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을 바라보게 하는 고난 (시38:1~22)찬송 ; 217장
본 시편 말씀은 시편 전체에 소개된 7개의 회개시 가운데 하나입니다(6, 32, 38, 51, 102, 130, 143편). 특히 본 시편은 다윗이 자신의 죄악으로 인해 생긴 심각한 육체적 고통에 대한 하나님의 구원을 호소하는 내용을 담고 있습니다. 다시 말해 본시는 자신의 범죄에 대하여 하나님의 징계를 받고 그로 인해 육체적 질병(1~10절), 인간관계의 단절 및 정신적 고통(11절), 대적들로부터의 위협과 핍박(12~16절), 그리고 극심한 고통으로 인해 자신의 죄악을 깨닫고 참회하며 하나님께 구원을 호소하는 내용(17~22)을 담고 있습니다. 고난이 성도에게 주는 유익에 대해서 오늘 아침에는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1. 하나님을 바라보게 하는 고난.
다윗은 자신의 죄악으로 인하여 육체적 질병을 겪으며(1~10), 가족, 친지, 친구 등 측근으로부터의 비난(11), 그리고 수많은 대적자들로 부터 훼방(12~20)을 받아서, 영적, 정신적, 육체적으로 삼중고에 처해 있었습니다. 그래서 어떤 사람은 이 시의 배경이 우리아의 아내 밧세바를 취한 사건과 관련된 것으로 보기도 합니다.
모든 인생이 범죄할 당시에는 거룩하신 하나님을 염두에 두지 않습니다. 감찰하시는 하나님을 잊어버리고 오직 자기의 욕망만을 채우려고 하는 이기적인 생각에 빠져 들기 쉽습니다. 다윗도 그랬습니다. 이렇게 하나님을 잊어버리고, 자신의 세상적인 정욕에 빠지게 되면 쉽게 죄에 넘어질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죄에 넘어질 당시에는 모르고 미련하게 죄악 가운데로 빠져들어 갔던 다윗이 여러 가지 고난이 들이 닥치자 닫힌 영안이 열리면서 하나님을 바라보게 되었습니다. 이렇게 고난은 잊어버린 하나님의 뜻을 기억나게 합니다. 바로 이런 면에서 다윗에게는 일시적인 환난이 오히려 축복이요, 은혜였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우리들도 마찬가지입니다. 이것을 깨닫는 자가 복이 있습니다.
2. 하나님과 신령한 교제를 회복케 하는 고난.
고난으로 힘들어진 다윗은 본문 1절 말씀에서 “여호와여”라는 말로 회개와 탄식의 기도를 시작하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자신에게 들이닥친 육체적, 정신적, 영적인 고난이 하나님으로부터 온 것임을 분명히 깨달은 다윗은 하나님을 향하여 입술을 열게 되었습니다.
비록 죄악으로 말미암아 일순간이나마 하나님을 피했고, 그래서 이제 말문을 열 염치도 없지만, 다윗은 용기를 내어서 하나님을 불렀습니다. “여호와여”라고 부르면서 자신의 잘못들을 상세하고 자세하게 고백하며 회개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하나님과의 신령한 관계가 회복되기를 원하였습니다.
다윗은 자신이 현재 당하는 고난이 도저히 견디기 어려운 것이 사실이지만(4절), 그러나 이 고통이 하나님의 손이 자신을 누르는(2절) 정도에 불과하다고 생각하였습니다. 다시 말해 다윗에게 주어진 고통이 아무리 극심하다 하더라도 그것은 그저 부모가 사랑하는 자녀를 향해 때리는 사랑의 채찍에 불과할 뿐 그 자녀를 모질게 학살할 정도의 그런 처참한 형벌은 아님을 확신했던 것입니다. 얼마나 소중한 깨달음입니까? 그래서 다윗은 용기를 내어 하나님을 부르고, 다시 이전의 다정다감했던 부모와 자녀의 사이의 관계로 회복하려고 하였던 것입니다.
이렇게 고난은 하나님과 맺었던 이전의 아름답고 긴밀한 교제를 깨닫게 하고 이런 아름다운 관계를 회복케 하는 신비로운 능력이 있습니다.
