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덕유주릉, 가새봉에서
얇은 이불 썰렁하고 불등은 캄캄한데 紙被生寒佛燈暗
어린 중은 한밤 내내 종을 치지 않는다 沙彌一夜不鳴鍾
새벽부터 일찍 문 연다 성내겠지만 應嗔宿客開門早
암자 앞 눈 쌓인 소나무를 봐야겠다 要看庵前雪壓松
――― 익재 이제현(益齋 李齊賢, 1287~1367), 「산사의 눈 오는 밤(山中雪夜)」
▶ 산행일시 : 2016년 1월 9일(토), 흐림, 안개, 오전에는 눈발 날림
▶ 산행인원 : 13명(버들, 모닥불, 악수, 화은, 대간거사, 소백, 상고대, 두루, 신가이버, 해피,
승연, 마초, 메아리)
▶ 산행시간 : 11시간 24분
▶ 산행거리 : 도상 15.8km
▶ 교 통 편 : 두메 님 24인승 버스
▶ 구간별 시간(표고는 국토지리정보원 지형도에 따름)
00 : 20 - 동서울터미널 출발
03 : 10 ~ 04 : 40 - 무주군 안성면 금평리 안기마을, 차내 계속 취침, 산행시작
05 : 24 - 능선마루
05 : 48 - 892m봉
06 : 30 - 두문산(斗文山, △1,052.8m)
07 : 14 - 안부, 검령(劍嶺)
08 : 20 - 스키리프트 정류장, 1,229m봉
09 : 08 - 헬기장
09 : 50 - 설천봉(1,520.7m), 스키리프트 정류장, 상제루
10 : 38 - 향적봉(香積峰, △1,610.6m)
11 : 02 - 중봉(1,593.7m)
11 : 15 - Y자 능선 분기봉
11 : 33 ~ 12 : 17 - 안부 부근, 점심
12 : 38 - 가새봉(1,368.9m)
13 : 36 - 1,166m봉
13 : 56 - 1,162m봉
15 : 23 - 임도, 안부
15 : 40 - 망봉(望峰, 699.7m)
16 : 04 - 통안, 산행종료
16 : 40 ~ 18 : 40 - 무주, 사우나, 저녁
21 : 15 - 동서울 강변역, 해산
1. 덕유산 향적봉에서
2. 덕유주릉, 가운데가 우리가 내려온 능선
2-1. 덕유주릉의 눈꽃
▶ 두문산(斗文山, △1,052.8m)
산을 가지만 발걸음 헛헛한 것이 산은 ‘겨울 산’이라는데 예년과는 달리 금년 들어 아직 겨울
다운 산을 맛보지 못해서다. 허벅지가 뻐근하도록 깊은 눈을 러셀하는 그런 하얀 ‘겨울 산’이
그립다. 그래서 눈이 쌓여 있을 법한 산을 찾아간다. 우리의 여태 경험칙으로는 덕유산이 가
장 믿을 만하다. 조망까지 좋다면 그건 망외의 덤이다.
한밤중에 들리는 통영대전 중부고속도로 인삼랜드휴게소가 썰렁하다. 아울러 덕유산이 이럴
까? 밤하늘 아무리 살펴도 별 하나 보이지 않는다. 우리 차는 덕유산IC에서 빠져나가 무주
안성면 금평리 안기마을로 들어간다. 마을 고샅길을 어렵게 통과하여 들판 갓길에 멈춘다.
03시 10분. 한잠 자기 넉넉하것다 하고 얼른 눈 감는다.
04시 20분 기상. 날이 푹한 것 같은데 바람 끝은 날카롭다. 내 걸어 이는 바람에 귓불이 시리
다. 이방인을 경계하는 닭 홰치는 소리를 들으며 농로 따라간다. 너른 농로는 들판을 이슥하
니 지나고 골짜기 울퉁불퉁한 임도로 이어진다. 임도에 잡목 숲이 나오고 그만 사면 치고 오
를까 엿보다 느닷없이 가늘고 낭창한 잡목가지에 얼굴을 얻어맞는다. 생눈물이 찔끔 나고
(대간거사 님 버전으로 3년 동안) 정신이 번쩍 들게 따끔하다.
그나마 임도가 끊겼나? 맨 앞장선 해피 님으로 하여금 개골창 가시덤불 숲을 뚫게 하고나니
임도가 다시 보인다. 해피 님 뒤돌아오게 하고 임도 따라 더 간다. 이윽고 막다른 생사면과
마주한다. 가파르다. 큰 숨 한 번 쉬고나서 부지런히 일행 뒤쫓는다. 잡목 성긴 데 골라 만드
는 앞사람 발자국계단을 오른다. 선두의 공제선 헤드램프 불빛을 별빛인가 착각한다.
