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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달의 전시[누구나] 스크랩 혼합 ■ 제4회 권인경 展 - 도시 / 순간의 지속
권인경 추천 0 조회 40 09.12.09 02:23 댓글 0
게시글 본문내용

 

 

▒ 제4회 권인경 展 / 도시 - 순간의 지속

 

▒ 기간: 2009년 12월 2일(수) ~12월 8일(화)

▒ 장소: 갤러리 이즈

            (서울시 종로구 관훈동 100-5/☏ 02-736-6669)

 

 

 

 유기체로서의 도시 속 시간 ● 분명 도시는 자연의 대척점에 위치해있다. 풀과 나무가 지워진 자리에 시멘트와 강철, 유리가 인간의 거주지를 가설하면서 자연은 지워지고 부재한다. 그러나 도시에 자연이 없다고 말할 수는 없다. 인간이 자연을 버리고는 살 수 없기에 도시 어딘가에 여전히 자연은 편재되어 있다. 그 자연은 좀 기이한 형태로 관리된다. 공원과 가로수와 인공의 정원, 그리고 도로변 화단과 플라스틱 조화 등이 어지러이 흩어져있다. 사적인 공간과 공적인 공간 모두에서 자연은 약간은 변질된 형태로 숨쉰다. 그렇게 모조된 자연은 일종의 '가축화된 자연'인 셈이다. 오랫동안 자연은 항구적이고 불변의 존재로 인간에게 영원성과 숭고함, 그리고 아름다움과 생명의 원천을 제공해왔다. 그러나 도시의 등장은 부득이 자연을 변방으로, 삶의 경계로 밀어낼 수밖에 없었다. 이제 인간은 스스로 자연을 대신해 자신들의 삶의 안식처를 만들어나갔다. 도시는 오래 전부터 생성되어 왔지만 사실 근대에 와서 본격적인 도시가 출현한다. 자연을 대신해 들어선 그 도시는

근대적 삶의 양식을 제공해왔고 그 도시공간에 적합한 삶의 모델, 감수성을 제공해왔다. 도시에서 산다는 것은 자연 속에서, 자연과 함께 살았던 옛사람들과는 전적으로 다른 인간형을 생산해왔다. 자본주의 경제의 도시적 집중은 삶의 구조를 뒤바꾸고 도시적 인간의 탄생을 낳았다. 도시인은 농촌과는 확연히 다른 삶의 패턴을 사는 인간군이지만 그들이 바라보는 도시공간의'도시성'을 체험할 수 있어야 도시인이라고 말 할 수 있다. 그러니까 공간은 결코 빈 곳이 아니다. 공간은 사람들의 삶을 규정하고 생산해 내는 결정적 장소다. 도시공간은 자연과는

다른 감수성, 색다른 시공간의 체험을 안긴다.

 

 

권인경은 도시를 그렸다. 자신의 일상이 이루어지는 곳, 매일 같이 접하는 풍경, 자신이 살고 있는 바로 지금의 실존적 자리가 도시다. 결국 도시는 나 자신인 셈이다. 선인들이 자연 속에서 가장 이상적인 생의 조건을 꿈꾸었다면 오늘날은 도시 속에서 그런 삶을 희구한다. 산수가 당시의 도원경이고 선경이라면 오늘날은 도시가 유토피아다. 그러나 도시는 과연 어떤 파라다이스일까? 도시에서 산다는 것은 무엇일까? 그녀는 먹과 채색물감, 그리고 꼴라쥬를 혼재해서 도시를 화면 위에 그리고, 가설하고 구성, 구축했다. 조금은 이질적인 재료들이 도시 표면을 기워나간 형국이다. 느낌이 다르고 다른 만큼이나 여러 생경한 요소들에 의해 구축되고, 지워지고 다시 생성중인 도시의 현란한 시간의 흐름과 걷잡을 수 없는 정체성에 대한 느낌이 감촉된다. 화면이란 2차원의 평면에 그리기와 꼴라쥬의 결합은 몇 가지 다층적인 차원의 공간감을 두텁게 형성해주는 한편 여러 시간의 멀미와 서로 다른 공간의 겹침을 뒤섞어 보여준다. 그것은 단지 그림이 아니라 다분히 건축적이며 동시에 여러 시점과 시공간을 한 화면에 얽혀놓았다. 여기서 도시란 결국 오늘날 한국의 도시를 지시한다. 서울이란 도시 또는 한국의 도시란 전 세계의 어느 도시들보다 경이적으로 시공간을 압축해왔고 변화무쌍한 삶을 살고 있으며 기이하고 착종적인 근대성을 발아해왔다. 조금은 정신분열증적인 도시이다. 작가는 일관되게 도시공간을 소재로 해서 그림을 그려왔는데 그것은 특정 도시의 재현이나 기록과는 조금 거리가