3. 하나님께 소망을 두게 하는 고난.
다윗은 고난 가운데서 하나님만이 구원이시요, 환난 날의 피난처이심을 확신하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그는 하나님을 향해 “주 나의 구원이시여”(22절)라고 담대하게 고백하였습니다. 실로 다윗은 고난 가운데서 하나님께 구원의 소망을 두게 되었던 것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세상에서 고난과 환난에 직면할 때 실망하고, 실족하며, 심지어 자포자기한 상태에서 생을 마감하는 극단적인 방법을 선택하기도 합니다.
그러나 다윗은 그렇지 않았습니다. 다윗이 극한 상황에 처해 있었으나, 다윗은 끝까지 하나님을 붙들기를 잊지 않았습니다. 오직 하나님만이 구원자임을 확신하고 하나님을 통해 모진 시련과 고난을 이기기 소원하였습니다. 그의 간절한 고백들을 보시기 바랍니다. “나를 버리지 마소서!”(21), “나를 멀리하지 마소서”(21), “속히 나를 도우소서(22)” 다윗은 이렇게 간절하고도 또 간절한 심정으로 하나님의 도우심을 사모하고 또 사모하였습니다. 그가 하나님께 소망을 두지 않았다면, 어떻게 이런 기도가 나올 수 있었겠습니까?
이제 말씀을 맺으려고 합니다.
이렇게 고난은 하나님의 구원을 사모하게 하고, 확신케 하며, 전적으로 하나님만을 의지하게 하는 놀라운 능력이 있습니다. 그러기에 성도에게 있어 고난은 형벌이 아니라 축복의 한 방편인 것입니다.
고후1:5~6절 말씀에 보면 “그리스도의 고난이 우리에게 넘친 것 같이 우리의 위로도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넘치는도다 우리가 환난 받는 것도 너희의 위로와 구원을 위함이요 혹 위로 받는 것도 너희의 위로를 위함이니 이 위로가 너희 속에 역사하여 우리가 받는 것 같은 고난을 너희도 견디게 하느니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또 잠23:13~14절에서도 “아이를 훈계하지 아니치 말라 채찍으로 그를 때릴지라도 죽지 아니하리라 그를 채찍으로 때리면 그 영혼을 음부에서 구원하리라”고 의미 있는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아멘.
그림자 같은 인생(시39:1~13) 찬송; 536장.
본 시편은 다윗이 그의 말년에 자신의 지난날들을 돌이켜 보며 인생의 허무함과 연약함을 읊조리면서 동시에 인생의 궁극적인 종착역인 하나님 앞에 나아가 구원을 호소하는 일종의 탄원시입니다. 내용을 구분한다면 1~6절까지는 인생의 무상함을 노래하고, 7~13절은 자신의 미약함과 한계를 깨닫고 하나님의 은혜에 호소하는 자리에 나아가는 것을 말하고 있습니다.
1. 악인 앞에 침묵하는 다윗.
다윗이 원수 앞에서 자칫 하나님의 거룩하심을 원망하고 불평하는 실수를 범할까봐 자기 입술에 자갈을 먹임으로 삼가하였습니다. 다윗은 자신의 정당함을 변호하고 변론하는 것이 무익하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그리고 악인 앞에서 자신의 정담함을 변호하고 변론하는 것도 무익함을 알고 삼가하였습니다(2). 하나님께 옳다 인정받지 못하면서 악인에게 올바름을 인정받은들 무슨 소용이 있겠는가? 하는 것이 다윗의 마음이었습니다.
그래서 그 원수 앞에서는 잠잠하여 침묵하고 하나님을 향해서만 입술을 열어 자신의 억울함을 호소하고 있는 것입니다(3~4).
2. 인생의 곤고함을 신앙으로 이겨내는 다윗.
