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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시떨기나무 불꽃 가운데 나타나신 하나님
사도행전 7:30~34
우리가 지난 주일에 살펴본 바 있는 대로 모세가 시내 광야에 미디안 제사장 이드로의 집에서 그의 딸 십보라와 결혼하여 두 아들을 기르면서 광야에서 사십년을 지낸 후 나이 팔십 세에 하나님께서 모세에게 찾아오셨습니다. 그가 자주 양떼를 몰고 가곤 하던 시내산 자락 밑 가시떨기 나무에 불꽃 가운데 하나님께서 찾아오신 것입니다. 그 불꽃이 나무에 붙었는데 금방 그 나무가 다 타버리고 재만 남아야 하는데, 그 불이 붙었으나 나무가 계속해서 타지 아니하는 것이었습니다. 그것을 본 모세가 이상히 여겨서 “어찌하여 떨기나무에 불이 붙었는데 타지 아니하는고?”하고 생각하고 그 나무에 가까이 갔더니 떨기나무 불꽃 가운데 모세를 부르는 음성이 들려왔습니다. 30절에는 ‘천사’라고 되어 있는데, 출애굽기 3장 2절 말씀에서는 ‘여호와의 사자’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이어진 출애굽기 3장 4절에서는
“여호와께서 그가 보려고 돌이켜 오는 것을 보신지라 하나님이 떨기나무 가운데서 그를 불러 이르시되 모세야 모세야 하시매 그가 이르되 내가 여기 있나이다”
라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여기에서는 여호와의 사자 대신에 여호와가 불꽃 가운데 모세를 보시고 부르신 것으로 나옵니다. 그래서 불꽃 가운데 모세를 만난 분은 단지 하나님의 말씀을 전달해주는 천사 중 하나가 아니요 특별한 분 곧 구약 시대에 하나님의 택한 백성들 가운데 종종 찾아오신 여호와 하나님과 동일하신 그 사자 곧 그리스도라고 보아야 합니다. 그래서 친히 그가 자기를 모세에게 소개할 때에 “나는 여호와라.”고 소개하신 것입니다.
그렇다면 가시떨기나무에 불꽃 가운데 나타나신 하나님은 자기를 누구라고 소개했는지를 함께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첫째로, 아브라함의 하나님, 이삭의 하나님, 야곱의 하나님이십니다.
오늘 본문 말씀 사도행전 7장 31절 말씀을 함께 읽겠습니다.
“모세가 그 광경을 보고 놀랍게 여겨 알아보려고 가까이 가니 주의 소리가 있어 나는 네 조상의 하나님 즉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의 하나님이라 하신대 모세가 무서워 감히 바라보지 못하더라”
여기서 하나님은 자기를 모세의 조상의 하나님 즉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의 하나님이라고 소개하고 있습니다. 이는 출애굽기 3장 6절에
“나는 네 조상의 하나님이니 아브라함의 하나님, 이삭의 하나님, 야곱의 하나님이니라”
고 하신 말씀을 일컫는 말씀입니다. 하나님의 이름 중에 이 이름은 자주 언급되는 이름입니다. 출애굽기 3:15 말씀에서도 이르기를
“하나님이 또 모세에게 이르시되 너는 이스라엘 자손에게 이같이 이르기를 너희 조상의 하나님 여호와 곧 아브라함의 하나님, 이삭의 하나님, 야곱의 하나님께서 나를 너희에게 보내셨다 하라 이는 나의 영원한 이름이요 대대로 기억할 나의 칭호니라”
고 하였습니다.
또한 열왕기상 18장 36,37절에 보면, 선지자 엘리야가 갈멜산에서 바알 선지자들과 영적 대결을 벌일 때 하늘에서 불이 내려 제단의 제물을 불로 사르는 표적을 하나님께 구할 때에 이렇게 기도하였습니다.