멀다. 분명 구체적인 도시 공간, 건물의 외관, 동네풍경이 사실적으로 다가온다. 그러나 작가의 관심은 이 도시의 지속적인 변화와 시간의

흐름 그리고 그러한 현기증 나는 어떤 풍경의 이면에 가 닿아있다. 이 도시풍경은 결국 자신의 일상을 재현하는 것이고 도시공간에 대한 작가 인식의 도해이다. 나와 도시는 유기적으로 연결되어 있다. 도시와 내 몸은 분리되지 않고 결합되어 있다. 도시인의 몸의 기관은 도시의 여러 장소와 접속되어 있어서 흐름과 유출, 단절과 연접이 연속적으로 이루어진다. 도시 자체도 유기체지만 도시와 인간의 몸은 서로가 몸통과 기관처럼 붙어있다.

 

 

처음 도시는 문명의 상징이었으며 진보와 문화의 결정체였다. 따라서 한국의 근대화란 어느 의미에서는 도시화이기도 했다. 급속한 도시화와 산업화에 따라 서울은 경이로운 변화과정을 체감해왔다. 그 도시공간에 사는 이들에게도 동일한 강도와 무게로 시공간의 변모를 어질하게 안겼다. 도시는 새롭게 재편되었고, 늘 재편중이고 그 속에는 질서와 혼란이 동시에 솟아나기 시작했다. 점치 수직으로 뻗어 가는 서울 도시의 한복판에서, 모든 것이 공업화와 산업화의 목표를 향해 진행되는 일 방향의 가치 편성 속에서 도시인들은 빠르게 압축되는 시간과 공간을 경험하였다. 시공간의 경험양식이 급속히 변함에 따라 더 빠른 속도감과 유동성 그리고 불확실성의 인과관계들이 맞물리게 되었다. 단기간에 위로부터 진행된 '압축된 근대화, 전 시대와의 단절을 추구하면서 상징적으로나마 역사의 연속성을 내보여야 했던 근대화, 서구를 발전 모델로 삼으면서도 민족주의를 추동력으로 삼아야했던 근대화'가 바로 우리의 근대화이며 그 근대화의 자취, 상처가 고스란히 서울이라는 공간 이곳저곳에 단호하고 처연하게 새겨져있다. 그리고 도시화는 이른바 도시적 감수성이라고 부르는 새로운 감성들을 형성하기 시작했다. 도시적 인간, 도시적 지식인이 생겨나고 그들은 이제 도시를 하나의 비평과 서술의 대상으로 삼아 도시적 삶의 양태를 그대로 받아들였다. 권인경 역시 그림을 통해 도시에 대해 발언한다. 작가는 도시를 바라본다. 들여다본다. 창 너머로 도시풍경이 펼쳐져있고 건물외관을 장식한 유리에도 비쳐있고 고층에서 내려다보는 풍경 안에도 있다. 복잡다단하게 들어찬 건물과 정신없이 질주하는 차량과 바글거리며 몰려다니는 도시인들, 간판과 신호등과 십자가와 빌딩과 산동네집들이 공존하고 있다. 오래된 것과 새것이, 수묵과 채색이, 그림과 꼴라쥬가 공생하고 있다. 밤과 낮이 함께 한다. 도시 한 복판에 치유의 상징 마냥 강이 흐르고 그 강에는 달과 해가 떠있고 밤하늘의 별과 낮의 도시가, 남루하고 누추한 살림살이와 치솟은 빌딩이, 회색의 건물과 녹색의 자연이 그렇게 서로 함께 있다. 이질적인 것들과 서로 다른 시간과 공간들이 혼재되어 있다. 이 풍경은 작가가 도시에서 부여잡고 싶은 희망 같은 것이다.

