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모에 나가보면 가장 많이 받는 질문이 이겁니다.
1_고향이 대전이세요? 아니요 서울인데요
2_아버지가 충청도분? 아니요 서울이세요
3_아버지가 빙그레팬? 아니요 야구 관심 없으세요
4_그럼 형님이 야구팬? 아니요 가족 중에 야구팬 없어요.
그럼 다들 이렇게 물으십니다. "그럼 왜 한화 좋아하세요?"
마침 아래 글에 왜 한화팬이 되었냐는 물음이 있길래 이 글로 대신합니다.
몇년전인가, 다른 사이트에 올렸던 글입니다.
김태균 이범호의 해외진출 후 타선이 완전히 무너졌던 시절에 쓴 글이니 양해하고 읽어주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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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등학교 1학년때인지, 아니면 2학년때였는지는 기억나지 않습니다.
그러니까 1985년인지, 86년인지 잘 모르겠다는 얘깁니다.
사업을 하시던 이모부님이 분홍색 물통을 하나 선물로 주셨습니다.
저는 그 물통을 <펭귄물통>이라고 부르며 끔찍이 아꼈습니다. 왜냐하면 굉장히 귀엽게 생겼거든요.
제가 요즘도 핑크색 텀블러, 핑크색 시계를 좋아라 하는데 아마 그때부터였나봅니다.
각설하고,
나중에 커서 알게된 사실인데 그 녀석은 펭귄이 아니라 독수리였습니다
<빙그레이글스 창단기념> 이라고 써 있었거든요.
저는 영어 조기교육을 안 받은터라, 초등학교 1학년때는 이글스가 독수리인지 닭인지 잘 몰랐죠.
그러다가, 4학년때 우연히 TV에서 야구를 봤는데 참 재밌었습니다. 삼성vs해태 경기로 기억합니다.
그 초딩은 거기서 인생의 운명을 결정지을 선택을 하나 합니다.
"오, 야구 재밌네? 나 오늘부터 야구팬!, 펭귄물통 귀여우니까 그러면 빙그레 이글스"
5초도 안 걸렸던 운명의 선택. 거기서 햇수로 24년이 흘렀습니다.
야구에 푹 빠지고 처음 5년.
그 짧은 시간 동안 저는 한국시리즈를 4번 구경했습니다.
이런 삐리리~ 4번 다 준우승만 했습니다.
어린 마음에, 응원팀을 욕하지만 않고 해태 타이거즈만 싫어했습니다.
페넌트레이스 최강자였고 KS에서 해태와도 안 만났던 1992년
그 안타까운 준우승 때도 응원팀을 욕하지는 않고 염종석과 전준호-이종운-박정태-김민호-김응국만 싫어했습니다.
그러고 나서, 팀이 쫄딱 망했습니다.
기껏해야 까까머리 중딩이었으니까, 전력이 왜 무너졌는지는 잘 몰랐어요.
그냥, 매일 스포츠뉴스 챙겨보며 야구에 빠져 지냈습니다.
학교에서 친구들이랑 야구선수 이름으로 빙고같은 게임도 하고 그랬습니다.
좋아하는 선수도 생겼습니다. 정민철이라고.
이런 삐리리~ 정민철이 방어율왕, 탈삼진왕을 했는데도 14승 10패를 찍었습니다.
4년동안 방어율은 대략 2.50내외 삼진은 600개도 넘게 잡았는데 40패를 합니다.
어린 마음에, 타자들을 욕하진 않고 그냥 정민철만 응원했습니다.
그러다 리그 제도가 바뀌고
외국인이 대박 나고, 선발셋과 마무리 한명이 미친듯 활약을 해주면서 우승을 한번 합니다.
뭐랄까. 소 뒷걸음질치다 쥐를 잡기는 했지만, 어쨌든 한국시리즈 우승자로 역사에 남습니다.
'새천년 새강자 한화 이글스' 같은 캐치프레이즈도 굉장히 잘 어울렸습니다.
평생의 한이 풀린 것 같고, 늙어 죽을때 까지 꼴찌만 해도 여한이 없을 것 같은 기분이 듭니다.
이런 삐리리~ 정말로 그 다음해부터 맨날 7등만 합니다.
이영우와 송지만 둘이서만 고군분투 하는데 전력의 한계가 명확합니다.
오, 그러다가 팀이 뭔가 살아납니다.
