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수님의 카톡 메일.
2023년 04월 05일[Wed.] Good Morning!
【늙은 은행나무를 질투하다.】
새 순이 움틀 때 늙은 은행나무는 가려움을 느낄까?
아마도 그리 굴곡 많은 생을 살아온 뒤에도 새 가지가 뻗을 땐
여전히 기쁨으로 온몸이 떨릴까?
아마도 나, 지금 저 늙은 은행나무를 질투하는가? 아마도.
어느 젊은 시인이 절규하지 않았던가.
"질투는 나의 힘"이라고 말이다. 그렇다.
나, 지금 저 늙은 은행나무를 질투한다.
이제 '아마도'라고 비겁하게 말하지 않겠다.
시커멓게 늙어버린 몸통에서 연둣빛 새 잎이
돋아나는 걸 볼 때 내 눈도 가려워진다.
새 순이 잎으로 자라고 새 가지로 변신하는 걸 확인할 땐
내 온몸이 떨린다. 몇백 살을 먹었는지 알지 못하는
늙은 은행나무가 끝없이 새 잎과 새 가지를 펼치며
생명의 힘을 과시할 때 나는 질투로 몸이 뜨거워진다.
나는 천 년을 살고도 여전히 왕성한 생명의 힘을 간직한
은행나무로 태어나지 못했다. 가지 하나 꺾어 땅에 꽂아주면
거기서 또 뿌리내리는 관목으로도 태어나지 못했다.
꼬리를 잘라 포식자에게 넘겨주고 달아나면 곧 새 꼬리가
자라나는 도마뱀으로 태어나지도 못했다.
이래저래 어중간한 인간으로 태어났다.
겨우 오십 중간 깔딱고개 넘고 있을 뿐인데 벌써 심드렁하게
살 만큼 살았다고, 해볼 만큼 다 해봤다고
다 늙은 티 내는 중늙은이로 산다.
내 몸의 세포는 더 이상 왕성하게 분열하지 않는다고,
내 상처는 더 이상 바로바로 회복되지 않는다고,
몸을 도사리며 산다. 한심하고 한심하여라.
은행나무가 보면 나는 얼마나 핏덩어리이겠는가.
이마에 피는 조금 말랐을지 모르지만,
적어도 아직 새파란 청년의 나무이지 않겠는가.
은행나무가 듣기에 내 넋두리는 얼마나 가소로운 치기로 들리겠는가.
쪼그만 게 까불고 있네, 한 소리 들어도 할 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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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병준 지음
【기쁨의 정원】
- P. 136 ~ 137 중에서
옮긴 이 : S.I.AHN (요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