“저녁 소제 드릴 때에 이르러 선지자 엘리야가 나아가서 말하되 아브라함과 이삭과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여 주께서 이스라엘 중에서 하나님이신 것과 내가 주의 종인 것과 내가 주의 말씀대로 이 모든 일을 행하는 것을 오늘 알게 하옵소서 여호와여 내게 응답하옵소서 내게 응답하옵소서 이 백성에게 주 여호와는 하나님이신 것과 주는 그들의 마음을 되돌이키심을 알게 하옵소서”
이렇듯 하나님은 자기를 이스라엘의 조상의 하나님 곧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의 하나님으로 소개하는데 그 이름에 담긴 뜻은 어떤 것일까요?
먼저, 이 이름에는 자기 백성을 택정하시는 하나님의 의미가 담겨 있습니다.
하나님은 세상의 수많은 인종과 민족과 백성들이 있었지만 그 가운데 셈 족속의 후손 중에서 아브라함을 택정하셔서 자기를 나타내셨습니다. 그를 택정하여 갈대아 우르에서 불러내어 약속의 땅 가나안을 기업으로 주시기로 하시고 자녀도 없는 그에게 그 후손을 하늘의 별과 같이 번성하게 하시겠다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리하여 나이 백세에 이삭을 그 아내 사라로부터 태어나게 하셨으니, 첩 하갈의 아들 이스마엘이 있었지만 그의 백성은 이삭의 후손이 되겠다고 택정하셨습니다. 그리고 이삭의 쌍둥이 아들 에서와 야곱이 있었는데, 하나님은 이삭의 아내 리브가가 뱃속에 쌍둥이 아들들을 잉태했을 때에 그들이 뱃속에서 무슨 선을 행하거나 악을 행하기도 전에 미리 예고하시기를 큰 자가 어린 자를 섬기리라고 예고하심으로써 큰 아들 에서 대신에 둘째 아들 야곱을 하나님의 언약 백성으로 택하심을 증거하셨습니다. 그 예언대로 큰 아들 에서는 믿음이 없어 사냥만 즐기고 부모 허락도 받지 않고 불신앙적인 헷 여인들을 아내로 맞아들였으나 둘째 아들 야곱은 거룩한 욕심을 내어 형의 장자권을 차지하려고 하였으며 여호와의 축복을 받고자 아버지를 속여 축복 기도를 받아내기까지 하였습니다. 그리하여 당시 세상 사람들이 수많은 우상들을 섬기고 잡신들을 믿었으나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은 오직 여호와 하나님 한 분만을 믿고 섬겼습니다. 그들이 하나님을 섬긴 것은 먼저 하나님께서 그들을 택정하여 불러내어 자기를 그들에게 계시해주셨기 때문입니다.
이처럼 하나님은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을 만세 전에 택정하여 세상 사람들 가운데 구별하여 불러내어 자기 백성으로 삼으신 것처럼, 지금도 세상의 수많은 사람들 중에서 우리를 구별하여 불러내어 자기 백성으로 삼으신 것입니다. 요한복음 15:16 말씀에,
“너희가 나를 택한 것이 아니요 내가 너희를 택하여 세웠나니”
라고 하였으며, 요한일서 4:19 말씀에서도 이르기를
“우리가 사랑함은 그가 먼저 우리를 사랑하셨음이라”
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래서 에베소서 1:4,5 말씀에 이르기를
“곧 창세 전에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를 택하사 우리로 사랑 안에서 그 앞에 거룩하고 흠이 없게 하시려고 그 기쁘신 뜻대로 우리를 예정하사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자기의 아들들이 되게 하셨으니”
라고 하였습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같은 뱃속에서 태어난 한 혈육인 형제 자매라도 우리는 예수님을 믿게 되어 지금까지 오게 되었으나, 한번씩 명절 때에 우리가 사랑하는 형제 자매를 만나서 이 좋으신 예수님을 함께 믿고 함께 천국 백성이 되자는 말만 꺼내면 금새 얼굴을 찌뿌리고 말이 험해지고 끝내는 다툼이 일어나거나 자리를 박차고 일어나 나가곤 하지 않습니까? 그래서 믿음을 갖는 것은 사람의 힘으로 되는 것이 아니요 만세전에 택정하신 하나님의 영원하신 예정을 따라 전적인 하나님의 은혜로 되는 것입니다.
