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마태복음 26장 69-75절 예수님을 세 번 부인하는 베드로
여러분들은 생명의 위협을 느껴본 적이 있으십니까? 그런 일은 인생에 한 번이나 두번 정도 일어납니다. 이런 일은 자주 일어나지는 않는다는 것입니다. 하지만 그런 순간이 오면 자신이 어떻게 행동할지 알수 있는 사람은 없습니다.
이번에 부천에 있는 한 호텔에서 불이나 아까운 젊은 목숨들 여러명이 죽음을 당했습니다. 그들 가운데 어떤 사람은 마지막으로 엄마와 통화하면서 자신이 5분 후면 죽을 것같다고 하면서 급한 소리로 이야기했는데 질식해서 죽었습니다. 어떤 사람은 그래도 시도는 해보겠다고 높은데서 뛰어 내렸지만 죽고 말았습니다. 그런데 어떤 간호학과를 나온 아가씨 하나는 화장실에 들어가 수건으로 문틈을 막은 후에 거기에 물을 뿌려서 살아났다고 합니다. 그는 간호학과 공부를 하는 동안에 긴급하게 일어나는 일에 대한 여러 가지 대처방법을 배워서 그렇게 살 수 있었다고 이야기했다고 합니다. 하지만 전문가들은 그렇게 살아나서 다행이긴 하지만 잘못하면 빠져나갈 수도 없는 외통수에 걸려서 죽을 수도 있다고 가르칩니다.
이 사건을 보면서 ‘만일 내가 그 호텔 안에 있었다면 나는 어떻게 행동했을까?’하고 생각해보았습니다. 결론은 알수 없지만 살기 위해 최선을 다해보려고는 했을 것같습니다. 거기서 초연하게 독성연기를 마시면서 죽음을 맞이할 사람이 얼마나 될까요?
사람에게는 살고자 하는 본능이 있습니다. 자기의 힘으로 어쩔수 없을 때는 초연하게 죽음을 받아들일 수도 있겠지만 전혀 준비되지 않은 곳에서 갑작스러운 사고를 당했을 때 어떻게해서든지 살 길을 찾아보는 것이 사람들 안에 감춰진 삶의 본능입니다. 이런 삶의 본능이 갑작스러운 일을 당한 베드로에게서도 나타납니다.
예수님이 불의한 사람들로부터 불의한 재판을 받고 계시는 동안 베드로는 그곳을 주시하면서 제사장의 하인들과 함께 바깥 뜰에서 불을 쬐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한 여종이 지나가다가 불빛에 의해 드러난 베드로의 얼굴을 보면서 “너도 갈릴리 사람 예수와 함께 있었도다”하고 말했습니다. 갑작스럽게 질문을 받은 베드로는 어떨결에 부인하면서 대답합니다. “나는 네가 무슨 말을 하는지 알지 못하겠노라” 그러면서 앞문 쪽으로 나갔습니다. 그때 그곳에서 다른 여종이 베드로를 보더니 다른 사람들에게 말합니다. “이 사람은 나사렛 예수와 함께 있었도다” 그러자 사람들이 일시에 베드로를 쳐다봅니다. 베드로는 당황하면서 맹세하고 부인하면서 말합니다. “나는 그 사람을 알지 못하노라”
그러더니 조금 후에 베드로의 얼굴을 살펴보고 베드로와 대화를 나누던 사람들이 말합니다. “너도 진실로 그 도당이라 네 말소리가 너를 표명한다” 그러자 베드로가 저주하며 맹세하여 말합니다. “나는 그 사람을 알지 못하노라” 그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닭이 울었습니다. 그 닭울음소리를 들은 베드로는 자신이 예수님 앞에서 예수님을 모른다고 부인하지 않을 뿐 만 아니라 죽는데까지 따라가겠다고 호언장담했던 자신이 했던 말이 생각났습니다. 그래서 밖으로 나가서 통곡을 했습니다. 예수님을 부인한 것에 대하여 통곡하면서 회개한 것입니다. 그는 그제서야 자신이 얼마나 부족하고 나약한지를 알게 된 것입니다. 그럼으로써 그는 예수님의 말씀이 진리라는 사실을 확실히 알게 된 것입니다.
