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에게 묻는다, 우리의 존재를
김윤배/시인
라이너 마리아 릴케의 <두이노의 비가> 중에서 ‘제2비가’를 중심으로 시에 대한 절대적 사랑과 바라봄, 그리고 시적 삶에 대한 질문을 주제로 그의 시에 대한 생각을 알아본다. 릴케(1875.12.4. ~ 1926.12.29.)는 오스트리아의 시인이자 작가다. 20세기 최고의 독일어권 시인 중 한 명이라 할 수 있다. 그는 생전에 자신의 묘비명을 다음과 같이 아름다운 문장으로 써 놓았다.
‘장미여, 오 순수한 모순이여, 기쁨이여,/이리도 많은 눈꺼풀 아래,/그 누구의 잠도 아닌 잠이여’
그는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 보헤미아 왕국의 프라하에서 출생하여 고독한 소년 시절을 보낸 후 1886년부터 1891년까지 육군 유년 학교에서 군인 교육을 받았으나 중퇴했다. 그 후 프라하·뮌헨·베를린 등의 대학에서 공부했다. 일찍부터 꿈과 동경이 넘치는 섬세한 서정시를 써 당대 문단의 주목을 받았다. 그는 열정적으로 작품을 썼다.
1893년(18세) 시집 ‘삶과 노래’, 1895년(20세) 시집 ‘가신에게 바치는 제물들’, 1899년(24세)의 단편소설 ‘기수 크리스토프 릴케의 죽음과 사랑의 노래’ 등을 발표했다.
뮌헨에서 만난 러시아 여자 살로메에게 감화를 받아 1900년 5월, 러시아 여행을 떠난 후, 러시아의 자연과 소박한 슬라브 농민들 속에서 시집 ‘나의 축제를 위하여’를 쓰고, 1900년(25세) 산문집 ‘사랑하는 신에 관하여’, 1902년(27세) 시집 ‘형상 시집’, 1905년(30세) ‘시도(時禱) 시집’ 등을 발표한 시기이기도 했다. 14년 연상인 루 살로메와 뜨거운 사랑을 나누고 그녀를 위해 ‘그대의 축제를 위하여’라는 시집을 만들어 혼자서 간직할 만큼 살로메는 큰 영향을 끼쳤다. 살로메에게 바친 릴케의 연시를 소개한다.
‘내 눈의 빛을 꺼주소서, 그래도 나는 당신을 볼 수 있습니다,/내 귀를 막아주소서, 그래도 나는 당신의 목소리를 들을 수 있습니다,/발이 없어도 당신에게 갈 수 있고,/입이 없어도 당신의 이름을 부를 수 있습니다./내 팔을 부러뜨려주소서, 나는 손으로 하듯/내 가슴으로 당신을 끌어안을 것입니다,/내 심장을 막아주소서, 그러면 나의 뇌가 고동칠 것입니다,/내 뇌에 불을 지르면, 나는 당신을/피에 실어 나르겠습니다.’
본명 르네 카롤 빌헬름 요한 요세프 마리아 릴케를 라이너 마리아 릴케로 바꾸게 된 것도 연인, 루 안드레아스-살로메의 조언에 따라서였다.
1901년, 릴케는 로뎅의 제자이며 조각가인 클라라 베스토프와 결혼했으나 딸 루트를 두고 이혼했다. 1902년 이후 파리로 건너가 조각가 로댕의 비서가 되었는데, 그는 로댕의 이념이기도 한 모든 사물을 깊이 관찰하고 규명하는 능력을 길렀다.
이 시기는 조각품처럼 그 자체가 하나의 독립된 우주와 같은 시를 지으려고 애쓴 시기다. 1907(32세)년 ‘신시집’을, 1907년(32세) ‘로댕론’을, 1908(33세)년 ‘신시집 제2부’를 발표하고, 이어 1909(34세)년 파리 시대의 불안과 고독, 인간의 발전을 아름답게 서술한 일기체의 단 한편의 장편소설 ‘말테의 수기’를 발표했다.
1913년 제1차 세계 대전이 일어났다. 작품 활동을 중단하고 있던 릴케는 10년간의 침묵 끝에 1922년(47세) 스위스의 고성 두이노에서 최후를 장식하는 대작 ‘두이노 비가’, ‘오르페우스에게 바치는 소네트’를 발표했다. 그의 모든 작품들은 인간성을 상실한 그 시대의 가장 순수한 영혼의 부르짖음으로 높이 평가되고 있다.
릴케 문학의 정수라 일컫는 ‘두이노의 비가’는 1912년 1월, 마리 탁시스 후작부인의 후원으로 이태리 아드리아 해 연안 두이노성에서 제1비가와 제2비가 등이 쓰여졌다. 그 작품들은 불후의 명작다. 그 후 제1차 세계대전으로 오랜 중단기간이 있었으나 전후 스위스로 이사하여 1922년 2월, 뮈조성에서 마침내 완성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