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생님 제가 글을 다시 쓰게 되었습니다.’
‘오 그래요? 코미디인가요, 드라마인가요?’
‘글쎄, 그건 아직 모르겠네요.’
그리고 스르르 눈이 감깁니다. 수술이 시작되려고 하는 것입니다. 의사의 말로는 그다지 복잡하지도 위험하지도 않은 수술이랍니다. 빠른 시간 내에 좋아지겠지요. 그리고 드디어 제2의 인생을 시작할 것입니다. 얼마나 기다렸던 시간일까요? 어쩌면 포기할 뻔한 인생이었을지도 모릅니다. 이런 기회가 또 생기리라고 어떻게 기대할 수 있었을까요? 인생, 참 모르는 일입니다. 그래서 절망보다는 희망을 가지고 살게 합니다.
몸, 아무리 뛰어난 사상과 정신을 가지고 있다 하더라도 몸이 무너지면 끝장입니다. 허공을 날고 있는 정신을 잡아줄 사람도 없을 것이고 생각으로 떠도는 사상을 끌어내려줄 사람도 없습니다. 내가 해야 합니다. 그런데 그 내가 병마와 씨름하느라 허우적대고 있다면 언제 허상을 실체화해줄 수 있습니까? 병상에서 정신력을 키우기는 어렵습니다. 물론 회복하려는 의지가 필요하지요. 문제는 병들어 시든 몸이 그 의지까지 꺾는 것입니다. 그 정도로 무너지기 전에 붙들어야 했습니다. 어쩌다 그 지경까지 몰려야 했을까요? 몸이 먼저 기울었을까요, 맘이 먼저 기울었을까요?
잘 나가던 작가입니다. 그는 영상으로 나타나는 자기 글을 생각합니다. 그 영화는 자기 생각과 감정을 그대로 표현해주어야 합니다. 그래서 배역이 중요합니다. 너무 과하게 표현해도 안 되고 모자라게 표현해도 안 됩니다. 그런데 그렇게 딱 맞도록 해주는 배우가 과연 있을까요? 친구처럼 지내던 배우가 있습니다. 바로 이 점에서 서로 어긋났습니다. 그래서 30년 넘는 세월을 등지고 나 몰라라 지냈습니다. 그만하면 풀릴 만한 시간도 됐지요? 그래서 우연한 기회에 친구를 통해서 연락처를 알게 되었고 다시 만나게 되었습니다. 사실 서로의 자존심이 서로를 용납해주지 않아서 갈라서게 된 것입니다. 옛정이 있어서 또 한 번의 기회를 만듭니다.
결별의 아픔이 쉽게 아무는 것은 아닙니다. 어려서는 강제로 집을 떠나야 했습니다. 가난한 집에서 공부할 수 있는 길은 수업료 걱정 없이 공부할 수 있는 수도원밖에 없습니다. 가지 않겠다고 버텨봐야 소용없는 일이었을 것입니다. 엄마는 아들 하나 바라고 사는데 아빠처럼 만들고 싶지는 않았겠지요. 그러니 기어코 보냈을 것입니다. 어려서부터 사랑하는 사람, 좋아하는 곳을 떠나서 지내야 하는 아픔을 견뎠습니다. 아픔은 한번으로 끝나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 인생이 그리 짧은 것은 아니니 말이지요. 글을 쓰고 영화로 만들고 하면서 사람들을 만납니다. 그리고 눈에 딱 차는 사람을 만나서 죽어라 하고 좋아했습니다. 그 이별은 아마도 오랜 아픔으로 새겨졌을 것입니다. 그리고 그것이 작품으로 나옵니다. 그런 작가의 감정을 그대로 배우가 표현해줄 수 있을까요?
재회의 기쁨도 잠깐, 다시 다투더니 또 등을 돌립니다. 사실 감정 정리가 아직 다 되지 않았습니다. 마침 지나간 명작에 대한 재상영이 시행되고 있습니다. 당연히 자기 작품이 들어있습니다. 잠시 마약에 빠졌지만 작품에 대한 미련이 남아 불씨가 되어줍니다. 화해, 그리고 마음을 담아 부탁합니다. 너 말고 누가 해주겠나? 그래도 너밖에 없다 싶어 원고를 가지고 찾아옵니다. 비록 소극장에서의 연극이지만 친구인 배우도 진심을 받아주어 최선을 다해 연기합니다. 그 덕에 한 때 죽어라 좋아했던 그 친구를 다시 만나는 기회도 가집니다. 삶에 활력이 새롭게 솟아납니다. 비록 병든 몸이지만 다행히 종양은 아닙니다. 희망은 지속될 수 있습니다.
나라마다 지역마다 삶의 환경이 다릅니다. 특히 주거지도 특색이 있는 경우가 있습니다. 우리나라에 ‘반지하방’이라는 것이 있듯이 스페인에는 마치 굴을 개조하여 주거지로 만들어 사용하는 곳도 있는 모양입니다. ‘말로’의 엄마 ‘하신타’가 보고는 실망이 가득합니다. ‘뭐야? 굴이잖아?’ 남편이 변명합니다. 우리 형편에 이 정도라도 다행이야. 좀 나아지면 이사해. 아직 수리도 다 되지 못한 굴인지 집인지 모를 곳으로 이사해 들어옵니다. 정리하면서 사는 것이지요. 그러나 사람 사는 곳에 사람이 있고 서로 도움을 주고받으며 살 수 있습니다. 그리고 보는 눈에 따라서는 거지굴이 아닌 사랑으로 뭉친 가족의 안식처이기도 합니다.
수많은 걸작을 탄생시킨 영화감독 ‘살바도르 말로’의 일생이 그려집니다. 어린 말로의 재능을 알아챈 엄마는 수도원에 보내서라도 공부를 시키려 하였습니다. 그렇게 자라서 그만한 유명인이 될 수 있었겠지요. 아마도 일에 묻혀서 살았나봅니다. 자기 몸이 어떻게 변하는지도 모르고 말이지요. 몸이 건강해야 마음껏 일할 수 있습니다. 또한 마음이 건강해야 몸이 활력을 얻습니다. 제 기능을 다할 수 있지요. 어느 쪽이 먼저냐가 아니라 서로 유기적으로 협력을 해야 합니다. 자기 일을 할 수 있는 기쁨과 보람을 얻으려면 둘 다 건강해야 합니다. 영화 ‘페인 앤 글로리’를 보았습니다. 동성애보다는 아마도 마약 흡입하는 장면들 때문에 ‘19금’이 되지 않았나 싶습니다. 그 외에는 인생을 비춰볼 수 있는 좋은 작품인데 말입니다.
첫댓글 좋은영화평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복된 주말입니다. ^&^
늘 고맙습니다.
감사합니다. 복된 주일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