 

 

사실 도시는 기억상실증과 망각에 시달린다. 연속성이 사라지고 파편화 된 시간의 잔해들이 뒤엉켜있다. 기이한 꼴라쥬로 '땜빵'된 도시의 외형은 초라하고 어색하다. 권인경은 이러한 도시를 '인간의 삶의 순간들이 누적된 모자이크' 라고 말한다. 그래서일까, 권인경은 도시풍경을 꼴라쥬로 보여준다. 한자가 쓰여진 고서 조각들이 그림의 일부가 되었고 그림 안에 또 다른 공간을 만들어 보인다. 과거의 흔적들이 현재의 풍경 사이에서 숨쉰다. 변하는 것과 변하지 않으려는 것들이 충돌한다. 어쩌면 영속성과 연속성이라는 두 가지 형태의 도시의 시간은 과거와 현재, 미래를 넘나들며 장소를 지속적으로 유린한다. 파괴와 건설이 한 몸으로 붙어 다닌다. 경제와 이윤, 자본에 의해 현기증 나는 변신으로 거듭나지 않으면 살아남을 수 없다. 오로지 자본만이 이 도시공간을 규정하는 결정적인 힘이다. 사실 이곳은 영속성보다는 일시성의 연속이다. 시각적 컨텍스트는 연속적인 전체가 아닌 다양한 조각으로 이루어진 꼴라쥬로 파악된다. 그러니까 도시는 단일한 것인 동시에 다수적인 것이며, 현재라는 시제 속에 포함된 과거인 동시에 미래를 함축하고 있다. 권인경은 그런 도시를 그리고자 한다. 도시는 고정된 실체가 아니다. 아니 세상에 고정된 모습은 없다. 그것들은 다만 흐르고 사라지기를 거듭하고 여전히 생성중이다. 그렇게 유동적인 도시를 그리기 위해서 시선 역시 다양한 시점이 한 화면에 공존하는 한편 다분히 영상적인 흐름으로 극화하고 있다. 도시는 여러 시간이 동시다발적으로 공존한다. 작가는 그런 다른 시간의 층위를 보여준다. 그런데 그런 시선과 시간개념은 이미 산수화에 깃들어있었던 것이다. 그래서인지 작가의 도시풍경은 사실 산수화적 전통에 근접해서 이루어지고 있다는 인상이다.

 

순간적이면서 지속적인/53x45.5cm/한지에 고서꼴라쥬 수묵채색/2009

 

인공과 자연이 충돌하고 밤과 낮, 낮과 밤이 뒤섞이고 과거와 현재가 뒤섞인 이 기이한 공간은 다분히 초현실적이기도 하다. 마치 옛사람들이 산수자연 속을 소요하고 그 공간에 대한 관자의 개입, 상상력의 참여로 그려놓은 산수화처럼 작가는 도시풍경을 소요하고 그 안으로 육박해 들어가거나 일정한 거리에서 관조하면서 도시풍경을 그렸다. 자기 일상의 행동반경, 삶의 공간을 재현했다. 그것은 실제이자 상상력으로, 심상으로 길어 올린 풍경이다. 따뜻한 연민과 관조와 회의가 마구 뒤섞인 시선과 감정으로, 흡사 선인들이 자연과의 물아일체를 희구한 것처럼 까지는 아니지만 자신의 일상인 도시공간과 결코 떨어질 수 없는 마음의 결들을 부려놓았다. 그렇게 우리는 도시에서 살고 있고 살아갈 것이다. ■ 박영택 / 경기대 교수, 미술평론

 

순간의 공존/60.5x73cm/한지에 고서꼴라쥬 수묵채색/2008

 

변화하는/45x53cm/한지에 고서꼴라쥬 수묵채색/2009

 

좌- 순간의 지속/128x160cm/한지에 고서꼴라쥬 수묵채색/2009

우- 순간의 지속/130x162cm/한지에 고서꼴라쥬 수묵채색/2009

 

순간의 지속/112x145.5cm/한지에 고서꼴라쥬 수묵채색/2009

 

동시적 순간/130x162cm/한지에 고서꼴라쥬 수묵채색/2009

 

순간의 지속/130x162cm/한지에 고서꼴라쥬 수묵채색/2009

 