괴수군단이라는 별명을 얻으면서 젊은 타자들이 튀어 나오고
마흔살 넘긴 왼손 투수가 풀시즌을 치르고 그러면서 또 가을잔치에 나갑니다
이런 삐리리~ 뭔가 모자릅니다. 잘하는 사람 몇명만 굴려서 올라간거라 그렇습니다.
가을에 열경기 넘게 하려면 잘하는 놈이 많아야 되는데, 우린 안 그랬습니다.
우승할때 플옵에서 곰 한번 스윕했다고, 00년 이후 가을에는 곰에게 단 한번도 못 이깁니다.
서른 여덟살 마무리가 4이닝을 혼자 버티는데, 그 노인네 내려가니까 못 이깁니다
코치하다 복귀한 아저씨가 팔에 철심밖고 공을 던지는데
타자님들은 죄다 홈런 치겠다고 달려들다 전부 삼진만 당합니다.
그렇게 한번 불타올랐다가 또 망합니다.
이런 삐리리~ 이번에는 좀 심하게 망한 것 같습니다.
송진우 구대성 정민철 문동환 최영필이 떠났습니다
김태균 이범호 이영우 데이빗 덕클락 토마스 김민재가 떠났습니다
그랬는데 김태완 송광민 정현석 정희상 양승학을 내보내고
이도형 손지환 최영필은 늙었으니까 나가랍니다.
그래놓고는 유창식이 왔다고, 고동진과 한상훈이 복귀했다고 탈꼴찌를 하겠답니다.
야구 보면서 슬프거나 화난적은 많지만, '쪽팔린'적은 없었습니다.
고등학교때 언젠가, 한용덕이 LG전에 나와서 홈런을 맞은 적이 있습니다.
집에서 TV를 보고 있었는데 갑자기 전화가 옵니다.
LG팬 친구가, "한용덕 븅~신~~ 아하하하" 하고는 그냥 끊습니다.
그래도 쪽팔리진 않았습니다.
"너네 요즘 잘 나가니까 눈에 뵈는게 없냐? 야, 우리 빙그레야" 하는 자부심이 있었거든요.
장종훈 송진우 정민철이 있는데, 그깟 우승쯤 앞으로 몇번은 더 할거라는 자신감도 있었고요.
7등도 하고 꼴찌도 해봤습니다.
그래도 쪽팔리지는 않았습니다.
야구는 못해도 홈런은 잘 친다고
남들은 클린업 트리오 없어서 고민인데 우리는 그딴거 두개도 만든다고.
별명이가 있어야만 홈런치냐고
그깟 홈런 우리는 아무나 다 친다고.
경기수보다 홈런수가 당연히 더 많은 거 아니냐고.
작전이고 도루고 뭐가 필요하냐고, 그냥 넘기면 된다고
그렇게 뭐 하나라도 내세우며 자랑하고 떵떵거렸습니다.
등수가 좀 낮아도, 어디 가서 챙피하진 않았단 말입니다.
잔야구 못한다는 자격지심이야 있었지만, 그래도 허세로 덮었습니다.
이런 삐리리~ 그런데 요즘은 챙피합니다.
전광판에 라인업이 떠 있으면 챙피합니다.
팬들이 그렇게 기를 쓰고 반대했던 강동우-장성호-김경언 영입이 없었으면
방출생 정원석을 데려오지 않았으면
도대체 지금 1번부터 5번을 누가 치고 있겠습니까.
이정훈 이강돈 장종훈 데이비스 로마이어 이영우 송지만 김태균 이범호 크루즈 클락
이런 타자들 보면서 24년을 살았습니다.
하다못해, 김태완 송광민 이도형 정도는 나와야 "그래~ 됐고, 홈런이나 하나 쳐라" 싶었단 말입니다.
그런데 도대체 저 잉여들은 어디서 뭐하던 녀석들이란 말입니까.
수비 못하고 작전 못하는거야 다 이해 합니다.
선배들도 그랬어요.
끝내기 타격방해, 고의사구 폭투, 도루 저지하다 투수 허리 맞추기, 이런 거 다 했다고요
그래도 그때는, 어디 가서 쪽팔리진 않았는데
지금은, 그냥 챙피합니다. 야구를 못하고 어쩌고, 다 필요없고 그냥 라인업이 챙피해요.
빌어먹을, 그놈의 펭귄 물통이 귀엽게 생기지만 않았어도.
첫댓글 89년이었나...? 집에서 우유를 시켜먹었는데 빙그레 우유였어요. 그래서 야구 볼 때 빙그레를 응원하게 됐는데 해태한테만 지고 잘하더라구요. 몇 년 후 저와 이름이 똑같은 선수가 등장했는데 완전 잘합디다. 그 선수...결국 23번 달고 레전드가 되었지요. 제가 한화팬이 된건 운명인거 같습니다.
