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加耶[가야]=더하고 배풀며 사는 아버지.
崔榮烔(최영동)선생 출생지
경남 함안지방에 있었던 아나가야 [阿那加耶] 에서 유래.
加= 더할 가. 살다 가. 베풀다. 입다.
耶=어조사 야, 아버지,名劍(명검)
崔榮烔선생 출생지는 경남 함안
- 함안은 아라가야의 유서깊은 역사와 찬란한 문화를 간직한 고장이며,
경남의 중심지로서 교통이 편리하고
마산 창원 배후지역으로 발전하는 추세에 있다.
삼한시대 변한에 속한 변진안야국(弁辰安耶國 )
가야시대- 아라가야
삼국유사』 5가야조에는 아라가야 또는 아야가라(阿耶加羅),
『삼국사기』 지리지에는
아시라국(阿尸良國) 또는 아나가야(阿那加耶),
고구려 광개토왕릉비와 『일본서기』에는 안라(安羅)라고 해
그 명칭이 출전마다 다르게 나타난다.
아라 · 아시라 · 아야 · 아나 · 안라 등은
모두 우리 말의 음운(音韻)의 변화에 따른 것으로 볼 수 있다.
아라가야는 『삼국지』 위서 동이전 한조의 안야국(安耶國)으로서
변한 12국 중 하나이다.
따라서 3세기경까지 가야 지방은 변한 12국으로 이루어졌음을 알 수 있다.
『삼국유사』에 따르면, 변한 12국은 그 뒤 6가야로 되었던 듯하다.
12국이 6가야로 통합되는 과정에서
시대에 따라 나라의 수에 변화가 있었을 것이다.
그런데 언제부터 6가야로 되었는지를 알려 주는 자료가 없다.
『일본서기』에는 더 많은 수의 가야 이름이 기록되어 있다.
『일본서기』에 실린 가야 관계 기록은 주로 백제측 기록에 근거한 것인데,
가야의 이름 중에는 작은 단위 촌락의 사회 집단 이름도 섞여 있는 듯하다.
아라가야는 지금의 경상남도 함안을 중심으로 한 나라였다.
남쪽으로 바다와 접해 있어 좋은 항구를 가지고 있었으므로
일찍부터 금관가야와 함께 일본과의 교통이 많았다.
따라서 이 지역은 일찍이 신라에 의해 점령되어
아시촌소경(阿尸村小京)이 설치되었다.
금관가야가 신라에게 532년에 멸망한 뒤에는
아라가야가 일본과의 교섭에서 중심이 되었던 듯하다.
함안 지방에는 말이산(末伊山)에 상당히 큰
가야시대의 무덤이 많이 남아 있어,
아라가야의 국세(國勢)가 얼마나 강대했는지를 말해 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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