짝사랑/김종국
“할아버지!”
며칠 전 외손녀가 예고도 없이 아파트 현관문을 두들겼다.
“아니! 이놈은?”
그 목소리에 아내가 제일 먼저 뛰쳐나갔다. 문밖에 목소리지만 아내는 감으로 그가 성서에 사는 첫 손녀라는 것을 댓바람에 알아차린 것이다.
“할머니! 안녕하세요?”
내가 방문에 나서니 벌써 아내는 손녀를 맞이하였고, 손녀는 와락 아내의 치맛자락에 매달렸다.
“아버님! 저희들 왔어요.”
손녀에게 온 정신을 빼앗긴 나와 아내는 뒤늦게 사위와 딸아이가 함께 온 것을 알았다.
오늘이 일요일이라 했다.
나는 40년 동안 몸담았던 직장을 정년퇴직하고 이후 집에서 이런 저런 일로 소일을 하고 있는 터라, 평소 별로 날짜 개념이 없다. 그건 작년보다 금년이 더한 듯하다.
어느덧 칠순이 가까워 오는구나 생각하니 별로 신바람나는 일이 없고, 더더욱 요즘 같은 늦가을이고 보면 길가에 낙엽만 보아도 서글퍼진다. 이러할 때 손자들의 존재는 청량제가 될 수밖에 없었다.
아내는 사위가 왔으니 당연 나의 존재는 뒷전이고, 부엌 도마 놀리는 소리는 전에 없이 신바람이 나 있었다.
손녀는 이제 겨우 네 살배기다. 그러니 어린이집에 등록한 지도 불과 열 달 남짓하다.
“이놈, 오래만인데 할아버지가 돈 한 닢 줘야겠구나!”
하고 사위와 딸아이가 지켜보는 가운데 미리 준비한 시퍼런 만원짜리 지폐 한 장을 내밀었다. 그런데 이게 웬일인가, 여느 아이들 같으면 잠시 눈치를 살피다 얼른 받아들고 ‘감사합니다.’ 하고 고개를 꾸벅거리는 것이 당연지사인데, 이놈은 나를 빤히 쳐다보더니 두 손을 모아 오므리고는 입을 삐쭉이었다.
“할아버지! 엄마 주세요.”
난 순간 당황하였다.
“엄마라니?”
“그건 할아버지잖아요.”
“뭐! 할아버지?”
난 잠시 맹랑하게 대드는 손녀를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그러자 아까부터 이를 지켜보던 사위가 얼른 일어나 이를 수습하려 하였다.
“정아야! 엄마보다 할아버지가 더 좋아! 얼른 할아버지께 감사합니다라 해야지!”
하였으나 손녀는 뿌루퉁하였다.
“아냐! 엄마가 더 좋아!”
순간 손녀의 목소리는 한 톤 정도 높아졌다.
난 마음속으로 ‘이놈이 엄마를 정말 좋아하는 구나’하고 그를 빤히 바라보았다. 나의 머릿속에는 어느덧 내 어머니 모습으로 가득 찼다.
‘그래, 할아버지보다는 엄마가 좋지!’
순간 나는 철부지의 마음도 헤아리지 못하고, 만 원짜리 1장으로 환심을 쌓으려 했던 내가 부끄러웠다.
‘할아버지가 손자에게 배운다 하더니 정작 내가 그 꼴이구나.’
나는 문득 그랬던 내 손이 부끄러워 돌아서려는데,
“아버지! 철부지라 그래요. 돈도 모르면서 짝꿍에게 들은 소리로 오만 원짜리를 얘기하는 겁니다. 상관마세요.”
순간 난 현기증이 났다.
“오만원짜리를?…….”
“거기 신사임당이 있잖아요. 그 그림을 보고 얘들은 엄마라 한데요.”
‘정말 큰일이구나!’
난 한참동안 그를 바라보다가 다시 만 원짜리를 내밀었다.
