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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2:1 하나님이여 사슴이 시냇물을 찾기에 갈급함 같이 내 영혼이 주를 찾기에 갈급하니이다
42:2 내 영혼이 하나님 곧 살아 계시는 하나님을 갈망하나니 내가 어느 때에 나아가서 하나님의 얼굴을 뵈올까
42:3 사람들이 종일 내게 하는 말이 네 하나님이 어디 있느뇨 하오니 내 눈물이 주야로 내 음식이 되었도다
42:4 내가 전에 성일을 지키는 무리와 동행하여 기쁨과 감사의 소리를 내며 그들을 하나님의 집으로 인도하였더니 이제 이 일을 기억하고 내 마음이 상하는도다
42:5 내 영혼아 네가 어찌하여 낙심하며 어찌하여 내 속에서 불안해 하는가 너는 하나님께 소망을 두라 그가 나타나 도우심으로 말미암아 내가 여전히 찬송하리로다
42:6 내 하나님이여 내 영혼이 내 속에서 낙심이 되므로 내가 요단 땅과 헤르몬과 미살 산에서 주를 기억하나이다
42:7 주의 폭포 소리에 깊은 바다가 서로 부르며 주의 모든 파도와 물결이 나를 휩쓸었나이다
42:8 낮에는 여호와께서 그의 인자하심을 베푸시고 밤에는 그의 찬송이 내게 있어 생명의 하나님께 기도하리로다
42:9 내 반석이신 하나님께 말하기를 어찌하여 나를 잊으셨나이까 내가 어찌하여 원수의 압제로 말미암아 슬프게 다니나이까 하리로다
42:10 내 뼈를 찌르는 칼 같이 내 대적이 나를 비방하여 늘 내게 말하기를 네 하나님이 어디 있느냐 하도다
42:11 내 영혼아 네가 어찌하여 낙심하며 어찌하여 내 속에서 불안해 하는가 너는 하나님께 소망을 두라 나는 그가 나타나 도우심으로 말미암아 내 하나님을 여전히 찬송하리로다
◈ 시작기도: 다윗을 붙드시고 은혜주셨던 주님, 이 종에게도 은혜를 베푸시고 일으켜 주십시오. 다윗에게 회개할 마음을 주시듯이 저에게 진실한 회개를 하게 도와 주시옵소서. 다윗처럼 아둘람 굴에서도 하나님을 사랑하고 찬양하는 마음을 주시옵소서. 기가막힐 웅덩이에서 건져주시고 원수가 나를 이기지 못하도록 하옵소서. 시편의 고백이 저의 고백이 되며 시편 기자들의 믿음이 저의 믿음이 되게 하옵소서. 말씀은 항상 살아있고 운동력이 있으니 내 영혼을 빚으시고 새롭게 하옵소서. 주의 보혈로 제 영혼을 씻어 주시고, 주의 사랑으로 제 마음을 겸손하게 하옵소서. 주께 범죄 하였사오나 내게 은혜를 베푸시고 고쳐 주시옵소서. 사슴이 시냇물을 찾기에 갈급함같이 내 영혼이 주를 찾기에 갈급합니다. 주의 도우심으로 찬송하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 주 해
1. 시편 42편의 표제는 "고라 자손의 마스길"이다.
1) 고라는 모세와 아론에게 도전하여 반역을 일으켰다가 멸망한 자다(민 16장).
- 고라의 반역으로 땅이 갈라지고, 불에 타죽고, 전염병으로 죽는 3중 심판이 임했다.
2) 고라가 심판을 받을 때에 그의 아들들은 그 심판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민 26:11).
3) 가장 대표적인 심판을 받았던 고라인데, 그 자손들이 다윗 때에는 레위 자손 중에서 하나님께 가장 헌신된 가문으로 등장한다.
- 모세 때의 심판으로 하나님께 멀어진 것이 아니라 오히려 더욱 언약백성이 되려했다.
4) 고라 자손들은 다윗이 시글락에 있을 때 합류하여 다윗의 왕위를 지켰다(대상 12:6).
5) 고라 자손 중에 “헤만” 영적인 찬양인도자이면서 시편의 저자이기도 하다(왕상 5:11).