아브라함의 하나님, 이삭의 하나님, 야곱의 하나님은 자기 백성을 그의 주권적인 뜻을 따라 택하시고 부르시는 하나님이신 것입니다. 우리가 그의 영원전부터 택정하신 뜻에 따라 그의 백성이 되었으니, 우리 각 사람을 향한 하나님의 사랑은 영원한 사랑입니다. 우리를 사랑하시되 우리가 그를 알기 전부터 영원전부터 우리를 사랑하시고 택정하신 하나님을 찬양합니다. 할렐루야.
또한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의 하나님은 자기 백성과 영원한 생명을 함께 나누는 하나님이십니다.
하나님은 영원하신 하나님, 영존하시는 하나님이십니다. 출애굽기 3장 13절 이하에 보면 가시떨기나무 불꽃 가운데 나타나신 하나님을 향하여 모세가 애굽에 가서 동족 이스라엘 자손들에게 가서 하나님의 이름이 무엇이냐고 물으면 뭐라고 대답할지를 물었습니다. 그 때 모세에게 이르신 말씀이 무엇이냐면
“스스로 있는 자가 나를 너희에게 보내셨다 하라 너는 이스라엘 자손에게 이같이 이르기를 너희 조상의 하나님, 이삭의 하나님, 야곱의 하나님께서 나를 너희에게 보내셨다 하라 이는 나의 영원한 이름이요 대대로 기억할 나의 칭호니라”
고 하셨습니다. 하나님은 여기서 자기를 ‘스스로 있는 자’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이 스스로 있는 자라는 뜻을 가진 이름이 ‘여호와’라는 이름 안에 담겨 있습니다. 누가 존재하게 하여 존재하게 된 피조물로서의 신이 아니라 자존하신 분이라는 것입니다. 영원전부터 하나님으로 계신 자라는 뜻입니다. 모든 만물을 존재하게 하는 시작점이신 분이요 그가 모든 만물보다 먼저 계신 자요 세상의 끝날이 와도 영원히 그대로 존재하시는 분이라는 뜻입니다. 그는 시작도 없고 끝도 없으신 분으로서, 처음과 마지막이 되신 분이십니다. 그러므로 그는 모든 생명의 원천이십니다.
그리하여 하나님은 아브라함, 이삭, 야곱은 자기의 백성으로 택하시어 그들의 하나님이 되셨기에 자기 백성들을 영원히 살리시고 그들의 영원한 하나님이 되십니다. 그리하여 그의 백성들은 이 땅에서 육체를 가지고 살아 있을 때만 그들의 하나님이 아닙니다. 그들은 육체의 생명이 이 지상에서 끝이 나고 그들의 육체가 한 줌 흙으로 돌아간 후에라도 그들의 영혼은 그들을 자기 백성으로 삼으신 하나님 앞으로 올라가서 그 앞에서 영원히 살게 되는 것입니다.
