형제 사이의 갈등 관계는 고대 신화에서 자주 등장하는 주제로, 성경에도 갈등 관계에 있는 형제들이 등장합니다. 예를 들어, 카인과 아벨, 에사우와 야곱, 요셉과 형제들, 아비멜렉과 형제들, 암논과 압살롬 등입니다. 이 가운데 카인과 아벨의 갈등은 인류 역사상 최초의 살인 사건을 일으키게 되었습니다.
창세기는 아담과 하와가 카인과 아벨을 낳았다고 전합니다. 그런데 이집트 나그함마디에서 발견된 외경 『필립보 복음서』는 카인이 뱀(사탄)과 하와 사이에서 태어났다고 합니다. 다시 말해 카인은 본래 악한 존재로 태어났다는 것입니다. 하지만 본래 악한 인간은 없습니다. 만일 그랬다면, 카인을 보호하는 표를 찍으신 하느님(창세기 4,15)은 악을 옹호하고 보호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외경 『희년서』는 카인과 아벨이 쌍둥이였다고 하는데, 이에 따르면 둘의 아버지가 다를 수 없습니다.
농부인 카인은 땅의 소출을, 양치기인 아벨은 양 떼 가운데 맏배들과 굳기름을 하느님께 제물로 바쳤습니다. 여기서 굳기름이란, 고기의 기름진 부분으로 생명과 밀접한 관련을 지닌 제물입니다. 그런데 하느님께서는 카인의 제물이 아니라 아벨의 제물만을 즐겨 받으셨습니다. 창세기가 명시적으로 밝히지 않는 그 이유에 대해서는 다음과 같은 다양한 설명이 시도되었습니다. 즉, 하느님께서 채식보다 육식을 즐기셨기 때문이라는 설명, 하느님이 농경민족(가나안 백성)보다 유목민족(이스라엘 백성)을 더 사랑하셨다는 의미라는 해석, 맏아들이 아니었던 솔로몬의 왕위 계승을 정당화하기 위해 꼭 맏이가 다른 형제들에 비해 훌륭한 것은 아니라는 점을 강조하기 위한 이야기라는 해석, 무엇이나 당신이 원하시는 대로 하실 수 있는 하느님의 절대적인 자유를 드러내는 것이라는 설명, 카인이 바친 제물이 원죄로 저주받은 땅을 경작하여 얻은 것이었기 때문이라는 해석, 하느님의 가난한 이(유다 상속법에 따르면, 맏아들은 다른 형제들에 비해 두 배의 유산을 상속받기에, 아벨은 카인보다 가난합니다)에 대한 우선적인 선택이라는 해석, 카인이 평소에도 아벨을 괴롭혔기 때문에 하느님께서 그의 제물을 기꺼워하지 않으셨다는 설명 등이 그것입니다.
그런데 하느님께서 아벨의 제물을 즐겨 받으신 이유를 창세기 4장 본문 자체에서 유추하여 볼 수 있습니다. 창세기 4장 3절-4절에서 아벨은 양의 맏배와 굳기름을 하느님께 드렸지만, 카인은 그냥 소출을 드렸다고 합니다. 맏배는 가장 왕성한 생식능력의 결과이고, 굳기름은 하느님께서 가장 즐겨 받으시는 제물로 여겼습니다(탈출 29,13 참조). 따라서 아벨의 제사가 정성이 더 들어갔다고 볼 수 있습니다.
그리고 아벨의 제사를 표현하는 히브리어 문장은 주어 다음에 동사가 나오는 특이한 구조(보통은 동사 다음에 주어가 옴)를 갖추고 있는데, 이 구조는 반복적인 행위를 가리킬 수 있습니다. 즉, 카인은 한 번만 제사를 지냈지만, 아벨은 반복적으로 제사를 바쳤다는 말이 되겠습니다.
또한, 우리말 성경에 ‘세월이 흐른 뒤에’(창세 4,3)로 번역된 히브리어의 직역은 ‘그날들의 마지막에’인데, 이때를 추수의 마지막 날로 해석하기도 합니다. 그래서 아벨은 하느님께서 번성케 해주시리라는 믿음으로 주저함이 없이 첫 번째이자 유일한 양의 새끼를 바쳤지만, 카인은 제가 필요한 것을 먼저 챙긴 뒤 추수 마지막 날에야 남은 것을 하느님께 바쳤기에 하느님께서 아벨의 제물만을 받으셨다고 설명하기도 합니다. 이것은 “믿음으로써, 아벨은 카인보다 나은 제물을 하느님께 바쳤습니다.”라는 히브리서 11장 4절의 해석이 되기도 합니다.
카인은 자기가 바친 제물이 받아들여지지 않자 분노했습니다. 창세기의 아람어 번역본인 타르굼 옹켈로스는 창세기 4장 7절의 말씀을 하느님께서 자기 행위는 돌아보지 않고 적반하장으로 하느님께 화를 내는 카인에게 뉘우칠 기회를 주시는 것으로 해석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카인은 제 잘못을 깨닫고 회개하는 대신 동생 아벨을 질투하여 그를 계획 살인하는 죄를 저지르고 맙니다. 어원학적으로 카인의 이름은 질투를 의미하는 히브리어 ‘카나’와 관련이 있다고 하니, 그에게 참으로 적절한 이름이라 하겠습니다. 질투가 얼마나 치명적인 결과를 가져오는지 우리는 삶의 직접 간접 경험을 통해 잘 알고 있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