- 24명의 찬양팀 리더 중에 고라 자손이 14명이나 되었다(아삽 자손 4명, 에담 자손 6명)
- 여호사밧 왕이 전쟁터로 나가면서 찬양할 때도 고라 사람들이 찬양을 했다(대하 20;19).
2. 고라 자손은 “심판의 통하여 다시 의를 기초로 세워진 대표적인 가문”이다.
1) 시편 2권에는 고라자손들의 시가 7편이 있다. 그들은 성경의 저자들이 되었다.
2) 이 시들의 공통점은 하나님께 대해 기쁨으로 찬양을 드리는 것과, 성전에 대한 순수한 열정과 사모함이 나타나 있는 것이다.
3) 시편 84편(10)은 “주의 궁정에서 한 날이 다른 곳에서의 천 날보다 낫다”는 고라자손의 유명한 고백으로 얼마나 성전을 사모하고 하나님을 사랑했는지가 잘 나타난다.
3. 시 42편의 배경
1) 시인은 사람들이 시인의 하나님이 어디 있느냐고 조롱하는 상황에 있다.
2) 또한 이전에는 성전에서 무리들과 함께 기쁨의 찬양을 드렸는데 지금은 성전에서 멀리 떨어져 있다. 그래서 성전에서 다시 하나님을 찬양할 날을 간절히 사모하고 있다.
3) 고라 자손들이 다윗 때에 가장 왕성하게 찬양사역을 했으므로, 다윗이 압살롬을 피해 요단을 건넜을 때 따라갔던 고라자손(찬양사역)으로 추측할 수 있다.
- 시인의 하소연은 다윗이 압살롬의 때에 쓴 내용과 매우 비슷하다.
4) 그렇다면 다윗은 압살롬에게 쫓기는 유다광야에서 시편 63편을 지었다면, 다윗과 함께 피신한 고라 자손은 시편 42-43편을 지었을 것이다.
4. 시인은 하나님을 너무나 갈망하는 자인데 사람들이 종일 “네 하나님이 어디 있느냐”는 조롱을 받고 있다.
시 42:1 하나님이여 사슴이 시냇물을 찾기에 갈급함 같이 내 영혼이 주를 찾기에 갈급하니이다
시 42:2 내 영혼이 하나님 곧 살아 계시는 하나님을 갈망하나니 내가 어느 때에 나아가서 하나님의 얼굴을 뵈올까
시 42:3 사람들이 종일 내게 하는 말이 네 하나님이 어디 있느뇨 하오니 내 눈물이 주야로 내 음식이 되었도다
1) 시인은 목마른 사슴처럼 하나님을 찾고 있지만, 그의 환경은 “네 하나님이 어디 있느냐”는 조롱을 종일 받고 있다.
2) 상황적으로 “하나님이 이렇게 도우신다”라고 말할 수 없는 처지에 있기 때문에, 시인은 대답도 하지 못하고 “눈물이 주야로 음식이 되었다.”
- 압살롬을 피해 도망갔다면, 시므이의 저주를 들으면서 눈물만 흘렸을 것이다.
5. 시인은 이전에 성전에서 성도들과 함께 기쁨으로 예배하던 때를 기억하고 마음이 상한다.
시 42:4 내가 전에 성일을 지키는 무리와 동행하여 기쁨과 감사의 소리를 내며 그들을 하나님의 집으로 인도하였더니 이제 이 일을 기억하고 내 마음이 상하는도다
1) 그는 성도들과 함께 기쁨과 감사의 찬양을 드렸고, 백성들을 하나님의 집으로 인도했다.
2) 그러나 지금은 원수들에게 “하나님이 어디 있느냐”는 조롱을 받고 있으며, 하나님의 성전에 가서 예배할 수도 없는 처지에 있다.
3) 시인은 하나님의 성전에 가서 다시 하나님께 경배할 수 있게 되기만을 학수고대한다.
6. 시인은 성전에 가지 못하지만 이미 믿음의 고백으로 기도하며 예배하고 있다.
1) 그의 고백이 성경에 기록되었으니 하나님은 이 기도를 온전히 받으셨음이 확실하다.