이 사실에 대하여는 예수님께서 육신으로 이 땅에 계실 때에 죽은 자의 부활과 내세의 존재를 부인하는 사두개파 사람들과 성전에서 논쟁하실 때에 친히 알려주신 바 있습니다. 마태복음 22장 29절 이하에 보면 예수님께서 사두개인들에게 이르시기를
“너희가 성경도, 하나님의 능력도 알지 못하는 고로 오해하였도다 부활 때에는 장가도 가지 아니하고 시집도 아니 가고 하늘에 있는 천사들과 같으니라 죽은 자의 부활을 논할진대 하나님이 너희에게 말씀하신 바 나는 아브라함의 하나님이요 이삭의 하나님이요 야곱의 하나님이로라 하신 것을 읽어보지 못하였느냐 하나님은 죽은 자의 하나님이 아니요 살아 있는 자의 하나님이시니라”
하나님께서 모세에게 자기를 아브라함의 하나님이요 이삭의 하나님이요 야곱의 하나님이시라고 소개하셨는데 이는 그들의 조상 아브라함이나 이삭이나 야곱이 현재 살아 있다는 의미를 갖고 있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스스로 있는 자로서 모든 생명의 원천이시며 영원전부터 계시며 영원 끝까지 항상 살아 계신 분이신데, 그가 자기 백성들을 이 땅에서 육체로 살아 있을 때에만 하나님이 아니요 그들이 땅에서 육체가 죽고 썩어 흙으로 돌아간 후에도 그 영혼들은 살아서 하나님 앞에 가서 하나님 앞에서 천사들처럼 영원히 죽지 않고 항상 살아 있다는 것입니다. 지옥은 영원히 그 영혼이 계속 고통을 받으며 살아 있는 둘째 사망의 장소라고 한다면, 이에 반하여 천국은 영원히 하나님의 자녀로서 행복과 기쁨과 생명으로 충만한 가운데 영원히 하나님과 함께 빛과 영광 중에 살아가는 장소인 것입니다.
그러므로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의 하나님은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영생을 얻은 신약 시대의 언약 백성들인 우리에게도 동일한 하나님이시기에, 하나님 백성인 우리가 육체의 생명이 끝나는 죽음을 맞이하여 우리 육체는 썩어 한 줌 재로 변할지라도 우리 영혼은 자존하시는 하나님 앞으로 천사들의 회위 가운데 올라가서 하나님 앞에서 영원히 영광과 행복과 생명 가운데 살아가게 될 것입니다. 그 천국에서 우리는 우리 구주 예수 그리스도를 뵙게 될 것입니다. 또한 앞서간 믿음의 조상들을 만나게 될 것이니, 아담과 하와도 보게 될 것이요 그 아들 첫 순교자 아벨과 하나님과 동행하였던 에녹도 볼 것이요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과 요셉도 볼 것이요 사무엘과 다윗과 엘리야와 엘리사와 예레미야와 다니엘과 세례 요한과 여러 사도들도 보게 될 것입니다. 또한 앞서 세상을 떠나가신 우리 교회의 여러 성도님들도 거기서 뵙게 될 것입니다.
그러므로 아브라함의 하나님, 이삭의 하나님, 야곱의 하나님은 택하신 자기 백성들을 영원히 살리시는 하나님이신 고로, 우리도 자존하시는 하나님 영원 전부터 계시며 영원까지 계시는 영존하시는 하나님이 주시는 생명 곧 영생을 얻는 자임을 잊지 맙시다. 그래서 우리가 장차 육체가 죽어 썩은 뒤에라도 하나님과 더불어 믿음의 선배들과 더불어 천사들과 함께 영원히 살게 될 것이라는 이 산 소망과 확고한 믿음을 가지고 이 땅에서 날마다 기뻐하며 담대하게 살아가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할렐루야.
둘째로, 거룩하신 하나님이십니다.
오늘 본문 말씀 중에 사도행전 7장 33절을 함께 읽겠습니다.
