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종족 중심주의 ]
선사시대부터 인간은 종족과 불가분의 관계에 있었습니다. 종족에 충성하지 않거나 순응하지 못한 인간은 배척당하거나 추방당했으며 심한 경우 목숨을 잃기도 했으니까요. 그러한 배경 때문에 종족은 인간 경험의 중심에 자리 잡고 있습니다.
고대사회와는 많이 달라졌다고 해도 현대 사회에서도 종족은 다양한 방식으로 존재합니다. 정치와 종교, 스포츠와 예능 등 분야는 달라도 현대의 종족들은 서로 다른 정체성을 내세우며 다양한 방식으로 결집합니다.
자의든 타의든 특정 종족에 속하게 되면 사람들은 자신을 그 종족과 동일시하는 경향을 보입니다. 사람들이 특정한 종족의 일부가 되어 그와 생각이 비슷한 사람들과 교류하고 활동하는 것은 아무런 문제가 없습니다. 하지만 자기 종족이 아닌 사람들을 적으로 돌리거나 하기 싫은 일을 억지로 하게 만들 때 종족은 위험한 집단으로 변합니다.
다른 종족을 적으로 규정하는 종족 중심주의는 소속감을 원하는 현대의 단절된 인간들을 중심으로 점점 더 극성을 부리고 있습니다. 사람들은 자신이 속한 종족에 기대어 스스로가 옳고 도덕적으로 우월하다는 자신감을 갖게 됩니다.
시간이 지나면서 종족의 정체성이 곧 자신의 정체성이 됩니다. 종족과 자신의 정체성이 동일화되면 사람들은 듣고, 보고, 말하고, 생각하는 것을 자신의 종족에게 의탁하게 됩니다. 그런 사람들은 종족이 모이는 SNS와 유튜브에 정기적으로 접속하여 자기가 속한 종족이 어떻게 생각하고 있는지를 반드시 확인합니다.
그러다 보니 종족의 우두머리 혹은 중간 보스가 싫다고 하면 그 사람 역시 싫어합니다. 특정 집단이 우리나라를 망치고 있다고 하면 그렇게 믿게 됩니다. 특정 종족에 속하는 순간 우리는 자신도 모르게 자신만의 생각과 주장을 박탈당하게 됩니다.
종족 중심주의에 빠지게 되면 종족이 보증하는 정보는 받아들이고 다른 종족의 주장은 거짓말로 치부합니다. 종족 내에서의 행동 수칙을 어기는 탈종족적 행위를 하는 사람이 있다면 그 사람은 비난받고, 무시당하고, 배신자로 낙인찍힙니다.
이쯤 해서 나와 종족 중심주의가 무슨 상관이냐고 생각하는 사람들도 있을 겁니다. 고학력의 전문 지식인으로서 자신의 의지에 따라 ‘정신 근력’을 길러 왔는데 내가 특정 종족의 생각에 일방적으로 휘둘릴 리가 없다고 생각하는 사람들도 있을 것입니다.
하지만 우수한 두뇌와 풍부한 지식이 종족 중심주의에 대한 방어 수단이 되지는 않습니다. 학계의 연구 결과에 따르면 인지 능력이 뛰어난 사람일수록 특정 패턴을 파악하는 능력이 발달해 있기 때문에 종족 중심주의와 같은 고정관념에 빠질 가능성이 더 높다고 합니다.
종족 중심주의가 횡행하는 이 시대에 사람들은 자기 생각과 비슷한 주장만 받아들이고 자신이 속한 종족을 통해 그 생각이 옳다는 확신을 갖게 됩니다. 그에 따라 자신의 주장에 대한 자신감은 하늘 높이 치솟고 주장은 더 극단적으로 변해갑니다.
자신과 상반된 믿음을 가진 사람은 분명 제정신이 아닌 사람일 거라고 생각하면서 자기와 생각이 다른 사람들과는 관계를 단절해 버립니다. 그렇게 해서 자신이 만나는 사람들을 같은 종족으로 채워나가면서 종족의 우리에 단단히 갇히고 맙니다.
만일 특정 종족이 용인하는 사실들만 허용되는 나라가 있다면 그건 자유민주주의 국가가 아닙니다. 국가적으로 주위의 눈치를 살펴야 하는 금기사항이 있다는 것도 그 사회가 건강하지 못하다는 증거입니다. 우리가 만들고자 하는 미래 사회는 금기와 독단으로부터 자유로워야 합니다.
주변의 많은 사람들이 특정 종족에 속해 있는 상황에서 무리를 떠나 고립과 배척을 기꺼이 감내하기란 쉽지 않은 일입니다. 그럼에도 우리 사회에 특정 종족에서 벗어나 자유 의지에 따라 당당하게 자신의 의견을 피력하는 지성인들이 많아졌으면 좋겠습니다.
(사)지역산업입지연구원 원장 홍진기 드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