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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당산 가는 길, 안개 속 바람 불어 상고대 눈꽃 피기 좋은 날씨다
얼어붙은 강물 양쪽에 시커먼 가문비나무 숲이 얼굴을 찌푸린 채 서 있었다. 방금 불어온 바
람에 하얗게 덮여 있던 서리가 벗겨진 나무들은 희미해지는 빛 속에서 음울하고 불길한 모습
으로 서로에게 몸을 기대는 듯했다. 거대한 침묵이 대지에 내려앉았다. 생기도 움직임도 없
는 대지는 황량하며 너무도 적막하고 추워서 그 땅의 영혼은 슬픔조차 드러내지 못하였다.
그곳에도 웃음이라 할 만한 것이 있었지만, 그것은 슬픔보다 더 고통스러운 웃음이었다.
―― 잭 런던, 『늑대개』(존 크라카우어, 『야생 속으로』에서 재인용)
▶ 산행일시 : 2020년 2월 16일(일), 안개, 눈, 눈보라
▶ 산행인원 : 7명
▶ 산행시간 : 9시간 45분
▶ 산행거리 : 도상 17.3km(산행 시작하자마자 잘못 오고간 1.2km 포함)
▶ 갈 때 : 청량리역에서 KTX 타고 평창역에 감
▶ 올 때 : 대화에서 택시 타고 평창에 와서, KTX 타고 청량리역에 옴
▶ 구간별 시간
06 : 22 - 청량리역 KTX 출발
07 : 36 ~ 07 : 54 - 평창역, 산행준비, 산행시작
08 : 55 - 송전탑, 임도
09 : 35 - ┳자 능선 진입, 이정표(금당산 정상 1.34km)
09 : 48 - 1,080.7m봉
09 : 58 - 전망바위(암봉)
10 : 06 - ┫자 갈림길, 이정표(왼쪽은 평창역 3.62km, 직진은 금당산 0.2km)
10 : 14 ~ 10 : 38 - 금당산(錦塘山, △1,174.1m), 휴식
10 : 58 - 1,096.0m봉
11 : 46 ~ 12 : 36 - 거문산(巨文山, 1,173.1m), 점심
13 : 04 - 1,162.7m봉
13 : 40 - △1,028.6m봉
14 : 20 - 안부, 덧개수터널 위 임도
15 : 17 - 1,039.4m봉
15 : 45 - 1,007.3m봉
15 : 55 - 등용봉(절구봉, △1,044.8m)
16 : 20 - 산골산나물, 임도
17 : 39 - 대화읍, 산행종료, 저녁
19 : 28 - 평창역
20 : 31 - 청량리역
1-1. 산행지도(금당산, 거문산, 국토지리정보원 지형도, 1/25,000)
1-2. 산행지도(등용봉, 국토지리정보원 지형도, 1/25,000)
▶ 금당산(錦塘山, △1,174.1m), 거문산(巨文山, 1,173.1m)
“국경의 긴 터널을 빠져나가니, 설국(雪國)이었다. 밤의 끝자락은 이미 희뿌연히 밝아왔다.
신호소에 기차가 멎었다. 맞은편 좌석에서 아가씨가 일어나 시마무라(島村) 앞의 유리창을
열었다. 차가운 냉기가 밀려 들어왔다. 아가씨는 창밖으로 온통 몸을 내밀고 멀리 외치듯이
소리쳤다. “역장님! 역장님!”
등을 들고 천천히 눈을 밟고 온 남자는 목도리를 코 위에까지 두르고 귀에 모자의 털가죽을
늘어뜨리고 있었다. 벌서 그렇게 추운가 싶어 시마무라는 밖을 내다보았다. 철도 관사 같은
바라크들이 산기슭에 초라하게 흩어져 있을 뿐, 하얀 눈은 거기까지 다 가기 전에 어둠 속으
로 잦아들고 말았다.”
가와바다 야스나리(川端康成, 1899~1972)의 중편소설 『雪国』의 도입부분이다. 특히 첫
문장인 “국경의 긴 터널을 빠져나가니, 설국이었다.”는 여러 사람들의 입에 지금까지 명문으
로 오르내린다. 우리가 탄 기차 ‘KTX 산천’도 둔내(屯內)의 긴 터널을 빠져나가니 여태 칙칙
하던 풍경과는 달리 눈이 번쩍 뜨이는 설국이 펼쳐진다.
