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에게 1936년 베를린 올림픽은 각별하다. 손기정 선수가 마라톤 대회에서 2시간29분19초2로 세계신기록을 세우며 아시아인 최초로 금메달을 땄기 때문이다. 일제강점기여서 가슴에 일장기를 달고 달려야만 했지만 손기정의 쾌거는 암울하기만 했던 식민지 한국인들의 가슴에 큰 기쁨을 가져다줬다. 손기정은 우리 민족의 영웅이었다.
육상 영웅에서 공군으로, 추락사고 후 일본군 포로로
같은 베를린 대회엔 또 다른 영웅이 있었다. 5000m에서 금메달을 목에 건 미국의 ‘루이 잠페리니’다. 육상 선수인 그는 19세 약관의 나이에 최연소 올림픽 금메달리스트가 됐다. 우유병에 술을 담아 마시고 몰래 담배를 피우던 반항아였기에 그의 역전 드라마가 돋보인다.
하지만 이후 그의 인생 역정에 비하면 서막에 불과하다. 루이는 제2차 세계대전이 발발하자 미 공군에 입대해 수많은 전투 속에서 살아남지만 작전 수행 중 전투기 엔진 고장으로 태평양에 추락, 장장 47일간 태평양을 표류한다. 그는 살아야 한다는 의지 하나로 갈매기와 심지어 상어까지 잡아먹으며 버틴다. 그렇게 표류하던 중 일본 해군에 발견돼 850일간의 혹독한 일본군 포로 생활을 하다 연합군으로 승리로 풀려난다.
‘루이 잠페리니’라는 실존인물의 기적 같은 일대기
루이 잠페리니의 일대기를 그린 영화가 ‘언브로큰’이다. ‘언브로큰(unbroken)’을 사전에서 찾아보면 ‘깨지지 않은, 중단 없는, 길이 들지 않은’이란 뜻이다. 주인공의 ‘집념, 용기, 불굴의 의지’ 등을 표현하고 있는데 이는 바로 전쟁 영웅이 갖춰야 할 덕목이다.
영화는 루이의 실제 체험을 쓴 로라 힐렌 브렌드의 원작소설이 바탕인데 생존 그 자체가 용기였던 루이의 기적 같은 삶을 그리고 있다. 영화 전반부는 반항기를 보내는 청년 루이가 최연소로 올림픽 국가대표까지 가는 여정을 담고 있으며, 영화 중반은 제2차 세계대전 당시 미국과 일본의 공중전, 비행기 추락으로 루이(잭 오코넬)와 동료 2명이 바다를 표류하는 이야기로 전개된다. 이후는 일본군에 체포된 루이가 겪는 일본 포로수용소 생활을 보여준다.
특히 영화 후반은 일제 포로수용소의 폭력성에 방점을 두고 있는데, 루이를 유난히 괴롭힌 ‘새’라는 별명을 가진 일본군 와타나베(미야비)와 그의 대결 구도로 담아내고 있다.
영화의 백미는 루이가 일본군의 달콤한 제안을 거부하는 장면이다. 전 세계로 방송되는 선전용 라디오 방송을 운영 중인 일제 군부는 루이의 유명세를 이용해 미국 정부를 비판하는 내용을 방송할 것을 강요하지만 그는 거절하고 다시 지옥 같은 수용소로 돌아온다. 좋은 음식에 편한 생활을 할 수 있었지만 조국과 전우를 버릴 수 없었기 때문이다.
앤젤리나 졸리의 감독 데뷔작
영화는 할리우드 유명 여배우 앤젤리나 졸리가 메가폰을 잡았다. 세계적인 유명 여배우가 국가대표로서 찬란한 전성기를 보내고 참전 용사로서 어려운 시대를 극복해낸 역사적인 실존 인물을 다뤘다는 점에서 감독으로서 예사롭지 않은 출발을 보여줬다. 감독 데뷔작이지만 그 이상의 작품을 만들었다는 평가를 받았다. 각본엔 ‘노인을 위한 나라는 없다’를 만든 코언 형제가 참여했다.
2차 세계대전 당시 일본군 묘사 일본에선 상영금지·감독 입국 막기도
영화 속 일본군의 비인간적인 폭력 내용을 이유로 들어 일본 우익 단체들은 이 영화를 일본에서 상영하지 못하게 했다. 잔인한 일본군 연기를 한 한국계 배우 미야비도 비난의 대상이었고 앤젤리나 졸리 감독의 일본 입국도 막았다. 그래도 후손들에겐 치부를 보이고 싶지 않았던 모양이다.
전쟁이 끝나고 나이 80세의 루이는 다시 그의 꿈을 잊지 않기 위해 올림픽 성화 봉송 주자로 달렸다. 그가 달린 곳은 바로 일본이었다. 복수가 아닌 용서와 화해의 메시지를 던진 것이다. 거기서 루이는 자신을 괴롭힌 와타나베를 찾았지만 끝내 나타나지 않았다고 한다.
일제와 일본군에 대한 우리의 기억도 좋을 리 없다. 일제는 우리의 많은 애국지사를 체포, 감금해 죽음에 이르게 했고, 우리의 많은 자원을 수탈해 갔다. 하지만 지금까지도 일본은 진심 어린 사과와 법적 배상에는 인색하다. 위안부 문제는 물론이고 대한민국 영토 안에 있는 독도도 자기네 땅이라고 우긴다. 결국 나라가 힘이 있어야 한다. 없으면 당한다. 국방, 그것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