헌물 가운데 있는 것들을, 순종하는 것이다. 이 둘은 서로 분명하고, 확연(確然:확실)히 구별되는 것이다.(6BC 1094.8)
많은 사람들이 물질의 법칙과, 천연의 법칙을 연구하는 중에, 부인(否認:사실 불인정)하지는 않을지라도, 하나님의 계속적이고 직접적인 역사를 보지 못한다. 그들은 천연계가 하나님과 독립해서 활동하고, 그 자체 속에 스스로 기능할, 그 자체의 한계와 능력을 가지고 있다는, 사상을 나타낸다.
그들의 마음에는 자연적인 것과, 초자연적인 것 사이에, 분명한 구분이 있다. 자연적인 것은, 하나님의 능력과는 상관이 없는, 일반적인 원인으로 돌린다. 물질에 살아 있는 능력이 있다고 간주되고, 천연 계는 신이 된다.
물질은 특정한 관계 속에 놓여서, 하나님 자신도 간섭할 수 없는, 정해진 법칙을 따라 움직이도록 되어 있고, 천연 계에는 일정한 특성들이 부여되어, 법칙에 종속됨으로써 그 법칙에 순종하고, 본래 정해진 일을 하게 되어 있다고 생각한다.(8T 259.3)
이것은 거짓 과학이다. 하나님의 말씀에는 그것을 확증해 주는 것이 아무것도 없다. 하나님은 그분의 법칙들을 폐하지 않으시고, 그것들을 통하여 끊임없이 일하시며, 그것들을 그분의 도구로 사용하고 계신다. 그것들은 스스로 작용(作用:작동)하고 있지 않다.
하나님은 천연계 속에서 끊임없이 일하고 계신다. 천연계는 하나님의 뜻대로 지도를 받는 그분의 종이다. 천연계는 그 작용을 통하여, 그분의 뜻대로 그분의 모든 업적 속에서 움직이고 계신, 한 분의 지성적인 존재와 활동적인 역사를 증거 한다.
해마다 지구가 풍성한 소출을 내고, 태양 주위를 끊임없이 돌고 있는 것은, 천연계 속에 고유적으로 존재하는, 본래의 힘에 의한 것이 아니다. 무한한 능력의 손이 이 행성(行星:별들)을 끊임없이 인도하고 있다. 그 자전(自轉:스스로 회전)과정에서의 위치를 지켜 주는 것은, 매 순간 작용하는 하나님의 능력이다.(8T 259.4)
하늘에 계신 하나님은 끊임없이 일하고 계신다. 식물이 자라나고, 모든 잎들이 터져 나오고 꽃이 피는 것은, 그분의 능력 때문이다. 모든 빗방울과 눈송이, 뾰족뾰족 터져 나오는 모든 풀잎, 모든 나뭇잎과 꽃과 관목(灌木:작은 키의 나무덩굴)은, 하나님을 증거 한다.
우리 주변에 너무도 흔한, 이런 작은 것들은, 무한하신 하나님의 주시 아래 있지 않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는 것과 그분의 주목(朱木:푸른 상록교목)에서, 벗어 날만큼 작은 것도 없다는 교훈을 가르쳐 준다.(8T 260.1)
천연 계 가운데서 항상 일하시는 하나님(요5:17;골1:17;히1:3)(창2:7주해참조)—하나님은 천연 계 가운데서 계속 일하고 계신다. 천연 계는 지성을 가지신 어떤 크신 존재가 계심을 증거하고, 그분의 활동을 대행하는 대리기관임을 증거 한다.
그분은 그분의 뜻을 따르는, 그의 모든 작품들 속에서 움직이고 계신다. 해마다 땅이 그 소산물을 내고, 지구가 태양의 둘레에 항진[계속전진]을 계속하는 힘은, 자연이 원초(原初:맨 처음 창조 시)로부터 갖고 있는 힘으로, 그렇게 되는 것이 아니다.
무한하신 능력의 손길이 영속적[계속적]으로 역사하사, 이 혹성(惑星:행성)을 인도하고 있는 것이다. 지구가 자기의 궤도에서 계속 회전하게 되는 것도, 순간 마다 역사하시는 하나님의 능력이다. 하늘의 하나님은 끊임없이 일하고 계신다.
채소들이 자라나고, 나뭇잎들이 움이 트고, 꽃들이 피는 것도 다, 그분의 능력으로 말미암는 것이다. 심장이 뛰고, 호흡이 계속되는 것은, 우주 기계론자들의 말처럼, 어떤 힘이 우주를 한번 작동하게 한 후, 그 힘으로 모든 것이 계속, 움직이게 된 결과가 아니다.
하나님 속에서 우리가 살며, 기동(起動:활동하게)하며, 존재하는 것이다. 호흡마다 심장의 박동마다, 영원히 현존(現存:지금 이 순간 존재)하시는 하나님의 능력을, 계속적으로 증거 하는 것이다.
하나님께서 태양을 하늘에 떠오르게 하신다. 그분이 하늘의 창들을 열어, 비를 내리신다. 그분이 언덕 위에 풀들을 자라나게 하신다. “그는 눈을 양털 같이 내리시며, 서리를 재같이 흩으시며”(시147:16).
“그가 목소리를 발하신 즉, 하늘에 많은 물이 생기나니... 비를 위하여 번개가 나게 하시며, 그 곳간에서 바람을 내”(렘51:16,17)신다. 주께서는 비록 창조하시는 일을 끝내셨지만, 그가 만드신 것들을, 그의 종으로 삼으사 쓰시고, 그것들을 유지(維持:능력으로 지속)하시는 일을 계속하고 계신다.
그리스도께서 “나의 아버지께서 이제까지 일하시니, 나도 일한다.”(요5:17)고 말씀하셨다.(6BC 1062.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