흐르는 순간/160x64cm/한지에 고서꼴라쥬 수묵채색/2009

 

시간의 층위들/162x130cm/한지에 고서꼴라쥬 수묵채색/2009

 

순간의 층위들/117x91cm/한지에 고서꼴라쥬 수묵채색/2009

 

 

변화하는/76x28cm/한지에 고서꼴라쥬 수묵채색/2009

 

변화하는/76x28cm/한지에 고서꼴라쥬 수묵채색/2009 

 

 

 

 

도시를 통해 바라 본 시간의 지속적 변화

 

 도시를 떠나서 살 수 없는 도시형 인간에게 도시는 창조적 자극을 끊임없이 제공한다.

나는 도시와 함께 태어나고 성장했으며 변화해가고 있고 언젠가는 소멸할 것이다. 도시와 인간은 서로 유기적으로 연결되어 변화하는

샴쌍둥이 같은 존재이다. 분리시켜 생각할 수 없는 것이다. 인간의 과거, 그리고 현재의 모든 역사적이며 상상적인 경험이 물리적 공간인

도시에 녹아 끊임없이 변화하고 있다. 인간이 도시공간에 개입하여 마치 고정되어 있는 듯한 도시를 살아 움직이고 변화하게 한다. 인간이

만든 또 하나의 소우주인 도시에는 인간 개개인의 체험된 시간들, 공존하고 있는 자연의 변화들이 고스란히 드러난다. 인간들의 역사가

융합되며 도시는 시간 속에서 지속적으로 변화하고 있다.

 

과거 시간이 절대적인 것(뉴턴)이라 인식되었다면 근대 이후 시간은 경험적이며 주관적인 것(칸트)이라 인식되었다. 현대에는 지구상의

모든 지역이 한번에 관측되어 일출과 일몰을 동시적으로 관찰 할 수 있다. 동시대에 살고 있지만 각각이 보고 있는 시간은 다르게 경험된다. 나느 이렇듯 지속되는 시간의 흐름 속에서 각각 다르게 드러나는 순간들을 표현하고 싶었다.

 

지각하는 순간, 이미 그 순간은 흘러가버리고 또 다른 순간의 신(scene)이 오버랩 되며 하나의 시퀀스(sequence)를 형성한다. 대상들은

서로 침투해 들어가며 뿔뿔이 흩어진 각각의 대상들이 서로 순환하며 다양한 시간성을 드러낸다.

 

시간의 흐름 속에서 순간순간 변화하는 형태를 2차원적 공간에 담을 수 없다는 한계는 회화작가들의 주고민이었다. 동양에서는 이미

산수화에서 시점의 다양화를 통한 시도가 있었으며 이는 민화 등에서도 시도 되었고 서양에서 모네가 동일한 대상을 시간대 별로 표현한

작품이나 입체파의 동시다발적 시간의 층위표현 등에도 이런 시도들이 등장했다. 나 또한 이런 한계에 도달할 수 밖에 없었고 이에 대한

하나의 해결점으로 도시 안에서의 여러 시간들을 총체적으로 한 화면에 표현하기 위해 다양한 시점에 이들을 공존시키고 꼴라쥬를 통해

덧입히며 단일한 듯 하지만 동시다발적이며 고정되어 있는 듯 하지만 끊임없이 변화하고 있음을 표현코자 했다.

 

도시내부와 그 외부공간에 동시다발적인 시간의 층위들은 강과 하늘같은 장치를 통해 표현된다.

강은 끊임없이 같은 모습으로 흘러가고 있는 듯 하지만 어제의 강이 오늘의 강이 아니며 내일의 강이 될 수 없다. 흘러가는 저녁의 달이,

혹은 대낮의 해가, 때로는 바람이 구름을 이끌고 지나가고 밤의 별이 수를 놓으며 시간의 흐름이 투각된다. 하늘 역시 밤과 낮의 하늘이

한 공간 안에 공존하며 다양한 시간이 한 화면에 표현된다.

 

현실에서는 다소 모순적이어 보이는 요소들의 조합 속에서 때로는 멀찍이서 관조하며 때로는 내부적으로 참여하며 나는 도시와 함께

흘러간다.   ■ 권인경

 

 

 

- 촬영을 허락해 주신 권인경 작가님께 감사드립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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