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원도는 척박한 땅이었다. 강원도는 영동과 영서로 가른다. '영동'이라는 표현은 자주 사용하지만 '영서'라는 표현은 어색하다. 널리 사용하지 않는다. 영동의 '영'은
대관령(大關嶺)이다. 대관령은 강릉시 성산면과 평창군 대관령면 사이에 있는 고개다. 우리가 영동고속도로를 이용할 때 넘어가는 고개다.
강원도의 북쪽에는 설악산이 펼쳐진다. 설악산을 넘는 '영嶺'은 한계령, 미시령, 진부령 등이다. 속초와 인제를 연결하는 터널이 생기면서 대부분의 서울 출발
승용차들이 미시령터널(미시령동서관통도로)을 이용한다. 서울 출발, 속초를 향하다가 미시령터널을 만나기 직전에 인제가 있다. 흔히 강원도
산골의 군대생활을 이야기할 때 "인제가면 언제 오나, 원통해서 못살겠네"라고 이야기하는 인제는 인제군이고 원통은 인제군 북면 원통리다. 서울에서 출발하면 흔히 '홍천-인제읍-원통리-용대리-미시령터널-속초' 길을 이용하게 된다. 미시령터널을 지나기 전이 바로 인제군이고 인제군의 북쪽에 양구군이 있다.
인제(麟蹄)는 '기린 발자국'이란 뜻이다. 이 지역의 생김새가 마치 기린의 발자국 같이 생겨서 붙인
이름이다. "삼국
사기"에 "양구현에는 희제현 ㆍ 치도현 ㆍ 삼령현이란 세 개의 영현(領縣)이 있다. 희제현은 고구려 때 저족현(猪足縣)이었고(중략)신라의 경덕왕이 저족현은 인제현(麟蹄縣)으로 하고(후략)"이란 표현이 있다. '저족'은 '돼지 발'이다. 결국 인제의 지형이 마치 동물의 갈라진 발자국 같았다는 뜻이다. 양구와 인제는 모두 춘천과 가깝고 행정구역으로도 한때는 같은 지역으로 묶여 있었다.
강원도의 음식은 늘 '먹고 싶어서 먹었던 음식이 아니라 먹을 수밖에 없어서 먹었던 음식'이라고 이야기한다. 깊은 오지에서는 쌀, 보리 같은 곡물의 생산이 힘들다. 감자, 메밀, 콩, 옥수수 같은 작물이 모두다. 비탈진 경사면에서 짐승을 기르는 것도 만만치 않다. 사람이 먹을 곡물도 넉넉지 않으니 짐승을 기르는 것도 어렵다. 겨우 닭을 치는 일이 그나마 쉽다.
메밀로
막국수를 만들고 감자로 감자옹심이나 감자전을 만든다. 콩으로는
두부를 만들고 옥수수로는 올챙이
국수나 옥수수
막걸리 등을 빚는다. 닭으로
백숙을 만드는 것이 흔한 이유다. 그나마 살림살이들이 나아지면서 돼지를 기른다. 강원도 막국수 집에서
돼지고기 수육을 만나는 이유다.
강원도 일대에서 막국수를 만나는 것은 퍽 쉽다. 최근에는 100% 메밀 막국수에 대한 일반인들의 수요가 늘어나고 있다. 원형 강원도 막국수는 100% 메밀로 만드는 것도 아니고 지금처럼 하얗게 만드는 것도 힘들었다.
메밀을 한번 벗기면 녹쌀이 나온다. 쌀로 치자면 현미(玄米) 같은 형태다. 현미는 '매조미 쌀'이라 하여 그 색깔이 검다. 녹쌀도 마찬가지다. 녹쌀을 한 번 더 벗기면 하얀 메밀쌀이 나온다. 녹쌀은 '색깔이 검은' 메밀쌀인 셈이다. 실제로는 녹색과 갈색이 드문드문 섞여 있다. 이 녹쌀로 국수를 만들면 국수 표면에 거뭇거뭇 점들이 박혀 있다.
인제 '남북면옥'은 30년을 훨씬 넘긴 오래된 막국수 전문점이다. 메뉴는 막국수와 수육이다. 거칠게 썰어내는 이집의 수육은 인기 메뉴다. 주말에는 준비된 양이 부족해서 '조기마감' 되기도 한다. 막국수도 거칠긴 마찬가지다. 100%를 자랑하지도, 장식이 예쁘지도 않다. 오랫동안 해온 방식으로 '대충' 만들어낸다. 그런데 마력이 있다. 거칠지만 강원도 특유의 푸근한 맛이 있다. 순박하면서도 입에
감기는 맛이 있는 막국수다. 2대 전승이 되었다. 시어머니가 하던 집을 맏며느리가 이었고 곧이어 막내며느리가 운영하고 있다. 3대 전승인 셈이다.
이 집의 갓김치가 특이하다. 갓을 늦가을에 염장한다. 몇 달 묵혀둔 갓은 색깔이 노랗고 짜다. 이 갓을 물에 헹구어
소금을 뺀다. 고추, 마늘 양념을 더해서 마치 햇김치 같이 한편으로는 묵은 지의 맛을 살려서 상에 내놓는다.
인제에서 양구로 넘어가는 길목에 '전가네막국수'가 있다. 메뉴는 막국수와 두부, 두부전골 등이다. 소박한 분위기에 음식도 소박하다. 조미료 사용도 절제하고 산골의 전통적인 음식을 담담하게 낸다. 묵은 맛이 나는 김치와 두부전골, 100% 메밀로 만든 막국수 등이 권할 만하다.
양구에는 "채널A_착한
식당"에서 소개한 '전주식당'이 있다. 두부가 다 팔리면 문을 닫는 통에 '운이 닿지 않는 사람'들은 몇 번씩 발걸음을 돌리는 경우도 있다. 다른 곳과 달리 두부의 부드럽게 씹히는 맛이 좋다. 지져내는 두부전도 부드럽긴 마찬가지다. 한입 베어 물면 두부 특유의 부드러운 식감과 두부 속에서 나오는 콩물의 구수한 맛을 느낄 수 있다. 두부전과 두부전골이 주 메뉴다. 국산 콩, 그중에서도 양구 일대의 것만 사용한다.
'양구재래식손두부'도 도시에서는 만나기 힘든 집이다. 역시 양구 지역 생산 콩만 사용한다. 메뉴가 퍽 복잡해보이지만 단순하다. 두부전골, 모두부, 순두부, 청국장, 모두부뚝배기, 들기름구이, 비지장 등이다. 들기름구이는 말 그대로 두부를 들기름으로 지진 것이다. 여름철에는 콩국수가 추가된다. 모두 콩 관련 음식이다.
이 집에 가면 모두부 뚝배기를 맛보기를 권한다. 두부를 푸짐하게 넣고 뚝배기에 넣고 끓인 것이다. 심심하면서도
고소한 맛이 일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