“주께서 이르시되 네 발의 신을 벗으라 네가 서 있는 곳은 거룩한 땅이니라”
출애굽기 3장에 보면, 모세가 시내산 기슭의 가시떨기나무의 불꽃 가운데 계신 하나님 앞에 가까이 다가갔을 때에 하나님께서 “모세야 모세야”하고 그를 불렀습니다. 그 말씀을 듣자 모세가 깜짝 놀라서 “내가 여기 있나이다”라고 대답하였습니다. 그 때에 하나님께서 모세에게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이리로 가까이 오지 말라 네가 선 곳은 거룩한 땅이니 네 발에서 신을 벗으라”
스데반 집사님이 산헤드린 공회 앞에서 이러한 하나님과 모세의 첫 만남의 사건 때에 하나님께서 모세에게 신발을 벗으라고 요구한 이 내용을 기록한 것은 하나님의 거룩성을 일깨워주기 위함입니다. 하나님은 거룩하신 분입니다. 그래서 그를 가까이하고자 하는 자는 반드시 발에서 신을 벗어야 합니다. 신발이란 이 지상에서 일상 생활을 위하여 우리가 발을 보호하고자 착용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세상의 일상적인 삶을 대변합니다. 그 신을 신은 채 하나님 앞에 그대로 나선다는 것은 거룩하신 하나님을 무시하는 것입니다. 마치 지상의 왕이나 대통령이 불렀을 때에 집에서 아무렇게나 입는 몸배 바지나 잠옷 바람으로 임금 앞에 나가는 것과 같습니다. 하나님께서 신을 벗으라고 요구하시는 것은 하나님 앞에 자기 마음을 구별하여 두렵고 떨리는 마음을 가지고 나오라는 뜻입니다. 하나님 앞에 나아올 때는 하나님을 하나님으로 알고서 두렵고 떨리는 마음을 가지고 하나님을 사랑하여 마음을 굽혀 경배하라는 뜻인 것입니다.
그래서 시편 2:11 말씀에 이르기를
“여호와를 경외함으로 섬기고 떨며 즐거워할지어다”
라고 하였습니다. 전도서 5:1,2 말씀에도 이르기를
“너는 하나님의 집에 들어갈 때에 네 발을 삼갈지어다 가까이 하여 말씀을 듣는 것이 우매한 자들이 제물 드리는 것보다 나으니 그들은 악을 행하면서도 깨닫지 못함이니라 너는 하나님 앞에서 함부로 입을 열지 말며 급한 마음으로 말을 내지 말라 하나님은 하늘에 계시고 너는 땅에 있음이니라 그런즉 마땅히 말을 적게 할 것이니라”
고 하였습니다. 모세에게 “네 발의 신을 벗으라 네가 서 있는 곳은 거룩한 땅이니라”고 하신 하나님의 말씀은 이처럼 하나님의 거룩함과 그의 고결함을 기억하고 자기를 낮추라는 뜻입니다. “하나님은 하늘에 계시고 너는 땅에 있음을 기억하라”는 뜻입니다. 하나님을 세상 사람들이 섬기는 우상과 잡신과 같은 동류로 생각지 말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모든 만물을 말씀으로 창조하신 자요 그의 뜻대로 나라와 민족과 가문과 개인의 흥망성쇠와 길흉화복을 주관하시는 자이심을 알고 그를 섬기고자 나아갈 때에는 “네 발에서 신을 벗으라”는 하나님의 말씀의 뜻을 새기고 행하여야 하겠습니다.
발에서 신을 벗는다는 뜻에는 삶의 주인이신 하나님 앞에 자기는 하나님의 종으로서 언제든지 그 뜻에 순종한다는 의미를 담고 있습니다. 그래서 아브라함이 헤브론에 있을 때에 우리 주님께서 천사 두 명과 함께 대낮에 아브라함의 장막에 찾아오셨을 때에 아브라함의 나이가 99세였던 나이 많은 늙은이였으나 달려나가 주님과 두 천사를 모셔들이고 상수리 나무 아래에 상을 차리고 음식을 장만하여 대접할 때에 그 옆에 서서 연신 시중을 들어드렸던 것처럼 우리들은 하나님을 섬길 때 시중드는 아브라함과 같은 마음의 자세를 가지고 섬겨야 하겠습니다. 하나님 앞에 기도할 때에도 아브라함이 조카 롯을 위하여 간구할 때에 자기를 티끌과 같이 여기며 여섯 번에 걸쳐 겸손하게 자기를 낮춰 간절히 기도한 것처럼 우리도 하나님 앞에 자신을 티끌처럼 여기며 겸손히 기도해야 하겠습니다. 언제든지 무엇이든지 명하시면 언제든지 따지지 않고 그 말씀대로 순종하는 마음을 가지고 주님 앞에 하명을 기다리며 서 있어야 하겠습니다. 또한 하나님께서 어떠한 말씀을 하시며 어떠한 언약을 주시든지 그 말씀이 자기 삶에 그대로 이루어질 것을 믿는 마음으로 하나님을 섬기는 자가 되어야 하겠습니다.