2) 그러나 시인은 성전에 가서 성도들과 함께 찬양과 경배를 드리기를 간절히 사모한다.
- 홀로 깊이 하나님을 예배할 지라도, 성전에서 기쁨으로 함께 예배하고 싶은 것이다.
3) 그뿐만이 아니라 시인은 사람들을 하나님의 성전으로 인도하던 일, 즉 백성들에게 하나님을 전하고, 하나님을 예배하게 하던 봉사를 계속 하고 싶어하기에 성전에 가기를 원한다.
4) 시인은 고라 자손으로서 성전에서 기쁨으로 무리들과 함께 하나님을 섬기는 일에 봉사했었다. 그는 세상의 낙을 누리지 못하는 것 때문에 슬퍼하지 않았다. 그는 더 이상 하나님의 전에 나아가 예배드리지 못하는 것과 봉사하지 못하는 것 때문에 한없이 슬퍼한다.
- 이것이 바로 하나님을 사랑하는 사람이 갖는 특징이다.
7. 원수들에게는 “너의 하나님이 어디 있느냐”는 조롱을 받고, 성전에 가서 예배하지도 봉사하지도 못하는 상황에서 눈물 흘리는 시인은 마음이 낙심되고 그 영혼은 불안하였다.
시 42:5 내 영혼아 네가 어찌하여 낙심하며 어찌하여 내 속에서 불안해 하는가 너는 하나님께 소망을 두라 그가 나타나 도우심으로 말미암아 내가 여전히 찬송하리로다
1) 시인은 세상 염려, 자기의 유익이 아니라 “예배하고 봉사하지 못함”으로 낙심하고 불안하다.
2) 그러나 시인은 자기 영혼에게 스스로 책망하고 스스로 명령한다.
3) 시인은 자기 영혼을 향해 하나님을 바라보며 하나님께 소망을 두라고 명령한다.
4) 시인의 처지는 낙심되고 불안하다. 그러나 비록 성전에 가지 못하고, 원수들에게 조롱을 당해도 할 말이 없을지라도 “여전히 하나님은 우리의 소망이며 찬양받기 합당하다.”
8. 사람들이 “네 하나님이 어디 있느냐?”고 조롱할 때 “할 말을 못하고 종일 눈물을 흘려야 하는 상황”만큼 크리스챤에게 비참한 상황은 없다.
1) 분명히 나는 하나님을 사랑하고, 하나님은 살아계시지만, 모든 상황은 하나님이 없는 것 같고, 하나님이 버린 것 같고, 하나님이 함께한다고 말할 수 없는 상황이 되면 가장 비참하다.
2) 또한 죄와 교만에 대한 징계를 받고 있을 때, 사단이 정죄해도 할 말이 없을 때가 가장 비참하다.
9. 그러나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 죄가 없으신 하나님의 어린양도 비웃음과 조롱을 받았다.
1) “네가 그리스도면 너 자신을 구원하라”는 조롱을 받았으나 주님은 침묵하셨다.
2) 가장 낙심되고 영혼이 불안할 때, 즉 죄가 되심으로 아버지로부터 버림을 당하고 죽임을 당하면서도 여전히 주님은 아버지께 자신의 영혼을 맡겼다(파레시아를 준행하였다).
10. 시인도 가장 비참하고, 낙심이 되고, 영혼이 불안하며, 주야로 눈물이 음식이 되었지만 하나님께 소망을 둔다. 하나님의 도우심으로 말미암아 찬송할 것을 선포한다.
11. 시인의 낙심은 매우 깊다.
1) 5절에서 낙심되나 하나님께 소망을 두라고 한 시인은 6절에서 다시 낙심되어 주를 기억한다고 고백한다.
시 42:6 내 하나님이여 내 영혼이 내 속에서 낙심이 되므로 내가 요단 땅과 헤르몬과 미살 산에서 주를 기억하나이다
2) 시인은 낙심을 극복하기 위하여 하나님을 바라보지만 낙심은 계속된다. 그리고 하나님을 바라보는 것도 계속된다.
