줄리안 반스의 ‘플로베르의 앵무새’
작가 ; 줄리안 반스(1946-)
초판 ; 1986
재미있고, 박력있는 이 소설은 명망있는 학자의 고요한 열정과 명상에 대한 이야기이다. 또한 외로운 아마추어 학자와 플로베르 사이의 보답 없는 사랑 이야기이기도 하다. 마지막으로 이 소설은 추리소설이기도 하다.
포스트모던 소설의 전형으로 꼽히는 <플로베르의 앵무새>는 퇴역한 의사 제프리 브레이스웨이트가 프랑스 북서부 노르망디 지역의 루앙을 여행하면서 시작된다.
영국의 현존 작가 중 가장 존경받는 작가 중 한 사람이자 유럽 문학을 대표하는 거장 줄리언 반스의 장편소설. 외형적으로는 아마추어 문학 애호가인 영국의 어느 퇴역 의사가 플로베르에게 영감을 주었다고 전해지는 박제 앵무새를 찾는 짧은 여정을 기록하고 있다. 하지만 박제 앵무새를 모티프로 풀어 나가는 플로베르에 대한 탐구는 시공을 초월하고, 과거와 현재뿐 아니라 플로베르 작품 속 시간까지 함께 아우르며 진행된다.
이 소설은 플로베르와는 거의 관계없다. 앵무새와는 더더욱 관계없다. 오히려 브레스웨이트와, 자신의 영웅에 너무 가까이 다가간 경우 자기 자신에 불편할 정도로 가까워진다는 위험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다. 화가 루싱앙은 말했다. ‘모든 예술은 자전적이다.’
브레이스웨이트는 비극적 인물이다. 그는 인생에 무감각하며, 자신의 추억과 기억을 무시한다. 그는 너무나 공허하며 인간보다 더 훨씬 더 안전한 것에 헌신할 수밖에 없는 인간이다. 죽은 프랑스 작가에 사로잡힌 늙은 퇴직 의사는 (자신은 유머의 대상으로는 어울리지 않지만) 이 소설은 위트와 통찰로 가득하다.
전통적인 플롯 위주의 이야기 구조를 해체하고 플로베르의 작품과 발언에 근거한 의사 연대기, 플로베르 외전, 동물 열전, 플로베르를 받아들이는 현대인들의 우스꽝스러운 에피소드 등 만화경 같은 다양한 형식의 글을 통해 작가는 사실주의 소설의 대가의 초상을 어느 비평가나 전문가도 보여 주지 못한 방식으로 입체적으로 보여 주고 있다. 하지만 이 책은 단순히 창의적인 플로베르 평전에 머물지 않고, 예술의 자장 안에서 벌어지는 작가와 비평가와 독자 사이의 상호관계, 생활과 예술의 상관관계, 작가와 작품의 상관관계 등 예술 작품을 둘러싸고 벌어지는 인간 사회의 모든 양상을 날카로운 통찰력으로 그리고 있다.
브레이스웨이트는 플로베르가 쓴 <순수한 마음>의 여주인공 펠리시테가 소중히 여겼던 앵무새 룰루가 박제되어 보존되어 있음을 알게 된다. 문제는 이 박제 앵무새가 두 마리라는 것이었다. 브레이스웨이트는 두 마리 중 어느 것이 진짜인지 밝히고 싶었다. 만약 이 문제를 해결하면 플로베르가 어떤 인물이었는지 더욱 잘 알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브레이스웨이트는 왜 플로베르에 대해 탐구하고자 하는가? 그 해답은 소설의 후반부에 나오는데, 브레이스웨이트에게는 에마라는 아내가 있었다. 그녀는 '결혼생활의 진부함'에서 탈출하기 위한 '가장 인습적인 방법'으로 간통을 저질렀다. 그리고 얼마 뒤 자살했는데, 브레이스웨이트는 이러한 자신의 상황이 <보바리 부인>의 내용과 매우 흡사함을 깨닫고 플로베르를 통해 자신을 들여다보고 싶은 욕망을 느꼈던 것이다.