능선마루에는 인적이 뚜렷하다. 이제는 시간이 산을 갈 것. 벌거벗은 무덤 뒤로도 등로가 분
명하다. 눈발이 너울너울 날린다. 헤드램프 불빛 보고 몰려드는 부나비 떼 같다. 892m봉.
첨봉이다. 고지 오른 희열을 느껴볼 새 없이 곧바로 떨어진다. 겁나게 떨어진다. 바닥 친 안
부일까? 마치 롤러코스터 탄 것처럼 오르내린다. 5개 산등성이를 잇달아 넘는다.
검은 산릉 너머 극광으로 보이는 불빛은 무주리조트 스키장이다. 밤새도록 불 밝히나보다.
저 근처의 수목은 밤에 잠을 통 자지 못하겠다는 생각이 든다. 예전의 동두천 미군부대에서
의 일이었다. 미군부대에서 밤에 주위를 환하게 불을 켜 놓아 인근 주민들이 하소연하였다.
근처 논에 벼들이 밤에 잠을 못자서 여물지 않으니 배상하라고 요구했다. 미군대변인은 “벼
들이 우리 전깃불 때문에 잠을 자지 못하는 것을 매우 안타깝게 생각한다. 그러나 배상할 수
는 없다.”라고 답변한 것이 고작이었다.
목포 유달산에서도 비슷한 일이 있었다. 밤에 유달산 암봉을 조명발 받아 멋있게 보이게 하
려고 조명하였는데 지역환경단체에서 들고 일어났다. 밤에는 바위와 나무들도 잠 좀 자게 불
을 끄라고 요구하여, 밤 12시 이후에는 불을 끄는 것으로 타협했다.
이러다 쌓이지 않을까 싶게 눈발이 흩날린다. 북사면은 하얗다. 그러나 예년에 비해 적설량
이 턱없이 적다. 두문산 1,052.8m를 올라도 눈은 땅바닥을 살짝 덮었을 뿐이다. 건너편 스키
장은 불야성이다. 아마 제설(製雪)하였을 것.
3. 1,229m봉 아래 스키리프트 정류장
4. 설천봉 가는 길
5. 설천봉 가는 길, 예전보다 지나기가 더 험한 것 같다
6. 신가이버 님
7. 화은 님, 강화도에서 왔다
8. 모닥불 님
9. 상고대 님
10. 설천봉 가는 도중 헬기장에서
11. 설천봉 가는 길
▶ 향적봉(香積峰, △1,610.6m)
두문산 주변은 어스름한 중에도 하늘 가린 울창한 소나무 숲이 볼만하다. 하나같이 아름드리
로 굵고 크다. 검령 가는 길. 한참을 평탄하게 진행하다가 내리막에서 우르르 막 쏟았더니만
방향착오라고 한다. 뒤돌아 올라가서 갈 방향을 다시 재보고 그 길이 맞는다고 한다. 순전히
동고동락하는 (알바도 함께 해야 하는) 악우애의 발현이다.
검령은 넓고 평평한 소나무 숲이다. 헤드램프 소등해도 될 만큼 날이 밝았다. 백마담이 모닝
커피 끓이고, 빵이나 떡으로 아침요기 한다. 오늘 어묵을 가져오지 않은 것은 이따 오를 설천
봉 상제루 매점 방문을 예정해서다. 우람한 소나무 열주 우러르며 간다. 설천봉 오르는 길.
언 땅과 낙엽에 눈이 약간 덮여 있어 아주 미끄럽다. 열 걸음에 서너 걸음은 엎어져 오른다.
더구나 카메라 조작하기 쉽도록 얇은 장갑을 끼어서 엎어지거나 눈 쌓인 나뭇가지 붙들면 금
세 젖어버리고 손이 시려 호주머니 속 핫팩을 만지작거리며 걷자니 발걸음이 서툴 수밖에.
기어오른다. 산죽지대가 나온다. 우리 일행이 산죽 헤치며 지나가는 자리가 한바다 포말 일
으키며 나아가는 뱃길 같다. 고지 높여 안개 속에 든다.
KBS 심곡TV중계소 철탑 돌아 오르면 무주리조트 스키장이다. 리프트가 바쁘게 오르내린다.
눈이 제법 깊다. 산죽 숲 헤치고 1,229m봉을 올라 설사면을 간다. 스패츠 맨 보람난다. 설국
이다. 안개 속이라 원경은 무망하지만 근경의 설경은 장관이다. 이 길을 오늘 처음 가는 것이
아닌데 그때도 이랬나 싶게 험하다. 잡목 숲 뚫고 바위 설벽 오른다.