예수님은 베드로가 자신을 닭울 기 전에 세 번 부인한다고 말씀하셨습니다. 하지만 베드로 자신은 다른 제자들과는 분명히 다른 행동을 보일 것이라고 장담을 했습니다. 하지만 예수님은 베드로가 비록 자신을 부인하는 일이 일어나기는 하지만 돌이킨 후에는 다른 사람이 될 거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누가복음 22장 32절을 보면 “그러나 내가 너를 위하여 네 믿음이 떨어지지 않기를 기도하였노니 너는 돌이킨 후에 네 형제를 굳게 하라”고 말씀하십니다.
이것은 다시 한 번 기회를 주시는 것이 아닙니다. 영구적으로 위임하시는 것입니다. 자격을 박탈하지 않으시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하나님 아버지께 베드로를 위해 기도하셨던 내용이 바로 그것입니다.
사람이 살다보면 계획하지 않은 죄를 범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그 죄를 범하는 이유는 다양할 수도 있습니다. 대부분은 자기를 보호하기 위해 순간의 위기를 넘기기 위해 죄를 범합니다. 거짓말을 하기도 하고, 아니면 하지 말아야할 행동을 하기도 합니다. 그것은 다른 사람들에게 타격을 주기도 합니다. 자신을 위해 다른 사람에게 해를 입히기도 하기 때문입니다. 그럴 때 예수님은 그들의 죄를 용서하시고 원래 주셨던 은혜의 자리로 돌아가게 하십니다.
하지만 오랫 동안 범죄를 계획하고 실행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하나님은 이런 사람들에게 돌이키는 은혜를 잘 안주십니다. 베드로의 죄는 순간적이었지만 가룟 유다의 죄는 계획적이었습니다. 세상 법정에서도 범죄를 계획하고 살인을 한 경우와 우발적인 살인을 한 경우를 구분합니다. 이것은 셩경도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계획된 범죄는 이는 이로, 눈은 눈으로, 목숨은 목숨으로 바꾸라고 말씀하십니다. 하지만 우발적인 경우는 도피성을 내시거나 아니면 그에 합당한 보상을 하게 하셨습니다.
세상 법은 그것을 면밀히 분석하고 죄의 경중을 따라야 하지만 오늘날의 법정은 그것을 고려하지 않고 초범이냐 재범이냐만 중요시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래서 사람들의 공분을 사며, 또한 피해자의 마음을 더 답답하고 억울하게 만듭니다.
여러분! 범죄를 게획하지 마십시오. 하지만 여러분들이 의도하지 않게 죄를 범했을 때 여러분들은 그것을 가슴아파하면서 통곡하며 회개하는 마음을 갖는 것도 중요함을 알아야합니다. 여러분들이 누군가에 대하여 용서의 마음을 가질 때도 역시 그가 오랜 시간을 계획해서 범죄를 했다면 그것은 하나님께 고소해야 할 내용이 됩니다.
어떤 것은 세상 법을 통해 해결해야 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하지만 그 사람이 여러분들에게 한 일이 우발적인 일로 잘못을 했다면 용서의 마음을 가지고 용서를 선포해야 합니다. 그리고 원래 가졌던 좋은 관계를 회복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그러면 잘못하기 이전보다 더 큰 사랑과 친밀감을 갖게 될 것입니다. 이것이 교회에서 해야할 일입니다.
