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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드온 찬양대 귀한 찬양 감사합니다. 우리 하나님께서 기쁘게 받으신 줄로 믿습니다.
오늘은 주기도문 미셔널 주기도문 마지막 회입니다. 열 번째 주기도문 시리즈입니다. 다음 주부터는 미셔널 히브리서를 하게 됩니다. 하여튼 금년 한 해는 미션이라는 단어가 여러분의 귀에서 떠나지 않을 거예요. 귀에 딱지가 붙도록 귀에서 미셔널 소리로 피가 나도록 들으셔야 돼요. 그래서 우리 인생이 호모 미셔널리스 미셔널 인간이 돼야 됩니다. 그것이 하나님께서 우리를 지으신 목적이기 때문입니다.
오늘 본문은 주님께서 가르쳐 주신 기도에 결론 부분입니다. 나라와 권세와 영광이 아버지께 영원히 있사옵나이다. 이렇게 주기도문이 마무리가 됩니다. 이것은 주기도문의 마지막 문장이기도 하지만 우리 인생과 온 역사가 마지막에 도달해야 되는 결론이기도 합니다. 역사는 그 방향을 향해서 가야 되는 것입니다.
먼저 나라가 나옵니다. 나라가 하나님께 있사옵나이다. 영원히 하나님의 나라 그 나라를 고백하고 있습니다. 헬라어로 바실레이아라고 하는 단어를 쓰는데, 이것은 영토 개념보다는 통치, 하나님께서 그 백성들을 다스리시는 그 다스림의 역동을 뜻하는 말입니다. 하나님 나라는 지도 위에 그려진 땅이 아니라 하나님 나라는 하나님의 통치가 살아 움직이는 현장입니다.
교회는 일반적으로 하나님의 나라로 표현되기도 합니다. 그러나 우리가 주의 이름으로 모였다 할지라도 교회가 그리고 각 개인들이 하나님의 통치를 거부하고 내 마음대로 산다면 거기는 허울뿐인 하나님의 나라예요. 진정한 하나님의 나라는 하나님의 통치하심이 온전하게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아담 이후로 세상과 세상의 문화는 문명은 하나님의 통치를 거부해 왔습니다. 인류 역사는 하나님을 거부하는 역사였습니다. 하나님은 이에 대해서 침묵하지 않으셨습니다. 그래서 아브라함을 부르시고 족장들을 부르시고 또 이스라엘 백성들을 불러내셔서 그들에게 광야에서 율법을 주셨습니다.
율법 하나님의 법입니다. 그 법이 법에 순종하는 현장이 하나님의 통치가 이루어지는 현장이에요. 그들이 그 통치를 그 율법을 제대로 지키지 않을 때 하나님은 선지자들을 보내서 계속해서 초청하십니다.
하나님의 통치 안으로 들어와라. 그것이 너희 민족, 그리고 너희 인생이 살 길이다.
하나님의 통치를 하나님의 나라를 그들은 선언했습니다. 그러다가 마침내 예수님께서 이 땅에 오셨어요. 예수님이 이 땅에 오심은 하나님 나라 자체가 오신 겁니다. 예수님은 하나님 나라를 가지고 오셨고 예수님 자신이 하나님 나라 실체입니다. 그가 성육신 하시고 십자가에 죽으시고 부활하심으로 악의 권세를 이기시고 하나님의 통치를 실현시키셨습니다. 누구든지 십자가 아래서 우리는 하나님의 통치를 경험합니다.
그리스도인은 하나님의 나라의 백성 된 사람들이에요. 그리고 그 나라를 살아가면서 그 나라를 세상에 전하고 증거하고 그리고 확장해야 되는 사명을 가진 사람들입니다.
저와 여러분들의 사명입니다. 우리가 이 주기도문을 날마다 할 때마다 우리는 이 사명을 가슴에 새겨야 합니다. 주문 외우듯이 외울 기도문이 아닙니다. 이 안에 하나님의 선교가 들어 있고, 이 안에 하나님의 마음이 들어 있고 이 안에 인류 역사의 원리가 들어 있기 때문이에요. 우리가 날마다 이 기도를 드린다는 것은 하나님이 나와 우리 가정과 교회와 우리가 사는 세상 속에서 그 통치를 확장해 가시도록 하나님 이 몸을 사용하여 주시옵소서, 우리 가정을 사용해 주시옵소서, 우리 교회를 사용해 주시옵소서 하는 결단의 기도입니다.
여러분은 그런 기도를 드리고 계십니까?
