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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소울드레서 (SoulDresser) 원문보기 글쓴이: AUGUST
모바일은 재생버튼 눌러주세요 ----------------------------------------------------------- 출처 : EBS 다큐프라임 '위대한 바빌론' (1편 링크 : http://cafe.daum.net/SoulDresser/4Zux/1557594) *캡쳐 밑에 성우 목소리를 직접 타이핑했습니다.* 안녕하세요 소드님들! 1편 재미있게 읽어주셔서 감사하긔! 오늘은 2편을 가지고 왔는데요 2편은 바빌론의 서북쪽에 위치한 아시리아라는 나라에 대한 이야기가 다뤄질 예정이긔 부디 재미있게 읽어주셨으면 좋겠긔 그럼 시작하겠긔! 공중정원엔 엄청난 양의 물이 필요했을 것입니다. 때문에 유프라테스강과 인접한 곳이 아니면 불가능하다는 주장이 설득력을 얻고있습니다. 발굴을 통해 콜데바이가 최초로 주장했던 공중정원의 위치는 왕국 내부, 알현실과 가까이 있습니다. 유프라테스강까지는 상당한 거리가 있죠. 때문에 최근 학자들은 유프라테스강과 인접한 성벽 안쪽에 공중정원이 있었을 것이라 추정하고 있습니다. 무엇보다 왕국 내에 여성거주지와 가깝다는 이유가 크게 작용했습니다. 실제로 1세기 그리스학자 스트라보는 공중정원에 대해 이렇게 기록하고 있습니다. <가장 중대한 이야기는 정원 양 옆의 수차였는데 수차의 임무는 하루종일 유프라테스강의 물을 퍼올려 정원에 붓는 것이었다.> *수차=물레방아 이처럼 공중정원은 사랑하는 왕비를 위해 건설했다는 그 아름다운 이야기만큼이나 아직도 베일에 싸여있고 논란도 많습니다. 과연 공중정원의 자리는 콜데바이의 주장이 옳을까요? 또 다른 주장도 있습니다. 영국 옥스퍼드 대학의 스테파니 달리 교수의 주장에 따르면, 공중정원은 바빌론이 아니라 바빌론 서북쪽 티그리스 강변에 있는 '니네베'라는 도시에 있었다는 것입니다. 니네베는 실로 웅대한 도시였습니다. 고대 오리엔트의 최초로 세계제국을 세운 아시리아의 수도이기도 했죠. 니네베가 최고의 전성기를 맞은 것은 기원전 700년경. 세나케립(Sennacherib)이 왕위에 있었을 때입니다. 당시 세나케립은 방이 적어도 80개나 되는 왕궁을 건설했으며, 도시의 영역은 700헥타르에 달했죠. 학자들은 훗날 그리스사람들이 니네베를 바빌론으로 착각했을 가능성에 주목하고 있습니다. '바빌론'은 '신에게 향하는 문'이라는 뜻을 갖고있는데 니네베엔 신의 이름을 딴 성문들이 많았다는 것입니다. 아시리아의 수도 니네베를 관통하고있는 티그리스강. 강 주변엔 지금도 희미하게나마 옛 아시리아의 유적들이 평온의 황량함을 지키고 있습니다. 세나케립에 이어 기원전 7세기 말 왕위에 등극한 아슈르바니팔(Ashurbanipal)왕은 아시리아에 새로운 전성기를 가져다줍니다. 그는 왕궁을 건설하고 세계 최초의 도서관을 설립한 다음 온 나라 안에 있는 당시 고대의 문헌들을 모아 베껴쓰도록 지시했습니다. 이처럼 국가권력이 안정되자 지배자들은 전쟁보다 문화적 향유를 위해 보다 많은 시간을 보내게 됩니다. 정원조성은 이제 아시리아 왕들이 왕실의 권위를 내세우는 중요한 수단으로 발전하게 됩니다. 니네베에서 발굴된 수많은 점토판들엔 당시 아시리아인들이 정원을 어떻게 건설했는지 잘 나타나있죠. 실제로 이 부조를 보면, 정원 전체에 어떻게 수로를 배치했으며 또 어떤 방법으로 물을 끌어들여 공급했는지를 알 수 있습니다. 심지어 그들은 물을 공급받기위해 산에 터널을 뚫기까지 했던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니네베에서 40km 떨어진 자르완엔 지금도 세나케립왕 때 건설한 수로의 흔적이 남아있습니다. 세나케립은 이런 수로를 18개나 건설했는데, 그 먼 거리를 방수와 수평을 유지하며 물을 끌어오는 일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었습니다. 아시리아 왕들이 정원꾸미기에 쏟아부은 이런 엄청난 노력은 공중정원의 '니네베설'을 더욱 확산시키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바빌론 왕의 알현실입니다. 하지만 훗날 페르시아를 정복하고 천하를 제패했던 알렉산더 대왕이 기원전 323년, 생을 마감한 곳이기도 합니다. 훗날의 역사가들은 그가 죽은 궁전 근처에 파라데이소스(paradeisos:낙원)라 불리는 정원이 있었다고 기록했습니다. 그렇다면 이들이 말한 '파라데이소스'라 불렸다는 정원이 공중정원은 아니었을까요? 기원전 6세기, 바빌론은 최고의 전성기를 구가하고 있었습니다. 정복자였던 네브카드 네자르 2세는 이미 어느 날 30층 높이에 해당하는 바벨탑의 건설자이기도 했습니다. 때문에 결심한다면 공중정원은 얼마든지 건설이 가능했을 것입니다. 그리스의 한 도서관. 우리는 이곳에서 공중정원에 대한 단서를 제공해줄 또 한 명의 그리스 학자를 만날 수 있었습니다. 그의 이름은 디오도로스(Diodoros). 시실리 태생의 역사가였던 디오도로스는 세계역사에 대한 여러 권의 저술을 남겼는데 특히 제 2권에서 바빌론의 공중정원을 다루고 있었습니다. <정원의 길이는 각 방향으로 123m이다. 진입로는 언덕과 같이 경사지었고 계단식으로 올라가는 구조였다. 전체적인 모습은 노천극장을 연상시켰다.> ------------------------------------------------------------- 2편이 끝났긔! 부디 재미있게 읽으셨길 바라긔! 개인적으로 오늘 다룬 아시리아라는 국가도 참 흥미로웠긔. 글 쓰면서 저도 참 재미있었긔ㅋㅋㅋ 곧 3편으로 돌아오겠긔 봐주셔서 감사합니다♥ |
첫댓글 나이런얘기너무좋아...
재밌다..!
저때의 기술력이란 뭘까 ... 대단해
아직 넌 헤매고있어~~~~ 아마도 외로웠던거야~~@@@@~
너무 신기하다ㅠ 진짜 있었던건지
흥미롭다 술술 읽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