교회는 계획적으로 범죄하는 교인들을 엄중히 징계해야 합니다. 그들을 교회에서 축출해야 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고린도전서 5장 9-13절을 보면 교회 안에서 계획된 범죄를 하는 사람들에 대하여 이렇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내가 너희에게 쓴 편지에 음행하는 자들을 사귀지 말라 하였거니와 이 말은 이 세상의 음행하는 자들이나 탐하는 자들이나 속여 빼앗는 자들이나 우상 숭배하는 자들을 도무지 사귀지 말라 하는 것이 아니니 만일 그리하려면 너희가 세상 밖으로 나가야 할 것이라 이제 내가 너희에게 쓴 것은 만일 어떤 형제라 일컫는 자가 음행하거나 탐욕을 부리거나 우상 숭배를 하거나 모욕하거나 술 취하거나 속여 빼앗거든 사귀지도 말고 그런 자와는 함께 먹지도 말라 함이라 밖에 있는 사람들을 판단하는 것이야 내게 무슨 상관이 있으리요마는 교회 안에 있는 사람들이야 너희가 판단하지 아니하랴 밖에 있는 사람들은 하나님이 심판하시려니와 이 악한 사람은 너희 중에서 내쫓으라”
이 말씀은 교회에 다니지 않는 세상에 속한 사람들이 음행하거나 탐하거나 우상 숭배를 하거나 모욕하거나 술취하거나 속여 빼앗은 사람들은 하나님께서 심판하실 사람들로써 하나님께 그 결과를 맡기고 그들을 전도의 대상자로 여겨서 그들을 불쌍히 여기고 친근하게 대하면서 복음을 전할 수는 있지만, 자신을 그리스도인이라고 하면서 음행하거나 탐하거나 우상 숭배를 하거나 모욕하거나 술취하거나 속여 빼앗은 사람들과는 사귀지도 말고 교회에서 내쫓으라고 말씀하십니다.
또한 교회의 목회자가 전하는 예수님이나, 영이나, 복음이 아닌 다른 예수, 다른 영, 다른 복음을 전하는 사람들이 있다면 그들을 절대로 용납하지 말라고 하십니다. 고린도후서 11장 4절입니다. “만일 누가 가서 우리가 전파하지 아니한 다른 예수를 전파하거나 혹은 너희가 받지 아니한 다른 영을 받게 하거나 혹은 너희가 받지 아니한 다른 복음을 받게 할 때에는 너희가 잘 용납하는구나” 고린도교회는 영적인 어린 아이같은 교회로써 그런 자들을 용납했습니다. 사도 바울은 계획적으로 죄를 범하는 악인들은 용납하지도 말고 교회 밖으로 쫓아내라고 말씀하십니다.
하지만 그가 비록 계획적으로 범죄했다가도 주님께서 그를 만나주셔서 그 죄를 깨닫게 하시고 회개케 하심으로 진심으로 그 죄를 회중 가운데 고백하고 그 죄에서 돌이킨다면 교회는 그를 용서할 마음을 가지고 있어야 합니다. 그것은 소중한 영혼을 한 사람 얻게 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이것이 예수님의 용서를 받은 교회가 분별해야 할 내용입니다. 교회에서 일하다가 실수하는 사람들을 용납하십시오. 그러나 일부러 작정하고 교회를 공격하는 사람이 있다면 그들은 내쫓아냐 합니다. 예수님은 순간적인 위기를 모면하고자 예수님을 부인했던 베드로를 용서하셨을 뿐 아니라 첫 교회를 이끄는 사도로서의 직분과 그를 감당할 수 있도록 성령을 부어주셨습니다. 하지만 가룟 유다는 목메어 죽고 맙니다.
여러분! 용서할 사람과 용서하면 안되는 사람을 분별합시다. 그리고 용서할 사람들을 이해하고 용납하며 더 큰 사랑으로 대우해주시길 바랍니다. 그러면 그리스도의 몸으로서의 거룩을 지키며 하나님을 온전히 영화롭게 하는 교회가 될 것입니다. 이 복이 여러분들 모두에게 있기를 예수 그리스도 우리 주님의 이름으로 간절히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