나의 헌신을 통해서 이 하나님의 통치가 온 세상에 날마다 확장되어 가는 것을 우리는 경험하고 또 소망해야 합니다. 이것이 저와 여러분이 이 문명 세계의 중심인 파리에 살고 있는 이유입니다. 다양한 이유로 우리가 여기 왔지만 그것은 사실은 피상적인 이유예요. 하나님이 우리를 여기 보내셨어요. 짧게는 6개월 3개월 길게는 1년, 2년 3년, 또 평생을 살 수 있도록 하셨습니다. 하나님의 뜻이 있어요. 우리의 삶에 그런 우연이 없습니다. 어쩌다 온 게 아니에요. 그 뒤에는 하나님의 섭리가 있어요.
왜 보내셨을까요?
바로 저와 여러분들의 기도와 헌신과 행위를 통해서 하나님의 나라가 하나님의 통치가 이 땅에 이루어지고 확장돼 가기를 원하시는 것입니다.
우리는 신앙생활을 너무 자기 중심 현대인은 특별히 너무 차 중심적으로 해석합니다. 그래서 오늘 마음 편하고 오늘 하루 뭐 근심 없이 살고 있는 문제 해결하고 좀 남들보다 더 유복하게 살고 그런 것이 마치 신앙의 목적인 것처럼 생각하고 있어요.
그러나 신앙의 목적 우리가 살아있는 이유는 사실은 그보다 더 위대한 데 있어요. 하나님 나라가 임하기 위해서 하나님 나라의 통치가 온 세상에 확장되어 주님 오실 날을 준비하는 그 거룩한 미션에 우리가 부름을 받은 거예요. 그 일을 감당할 때 인생이 의미가 있는 거예요. 조금 맛있는 거 더 먹는다고 인생이 의미 있는 거 아닙니다. 조금 남보다 부족하게 살아도 우리가 이 미션에 우리가 이 하나님의 뜻에 하나님 나라를 위해서 쓰일 수만 있다면 그것을 우리가 생각하고 살기만 한다면 그 인생은 진실로 의미 있는 인생이고 가치 있는 인생이 되는 것입니다.
우리가 오늘 예배드리는 이유도 거기에 있어요. 우리 예배드리고 나면 마음도 평안해지고 예배드리고 나면 일주일 동안 하나님이 또 지켜주시고 축복하시고 다 예배 안에는 그런 요소들이 들어 있어요.
그러나 예배에 더 고귀한 목적은 우리가 이렇게 예배를 드림으로 여기서 찬양을 하고 하나님의 이름을 높임으로 하나님의 나라가 이 땅에 확장돼 간다는 거예요. 그 미션을 가지고 우리가 예배를 드려야 합니다. 그 하나님의 나라를 하나님께 속한 그 하나님 나라를 우리가 고백하면서 그 나라를 위해서 헌신 하고자 하는 기도가 오늘 주기도문입니다. 그리고 여러분 왜 우리 목사님은 자꾸 모든 걸 미션에 미셔널로 붙이냐 하지만 성경 자체가 미셔널 문서예요.
복음이 전해지는 미션의 현장에서 만들어지는 거예요. 전부 다 기독교의 역사가 미션의 역사입니다. 그리고 우리 인생도 미션의 인생이 돼야 되는 겁니다.
권세 나라에는 권세가 있습니다. 이 권세라고 하는 것은 디나미스 힘 능력 영향력을 뜻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권세는 하나님께 있는 그 권세는 세상의 권세와는 결이 다르다 이런 말씀입니다.
여러분 세상의 권세는 본질적으로 그리고 궁극적으로 폭력적이고 파괴적인 속성을 갖고 있습니다. 물론 처음에는 뭐 백성을 위한다 대중을 위한다고 하는 좋은 슬로건을 가지고 시작되지만 힘이 모일 때 힘의 정점에 섰을 때 사람은 남을 지배하기를 원하고 그리고 그걸 더 유지하기를 원하고 그러기 위해서 폭력도 서슴없이 자행할 수 있는 거예요. 그게 개인이든 국가든 조그마한 단체든 우리가 무슨 개인의 작은 무슨 모임을 해도 거기서 누군가가 힘을 갖게 되면 좌지우지하고 자기 마음대로 하고 또 마음대로 안 되면 폭력을 쏘고 그 폭력이 물리적 폭력도 있지만 언어적 폭력도 있는 거예요. 그런 다양한 그 폭력을 하면서 군림하기를 원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절대 권력이 있는 곳에는 절대 부패가 있는 법이에요. 인류 역사가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 고안해낸 현재까지 고안해낸 최고의 정치 시스템이 삼권 분립 정치입니다. 견제와 균형 왜 사람의 죄성 때문입니다. 그 견제와 균형이 무너질 때 그것을 독재라고 하는 거예요. 그게 세상 모든 것에 적용이 됩니다. 왜냐하면 이 세상 문명이라는 것은 그렇게 지어졌어요.