3) 가장 비참한 시기, 가장 낙담되는 시기: 오히려 시인이 가장 하나님을 바라보고 또 바라보는 시기가 되고 있다.
12. 낙심중에도 주님을 기억함은 “낮에는 인자하심을 베푸시고 밤에는 찬송을 주시기” 때문이다.
[표준새]시 42:8 낮에는 주님께서 사랑을 베푸시고, 밤에는 찬송으로 나를 채우시니, 나는 다만 살아 계시는 내 하나님께 기도합니다.
13. 시인의 낙심은 너무 깊어서 하나님을 바라볼 때는 회복이 좀 되다가 다시 낙심하기를 반복하고 있다.
1) 5절에서 낙심 중에하나님께 소망을 두고주의 도우심으로 찬송하리라고 했다.
2) 6절에서 다시 낙심이 되어서 다시 주님을 기억하며바라본다.
3) 8절에서 주의 인자하심을 바라보았으나 9절에서 “어찌하여 나를 잊으셨나이까, 나를 슬프게 다니게 하느냐”면서 대적의 말로 인하여 다시 아파하며 낙심한다.
시 42:9 내 반석이신 하나님께 말하기를 어찌하여 나를 잊으셨나이까 내가 어찌하여 원수의 압제로 말미암아 슬프게 다니나이까 하리로다
시 42:10 내 뼈를 찌르는 칼 같이 내 대적이 나를 비방하여 늘 내게 말하기를 네 하나님이 어디 있느냐 하도다
4) 그래서 11절에서 5절과 동일한 고백을 한다.
- 즉 낙심하며 불안해 하지 말고 하나님께 소망을 두며그의 도우심으로 찬송할것이라고 한다.
14. 시42-43편은 하나의 시편으로 보고 있다.
1) 시 42편에서 4번이나 낙심중에 하나님을 바라본시인은 43편에서 “어찌하여 나를 버리셨나이까(2)” “내 영혼아 어찌하여 낙심하느냐(5)”며 다시 낙심하고 다시 하나님을 바라본다.
2) 이 시편은 끊임없이 낙심되는 상황에서 끊임없이 하나님을 바라보는 시편이다.
- 그리고 42편, 43편의 마지막 말은 “내 하나님을 여전히 찬송하리로다”이다.
시 42:11 내 영혼아 네가 어찌하여 낙심하며 어찌하여 내 속에서 불안해 하는가 너는 하나님께 소망을 두라 나는 그가 나타나 도우심으로 말미암아 내 하나님을 여전히 찬송하리로다
◈ 나의 묵상
오늘 시인의 고백은 나의 고백과 같아서 참 공감이 된다. 시인은 자신의 마음이 낙심되고 자신의 영혼이 불안하다는 말을 솔직하게 고백한다. 믿음의 사람이라면 낙심하면 안 되고, 불안해하지 말아야 한다는 고정관념에서 벗어나 자신의 낙심과 불안과 아픔을 솔직하게 고백한다. 그리고 이렇게 연약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주님을 바라보는 신앙도 그대로 고백된다. 만약 시 42편이 1-5절로 시편이 끝났다면 깔끔하다. 고난과 낙심 중에서 하나님께 소망을 두고 하나님을 찬양하는 것으로 마무리가 된다. 그러나 1-5절로 잘 마무리된 시는 다시 6-11절에 반복된다. 즉 낙심중에 주님을 찬송하겠다고 묵상을 마치면....그 다음 날 다시 낙심이 찾아와서 다시 주님을 바라보고 묵상을 마친다. 그러면 그 다음 날 다시 낙심이 찾아온다.
나의 묵상이 매일 그렇다. 부정적으로 보면 다람쥐 채바퀴 도는 것 같이 나아지는 것이 없이 제자리 걸음을 하는 것 같다. 날마다 내 영혼은 오염되고 불안하며 낙심한다. 죄로 인하여 정죄당하고, 자아에 휘둘림으로 낙심당하고, 관계 때문에 낙심당하고, 환경 때문에 낙심 당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새 언약 백성의 유일한 조건규정을 따라서 말씀 앞에 나아가면, 십자가를 바라보면 조금 소망이 생긴다. 그래서 나의 소망을 사람이나 환경에 두지 않고 하나님께 소망을 두면, 하나님을 찬양할 수 있다. 그러나 하루를 살아가면서 내 영혼은 다시 낙심하게 된다. 내가 죽고 그리스도가 사는 것이 되지 않는 한계성, 내 안에 있는 부정성의 나타남, 교만함으로 원수가 내 속에서 날뛰는 것을 보면서 낙심한다. 원수들의 조롱에 할 말이 없으면 마음이 너무 답답하다.
