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구타임스 | 이준목] 저 유명한 소설 <
삼국지 > 에는 촉의 군주 유비가 왕위에 오르면서 휘하의 맹장 중 관우, 장비, 조운, 마초, 황충의 다섯 장수를 오호대장(五虎大將)으로 임명하여 특별히 높이는 대목이 나온다. 유비의 가신 중에 단연 으뜸가는 용맹을 지닌 오호대장군의 전설적인 활약상은 삼국지 전편에서 가장 화려한 무용담을 차지하는 부분이기도 하다.
'조갈량' 조범현 감독에게도 유비 부럽지 않은 다섯 호랑이(五虎)들이 있다. 바로 KIA의 자랑인 막강 선발진을 이끄는 로페즈-
윤석민-트레비스-
양현종-
서재응의 5인방이다. KIA가 현재 6월에만 8전 전승을 거두는 동안, 선발로 등판한 다섯 호랑이가 막대한 공헌을 했다.
1일 LG전에서의 서재응(6.1이닝 1실점)을 시작으로 2일 로페즈(7이닝 무실점), 3일부터 시작된 SK와의 3연전에서는 양현종(5이닝 무실점), 트레비스(7.1이닝 2실점), 윤석민(8이닝 1실점)이 연이어 호투를 펼치며 승리를 따냈다. 7일 두산전에서 다시 로테이션이 돌아온 서재응이 6.2이닝 2실점하며 승리, 8일에는 로페즈가 7이닝 2실점으로 선발투수가 7연승의 모든 승수를 챙기는 놀라운 기록을 세웠다.
9일 경기에 등판한 양현종 역시 비록 승리는 챙기지 못했지만 6.1이닝 2실점의 뛰어난 피칭으로 8연승의 발판을 놓았다. 8연승을 이어가는 동안 선발진은 7번의
퀄리티스타트를 기록했고, 그들이 허용한 자책점은 모두 합쳐 10점에 불과하다. 유일하게 퀄리티스타트에 실패한 양현종의 기록은 5이닝 무실점이었다.
뿐만 아니라 최근 13경기로 범위를 넓혀도 이중 무려 10승이 선발승이다. KIA 선발진은 올 시즌 8개 구단중 가장 많은 31차례의 퀄리티스타트를 기록 중이고, 여기서 23승 8패(0.742)라는 놀라운 성적을 거두고 있다. 선발승(25승)과 선발 투구이닝(318이닝)도 모두 리그 1위다.
최근의 KIA는 야구에서 가장 클래식하면서도 정석적인 승리패턴을 보여주고 있다. 선발투수가 나와서 6~7이닝을 틀어막으며 기선을 제압하고, 타선이 적재적소에 터져주며 승리를 가져가는 형식이다.
선발이 그저 '먼저 나오는 투수' 취급을 받고 있을 만큼, 기형적일 정도의 높은 불펜 의존도가 당연시되는 요즘 프로야구에서 KIA 선발진의 놀라운 역투가 시사하는 바는 크다. 용장 밑에 약졸 없다는 전쟁의 격언처럼, 투수놀음으로 불리는 야구에서는 똘똘한 선발이 곧 듬직한 선봉장과 같다고 했을 때, KIA 선발진의 위용은 그야말로 '오호대장' 부럽지 않다.
KIA의 8연승은 9연승을 기록했던 지난 2009년 9월 이후 처음이다. 당시 KIA는 후반기 무서운 상승세를 이어가며 결국 페넌트레이스와 한국시리즈를 모두 석권했다. 그때도 상대적으로 빈곤한 타선과 불펜을 선발진의 힘으로 만회하며 우승까지 차지했었다.
하지만 올해 KIA 마운드의 전력은 2009년을 오히려 뛰어넘는다는 평가다. 당시에는 27승을 합작한 로페즈와 구톰슨이라는 외국인 원투펀치가 선봉장 역할을 담당했다. 올해는 구톰슨 대신 트레비스가 가세했고, 윤석민과 양현종이 2년 전에 비해 더욱 성장했다. 지난해 주춤했던 로페즈와 서재응까지 부활하면서, 그야말로 에이스를 따로 구분하는 게 의미가 없을 정도로 전체적인 수준이 높다.