그러나 하나님의 나라의 권세는 다릅니다. 하나님이 어떤 분이세요?
하나님은 하늘과 땅을 통틀어서 가장 위대하고 전능하신 하나님이에요. 그분이 못하실 일이 없습니다. 권력으로 말하면 최고의 정점에 있는 이렇게 표현할 수 이건 우리의 언어로 그냥 표현한 거예요. 최고
그러나 하나님의 권세가 하나님께서 그 권세와 능력을 표현하고 사용하시는 방법은 세상과 달라요. 폭력이 아니라 굴림이 아니라 사랑과 겸손으로 나타납니다. 그게 하나님 나라입니다. 파괴하고 죽이는 힘이 아니라 하나님의 권세는 살리고 회복시키는 힘입니다. 만약에 하나님 나라가 그리고 하나님의 권세가 세상의 원리를 따라 나타난다면 우리는 숨도 못 쉬어 저 북한 같은 데 사는 사람보다도 더 불행해 불꽃 같은 눈으로 보시면서 막 폭력을 행하시는 무자비한 그 하나님이시라면 우리가 어떻게 살겠어요?
그런데 우리 하나님은 정반대로 사랑과 섬김으로 살리고 회복하는 힘으로 그래서 우리 마음이 평안하고 주님 앞에 가면 마음이 편하잖아요. 김정은이 앞에 가면 마음이 편해요. 안 편해요. 하나님 앞에 가면 편해요. 기도도 누워서도 하고 걸어가면서도 하고 내 짐을 가지고 그분 앞에 나가면 그분이 내 죄와 모든 짐을 다 벗겨주시고 만져주십니다. 얼마나 편합니까? 언제든지 기회를 주시고, 그래서 우리가 너무 편해가지고 나중에는 그 전능하신 하나님 앞에서 간이 배 밖으로 나온 간땡이가 부은 듯한 삶도 살아요.
저는 가끔 보면 저를 포함해서 우리 그리스도인들이 정말 너무한다. 우리가 하나님을 섬긴다고 하면서 누구 조금만 높은 사람 앞에 가면 그래도 이렇게 자세를 바르게 하고 뭐 하는데 전능하신 하나님 앞에서 우리가 그분을 섬기는데 우리가 생각하고 하는 행동은 참 진짜 그렇잖아요. 그렇게 할 만큼 그렇게 하라는 게 아니라 그렇게 할 만큼 우리 하나님께서 그 힘을 우리에게 사용하시는 방식이 다르다는 거예요.
얼마나 감사하고 고마운지 몰라요. 그것이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성육신과 십자가에서 나타났습니다. 성경에 의하면 하늘과 땅의 모든 권세를 가지신 그가 자기를 비워서 그걸 케노시스 기독론이라고 해요. 케노시스 크리스톨로지 예수님이 어떤 분이냐 하늘과 땅의 모든 권세를 가지신 분인데, 자기를 비워 이 땅에 육신을 입고 오신 동안에는 종의 형체를 입고 오신 동안에는 그 하늘의 하나님 왕으로서의 권세를 사용하지 않겠다는 자신과의 계약을 맺은 거예요. 자기를 비워 왕이신 분이 하나님이신 분이 절대자가 절대자 아닌 것처럼 종의 형체를 입고 오셔서 십자가에 죽기까지 복종하시고 자기를 낮추심으로 세상을 구원하신 거예요.
이게 하나님께서 저와 여러분들을 대하시고 이 세상을 구원하시는 방식입니다. 그 낮아지심으로 인해 저와 여러분들이 살게 되었고 이 세상에는 혁명적인 변화가 시작됐어요. 인류의 문명과 역사는 끊임없이 힘을 가진 자가 힘 없는 자를 억압하고 죽이고 폭력을 가하는 그런 역사인데, 그 거스를 수 없는 그 도도한 흐름에 우리 주님이 이 땅에 오셔서 십자가에 죽으시고 부활하심으로 그 흐름을 바꿔놓는 그래서 기독교는 레디컬한 겁니다. 매우 혁명적인 겁니다.