“정아야! 여기 그림은 임금님이야, 그러니 엄마보다 더 훌륭하신 분이 아니냐?”
하며 손을 당겨 꼭 쥐어주었다.
“짝꿍이 임금님보다 엄마가 더 좋다 그랬어요.”
하며 내가 건넸던 만원짜리를 내 딸아이에게 건네주었다.
‘요즘 아이들이 배춧잎이다 하면 단풍님 주세요. 한다더니 허참, 웃어야 할지 울어야 할지…….’
난 잠시 잠깐 손녀가 내게 전한 그 ‘어머니“란 존재에서 나도 모르게 내 어머니를 그려 볼 수 있음에 만족하였다.
나는 어머니에게 둘도 없는 불효자이다. 그래서 동이 트는 새벽마다 내 어머니가 잠드신 동녘하늘을 바라보며 그리운 임의 모습을 그려본다. 내게 자그마한 효라도 있었더라면, 난 ‘불효자는 웁니다’란 그 노래를 즐겨 부를 수 있었을 터인데, 난 그 노래만도 부를 자격이 없다.
5년 전 어머니가 가시던 그날, 난 어머니의 영정 앞에서 ‘어머니 은혜’라는 노래를 부르며 가슴을 쳤었다. 함께 하였던 오남매 모두가 당신 앞에서의 그리움은 한결 같았다.
그날부터 난 어머니란 이름을 가슴으로만 부른다.
‘엄마!’
애기 때 배가 고파도, 다 큰 어른이 되어 돌부리에 넘어졌을 때도, 모두가 ‘엄마’라 소리치지만, 난 그 이름을 가슴으로만 그린다.
생전에 나를 위해 남겼었던 마지막 한마디,
‘넌 맏이라 엄마랑 같이 있으니, 내 죽으면 네가 제일 많이 울 거야!’
난 그때마다 핀잔만 주었으니, 그래서 난 속 시원히 당신을 그리워할 수도, 울 수도 없다.
그 이유는 그 때 내게 전해준 마지막 그 말씀이 모두가 내게는 사랑이었기 때문이다.
난 가끔씩 꿈속에 어머니를 만난다. 그 모습은 항상 40대 후반의 모습이었고, 내가 꿈속에서 바라보는 나의 모습은 언제나 중 3때인 15살의 모습이다.
당시는 정부에서 혼 분식을 장려하던 터라 점심도시락은 누구 할 것 없이 항상 보리쌀밥을 싸 올 수밖에 없었다.
당시 우리집은 형편이 넉넉지 못해 그러한 정부시책이 오히려 자연스럽기만 했다. 점심시간에 똑같은 도시락을 펼치는 나는 친구들과의 사이에 즐거운 시간이었기 때문이다.
그러던 어느 날, 난 친구들과 함께 여느 때와 같이 점심 도시락을 펼쳐 들고 시장한 나머지 푸짐하게 한 숟가락을 퍼 올리는 순간, 난 갑자기 도시락 뚜껑을 닫고 말았다. 함께 하였던 친구들이 ‘뭐야!’ 소리쳤지만 난 다시 도시락을 몰래 책보자기에 감추고 말았다. 그리고 나는 학교 수돗가에 뛰어가 미처 채우지 못한 시장기를 수돗물로 벌컥벌컥 채웠다.
‘아무도 이 사실을 모르겠지…….’
난 혼자 중얼거리며 점심시간이 끝날 무렵에 교실로 들어갔다.
‘만약 선생님이 이 사실을 아신다면 큰일인데…….’
난 수업시간 내내 전전긍긍하였다.