설천봉 스키장에 가까워서 촉수엄금이라는 고압선과 함께 간다. 숲으로 둘러싸인 포근한 헬
기장이 나오고 오래 휴식한다. 메아리 대장님 과메기 안주한 탁주가 주변 설경에 썩 어울려
더욱 맛나다. 안개 속 상고대 눈꽃터널 한 피치 오르면 스키리프트 정류장이 있는 설천봉이
다. 스키 타는 사람들과 등산하려는 사람들로 북적인다.
부화뇌동하는 점이 없지 않다. 우리도 매점에 들려 어묵우동을 사 먹는다. 한 그릇에 8,500
원. 산중에서 우리가 버너 불 피워 끓여 먹는 어묵 맛만 못하다. 눈이 깊을 줄 알고 오늘 산행
거리를 확 줄였던 터라 이래저래 시간 죽인다. 설천봉과 향적봉 오가는 길은 많은 사람들이
길게 줄섰다. 모두들 주변 눈꽃에 감탄하느라 발걸음 또한 느리다.
사람들에 밀려서 오른다. 향적봉. 정상 표지석 인증하는 기념사진 찍으려는 사람들로 대만원
이다. 우리는 가장자리에 비켜 그 사람들 배경하여 기념사진 찍는다. 대피소로 내리는 길도
줄선다. 눈부신 순백의 산상화원을 간다. 이런 데서는 숨 가다듬고 카메라의 감도 심도 노출
화이트밸런스 등을 수작업 조정하고 나서 셔터를 눌러도 좋은 사진을 얻을까 말까인데 그저
가는 걸음에 반자동 셔터 눌러대니 오죽한 사진 나올까. 육안 망막에 저장한다.
12. 설천봉 가는 길
13. 설천봉
14. 상제루
15. 향적봉 가는 길
16. 향적봉 가는 길
17. 향적봉 가는 길에서
18. 향적봉에서 앉은 이는 화은 님, 뒷줄 왼쪽부터 승연, 상고대, 두루, 대간거사, 소백,
모닥불, 마초, 메아리 대장, 신가이버, 해피
19. 향적봉 주변
20. 향적봉 주변
21. 향적봉 주변
22. 향적봉 주변
▶ 가새봉(1,368.9m), 망봉(望峰, 699.7m)
안개 속 설원을 간다. 바람이 아무리 안개를 열심히 쓸어낸다고 하지만 소용없다. 잰걸음 하
여 일행에 따라 붙었다가도 주변 설경에 잠깐 한눈팔면 혼자가 되고 만다. 제2덕유산(중봉,
1,593.7m)의 Y자 갈림길 왼쪽은 오수자굴을 경유하여 백련사로 간다. 그쪽으로도 눈길이
잘 났다. 우리는 백두대간 백암봉 가기 전 Y자 능선 분기봉에서 오른쪽으로 간다.
억센 잡목 헤치는 우리의 길이다. 잡목이 키는 작달막해도 수수만년 설한풍을 버텨 낸 이력
이라 철근보다 더 단단하다. 소로 따라 능선마루 약간 비켜 사면을 돌아내리다 1,395.7m봉
에서 멈칫하고 급박하게 쏟아진다. 등로 주변 상고대 눈꽃은 시들었다. 가파름이 누그러진
안부 부근이다. 눈밭 다져 점심자리 만든다. 오늘 메뉴는 그간 적조했던 화은 님의 부대찌개
다. 말이 부대찌개지 시중의 그것과 유를 달리하는 특제다.
등로는 당분간 평탄하다. 산죽 숲이 나온다. 설경에 한 몫 하는 산죽이다. 가새봉(1,368.9m,
영진지도에는 1,370.0m) 동쪽은 암릉이라 남쪽 사면을 빙 돌아 서쪽에서 오른다. 오늘 산행
최고의 경점이다. 백암봉에서 무령산에 이르는 장쾌 무비한 덕유주릉이 보인다. 중봉과 향적
봉, 남덕유산은 안개에 가렸다. 덕유주릉의 본 모습은 눈 쌓인 겨울에서인 게 확실하다.
가새봉 내리는 길이 까다롭다. 외길이다. 울창한 참나무 숲길을 뚝뚝 떨어지다가 내려다보면
아찔한 수직사면을 길게 트래버스 한다. 그리고 허리 넘는 산죽 숲을 발로 더듬는다. 눈이 적
은 데다 무박치고는 산행거리가 짧아서 대담한 산행을 시도한다. 골로 갔다가 1,1657m봉 남
쪽 지능선을 타고 주릉에 오르는 것이다.
