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쪽으로 약 400Km 떨어진 테살리아 지방의 소도시인 칼람바카에 인접해 있는 수도원 집성촌이다.
그리스에는 정교회 수도원 집성촌이 두 곳 있는데, 아토스(Athos)와 메테오라이다.
아토스(Athos)는 일종의 자치 소국으로 여자들의 출입을 금할 뿐 아니라 남자들도 허가를 받아야 출입할 수
있기 때문에 방문이 여의치 않다. 상점도 일체 없어 이곳 저곳 수도원에서 얻어먹고 자야하므로
그 음식과 잠자리가 여간 고역이 아니다. 그러나 메테오라는 쉽게 접근할 수 있다.
하늘로 치솓는 절벽들 위로 지어진 수도원들의 모습은 기괴한 장관을 이룬다.
11세기 이후로 중세의 수도사들은 일반인이 쉽게 근접할 수 없는 깎아지른 듯 솟아 있는
이곳 메테오라의 바위산 정상에 터를 잡았다는데 뾰족바위들은 평균 높이가 300m~550m에 이르는 것도
여러 개가 있다. 16세기에는 16개의 수도원이 있었는데 모두 밧줄과 그물을 이용해서만 올라갈 수 있었다.
기둥 모양으로 우뚝 솟은 거대한 사암(沙岩)으로 이루어진 바위산들과 그 정상에 세워진 그리스 정교회의 수도원들이 있는 곳이다. 14세기에 처음 세워져 전성기인 16세기에는 24개의 수도원이 있었으며 속세와 차단하기 위해 올라가는 길이 없어 물자 보급과 사람들의 출입은 도르래를 이용해 끌어올리는 방법뿐이었다.
대 메테오론(Meteoron) 성수도원(좌), 바람(Varlaam) 성수도원(우)
사원들은 그리스 중부의 페네이오스(Peneios)강과 핀도스(Pindus/Πίνδος, 핀두스)산맥 근처의
테살리아(Thessaly) 평원 북서쪽 끝의 자연적인 사암 석주 위에 지어졌다
사원들에 출입은 긴 사다리나 물건과 사람 모두 끌어올리는 로프와 커다란 망이 필요할했다.
1920년대 에 고원 근처에서 다리를 경유해 사원에 접근할 수 있도록 만든 계단은 바위를
깎아 만들었다.
2차 세계대전 때 이곳은 폭격을 당했고 많은 귀한 미술품들이 도난 당했다.
오늘날 6개의 사원만 남아 있다.
6개의 사원들 중 5개는 남성들이, 1개는 여성들이 거주했다.
각 사원은 10여 명 이하가 거주한다.
사원들은 인기 있는 관광지로 지금은 주로 박물관으로 이용된다.
니콜라스 수도원, "7인의 독수리" 영화촬영장소로 유명하다
성삼위 수도원으로 들어가는 출입문
성삼위 수도원은 매우 높은 절벽 꼭대기에 자리잡고 있다.
1925년부터 바위를 깎아 진입도로를 만들기 시작해 지금은 쉽게 출입할 수 있게 되었으며,
특이하게도 여자들의 경우는 무릎 아래로 내려오는 긴 치마를 입어야만 관람이 허용된다.
이 지역의 기후는 계절마다 차이가 크다. 여름에는 무더우나 겨울에는 몹시 추운 날씨를 보인다.
일반적으로 비는 연중 많이 내리는 편으로, 고도가 높은 곳은 특히 그러한데, 여름에는 건조하다.
현재는 메테오라에 6개 수도원이 남아 있는데, 가장 큰 4개의 수도원인 대(大)메테오론 수도원(1356~72),
제성(諸聖)이라고 하는 바를라암 수도원(1530경), 성 스테파누스 수도원(1312), 성 삼위수도원(1458)에는
수도회가 남아 있다.
마치 천상의 세계를 보여주는 듯한 메테오라의 수도원들은 천년의 풍상을 견뎌내고 지금도 바위 산에 우뚝 솟아 있으며, 1980년 유네스코에 의해 세계 문화유산으로 지정되었다. 이곳 수도원들은 터는 비좁았지만 수도사의
개인 기도실과 물 탱크, 교회당, 휴게실 등을 모두 갖추고 있다. 그 중에서도 수도사들의 식당(현재는 박물관으로 사용)이 흥미를 끌고 있으며, 아기오스 니콜라스 아나파우사스 수도원(1510년 세워졌으며 내부에 잘 보존된
프레스코화가 있음)과 아기아 모니 수도원(1315년경 세워짐)에는 수많은 필사본과 희귀본이 보관되어 있는
도서관도 있다.
수도원 입구 바위 절벽에 기생한 야생화, 자연의 생명력은 대단하다.
죄측 바위위에 있는 건물이 바람(Varlaam) 성수도원
16세기에 이오안니나(Ioannina)의 사원에서 온 두 형제들이 예배당을 확장하고 사원을 세웠다.
전설에 따르면, 그들은 정상의 동굴에 살던 괴물을 쫓아냈다고 한다
우리가 어제 투숙했던 칼람파카 마을이 저 아래에 보인다.
저 앞의 산이 핀토스산, 이 지역은 물이 잠겨 있었는데
물이 빠지면서 이런 바위들이 생겼답니다.또한 최초의 인류 발생지인 호모 샤파인족 거주 지역이래요
이콘
각 수도원 성당에 있는 오래된 이콘과 벽화들은 역사적 자료로도 귀중한 가치를 지니고 있다
은수자들이 사용하던 도구들
식수를 담아 놓는 저장통
절벽 사이를 이은 다리를 지나(아래를 보면 까마득하게 보인다) 계단을 한참이나 걸어올라가서
수도원 정문 앞에서 아래를 보고 사진을 찍었다.