세상의 원리를 거스르는 그래서 세상 사람들은 바보 같다고 하고 미련하다고 합니다. 유대인들도 헬라인들도 저 십자가 저 예수 믿는 사람들은 참 미련한 사람들이라 그렇게 살아가지고 어떻게 하느냐 그런데 그게 십자가의 원리예요.
남아프리카 선교 신학자인 데이비드 보시는 교회의 선교적 능력 이 세상을 변화시키는 혁명적으로 변화시키는 그 하나님의 역사가 미시오데인데야 하나님의 선교인데 그것을 감당하는 교회의 선교적 능력은 교회가 세상의 구조를 닮으려고 할 때가 아니라 오히려 십자가의 연약함을 따를 때 가장 선명하게 드러났다. 교회가 큰 힘을 가지고 세상의 권력을 누를 만큼 그 권력의 정점에 갔을 때 교회가 세상을 변화시킨 게 아니라는 거예요. 오히려 변두리에서 오히려 힘이 없는 자들이 그 복음을 살아낼 때 세상을 바꾸는 세상의 흐름을 바꾸는 혁명적 변화를 일으켰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선교의 역설입니다. 약함으로 강함을 이기는 사건 여러분 진정한 능력은 여러분 힘의 축적이 아니라 자기를 비우고 내어주는 것입니다.
그래서 여기 사실 여기 와 있는 여러분들 중에 그렇게 힘 있는 사람이 얼마나 있어요?
세상에는 진짜 탁월한 사람들 많아요. 근데 하나님은 하나님이 선택하셔서 세상을 변화시키는 그 역사를 보면 한번 보라 이거예요. 탁월한 자가 있느냐 말 잘하는 자가 있느냐 세상적으로 물론 있기는 있겠지만 하나님의 선택의 기준은 그런 게 전혀 아니라는 거예요. 비록 우리가 약하고 보잘것없고 때로는 신분 사이에서는 신분이 저 아랫 단계에 있다 할지라도 하나님이 그 약한 자를 부르셔서 강한 자를 부끄럽게 하시는 세상을 변화시키는 그 놀라운 역사를 이룬다는 것입니다.
세상의 진정한 변화는 세상의 힘으로 되는 것이 아닙니다. 이건호 목사였던 피에르 듀랑은 은밀하게 예배를 드리다가 잡혀서 몽펠리에서 형장의 이슬로 사라졌어요. 그때 그 여동생이 감옥에 갇혀 있었잖아요. 그녀가 할 수 있는 일은 뚜둑꽁꽁수동스에서 여인의 몸으로 19살에 갇혀가지고 그 벽을 뚫고 나갈 수도 없고 아무런 할 수 있는 게 없었어요. 특별히 그 당시 프랑스는 막강한 절대 권력이었습니다. 아무 힘도 없었습니다. 막강한 권력 앞에서 그녀가 할 수 있는 일은 없었어요. 약하고 약하디 약한 사람이었어요.
그러나 그는 하나님을 의지했고 기도했고 인내했고 사랑했고 그들을 섬겨 나갔습니다. 몇 년 지나지 않아 하늘을 찌르던 프랑스의 권력은 와르르 무너졌어요. 1789년 혁명으로 그 절대 권력은 온데간데없어졌어요.
그러나 감옥에서 힘 없이 아무 힘 없이 복음을 따라 살았던 그 여인의 이야기는 지금도 많은 사람들에게 영향을 주고 있는 것입니다. 프랑스 사람 2700명이 죽는데 뭐 얘들 더위를 안 먹겠어요?
오늘 금년 진짜 덥습니다. 성령이 오시면 우리에게 능력을 주신대요. 하늘의 권세를 주시는 거예요. 오순절에 성령이 임하셨을 때 진짜 그 120문도에게 또 열두 제자에게 하나님 성령의 권능이 임했어요.
어떤 권능입니까?
갑자기 막 초능력이 생겨가지고 막 축지법을 쓰고 막 이단 옆차기를 탁 날르면 그냥 휙 날아가가지고 차고 막 딱 쳐다만 봐도 막 눈에서 불이 나가가지고 세상을 제압하는 그런 능력입니까?