어렸을땐 뭐 그저 이글스가 좋을뿐이지 욕하고 뭐 이런건 없었는데, 저도 해태는 마냥 싫었던것 같아요.ㅋㅋ
90년대 중반쯤 아버지 따라서 잠실구장에 몇번 갔죠ㅋㅋ 물론 한화경기였을거에요 아버지가 한화팬이어서ㅋㅋ그때는 야구보다는 공에 관심이 많아서 공주으러 내 외야 가릴거 없이 뛰어다녔던거같아요 ㅋㅋ그러다 어느순간 한화를 응원하는 제가 보이더라고요ㅋㅋ아마 2008년쯤이었던걸로 기억이 나네요 그뒤로 팀성적이 내려가고 내려가고 또내려다고 한화를 버릴수는 없더라고요 ㅋㅋ
대단한 필력이구 구구절절 이글스에 대한 역사와 애정을 느낍니다 좋은 글, 감사드립니다.^^
저랑 비슷한거같네요 전 허리케인콘이던가 그거 허리케인오려서 응모하면 사인볼준다고해서보냈드만 당첨 그후로 그냥 이글스팬이 됐다는 ㅋㅋ 그놈에 아이스크림땜시 ㅎ 근데 중요한건 다리부러져서 사인볼수령도 못했다는 ㅜㅜ
와 물통 때문에 이렇게 대표되는 팬카페 회장님이 되시다니.. 읽으면서 신기하기만 하네요. 가장 좋아하는 선수 딱 1명만 꼽으라면?.. 너무 어려운 질문인가요 ㅋ
저보단 한 둬서너살 연배있으신거 같네요..저도 장종훈 선수땜에 빙그레에 미쳤었는데..얼마안있다 제 닉넴처럼 그런투수가 들어오더군요..그때 그시절이 꿈만 같네요..
저도 서울출신인데 어릴때부터 빙그레좋아했었죠 ㅋㅋ 정민철선수와 구대성선수 신인시절에 우연히 본 경기에서 너무 멋있어서.. ㅋ 서울서 중, 고교시절 반에서 한화팬에 없어서(당시 암흑기 ㅠ) 반에서 놀림 많이 당했던 기억이 나네요 ㅋㅋ
저희 부모님은 전라도분이시라 해태팬이었습니다. 형은 산성팽이었는데, 제가 이천 사람이어서 그랬는지 어렸을때(국민학교) OB를 좋아했었습니다. 그때는 그냥 오비다~ 이러면서 야구를 보던때였는데 야구를 보다보니 장종훈이란 선수가 홈런을 너무 잘 치는 겁니다. 거기에 반해서 처음으로 팬이 된게 빙그레였고 그때 이후로 빙그레(한화)팬을 하고 있습니다.
저는 서울 뚝섬 토박이인데요...아버지가 충북음성인 관계로 오비시절 아버지따라 초딩3학년쯤 잠실처음으로가서 구천서 싸인볼을 구해주신 이후로...계속..빙그레 한화
지금까지 왔네요...제 나이39살 이젠 울 아들이 3학년이네요...올해...울아들이랑 첨으로 잠실가서 정근우 싸인볼 받아서 줘야겠네요...
전 어렸을때부터 약팀이 좋았어요
빙그레 창단때 막내팀이고 유니폼도 이뻐서 좋아했던게 지금까지 왔네요 창단시절 기억나는 선수는 타자는 고원부 투수는 김대중 선수가 이름이 특이해 기억나네요 참고로 전 선발님보다 한살 많네용
대단하십니다ㅎㅎ 저 역시 레전드에 대한 자부심과 한방을 쳐주는 타자들 덕에 지금까지 응원하고 있지요. 챙피한 이유에 격하게 공감합니다. 다이나마이트 타선이 이글스 존재의 이유지요ㅎ
이글 몇번 본거 같은데 ㅎㅎ
정말 한대화 시절에는 이글스가 쪽팔렸죠.
전광판 엔트리 보면 한숨만 나오던 시절.
펭권이 잘못햇네여
고의사구 폭투, 도루저지 투수팀킬 ㅎ 둘다 현장에 1호기가 있지않았나요?ㅎ 기록적이었던 00년부터 올해까지 현역뛰는 박정진선수와 코치로 1군지휘하는 정민철선수 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