쓰레기산 이제 그만!
삼푸 절반, 우유.세제 다수
큰 비닐에 다시 넣어 묶음 판매
일부제품은 플라스틱 박스 포장도
정부 '재포장 금지法 ' 만들었지만
예외규정 합의 안돼 시행 미뤄
3개를 한 묶음으로 포장해 5% 할인을 붙인 로션, 10개 값에 11개를 준다고 써붙인 마스크 팩 묶음. 1일 서울 중구의 한 대형 마트에선 입구에서부터 이런 '미끼 상품'이 줄지어 전시돼 있었다. 매대에 놓인 상품들은 모두 1차 포장이 된 제품을 다시 비닐 봉투에 넣은 형태였다. 동행한 자원순환사회연대 김태희 정책국장은 "3개 살 때 5% 할인을 해준다면 그냥 소비자가 3개를 집어서 계산대로 가면 되는데, 굳이 비닐 포장을 또 할 필요가 있느냐'며 "관성적으로 '이렇게 해야 많이 팔린다'는 생각 때문에 이중 포장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라고 했다.
코로나 여파로 플라스틱 폐기물이 급증하는 가운데 불필요한 재포장이 여전한 것으로 나타났다. 지난 2018년 '쓰레기 대란'이후 플라스틱 컵이나 비닐 포장지 사용을 줄이자는 움직임은 활발해졌지만, 재포장 문제는 사각지대에 놓여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샴푸 2개 중 1개는 재포장 판촉
이날 방문한 마트의 세제.화장품. 유제품. 과자 코너 곳곳에서 재포장 제품을 쉽게 찾아볼 수 있었다. 3가지 종류 과자를 큰 비닐봉투에 넣어 한 묶음으로 팔거나, 우유2팩을 비닐로 묶어 판매하는 식이었다. 이런 묶음 상품은 유제품.과자 코너에 많았다.
세제와 화장품 코너도 마찬가지였다.
20가지 종류의 샴푸 중 절반이 2개 묶음을 비닐로 포장해 판매하는 중이었고, 헤어 에센스 제품은 총 26종 가운데 18종이 투명한 플라스틱 박스로 이중 포장되어 있었다. 세제의 경우에도 2개를 한 묶음으로 팔기 위해 비닐로 감싼 제품이 매장 한가운데 가장 잘 보이는 곳에서 '세일 행사' 간판을 달고 팔리고 있었다. 마트에 입점해 있는 15개 화장품 매장 중 재포장 제품을 팔지 않는 곳은 단 한 곳도 없었다. 김태희 국장은 "관심을 가지고 보면 얼마나 쓸데없는 포장이 많은지 쉽게 알 수 있다"며 "이런 재포장 행위는 별도의 포장 규제 적용을 받지 않아 현황 파악도 어렵다"고 했다.
◆'재포장 금지법' 세부사항은 아직 미정
재포장 관련해서 규제가 없는 것은 아니다. 환경부는 2019년 1월 '제품의 포장재질. 포장방법에 관한 기준 등에 관한 규칙'에 재포장을 금지하는 내용을 넣어 입법예고했고, 올 1월에 공표했다. 해당 법에는 "33㎡이상 매장에서 제품을 판매하는 자, 제품을 제조,수입하는 자 모두 생산된 제품을 재포장할 수 없다"는 조항이 들어가 있다.
문제는 예외규정이다. "재포장이 불가피한 경우로 환경부 장관이 고시하는 사유에 해당하는 경우는 제외한다"고 되어있는데, 관련 고시가 만들어지지 않았다. 환경부는 당초 지난 7월부터 규칙을 시행하려고 했지만 고시에 대한 합의가 이루어지지 않아 내년으로 시행을 미뤘다. 제조업계에서는 "리필용 면도날, 칫솔, 소포장 과자 등 작은 제품은 반드시 재포장이 필요한데 어디까지 허용되는 건지 불분명하다"고 항의하고 있다. 이 규칙이 시행되면 '5개 묶음 라면'과 같은 할인이 불가능해지는 것이 아니냐는 우려도 나왔다.
◆소비자가 재포장 금지 공감해야
전문가들은 규제를 명확하게 하는 동시에 소비자들의 공감을 이끌어내는 것이 중요하다고 지적한다. 홍수열 자원순환사회경제연구소장은 "대표적인 재활용 촉진 정책인 '생산자책임재활용제도(EPR)'도 기업들이 '처리 비용만 내면된다'는 생각으로 이용하기 시작하면서 부터 정책 효과가 약해진 것처럼 포장 규제도 '돈을 더 내더라도 재포장,과대 포장이 제품 판매에 이득'이라는 인식이 퍼지면 아루런 효과를 낼 수 없다"고 했다. 그는 "소비자들이 재포장, 과대포장 제품을 선호하지 않는 태도를 보이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출처 : 조선일보 2020년 9월 3일 김효인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