브레이스웨이트는 아마추어 탐구자로서 플로베르에 대한 이런저런 사실들을 나열하고, 자신의 감상을 덧붙이며, 일반에게 잘못 알려진 내용들(비평가 에니드 스타키의 비평)을 바로잡기도 한다. 인생과 예술, 전기적 진리의 모호함, 사랑의 문제, 과거는 인식될 수 있는지 여부 등이 픽션, 문학비평, 풍자, 전기, 우화, 시험지 등의 형태로 제시되고 브레이스웨이트 자신의 삶과 교차되기까지 한다.
자, 그러면 처음으로 돌아가 플로베르의 진짜 앵무새는 둘 중 어떤 것이었을까? 결론은 허무하다. 플로베르는 소설을 쓸 당시 박물관으로부터 앵무새를 빌렸었는데 이 앵무새는 반납된 기록이 있었다. 나중에 그의 생가와 박물관에 소품으로 쓰기 위해 가장 그럴싸해보이는 앵무새가 놓여졌으므로 어떤 앵무새가 룰루인지는 알 도리가 없었다. 두 앵무새 중 하나가 진짜일 수도, 아니면 모두 가짜일 수도 있는 것이다.
브레이스웨이트는 과거로부터 삶의 통찰을 얻어 현재의 자신을 분석하고자 했지만 '어떤 것이 진짜 박제 앵무새인지' 조차 알아낼 수가 없었다. 그러면 브레이스웨이트의 이 긴 여정은 단지 헛수고였을까? 진리는 진정 <기름으로 범벅이 된 돼지 새끼>와 같아서 잡을 수도 없고, 잡으려고 하면 할수록 모든 것이 엉망진창이 되고 마는 것일까?
(작가 - 줄리안 반스)
줄리언 패트릭 반스(Julian Patrick Barnes, 1946년 1월 19일 ~ )는 영국 레스터 출신의 현대 영국의 작가이다.
줄리언 반스는 1946년 1월 19일 영국 중부의 레스터에서 출생했다. 옥스퍼드 대학에서 현대 언어를 공부한 반스는 1969년에서 1972년까지 3년간 ?옥스퍼드 영어 사전? 증보판을 편찬했으며 이후 ?뉴 스테이츠먼?과 ?뉴 리뷰? 등의 잡지에 평론을 기고하는 한편 문예 편집자로도 일했다.
탄탄하게 다져진 공력을 드러낸 첫 장편 소설 ?메트로랜드Metroland?(1980)로 서머싯 몸상(賞)을 받으며 화려하게 등단한 줄리언 반스는 이후 ?그녀가 나를 만나기 전에Before She Met Me?(1981), ?플로베르의 앵무새Flaubert's Parrot?(1984), ?태양을 바라보며Staring at the Sun?(1986), ?10 1/2장으로 쓴 세계 역사A History of the World in 10 1/2 Chapters?(1989), ?내 말 좀 들어봐Talking It Over?(1991) 등 10권의 장편소설과 2권의 단편집, 그리고 여러 권의 수필집을 현재까지 펴냈다.
역사와 진실, 그리고 사랑이라는 보편적인 주제들을 진지하고도 독특한 시각에서 다룬 줄리언 반스의 작품 세계에 대해 세계 각국은 만장일치의 찬사를 보냈는데, 1986년 프랑스에서 메디치상, 같은 해 미국 문예 아카데미에서 수여한 E. M. 포스터상, 1987년 독일에서 구텐베르크상, 1988년 이탈리아에서 그린차네 카부르상, 1992년 다시 프랑스에서 페미나상을 수상했고, 1993년 독일의 FVS 재단에서 수여한 셰익스피어상, 그리고 2004년에는 오스트리아에서 수여한 오스트리아 국가 대상 등을 수상했다. 프랑스 정부는 이례적으로 세 차례에 걸쳐 외국인인 줄리언 반스에게 1988년 슈발리에 문예 훈장, 1995년 오피시에 문예 훈장, 2004년 코망되르 문예 훈장을 서훈하여 그가 작품을 통해 펼쳐 보인 예술적 성취를 높이 평가했다.
