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행은 늘 갑작스럽게 이루어진다.
출근한 뒤 결정이 되었으니 여러가지로 준비가 부족한 건 당연하다.
준비가 부족하면 뒤따라오는 건 시행착오.
이것저것 챙기다보니 시간이 늦어졌고, 의욕이 앞서다보니 무리가 따랐다.
무리한 산행이면 시간이라도 많아야 하는데, 두 가지 악조건이 합쳐지다보니 허겁지겁 설레발만 쳤다.
결국 도중에 시간제약과 체력저하로 탈출을 하며 부분적으로 계획을 접을 수밖에 없었다.
따라서 나머지 미답의 코스는 숙제로 남겨지게 되었다.
계획한 코스의 최고봉은 금정산이다.
고지도에는 금정산(琴井山 355.9m)을 ‘검정봉산(檢井封山)’으로 표시하고 있다.
봉산(封山)은 궁전의 재목, 전함(戰艦)과 조선(漕船) 건조에 필요한 소나무를 확보하기 위해 벌채를 금지한 지역.
예전부터 금정산은 통제영(統制營)에 필요한 목재를 제공하기 위한 봉산(封山)이었던 셈이다.
‘조선지지자료’에는 금정산(金井山), ‘조선지형도’에는 금정산(琴井山)으로 각기 다르게 기록되었다.
예전에 금을 채광하였대서 '金井山', 굴속으로 떨어지는 물방울 소리가 거문고처럼 청량하대서 '琴井山'이란다.
또 산에 약수정(藥水井)이 있었는데, 매일 조수 간만에 맞춰 물이 났다가 없어졌다를 반복하였다는 전설도 전한다.
약수정과 함께 정상에 기우제장(祈雨祭場) 터가 남아 있고, 산 아래 용전(龍田)이라는 마을이 있으니 그 관련성이 짐작된다.
배대산(盃大山 282.4m)이라는 지명은 ‘조선지형도’에 처음 수록되어 있고, 잔당산(盞堂山)으로도 불렀다.
배대산과 잔당산이라는 이름은 해일로 바닷물이 범람하여 정상에 겨우 잔(盞) 하나만큼 남고 모두 물에 잠겼대서 유래한 이름.
또는 그렇게 범람한 바닷물로 인해 이 산 꼭대기에 ‘배를 댔다’고 ‘배댄산’이었다가 ‘배대산’이 된 것일 수도 있겠다.
어찌되었거나 설정은 바닷물이 범람하였다는 가설이다.
배가 들어왔다는 ‘배티고개(舟峙)’, ‘배바우’ 등의 지명과 이 지역에서 침수와 범람이 빈번하였던 것과 관련지어보면 말이다.
사월산(四月山 108.1)은 ‘사월이의 전설’이라도 있을 법하지만 아무데도 그 유래가 보이지 않는다.
미답의 연지산(蓮芝山 277.2)과 태봉산(胎峰山 104.2)도 마찬가지.
‘蓮芝山’이란 한자는 산아래 마을인 연지리(蓮芝里)에서 가져왔다.
늪지에 연(蓮)을 많이 재배하였대서 유래한 연동(蓮洞)과, 지동(芝洞)마을이 합쳐져서 연지(蓮芝)가 된 것.
지금도 대가저수지에는 ‘연꽃테마공원’이 꾸며져있어 많은 탐방객들이 찾고 있다.
대가저수지에서 흘러나온 물은 태봉산(胎峯山)을 돌아 대평천이 되어 밤내(栗川)와 합류하며 고성평야에 물을 대주고 있다.
대평(大坪)은 들이 넓어서 붙여진 이름이고, 태봉산에 대한 전설이 있다지만 내용은 알길이 없다.
금정산 아래 263.9m봉을 ‘벼락산’이라고 하는 어느 선답자의 기록을 따랐으나 정작 그 정확성은 확인하지 못했다.
내가 모르는 다른 자료에 있나보다하고 그대로 옮겼는데, 가짜정보가 아니었길.
빨간 트랙은 내가 걸은 길이고, 파란색 화살표는 연지산을 오르지 않고 두른 길.
세동마을에서 노란색 실선을 타고 연지산과 태봉산을 타고 원점회귀하려고 하였다.
내가 걸은 길은 약 10km에 5시간 정도 걸렸으나 일부 정비된 구간을 제외하면 잡목과 간벌목이 어지러이 방치된 길.
시간의 제약상 세동마을에서 산길을 포기하고 연지산과 태봉산을 좌측 어깨에 짊어지고, 대가저수지를 따라 걸었다.
그렇게 도로따라 걸은 거리가 5km남짓이니 계획대로 했다면 대략 14~15km에 7시간 쯤 걸렸겠다.
기록하지 않은 뽈록뽈록 솟은 곳이 185.6m봉(평상과 간이의자가 있던 곳)으로 왕복한 곳.