지금 생각하면 피식 웃을 일이지만, 당시는 그 사실이 나만의 비밀로, 들키면 혼쭐이 나거나 방가 후에 혼자 남아 반성문을 쓰고, 또 교실청소도 죄다 해야 하는 체벌을 받아야 했을 일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난, 배는 고팠지만 기분만은 좋았다. 그날 어머니가 내게 싸준 도시락은 하얀 쌀밥으로, 겉부분에만 보리밥을 발라 두었던 것이다. 내 어머니는 당신은 쌀 한 톨 구경하지 못해도 내겐 쌀밥을 먹이고 싶으셨던 모양이다. 알고 보니 매 끼니마다 한줌씩 절미를 모아 열흘에 한 번씩 내 도시락에 가족 몰래 쌀밥을 싸고 그 위에다 보리밥을 얇게 발라 두신 것이다.
지금도 가끔씩 꿈속에서 내 어머니가 몰래 내게 싸 주신 그 도시락을 까먹는 그때의 꿈을 꾼다.
‘임금님보다 엄마가 더 좋다는 손녀, 그래 내게도 임금님보다는 엄마가 더 좋지!’
난 문득 네 살배기 손녀 말을 떠올리며 ‘할애비가 손자에게 배우는구나!’하였다.
물론 그와 나의 견해는 동상이몽이었지만, 어머니란 존재에는 동병상련이었을 터...,
난 그로부터 왜 우리나라가 지폐의 최고액면에 신사임당 즉, 어머니의 얼굴을 심어 놓았는가에 대하여 생각해 보았다.
오만원권 지폐가 나오기 전부터 그 지폐의 상징적 존재를 누구로 할 것인가 대하여 논란이 많았었다. 하지만 결과는 별 저항 없이 신사임당이 선택되었다. 여기서 신사임당에 대하여 그가 조선 시대의 학자 율곡 이이(李珥)의 어머니로, 또 그간 단순 한 시대에 문장과 자수, 그리고 그림에 뛰어난 재능이 있는 사람이라 그를 선택하였는가 하는 것이다. 하지만 여기에는 이후 갑론을박 없이 많은 사람들로부터 사랑 받는 지폐로 인정받고 있다.
그 이유는 무엇일까? 그가 여성이라서? 아니면 최고 액면의 지폐라서? 하지만 내가 내린 결론은 간단하다. 이는 단순히 그가 우리가 그리워하는 어머니란 존재 중에 한 사람이었기 때문이다.
어머니는 아들 도시락 쌀밥 위에 몰래 보리밥을 발라주신 나의 어머니나, 희대의 학자를 길러낸 신사임당이나, 파계의 굴레를 괴로워하며 홀로 하늘을 떠받칠 아들을 키워낸 설총선생의 어머니나, 어두운 밤에 떡판으로 자식을 훈도한 한석봉선생의 어머니, 그리고 딸이 사는 마을을 내려다보며 밤낮으로 딸 걱정에 죽어 할미꽃이 되었다는 설화 속의 어머니! 그 어느 한 사람도 우리의 ‘어머니’가 아닐 수 없다.
동기야 어떻든 내게 잠시나마 이러한 깨우침을 준 내 손녀가 너무나 귀여웠다.
‘그래!’
잠시 후 나는 안주머니에 꼭꼭 감춰 두었던 지갑을 다시 열어 스스럼없이 오만원짜리 한 장을 꺼내었다. 그리고 어머니 모습이 그려져 있는 지폐를 손녀 손에다 꼭 쥐어 주었다.
“엄마다. 엄마!”
내 손녀는 내가 내민 엄마가 그려진 그 돈을 치켜들고 깡충깡충 뛰면서 어쩔 줄 몰랐다.
‘그래, 너도 언젠가 엄마가 되겠지…….’
난 그의 모습에서 그가 자라 훌륭한 여성이 되고, 또 엄마가 되는 모습을 그려보았다. 그리고 비록 짝사랑이라 할지라도 내가 사랑하는 세상의 모든 어머니들의 한량없는 자비를 생각해 본다.♣
첫댓글 ㅠㅠㅠ~
조손이 동락이라 오가는 정이,
호경스런 몸짓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