참으로 지극히 거룩하신 존귀하신 하나님 앞에서 항상 우리의 마음의 신발을 벗고서 하나님 앞에서 늘 겸손하고 순종하며 충성스럽게 서 있는 자로 늘 섬기는 복스러운 성도님들이 다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셋째로, 항상 자기 백성을 위하여 일하시며 구원하시는 하나님이십니다.
오늘 본문 말씀 중에서 34절을 함께 읽겠습니다.
“내 백성이 애굽에서 괴로움 받음을 내가 확실히 보고 그 탄식하는 소리를 듣고 그들을 구원하려고 내려왔노니 이제 내가 너를 애굽으로 보내리라 하시니라”
스데반 집사가 산헤드린 공회 앞에서 언급한 이 말씀은 출애굽기 3장 7절 이하의 말씀을 요약한 말씀입니다. 거기에 보면 이렇게 기록되어 있습니다.
“여호와께서 이르시되 내가 애굽에 있는 내 백성의 고통을 분명히 보고 그들이 그들의 감독자로 말미암아 부르짖음을 듣고 그 근심을 알고 내가 내려가서 그들을 애굽인의 손에서 건져내고 그들을 그 땅에서 인도하여 아름답고 광대한 땅, 젖과 꿀이 흐르는 땅 곧 가나안 족속, 헷 족속, 아모리 족속, 브리스 족속, 히위 족속, 여부스 족속의 지방에 데려가려 하노라 이제 가라 이스라엘 자손의 부르짖음이 내게 달하고 애굽 사람이 그들을 괴롭히는 학대도 내가 보았으니 이제 내가 너를 바로에게 보내어 너에게 내 백성 이스라엘 자손을 애굽에서 인도하여 내게 하리라”
이러한 하나님의 말씀 속에서는 하나님께서 자기 백성을 애굽의 노예 생활의 학정으로부터 구원하시려는 하나님의 구원 행동이 잘 표현되어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자기 백성을 위하여 행동하시는 모습이 다양한 언어로 표현되어 있습니다. 그는 자기 백성의 고통을 보고 계십니다. 그들의 부르짖음을 듣고 계십니다. 하나님은 자기 백성의 마음의 근심을 알고 계십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친히 애굽 땅으로 내려가십니다. 그래서 그들을 애굽인의 손에서 건져내시겠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들을 인도하여 약속의 땅 가나안으로 인도하여 데려가겠다는 것입니다. 이를 위하여 모세를 애굽 왕 바로에게 보내시어 자기 백성을 애굽에서 인도하여 끌고 나오시게 하겠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신 그대로 행동하시어 마침내 애굽 땅에서 자기 백성 이스라엘을 애굽 왕 바로의 학정으로부터 구출하여 약속의 땅 가나안으로 인도하여 들이셨습니다.
이렇듯 가시떨기나무 불꽃 가운데 나타나신 하나님은 자기 백성을 구원하시는 하나님으로 자기를 계시하시고 계십니다. 그 하나님은 동일하신 하나님으로서 지금도 자기 백성들인 우리를 위하여 일하시는 분이십니다. 그는 자기 백성들인 우리를 고아처럼 버려두지 않으십니다. 인간의 역사 속에 멀리 떨어져서 멀리서 수수방관하며 자고 졸고 계신 하나님이 아닙니다. 친히 자기 백성들의 삶에 깊은 관심을 갖고 지켜보고 계시며 자기 백성들을 돕고 구원하기 위하여 인간의 역사 속에 뛰어들어 오시며 행동하시는 하나님이신 것입니다.