그 사이에 있을 사명산은 높이가 100m인데 정확하지 않다.
<산길샘>
고지도의 검정봉산(檢井封山)이 금정산.
바쁜 와중에도 제법 호기롭게 표지기를 준비하였다.
네비엔 '고성군생명환경농업연구소' 또는 '고성군 고성읍 남해안대로 2829-60'이나 '고성군 고성읍 우산리 250-7'을 입력하여 한산한 길가에 차를 댔다.
그곳에 '도시어부촬영지' 안내판이 있다.
도로를 따라 걸으면서 나중에 내가 태봉산을 타고 내려올 산자락을 돌아본다.
더 우측은 연지산인 듯.
진행방향은 동쪽. 그곳에 고성의 마테호른 거류산이 솟아있고, 우측에 벽방산이 마주보고 있다.
수로를 건너 거류산을 바라보고 농로를 따르다 화살표 방향에서...
5층건물 좌측으로 올라...
주소가 '고성군 고성읍 우산리 산100-22'인 산길 입구에 닿는다.
산길 입구엔 여러기의 묘지가 있고...
능선을 고수하다...
임도급 산길에서 올라선 뒤...
100m도 되지않는 능선을 따른다.
꼭대기의 개간된 밭엔 머루와 고사리가 심어져 있고...
뾰족 거류산과 뒤로 구절산이 조망된다.
묘지가 있는 곳에서 진행방향 낮은 봉우리(68.4m)를 쳐다보지만 울타리가 쳐져있어 울타리가 없는 우측으로 내려섰더니...
임도.
길가에 잘 조성된 창녕 조씨 가족묘지가 있고, 그 뒤에...
등산로 푯말이 산길을 안내하고 있다.
등산로는 원목계단으로 정비된 길.
68.4m봉은 우측에 두고 비스듬히 사면으로 두르는 길.
그냥 그늘막을 걷는 듯...
오솔길을 걷는 듯...
산책길을 걷는 듯...
호젓한 길이다.
그렇게 올라선 벤치봉우리(185.6m)에 누군가 사설 평상을 놓아 두었고, 그 옆엔 간이의자 여나믄 개가 나뒹굴고 있다.
흡사 막걸리라도 파는 장소로 보이지만 여긴 그렇게 사람들이 많이 다니는 곳이 아니니 그건 틀린 답.
"몸이 아픈 사람이 산림욕을 하는 곳일까?
그렇다면 저 많은 간이의자의 용도는 뭘까?
혹시 꾼들이 모여 산중에서 도박을 한 것은 아닐까?"
별 희안한 상상을 하다 사월산을 다니러 간다.
사월산은 100m대이고, 이 봉우리가 185m이니 고도 약 100m가까이 내려갔다 올라와야 하는 것.
사월산으로 가는 길은 능선이 선명하지 않아 이렇다할 뚜렷한 길이 없이 거친 편.
그렇게 사월산에 닿아 서명한 표지기를 선답자들의 표지기 옆에 걸었다.
올라올 때는 내려갈 때와 똑같은 트랙을 공유하진 않았고, 묘지를 지나...
아까 평상이 있던 185.6m봉에 40분 만에 되돌아 왔다.
개활지는 임도 끝지점.
임도 사거리를 내려가자...
지금도 진행 중인 공사.
농로에서 진행방향으로 배대산이 솟아있다.
우측으로 통영대전고속도로가 뚫려있고 뒤로 아까부터 보아온 거류산이 솟아있다.
마주 보이는 봉우리는 배대산.
밭에서 일하는 사람이 "아저씨, 뭐하러 다니는 사람이요?" 묻는다.
"산에 다니는 사람인데요." 했더니 "어디가냐?"고 재차 묻는다. "저 앞 배대산요."
"어디서 오느냐?"고 또 묻는다.
"사월산에서요."
그의 생각으론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나의 행적이니 아무런 의미가 없다.
"아저씨, 나 밭에 손대는 그런 사람 아니요." 했더니, 그제사 "이리 사람 다니면 안되는데"한다.
아무데도 해코지하지 않고 앞만보고 산에 다니는 사람인데, 왜들 다 이러실까?
2차선 아스팔트에 내려서서...
앞으로 진행할 배대산과 금정산을 올려다 본다.
고속도로를 위로 지나며 내려다본 모습. 그곳에도 거류산이 버티고 섰다.
고속도로 위를 지나자 월촌마을. '김해김씨금령군경파 월촌자양재입구' 비석.
골목안으로 들어가...
골목 끝에서 고개방향.
고개마루에서 좌측 마루금을 따른다.
처음에는 제법 산길이더니...
나중에는 이리저리 헤매고 올라야 했다. 바위의 지질은 퇴적층.
정상 가까이에 무덤이 있고...
꼭대기엔 구들장 같은 돌로 진지를 만들어 놓았다.
선답자들의 흔적은...