그렇지 않아요. 오순절에 성령의 권능이 충만하게 임했을 때 그들에게 주어진 능력은 그런 세상적인 권능이 아니었어요. 물론 귀신이 떠나가고 영적인 권능입니다. 또 영적인 권능도 오늘날은 이상하게 저도 사실 저기 은혜 받고 한참 젊었을 때 막 뜨겁게 기도할 때는 그런 권능도 사실 사모했어요. 딱 한 번 진짜 설교 딱 하면 3천 명 5천 명도 변화된다는데 그런 뭐 딱 쳐다만 봐도 막 다 들여다 보이고 제가 만약에 여러분 쳐다만 봐도 여러분 속마음이 다 들여다 보이면 여기 한 사람도 안 나와 있을 거예요. 무서워가지고 오지도 못해 그런 뭔가 막 그래가지고 쉽게 가고자 하는 거죠.
근데 시간이 지나면서 목회를 하면서 나이가 들면서 하나님이 그런 권능을 주시는 게 아니에요. 그건 되게 그건 이상한 사이비들이 하는 거예요. 제자들에게 주시고 하나님의 사람들에게 주신 하나님의 권능은 물론 귀신도 떠나가고 병도 났지만 그것보다 더 본질적인 하늘의 권능은 어떤 상황에서도 흔들리지 않는 용기 또 약함으로 강함을 이기는 그런 능력입니다. 그래서 내가 주님 나라를 주님을 위해서 약해지고 주님을 위해서 모욕당하고 주님을 위해서 박해받고 주님 때문에 더 억울한 일 당할 때 그것을 견딜 수 있는 능력 그래서 그런 일들을 통해서 세상을 변화시키는 그게 초대교회였어요.
예수님의 12 제자만큼 여러분 성령 충만한 사람이 어디 있겠어요?
그런데 그분들이 다 다 맨날 얻어맞고 맨날 굶고 그러다가 마지막은 다 순교 당했어요. 사도요한도 사실은 순교예요. 그게 그게 살아있는 게 살아 있는 겁니까?
그 박해 시절에 나의 오랫동안 사는 게 힘든 거예요. 어떤 제자는 예수님 때문에 껍질이 벗겨서 죽고 어떤 제자는 거꾸로 십자가에 못 박혀 죽고, 안드레 그의 형제 안드레는 이렇게 사선으로 사선 십자가에 죽고 그래서 안드레 십자가라고 해서 이렇게 된 게 안드레 십자가 그들이 보여준 것은 복음 때문에 약해진 것입니다.
그런데 그들의 약해짐을 통해서 하나님의 전능한 능력이 나타나는 거예요. 그게 하나님의 권세입니다. 그리고 그 권세는 사람을 살리고 세상을 변화시키는 권세가 되었습니다.
우리는 날마다 이런 권세를 사모하면서 하나님 오늘도 내가 억울한 일 당할 때 막 그것까지고 분노하고 막 죽이고 싶고 그런 마음으로 살지 않게 하시고 억울한 일 당할 때 그것을 기쁨으로 받아들이는 힘을 주시옵소서 이렇게 기도할 수 있어야 되는 거예요.
그게 그게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시는 권능이에요. 제일 좋은 건 나를 괴롭히는 사람은 가다가 막 교통사고 나가지고 병원에 입원하고 막 뭐 그런 상상하지 않아요. 원수를 만나면 저게 막 망했으면 좋겠고 그런 소식이 들리면 좋겠지만 하나님이 그런 거 안 들어주십니다. 그 사람을 그래도 품을 수 있는 마음 그게 권능이에요.
어떻게 보면 세상에서 정말 이게 무슨 힘이야 그러지만 그런 마음을 가질 수 있는 게 힘이다 이런 말이 그걸 통해서 하나님 나라가 이루어지고 그걸 통해서 사람을 살리고 세상의 변화가 일어나는 것입니다.
주기도문을 마무리하면서 여러분들도 그런 권능을 사모하시기를 바랍니다. 그게 이제 진짜 권능이에요.
세 번째로 영광입니다. 독사 가장 밝은 빛이에요. 이것이 모든 역사의 최종 목적입니다. 영원히 모든 영광이 하나님께 돌아가기를 바라는, 그래서 역사의 완성이 뭐냐 마지막 오메가 포인트가 뭐냐 모든 나라와 권세와 영광이 하나님께 돌려지는 거예요.
기독교 문명의 궁극적 지향점을 랄프 윈턴은 하나님께 모든 영광이 돌아가는 상태라고 그랬어요. 역사의 마지막이 뭐냐 완성이 뭐냐 모든 영광이 하나님께 돌아가는 아직은 그렇지 않아요.