악인 앞에서 입을 다물고 침묵하고 있으니 다윗의 마음이 얼마나 답답하고 안타까웠겠습니까?(3). 그러나 다윗은 하나님 앞에서 잠잠히 기도하는 가운데 큰 인생의 도리를 깨달았습니다. 다윗은 하나님 앞에서 자신의 인생이 손바닥 넓이만큼도 넓고 크지 못함을 깨달았습니다(5). 그리고 모든 인생은 낮 동안 잠간 있다가 사라지는 그림자와 같음을 깨달았습니다(6). 그러기에 이들 인생이 목숨을 걸고 쌓는 재물도(6), 영화도 일장춘몽에 불과하다는 진리를 깨닫게 되었던 것입니다(11). 이렇게 짧고 유한하며 허탄한 것이 인생의 본질입니다.
이러한 인생이 곤고함을 이길 수 있는 비결이 무엇이겠습니까? 남을 원망하며 불평하는 것이겠습니까? 또 사람들로부터 자신의 의로움을 인정받는 것일까요? 다 어리석고 허탄한 일입니다. 다윗은 이렇게 인생의 유한함과 허탄함을 통해 더 이상 자신의 고난 문제에 집착하지 않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하나님 앞에서 자신의 인생과 종말 문제를 생각하기에 이르렀습니다(4). 이렇게 인생의 본질을 분명하게 깨달은 자는 자연히 하나님 앞에서 자신의 종말과 영혼문제에 관심을 가질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첫째, 인생은 유한한 존재라는 것입니다(5절).
사2:22절 말씀에 보면 “너희는 인생을 의지하지 말라 그의 호흡은 코에 있나니 수에 칠 가치가 어디 있느뇨”라고 말씀합니다. 또 약4:14절 말씀에서는 “내일 일을 너희가 알지 못하는도다 너희 생명이 무엇이뇨 너희는 잠간 보이다가 없어지는 안개니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둘째, 인생은 연약한 존재라는 것입니다(5).
시62:9절 말씀에 보면 “진실로 천한 자도 헛되고 높은 자도 거짓되니 저울에 달면 들려 입김보다 경하리로다.”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또 벧전1:24절 말씀에서는 “그러므로 모든 육체는 풀과 같고 그 모든 영광이 풀의 꽃과 같으니 풀은 마르고 꽃은 떨어지되”라고 말씀합니다.
셋째, 인생은 행사가 헛된 존재라는 것입니다(6).
시39:6절 말씀에 보면 “진실로 각 사람은 그림자 같이 다니고 헛된 일에 분요하며 재물을 쌓으나 누가 취할는지 알지 못하나이다.”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사람은 헛된 행사에 분주합니다. 재물을 쌓고, 명예를 얻고, 권력을 거머쥐는 일에 자기 생명까지 겁니다. 그리고 탐욕으로 시작된 명예와 부와 권력에 대한 집착은 아무리 채워도 채울 수가 없습니다. 만족하지 못한 채 사람은 계속 분주하게 허탄한 것들을 추구합니다.
이처럼 세상일에는 만족함이 없습니다. 아무리 높은 권세를 가진 사람이라고 할지라도 내심 불안하고 안식이 없는 것입니다. 이들이 평생을 걸쳐 이룬 업적과 명성이 죽음과 함께 허사가 되고 맙니다. 그렇게 억척스럽게 모은 재물, 남을 넘어뜨리고 쌓은 명성, 권세를 누리는 사람은 누가 될 지 알 수 없습니다. 이것이 인생입니다. 그러므로 인간은 자신의 연약함과 삶의 무의미를 깨닫고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바른 길로 바로 들어서야 합니다.
3. 오직 주께만 소망을 두는 다윗.
본문 7절 말씀에 “주여 내가 무엇을 바라리요 나의 소망은 주께 있나이다”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오직 주님께만 소망이 있습니다. 그래서 오늘날 이 땅에 소망은 오직 그리스도뿐입니다. 그리스도 이외의 모든 일들이 허망한 일들입니다. 따라서 하나님은 그리스도를 보내어 인생 문제를 해결하신 것입니다.
그리고 인생들이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살고, 그리스도를 위하여 살고, 그리스도를 전하며 살 때, 가치가 있게 하셨습니다. 이것이 사도들의 삶이요, 바울의 삶이요 그리스도인들의 삶입니다. 오직 복음을 위해서 사는 삶이 복된 삶입니다. 여러분의 삶이 그러한 삶이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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