그러나 설국은 그곳 뿐 둔내가 고원이라서였다. 평창은 검은 구름이 바쁘게 횡행하여 황량하
다. 김기림(金起林, 1908∼미상)의 시 「關北紀行」을 생각나게 한다. 그의 ‘夜行列車’에서
처럼 앙 하고 우는 기적은 울리지 않았지만.
샛바람에 달이 떠는
거리에 들어서자
기차는 추워서 앙 울었다.
평창역사를 빠져나오자 찬바람이 냅다 싸대기를 갈긴다. 김기림의 ‘국경(나)’를 똑 닮았다.
차에서 나리자마자
어느새 寒帶가 코를 깨문다.
캐이 님과 나는 금당산을 당연히 재산재에서 오르려고 역사를 나와 오른쪽 대로 따라 내려서
31번 국도를 가는데 일행들이 보이지 않는다. 그새 멀리도 갔구나 하고 잰걸음하여도 보이
지 않는다. 전화 걸어서 알아보니 서로 가는 방향이 다르다. 그들은 역사 정면의 철조망 울타
리 쪽문을 나와 왼쪽의 너른 농로를 따라 역사 뒤쪽으로 갔다. 뒤돌아간다. 왕복 1.2km를 헛
걸음한 셈이다.
역사 뒤쪽 농로 갈림길에서 이정표가 금당산을 안내한다. 금당산 3.23km, 평창역 0.59km.
이 길은 평창 동계올림픽을 계기로 새로 만들었다. 산자락에는 덤불숲 베어내고 가파른 오르
막에는 핸드레일 밧줄을 설치했다. 잘 다듬은 무덤 지나고 연속해서 핸드레일 밧줄 잡고 오
른다. 비탈에는 땅거죽만 녹았다. 밧줄 잡고도 쭉쭉 미끄러진다. 곧 안개 속에 들고 찬바람이
가루눈 뿌린다. 상고대 눈꽃이 피기 좋은 날씨다.
2. 저 산 훨씬 뒤쪽인 백적산은 안개에 가렸다
3. 금당산을 향하여
4. 가루눈이 내려 등로는 분을 바른 것 같다
5. 안개 속 산릉에는 눈꽃이 움트기 시작한다
6. 등로 주변은 수묵화 전시장이다
7. 고도를 높일수록 안개는 더욱 자욱하다
8. 금당산 가는 등로 주변
9. 나무의 프랙탈, 나뭇가지 끝의 잔가지가 나무의 전체 모양을 모방한다
10. 눈이 낙엽과 버물어져 무척 미끄럽다
11. 금당산 정상이 가까워지면 오르막 경사는 완만하다
12. 눈꽃은 점입가경이다
송전탑 옆 임도에 올라서고 산모롱이로 돌아 잔 너덜사면을 오른다. 이때는 땀난다. 그러나
땀은 이때뿐이었다. 엷은 ┳자 지능선에 오른다. 이정표에 금당산은 왼쪽 1.34km이다. 안개
가 자욱하다. 등로는 전후좌우로 수묵화를 내건 전시장 같다. 능선에 서면 눈보라가 사납게
치고 이때를 기화로 모든 나뭇가지에는 일제히 눈꽃이 피기 시작한다.
1,080.7m봉은 암봉이다. 오른쪽 사면으로 길게 돌아 넘는다. 눈보라 속에 스마트 폰 꺼내어
장갑 벗고 지도를 확인하는 게 여간 번거로운 일이 아닌데도 광인 님은 수시로 지도를 들여
다보고 현재의 위치와 이어지는 등로 상태를 알려준다. 전망이 썩 좋다는 암봉은 굵은 고정
밧줄이 달려있지만 올라가 보았자 만천만지한 안개로 무망할 것이라 그냥 지나친다.
눈보라에 떠밀려 오른다. ┫자 갈림길과 만난다. 이정표에 왼쪽은 평창역 3.62km, 직진은 금
당산 0.20km이다. 그러고 보니 여태 재산재에서 오르는 예전의 등로와 만나지 못했다. 금당
산. 너른 눈밭에 조그만 정상 표지석이 2등 삼각점(봉평 27, 1989 복구)과 함께 우두커니 우
리 오기를 기다리고 있다. 작년 봄날에 보았던 터라 반갑다.