줄리언 반스는 현재 런던에 살면서 나이와 함께 더욱 원숙해진 시각과 여전히 왕성한 창작력으로 작품을 집필하며 바쁜 나날을 보내고 있다
그의 장편소설과 단편소설들은 포스트모더니즘 문학의 전범으로 간주되고 있다. 그는 《플로베르의 앵무새》(1984년), 《잉글랜드, 잉글랜드》(1988년), 《아서와 조지》(2005년)로 맨 부커상 후보에 세 번 올랐다. 그는 댄 캐버나라는 필명으로 범죄 소설을 썼다. 그는 또한 프랑스 문학의 번역자로도 알려져 있다. 그가 번역한 작가로는 도데와 플로베르가 있다.
그가 1980년에 발표한 처녀작 《메트로랜드》는 1960년대의 반항적이고 허무주의적인 젊은 세대의 운명을 묘사한 것이다. 그는 이 작품으로 서머싯 몸상을 받았다. 《10 1/2장으로 쓴 세계 역사》(1989년)는 전투적인 무신론과 신비적인 신앙을 교묘하게 조화시키면서 노아의 방주 이야기를 대담하게 해석하고 있다. 이 소설에서 바다와 관련된 모티프는 계속 변주되며 나타난다. 반스가 제기하는 철학적 질문들은 독자의 마음을 뒤흔든다. 《잉글랜드, 잉글랜드》는 현대의 허구적인 삶에 대한 반스의 성찰이 보이는 작품으로, 가혹한 현실을 사생활에서의 안락함을 추구하는 것으로 상쇄하려는 경향에 대해 성찰하고 있다.
반스는 사랑 이야기를 쓰는 데 능숙한 작가임에도 불구하고 그의 작품들은 지나치게 냉소적이라는 평을 듣기도 한다. 그러나 반스는 인간 상호간의 관계의 문제를 깊이 있게 응시하고 있다. 《플로베르의 앵무새》는 창작 과정에서 작가의 역할에 대한 극히 유쾌한 연구라 할 수 있다.
반스는 무엇보다 그의 아이러니한 스타일로 높은 평가를 받고 있다. 《내 말 좀 들어 봐》와 《사랑, 그리고》에서 그는 남녀 관계를 묘사하면서 모든 등장 인물들이 각자 자신의 시점에서 이야기를 하게끔 했다. (이것은 포크너의 《내가 죽어 누워 있을 때》와 이노우에의 《엽총》에서 시도되었던 수법이다.)
그의 소설들은 그에게 각국의 중요한 문학상들을 안겨 주었다. 프랑스에서는 《플로베르의 앵무새》로 메디치상을, 《내 말 좀 들어 봐》로 페미나상을 받았고, 독일에서는 1993년 함부르크의 퇴퍼 재단에서 주는 셰익스피어상을 받았다.
《고슴도치》(1992)는 동유럽의 어느 국가(이름은 언급되지 않는다)에서 벌어진 공산 독재자에 대한 재판을 다룬 것으로, 불가리아의 지프코프의 재판을 모델로 했다. 이 소설은 불가리아어판이 영어판보다 먼저 출간되었다.
또한 2011년에는 단편집 『펄스』로 부커상, 휘트브래드 대상과 함께 언급되는 영국의 권위 있는 문학상인 <데이비드 코헨 문학상David Cohen Prize>을 수상했다.
그는 옥스퍼드 대학 모들린 칼리지를 졸업한 뒤 옥스퍼드 영어 사전의 편찬자로 일했다. 그 뒤 문학 편집자, 영화 평론가로 활동했고 현재는 전업 작가이다. 그의 형 조너선 반스는 고대 철학 전공의 철학자이다.
현재 그는 아내이자 문학 에이전트인 퍼트리샤 캐버나와 함께 런던에서 살다가 아내와 사별한다. 그의 소설의 대부분은 아내에게 바쳐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