이 땅에 오셨을 때에 우리 주님께서도 안식일까지 쉬지 않으시고 병을 고치시며 말씀을 가르치시면서 바리새인들이 정해놓은 장로들의 유전을 어기면서까지 일하셨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을 향하여 바리새인들이 안식일을 범한다고 비난하자 예수님은 친히 일러 답변하시기를
“내 아버지께서 이제까지 일하시니 나도 일한다”(요한복음 5:17)
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우리 주님께서도 자기 백성들을 구원하시고 건지시려고 이 땅에 친히 찾아오셨으며, 그들의 모든 고통과 눈물과 수고의 모습을 보셨으며 그들의 한숨과 기도를 들으셨으며 그들을 위하여 친히 병을 고치며 귀신을 쫓아주시며 기적으로 빵을 만들어서 오천 명씩이나 광야에서 먹이셨으며, 풍랑으로 배가 뒤집힐 위기를 만난 자들을 살리시려고 밤중에 풍랑이는 갈릴리 바다를 발로 밟고 달려오셔서 건져주셨습니다. 또한 죄와 허물과 저주와 사망과 영벌로 영원한 저주 아래 있는 모든 인생들을 살리시려고 친히 십자가에 매달려 대신 죽으시기까지 구원의 일을 다하셨습니다. 죽으신 후에 부활하신 후에도 주님은 사십 일 동안 제자들에게 자주 나타나셔서 가르치시고 승천하신 후에도 곧장 자기와 동일한 성령을 주님의 백성들을 돕도록 보내주셨으며 하나님 보좌 우편에 앉으신 뒤에도 자기 백성들을 위하여 지금도 쉬지 않고 기도하고 계십니다.
예수님의 영, 성령님께서도 주님의 보내심을 받아 교회와 성도들에게 오셔서 지금도 우리 안에 계시면서 우리를 죄악에서 벗어나도록 육신의 소욕을 이기도록 도와주시며, 하나님의 뜻대로 기도하도록 우리의 기도를 도와주시며, 주님 나라에 들어가는 그 날까지 우리를 떠나지 아니하시며 우리를 위하여 근심하시며 우리가 천국에 들어가기까지 마귀와 세상으로부터 우리를 보호하시며 인도하시며 늘 열심히 일하심으로 우리의 영혼을 끝까지 책임져 주십니다. 우리의 생활 속에서도 고난과 역경 중에도 우리와 함께하시면서도 시험 당할 때에 피할 길을 주시며 천사를 보내시어 우리를 건져주시곤 하십니다. 사도 베드로가 감옥에 갇혀 내일이면 끌려나가 사형당할 때에도 천사를 보내어 감옥에서 구출해내주었고, 사도 바울이 탄 배가 유라굴로 폭풍으로 열나흘 동안 지중해를 떠돌 때에도 사도 바울을 지켜주시고 그에게 말씀해주시어 사도 바울을 통하여 그 배에 탄 이백칠십육 명을 다 살려 주시기도 하셨습니다.
이처럼 우리가 믿는 바 하나님은 살아계셔서 지금도 자기 백성을 위하여 능력으로 일하시는 분이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믿음의 조상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의 하나님으로 자기를 계시하시고 아브라함의 모든 순례 길과 이삭의 여정과 야곱의 오랜 방랑의 여정에서도 함께하시며 그들을 끝까지 보호하시며 고난을 극복하게 하시고 복을 주시며 그 언약을 그 후손들에게 성취하시며 애굽에서 종살이하던 소망 없는 삶을 살던 이스라엘 백성들에게도 친히 찾아와주셔서 모세를 통하여 구출해내신 그 하나님, 베드로와 바울과 초대 교회 성도들과 함께하셨던 그 하나님이 지금 우리와도 동일하신 하나님이심을 항상 기억합시다.