한 곳에 집중되어 있어...
나도 그 옆에 서명한 표지기를 걸었다.
오늘도 내꼬라지가 이모양.
배대산에선 큰 잔으로 정상주를 마셔야 하는 것.
그렇게 정상 세러머니를 한 뒤 돌담 위에 카메라를 얹어 셀프 촬영.
세러머니를 마친 뒤 무심코 5분여를 허비한 북서쪽 알바.
설레발만 쳐댈 뿐 진도가 나지 않는 판에 이런 알바까지 했으니 마음만 급해진다.
그래서 숨넘어갈 듯 허겁지겁 되올라 오다...
"캄 다운~(Calm down~). 저렇게 예쁜 꽃이 널 반기잖니? 캄 다운~"
있는 듯 없는 듯한 산길에 지저분하게 널버러진 간벌의 자국들.
무슨 이유로 한 간벌일까? 꼭 이래야만 했을까? 대강의 정리는 필요하지 않았을까?
산불과 홍수가 나도 더 큰 피해를 입는 이유다.
배대산을 내려서다 진행방향으로 금정산을 올려다 본다. 갈길은 멀고 해는 기운다.
보라색 등나무꽃이 갈길바쁜 산쟁이를 붙잡는다.
임도에 내려선 뒤...
돌아본 모습.
임도는 구불구불 휘어져...
질러 내려가는 길을 찾아보지만 여의치않아.
더 이상 어쩔 수 없어 마루금을 따른다.
일군의 묘지를 지나...
잡목 거친 길을 오른다.
커다란 바위를 에돌아...
촬영할 염도 없이 바삐 금정산에 올랐다.
우선 서명한 '琴井山'표지기를 건 뒤...
삼각점과...
안내판을 확인한다. 약수정과 기우제장터는 어디에 있는고?
곧 이어 '등산로' 푯말이 우측으로 가리키지만 이렇다할 등로가 보이지 않아...
10m 전방의 작은 봉우리에 올라섰더니...
봉화대터이니 훼손하지 말라는 마암면사무소의 안내판이 붙어있다.
무슨 용도인지 알 수 없는 커다란 구덩이를 지나...
선답자들의 시그널이 나부끼는 벼락산(?)에 닿았다. 서명한 표지기를 걸었으나 그 정확성은 확인하지 못했다.
이후 급내리막. 지형도엔 어디쯤에서 좌측 세동마을로 산길이 나있었으나 무심코 탄력으로 내려섰더니...
골짜기에 반듯한 비석의 묘지가 있어...
확인해 보았더니 '금남처사(琴南處士) 김해허씨'. 금남처사는 금정산 남쪽(세동마을)에 있는 선비를 일컫는 듯.
골짜기 복판으론 밭이 개간되어 있었고...
산길은 골짜기 좌측으로 이어져 있다.
2차선 아스팔트에 내려선 뒤...
바로 우측에 '농와(農窩)처사 김해허씨' 비석.
세동마을 표석.
당산나무에서...
고인돌을 확인한다. 산행은 여기까지로 오룩스맵을 종료하였다.
그런 뒤 택시를 부르려다 그냥 걷기로 했다. 산길이 아니니 어두우면 또 어떠랴.
대전통영고속도로를 굴다리로 통과한 뒤 내가 계획했던 코스의 구룡사 방향 안부(▽)를 올려다 본다.
당겨본 구룡사.
좌측 어깨너머로 연지산을 바라보고...
또다시 내가 계획했던 능선과 연지산을 바라보고...
도로를 꺾어 한바퀴 돈 뒤 대가저수지에서 또다시 연지산을 올려다 보고...
노란 봄꽃이 곱게 핀 대가저수지도 카메라에 담는다.
2차선 도로가 있으나 차가 보이지 않는 도로.
저수지에도 이제 어둠이 밀려오더니, 건너 수변 트랙에 조명등이 켜졌다.
대가저수지 물을 내보내는 수문에서...
연지산 1.1km 이정표가 세워져 있다. 이제 길은 승용차 한 대가 다닐 수 있는 도로.
좌측 어깨너머로 나즈막한 태봉산이 비장한 전설을 감춘 채 어둠에 묻혀간다.
'조선의 문화공간(이종묵 지음)' 4권 마지막 페이지에 임자도에서 유배생활을 한 조희룡이 나온다.
"하산할 때에 엉덩이를 발로 삼고 팔을 지팡이로 삼으며 위만 바라보고 누운 채로 비지땀을 흘리면서 내려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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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희룡은 평탄한 길은 구르기 쉽고, 위험한 길에 오히려 평탄함이 있다는 진리를 깨우쳤다.
그러면서 산을 오르는 것은 진경(眞境)이요, 인생길은 허경(虛境)이라 하였다.
진경은 쉽게 보이지만 허경은 보기 어렵기 때문에 인생길이 어려운 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