일당도 벌고 더덕 손맛도 볼 수 있는 일거양득의 산행이라지만 나는 화은 님 회유하여 주등
로 따른다. 후미인 승연 님과 두루 님도 주등로 진행에 동참했다. 주등로 진행도 만만치 않
다. 등로에 드러누운 키 큰 산죽을 뚫는 게 여간 된 고역이 아니다. 1,165.7m봉은 가새봉 눈
꽃 설경을 바라보고자 우회로 마다하고 직등한다.
산죽 숲 북서진 하여 1,162m봉이다. 골로 간 일행 기다린다. 1,162m봉 북쪽으로 10m쯤 내
리면 적상산, 두문산, 설천봉이 보이는 전망바위가 있다. 암반에 눈이 깔린 데다 좁고 소나무
가지가 가려 있어 머리 내밀기 조심스럽다. 살금살금 기어올라 교대로 전망한다. 골로 간 일
행이 돌아오고, 과연 덕유(德裕)는 이름 그대로 (더)덕이 넉넉(裕)했다. 대간거사 님의 경우
십여 수만에 팔심이 부쳐 그만두었다고 한다.
좌고우면 하지 않고 간다. 가파르고 길게 떨어진다. 눈은 없다. 소나무 숲길이다. 등로에 솔
잎 낙엽이 밟기 딱 알맞게 깔렸다. 줄달음한다. 안부. 임도가 지난다. 완만한 소나무 숲길 한
피치 오르면 △745.2m봉이고 그 아래가 망(望)할 것 없는 망봉(望峰, 699.6m)이다. 걷기
좋은 푹신한 소나무 숲길은 계속된다.
용추폭포가 어디쯤에 있을까? 사면 쓸어내리면 나올까? 사면 질러가다 가시철조망에 막힌
다. 고소원이다. 억새밭으로 내리고 밭두렁 따라 마을로 간다. 통안마을이다. 용추폭포에서
우리 오기 기다리고 있는 두메 님을 부른다.
(부기) 용추폭포는 통안마을에서 나가는 727번 도로 직전에 있다. 실경이 안내도 사진보다
훨씬 더 멋있다. 폭포가 통안마을과 솔숲 유원지 앞의 개천을 흐르는 물이라 수질이 어떨지
모르겠지만 폭과 낙차, 수량 등은 칠연폭포에 비할 바가 아니게 낫다. 용추교에서 용추폭포
정면을 바라볼 수 있다. 사진을 제대로 찍기에는 시간이 너무 촉박하여 (차에 내려 용추폭포
를 보러 간 사람은 나뿐이었다) 그냥 왔다.
23. 덕유주릉에서
24. 덕유주릉 중봉 가는 길
25. 덕유주릉 중봉 가는 길
25-1. 덕유주릉
26. 가새봉 가는 길
27. 덕유주릉, 가새봉에서
28. 덕유주릉, 가새봉에서
29. 우리가 내려온 능선
30. 덕유주릉, 오른쪽은 무룡산
31. 가운데는 무룡산, 오른쪽은 삿갓봉
32. 덕유주릉, 오른쪽은 무룡산
33. 가새봉
34. 앞은 두문산, 멀리 왼쪽은 적상산, 오른쪽 멀리는 깃대봉
35. 오른쪽은 설천봉 상제루
첫댓글 이번에도 산행기를 읽으면서
덕유산행을 복기했습니다.
고맙습니다~~
통통한 우동 맛 ..ㅎ,ㅎ
과메기 쌈과 맥주 한모금.. 입안의 설래임!
미소 된장국,부대찌게도 일품이었구요.
설국의 아름다움..특히 산행기가 일품입니다.
오지에 여러분이 있어서 더욱 행복했던 하루였네요.
덕유산을 수없이 다녔어도 금번같이 눈이 없던 경우는 처음이었습니다. 대신에 변함앖는 칼바람과 멋진 상고대는 여기가 바로 덕유산이니 걱정말게나 라고 위로해주는듯.
사진속에는 눈밖에 안 보이는데 눈이 없었다니 이해할 수 없습니다.ㅋ.ㅋ
칭구(승연)도 눈이 없어 럿셀을 못했다구 아쉬워하더만요. . .
아무래도 바라 보는 곳과 가는 길이 달랐던 때문인가 싶네요.
정상에서의 상고대가 러셀산행을 대신하여 아름다운 모습을 보여줬습니다..거기에다 거시기까지 행복한 하루였습니다
산행기로 아쉬움을 달랬습니다. 금주에 오지에서 뵙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