그러나 다시 그 다음 날, 십자가로 나아간다. 그리고 죄인 된 나, 원수 된 나, 소망 없는 나에게 소망을 두지 않고 하나님께 소망을 둔다. 진노 중에도 긍휼을 베푸시는 하나님, 심판중에도 나를 아끼사 말씀을 주시는 하나님, 십자가에서 끝까지 구원하시고 승리하신 주님을 바라본다. 창세 전부터 나를 택하시고 생명주신 그분을 바라본다. 그렇게 나의 소망을 하나님께 두면 다시 찬송할 힘이 생긴다. 그렇지만 다시 연약함으로 낙심이 되고 불안해 진다.
낙심과 소망의 싸움이 하루에도 몇 번씩이나 일어난다. 그리고 그런 하루가 반복되어 한 달이 되고, 그런 한 달이 반복되어 일 년이 된다. 벌써 2020년이 저물어간다. 수백 번 낙심한 나의 마음, 불안해 한 나의 영혼, 정죄당하는 나의 영혼을 주님은 은혜로 붙들어 주셔서 십자가를 바라보게 하셨다. 그래서 수백 번 다시 나의 하나님께 소망을 두고, 그가 나타나 도우심으로 말미암아 내 하나님을 여전히 찬송하게 하셨다.
앞으로도....언제까지 이 싸움이 일어날지는 모른다. 주님 오실 날까지 계속될지....주님의 은총으로 승리의 개가를 부르며 주의 성전에서 기뻐하며 다시 섬기게 하실지 알지 못한다. 다만 주님의 소망은 낙심을 이기고, 주님이 주신 인자하심과 찬송은 불안을 이기게 하신다. 이렇게 낙심과 소망을 반복하다가 죽어도 주님은 은혜로 구원해 주실 것이다. 자격 없는 나에게 베푸시는 그 은혜가 있으니 성공한 인생이다. 모든 것이 실패로 끝나도 주의 은혜로 소망이 있는 인생이다. 결국 마지막은 주님이 나의 소망이요 주님을 찬송함이 결론이다. 내가 비참함과 눈물 속에서 낙심하여도 여전히 주님은 나의 소망이 되시며 나의 도움이 되시며, 내가 찬송할 주님이시다.
◈ 묵상 기도
주님, 매일 내 영혼은 낙심하고 불안하여 합니다. 원수들의 조롱에 대답할 말이 없을 때, 참으로 비참합니다. 하나님은 살아계시고, 주님은 십자가와 부활로 구원을 다 이루셨고, 그 놀라운 생명의 주님이 내 안에 계시는데, 나는 그 증거를 대지 못하고 눈물만 흘립니다. 전에는 주님의 은혜로 기쁨의 찬송과 승리의 개가를 부르게 하신 것을 기억합니다. 그리고 그 하나님께 나의 소망을 둡니다. 나의 힘으로 기가 막힌 웅덩이를 벗어날 수는 없지만 주님이 나타나 도우실 것이므로 내 하나님을 여전히 찬송할 것입니다. 이미 자격 없는 자에게 아들을 주셨으니 주님을 찬양합니다. 성령 하나님, 날마다, 순간마다, 주님의 십자가와 장사됨과 부활을 내 영혼에 비추어 주시옵소서. 그리하여 소망 중에 주님을 찬송하게 하소서. 나를 지으심은 주님을 찬송하게 하려 함입니다.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첫댓글 성경이 시편 42편을 넣은 이유가 있는것 같아요. 다윗의 솔직한 마음이 시로 표현된것이 감사하고. 또 다윗이 어떻게 살다갔는지 아니까. 소망이 되네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