滁州西澗(저주서간)
〈滁州(저주)의 서쪽 시내〉
韋應物(위응물)
獨憐幽草澗邊生(독련유초간변생)
上有黃鸝深樹鳴(상유황리심수명)
春潮帶雨晩來急(춘조대우만래급)
野渡無人舟自橫(야도무인주자횡)
시냇가의 그윽한 풀이 유독 사랑스럽고
위에선 깊은 숲 꾀꼬리가 운다
봄 물결 비를 띠고 저물녘엔 세차게 흐르는데
인적이 끊긴 교외 나루엔 배만 홀로 비껴 있다
[通釋] 서쪽 시냇가 무성하게 자라난 풀은 그 무엇보다 사랑스러운데, 늦봄이 되어 물가의 깊은 숲에선 노란 꾀꼬리의 울음소리가 들려온다. 불어난 봄 물결에 비가 내리자 저물녘에는 더욱 세차게 흐르는데, 교외의 나루에는 인적이 끊어지고 그저 빈 배만이 비스듬히 비껴 있다.
[解題] 이 시는 덕종(德宗) 건중(建中) 2년(781) #위응물이 저주자사(滁州刺史)로 재임하던 시기에 지었다는 설과, 정원(貞元) 원년(元年:785) 저주자사에서 파직되어 서간(西澗)에 머물던 시기에 지었다는 설이 있다.
늦봄 무성해진 초목의 생동감과 비가 내린 뒤 저물녘 나루터의 적막감을 교차시키며 작가의 한정(閑情)을 표현한 작품이다. 제1‧2구에서는 ‘幽草(유초)’와 ‘深樹(심수)’의 고요함을 꾀꼬리의 울음소리로 깨뜨리고, 제3‧4구에서는 비가 내려 불어난 물이 급하게 흐르는 동적인 이미지가 인적이 사라진 나루터에 배만 홀로 남겨져 있는 정적인 이미지로 바뀌며, ‘靜中動(정중동)’, ‘動中靜(동중정)’의 변화가 시상의 흐름을 이끌고 있다.
예로부터 한 폭의 그림과 같다는 평을 받아왔는데, 생동하는 늦봄의 경치가 고즈넉한 정조와 오묘한 조화를 이루고 있다.
역주
역주1> 滁州(저주) : 당나라 때 회남동도(淮南東道)에 속한 곳으로, 지금의 안휘성(安徽省) 저현(滁縣) 지역이다.
역주2> 西澗(서간) : 저주성(滁州城) 서쪽에 있는 개천을 지칭한다. 《一統志(일통지)》에 “서간(西澗)은 주의 성 서쪽에 있는데 세간에서 ‘上馬河(상마하)’라고 부른다.[西澗在州城西 俗名上馬河]”라고 하였다.
역주3> 黃鸝(황리) : 黃鶯(황앵), 즉 꾀꼬리의 별칭이다.
역주4> 春潮(춘조) : 봄 2, 3월에 江河에 물이 불어난 것을 지칭한다.
역주5> 野渡(야도) : 교외(郊外)에 있는 나루로, 외딴 곳에 있는 나루라는 뜻으로 쓰였다.
본 자료의 원문 및 번역은 전통문화연구회의 동양고전종합DB(http://db.juntong.or.kr)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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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응물(韋應物:797-804) : 산시성[陝西省] 장안[長安] 출생. 젊어서 임협(任俠)을 좋아하여 현종(玄宗)의 경호책임자가 되어 총애를 받았다. 현종 사후에는 학문에 정진하여 관계에 진출, 좌사낭중(左司郞中) ·쑤저우자사[蘇州刺史] 등을 역임하였다. 그의 시에는 전원산림(田園山林)의 고요한 정취를 소재로 한 작품이 많으며, 당나라의 자연파시인의 대표자로서 왕유(王維) ·맹호연(孟浩然) ·유종원(柳宗元) 등과 함께 왕맹위유(王孟韋柳)로 병칭되었다.
[출처] [당시삼백수]滁州西澗(저주서간:저주의 서쪽 시내) - 韋應物(위응물)
[출처] [당시삼백수]滁州西澗(저주서간:저주의 서쪽 시내) - 韋應物(위응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