선발진의 맏형이자 좌장 격인 로페즈는 12게임에서 무려 80이닝(2위)을 소화하며 2.59의 평균자책점을 기록하는 등, 리그 최고의
이닝이터 다운 명성을 입증하고 있다. 그간 기량에 비해 유독 승운이 없었던 토종 에이스 윤석민은 초반 변화구 위주의 피칭패턴을 버리고 특유의 파워피처로서의 면모를 회복하면서 상승세를 타고 있다. 전직 메이저리거 서재응도 '컨트롤의 마법사'다운 명성을 되찾으며 기교파 투수의 모범을 보여주고 있다. 이처럼 선발진이 각자 다른 색깔이 다르고 개성이 뚜렷한 선수들이 조화를 이루면서 구 위력이 극대화되고 있는 셈이다.
로페즈와 윤석민, 양현종이 나란히 6승으로 다승 공동 2위에 올라있으며, 트레비스가 4승, 서재응이 최근 3연승을 달리고 있다. 초반 부진했던 팀 방어율은 어느새 3.57로 좋아져 3위로 올라섰다. 2년 전만 해도 확실한 좌완 선발요원이 양현종 한 명뿐이었다면, 올해는 트레비스까지 가세하면서 좌-우의 밸런스도 이상적이다. 선수들간 기량편차가 두드러지던 2년 전에 비해, 올해의 KIA 선발진은 그야말로 물샐 틈이 보이지 않는다.
타선의 지원도 2009년에 비하면 한 단계 업그레이드됐다. 물방망이로 악명 높던 KIA 타선이지만, 올해는 팀 타율이 0.273으로 LG(.278)에 이어 2위다. 2009년 우승의 주역이던 C-K포 최희섭과
김상현이 아직 정상궤도에 오르지 못한 상태에서도 이 정도라는 것이 특히 고무적이다.
일본에서 돌아온 이범호가 정교함과 결정력을 겸비한 '타점머신'으로 변신하여 2009년 김상현의
데자뷰를 떠올리게 하는 새로운 해결사로 등극했다. 타격 선두권에 올라 있는 톱타자 이용규와 '
무등산 메시' 김선빈의 재발견으로 테이블세터진의 짜임새도 한층 좋아졌다. 이제는 굳이 중심타선이 아니더라도 언제 어디서 터질지 모르는 지뢰밭 같은 집중력을 갖췄고, 이는 주자가 나갔을 때 상대 투수가 결코 쉬어갈 수 없는 부담을 안겨준다.
KIA는 올 시즌 초반 이상하리만큼 운이 따르지 않았다. 전력상 우승후보로 꼽히기에 손색이 없었지만, 결정적인 순간마다 투타 밸런스가 엇박자를 그리며 어이없는 패배를 당하기 일쑤였다. 선발이 잘하면 불펜이 난조를 보였고, 방망이가 잘하면 마운드가 침묵했다. 마치 릴레이 계주를 하듯, 분위기를 탈만하면 돌아가면서 핵심 선수 가운데 부상자가 발생했다. 재료는 완벽한데 조합이 잘 맞지 않아서 맛이 나지 않는 요리를 먹는 기분이랄까?
하지만 오호대장이 정상궤도로 올라선 KIA가 드디어 본색을 드러내기 시작하면서, 5월 초까지 중위권에 머물렀던 KIA는 5월 한달 동안 14승(11패)을 거두며 예열을 마쳤고, 6월 들어서는 9일 광주 두산전까지 무려 8전 전승을 거두고 있다.
이제 KIA는 1위 SK에 승차 없이 승률만 뒤진 2위다. 공교롭게도 시즌 초반 질주하던 SK와 LG가 최근 힘이 떨어지고 있는 타이밍이라, KIA가 조만간 1위 고지에 올라서는 것은 예정된 수순이라는 평가가 나오고 있다. 과연 오호대장이 이끄는 KIA가 2년 만에 정상 탈환에 성공할 수 있을지, 앞으로의 결과에 귀추가 주목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