지금도 하나님은 그의 백성인 우리들을 보고 계시며, 우리의 모든 기도와 부르짖음을 낱낱이 듣고 계시며, 고아처럼 홀로 애쓰게 버려두지 않으시고 우리에게 찾아오시며 우리를 도우시려고 능력의 팔을 내미시며 우리를 인도하시고 지켜주시고 끝까지 책임져 주시는 좋으신 하나님이심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그래서 지금도 역사하시는 우리 좋으신 하나님을 신뢰하고 늘 우리의 모든 것들을 맡기며 아무 일에도 두려워하지 말고 염려하지 맙시다. 세상이 소란스럽고 우리 삶에 이런 저런 환난과 역경이 닥치고 마음에 근심과 쓰라림과 슬픔과 외로움이 찾아올지라도 하나님은 우리 마음을 모르지 않으시고 다 아십니다. 그러므로 큰 재난과 역경으로 인하여 빠져나오지 못할 것 같은 수렁에 갇혀 있을지라도 낙망하지 마십시오. 애굽에서 자기 백성을 그 큰 권능으로 구출하시고 광야의 그 무수한 역경 중에도 자기 백성을 끝까지 돌보아주신 하나님이 우리 하나님이십니다. 우리의 대적들이 많아도 두려워 마십시오. 애굽 왕 바로의 군대와 가나안의 수많은 적군들을 다 물리쳐주시고 주의 백성들로 그 땅을 차지하게 하신 하나님이 우리 하나님이십니다. 그러므로 두려워 말고 담대하시기 바랍니다. 그러므로 살아 계셔서 지금도 자기 백성을 위하여 부지런히 큰 능력으로 일하시는 하나님을 모시고 날마다 기뻐하며 감사하며 살아가는 주님의 백성들이 다 되시기를 바랍니다.
말씀을 맺겠습니다. 하나님은 조상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의 하나님이십니다. 자기 백성을 창세 전에 택정하시고 부르시는 하나님이십니다. 또한 영원한 자존자이신 하나님이시기에 자기 백성들도 이 땅에서만 하나님의 백성이 아니라 육체가 죽어서도 영존하시는 하나님과 더불어 영원한 생명을 누리는 복을 받게 됩니다. 또한 하나님은 거룩하신 하나님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그 앞에서 발에서 신을 벗어야 합니다. 하나님은 하늘에 계시고 우리는 땅에 있음을 기억하면서 늘 경외함으로 떨며 사랑하여 섬기는 자가 되어야 하겠습니다. 또한 하나님은 자기 백성을 위하여 늘 그의 눈과 귀이 열려 있으며 그의 손과 발이 항상 달려와서 돕기에 부지런하십니다. 그는 자기 백성을 위하여 오늘도 일하시는 하나님이십니다. 그러기에 주의 백성들 지금도 항상 돕고 계시므로 우리는 어떤 상황에서도 두려워하거나 낙심할 것이 전혀 없습니다. 그는 우리의 영혼도 끝까지 보호해주시고 저 하늘의 가나안 땅까지 우리를 인도해들이실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들은 이 좋으신 살아계신 하나님의 백성된 자로서 모든 마음을 다하여 하나님만 사랑하고 그만을 오직 섬깁시다. 세상의 온갖 우상과 잡신과 어떤 대단한 위인들도 믿을 존재가 아님을 기억합시다. 오직 이 땅에서와 영원의 나라까지 우리를 살리시고 보호해주시고 지켜주시고 참된 행복과 만족을 주실 분은 하나님 한분뿐이니, 영원히 하나님 한분만을 생명을 다하여 사랑하며 즐거이 섬기는 주의 백성들이 다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