라트렛은 기독교 확장의 역사 부흥의 역사는 하나님 나라가 인류 속으로 점점 침투해 들어오는 과정이라고 말했어요. 우리가 개신교 신학 그러면 파이브 솔라를 얘기합니다. 솔라 피데, 솔라그라티아 솔라 스크립트라 솔로스, 크리스투스 솔리데오 글로리아 오직 믿음 오직 은혜, 오직 성경, 오직 예수 그리고 오직 하나님께 영광.
근데 이게 종교개혁자 누가 이걸 다 한 번에 만들어 놓은 게 아니고 20세기의 신학자들이 종교 개혁의 원리를 쭉 이렇게 추려보니까 이 5가지 원리로 귀결이 되더라. 이거 이 하나하나가 얼마나 중요한지 몰라요. 그러나 마지막 소위 장깔뱅이 추가시켰다고 알려진 솔리데오 글로리아 모든 영광이 하나님께 있습니다. 하나님께 돌아가기를 원합니다 하는 이 솔리데오 글로리아는 이게 빠지면 앞에 있는 것들이 완성되지 않는 거예요.
모든 것은 솔리데오 글로리아를 향해서 놓여져 있습니다. 우리 교회도 우리가 선교도 하고 열심히 기도하고 다양한 일들을 하지만 최종 목적은 뭐예요?
오직 하나님께 영광이 돌아가기를 우리 인생도 마찬가지고 장깔뱅은 이 종교 기자 이 사람 워낙 탁월한 사람이니까 천재요. 종교 개혁 2세대를 이끌었고 종교 개혁을 소위 완성했다고 하는 그 당시에 그런 분이니까 거의 영웅 아니에요.
그런데 이분은 죽을 때 내가 죽으면 장례를 아주 간소하게 하라. 그리고 무덤을 사람들에게 알리지 말라. 빔은 쓰지 말라. 그냥 오랫동안 이 무덤이 알려지지 않아서.
근데 어느 날 사람들이 제네바의 그 시미티에르에 가서 보니까 장 깔뱅이라는 조그만 아주 초라한 비문이 있어. 아이고 여기가 그 위대한 종교개혁자 깔뱅이 무덤이다. 그래가지고 이제 나도 사실 찾아가기는 갔는데 특별히 그중에서 우리 한국 크리스천들이 얼마나 많이 찾아가가지고 지금은 거기를 아주 아름답고 화려하게 꾸며 가지고 꽃 갖다 놓고 아주 보고 아마 깔뱅이 다시 오신다면 대분노를 했을 거예요. 아니 쓰지 말라고 하는데 하라는 건 안 하고 특별히 한국교회 교인들 왜 자꾸 찾아와 가지고 죽은 사람을 자꾸 그렇게 하느냐 할 거예요.
그분이 위대한 것은 위대한 업적을 남겼기 때문이라기보다는 그 마지막이 위대했기 때문이에요. 잘 하다가 마지막에 핵까닥 해가지고 모든 영광의 일부는 나에게 이렇게 하고 일부는 하나님께 이렇게 했다면 다 꽝이에요.
그런데 깔뱅은 후손들이 그러는 거야 어떡하겠어?
그런데 본인은 자기를 낮추고 아무도 자기에게 주목하지 말라고 그렇게 인생을 마무리했습니다. 장깔뱅이 확립한 이 원리가 온전히 이루어지는 그 순간이 종교 개혁의 완성입니다. 역사도 그렇게 완성되는 거예요.
이제 주기도문 시리즈 설교를 마무리합니다.
나라와 권세와 영광이 영원히 아버지께 있사옵나이다. 그 나라를 위해서 살고, 그리고 그 나라의 권세의 원리를 따라 살아가시고, 그리고 모든 영광 진짜 다른 거 보면 저도 이제 내 인생과 모든 사역의 3분의 2 지점을 넘어섰어요. 이미 맨날 생각합니다. 그냥 내가 무슨 수도사처럼 어떤 위대한 사람들처럼 무슨 성인들처럼 나는 그렇게 살 자신은 없지만 최소한 마지막에 헤까닥질은 하지 말자. 마지막에 잘해놓고 막판에 판 뒤집는 거예요. 그냥 내가 할 수 있는 대로 최선을 다하다가 마지막 제발 하나님의 영광을 취하지는 말자. 모든 영광을 하나님께만 돌리자. 이거 하나라도 잘하자.
늘 그런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저와 여러분들도 이 미션을 주기도문을 살아내시고 마지막에 오직 하나님께만 영광을 돌리는 그런 인생 되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 Messenger’s Note:
“In his heart, a man plans his course, but the LORD determines his steps.”
“Nevertheless, not my will but yours, be done.”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