옛날에는 외부인의 침입을 막기 위해 수도원으로 통하는 계단이 없었기 때문에
수도원 위에서 도르래를 이용하여 사람들이나 물자를 끌어 올리곤 했다.
당시 수도사들이 사용하던 제의
뒤의 절벽에 있는 로프를 이용하여 출입하는 사람들이나 화물을 곤돌라에 들려서 오르고 내렸다/
성삼위 수도원에서 바라본 깔람바카 마을--007영화 " For your eyes only"(1981) 촬영지로 유명하다.
다음은 성삼위수도원을 순례 후 오후에 코린토 동쪽 외항으로 사론만에 있는 캥크레애 항구로 이동하여
그곳 칼라망키(Kalamaki) 비치호텔에서 여장을 풀고 에개해 해변에서 수영을 할 게획이다.
- 끝 -
떼제 음악/ Sing to God (1995)
Taizé, 1797-1828
1. Let us sing to the Lord, - Track 전곡연주
떼제의 노래란 ?
떼제 공동체는 1940년, 25세의 스위스 출신의 청년 로제 (Brother Roger)로부터 시작되었다.
그는 2차 대전의 참화 속에서 신뢰와 나눔, 화해를 실천할 공동체를 일구기 위해
프랑스를 여행하다가 작은 마을 떼제를 발견하고 정착했다.
유태인들을 숨겨주어 나찌로부터 위험을 겪기도 한 로제수사는
1949년 그와 뜻을 같이한 여섯 형제(수사)와 함께 서약을 했다. 떼제공동체가 탄생한 것이다.
이들은 독신생활로 영적, 물적인 것을 공동체 안에서 함께 나누며 그리스도를 섬기는 생활을 시작했다.
1) 떼제의 노래와 기도
하루 세 차례 열리는 공동기도 (Common Prayer) 모임을 보면 떼제의 노래가 기도임을 알 수 있다.
공동체기도는 떼제 언덕의 종소리로 시작한다.
떼제 언덕에 서 있는 ‘화해의 교회’에 수사들과 젊은이들이 모이면 종소리가 잦아들면서 침묵이 흐른다.
이윽고 수사들이 첫 마디를 시작하면 모두가 함께 떼제의 노래를 부른다.
일상생활과 화해추구의 삶이 바탕이 된 이 기도는 수많은 찬송가, 성가합창곡, 시편가,
성경봉독, 중보기도 등 교회의 전통에서 따왔고, 동방교회의 음악에서 따온 것도 있다.
떼제의 수사들은 처음엔 조그만 마을 성당에서 이런 노래를 불렀다.
그러나 전세계에서 엄청난 수의 젊은이들이 참아옴에 따라
이들 모두가 쉽게 함께 할 수 있는 기도방법을 찾아야만 했다.
그렇게 찾아낸 기도가 떼제의 노래인 것이다.
떼제의 노래는 모든 사람들이 공유할 수 있는 스타일로 되어 있기 때문에
나라와 언어가 모두 다른 사람들을 하나로 만들었다.
세계 각지에서 매주 수천명 씩 순례의 길을 찾아오는 젊은이들은
그저 기도를 참관하지 않고 능동적으로 참여할 수 있게 된 것이다.
누구나 쉽게 참여할 수 있으면서도 기도의 묵상적인 성격을 유지할 수 있는 노래,
바로 떼제의 노래가 기도의 방식으로 자리를 잡은 것이다.
2) 떼제의 음악
떼제공동체의 형제(수사)들은 처음엔 시편을 중심으로 노래를 불렀다.
로제 수사가 스위스출신의 개신교도였고 첫 공동체 수사들이 다양한 개신교 출신이었음을
감안해보면 이들이 초창기에 불렀던 노래들은 제네바 시편가의 전통을 잇고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그러다가 2차대전이 끝나면서 조셉 젤리노(Joseph Gelineau)의 시편가를 부르기 시작했다.
교회의 전례에 충실하면서도 보편적 개혁을 주장한 젤리노의 음악은 떼제 공동체와 조화를 잘 이뤘다.
3) 떼제의 노래 - 특징과 영향
떼제의 음악은 유럽을 비롯한 세계의 음악방향과 예배형태에도 큰 영향을 미치고 있다.
떼제 공동체를 다녀간 수많은 사람들은 그 음악을 전세계에 퍼뜨렸다.
떼제의 음악은 독특하다.
공동체의 평화와 화해라는 목적에 연결되어 있기도 하고,
또 각기 다른 언어를 쓰는 여러 나라 사람들이 쉽게 접근할 수 있는 음악이어야 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순전하고도 단순한 짧은 소절의 노래가 쓰여졌다.
반복되는 후렴구에는 라틴어가 주로 사용되었는데 이는 전통적인 이유에서가 아니라
여러 나라에서 온 사람들에게 이국적으로 들려서 오히려 중립적인 언어가 되었기 때문이다.
라틴어 후렴구가 계속되면서 솔로이스트는 각 나라의 말로 노래를 반복한다.
떼제의 노래는 돌림노래, 합창, 응답송 등 다양한 형태로 만들어졌고,
모두 회중들이 계속해서 반복하여 부르는 짧은 곡들로 이뤄졌다.
처음에는 엄격하게 4성부를 지켰고 라틴어의 강세와 음악의 리듬패턴이 잘 어울리도록 만들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