금당산 정상만은 뜻밖으로 눈보라가 비켜간다. 정상 눈밭에 자리 펴고 둘러앉아 오래 머문
다. 홍탁삼합이 여러 잔 비우게 한다. 거문산 가는 길. 금당산 오르는 길도 그랬지만 우리뿐
이다. 우리가 눈길 새로 낸다. 예전에 더산 님이 큰 재미를 보았다는 동쪽 사면을 누비며 내
린다. 그런데 도무지 기화이초 눈꽃 속에 더덕줄기를 분별해낼 재주가 없다.
야트막한 안부는 잘난 등로 사거리다. 평탄하게 지나다 약간 오르막은 1,096.0m봉이다. 이
어 이와 비슷한 표고의 봉봉을 오르내린다. 외길인 바윗길은 살금살금 더듬어 지난다. 여전
한 안개 속에 눈꽃은 만발하였다. 날이 좋으면 대화 건너 남병산, 청옥산, 중왕산, 백석산, 잠
두산 백적산에 이르는 장릉이 일대가경인데 오늘은 내내 오리무중이다.
거문산. 눈꽃 만발한 꽃대궐이다. 정상 널찍한 공터에 비닐쉘터 친다. 밖은 엄동 눈보라가 야
단인데 쉘터 안은 훈훈한 봄날이다. 버너 2대를 모닥불처럼 피워 놓고 도란도란 옛이야기 나
눈다. 산에 대한 이야기다. 술은 머루주, 돌배주, 모과주, 더덕주, 탁주, 소주 등등이다. 코펠
에는 넙죽이 오뎅과 느타리버섯 넣은 라면이 자글자글 끓고 있다. 종종 쉘터 밖으로 달아오
른 얼굴 내밀어 식히곤 한다.
산상오찬 50분이 너무 짧다. 실은 이 50분을 즐기기 위해 오늘 새벽에 일어나서 05시 34분
첫 전철을 타고 청량리역에 와서 여기까지 왔다. 캐이마담이 끓인 커피로 식후 입가심하고
쉘터 거둔다. 우리가 산상오찬을 즐긴 사이에 거문산 정상 주변은 눈꽃으로 더욱 화려하게
단장하였다.
13-1. 금당산 정상만은 바람이 조용했다
13-2. 금당산 정상에서
14. 선두는 눈밭에 새길 낸다
15. 두고 가는 경치는 아깝고 앞의 경치는 궁금하다
16. 거문산 가는 길, 눈꽃은 만발하였다
17. 거문산 가는 길
18. 상고대 눈꽃
19. 눈꽃 터널을 지나기 일쑤다
20. 이따금 이런 숲속을 누벼도 보았지만 더덕줄기를 도무지 분간할 수가 없었다
21. 순전히 바람의 작품이다
22. 눈보라는 끊임없이 몰아쳤다
23. 거문산 정상 표지석
24. 거문산 정상에서, 이 앞에서 비닐 쉘터 치고 오찬을 즐겼다
25. 거문산 주변
▶ 등용봉(절구봉, △1,044.8m)
갈 길이 멀다. 거문산에서 동진하여 법장사 쪽으로 내리는 능선은 거들떠보지 않고 이정표의
외솔배기 방향 쫓아 남진한다. 준봉인 1,162.7m봉을 대깍 넘고 발바닥 간지럽게 설원을 지
쳐 한달음에 △1,028.6m봉이다. 삼각점은 덮인 눈 쓸고 닦아 판독하여 ‘431 재설, 77.6 건설
부’이다. △1,028.6m봉 내리는 길은 느슨하던 여태와는 달리 급전직하하여 쏟아진다.
언뜻 등용봉 연릉이 눈보라 속에 실루엣처럼 비치고 861.9m봉 직전 안부에 내려선다.
861.9m봉 오르는 눈길은 아무도 지나지 않았다. 선두 일행들은 왼쪽 임도에 내려 861.9m봉
을 돌아 넘었다. 잠시 망설이다 선두 발자국 뒤쫓는다. 임도 따라 길게 돈 산모퉁이는 바리게
이트 넘어 바닥 친 안부다. 왼쪽은 덕개수 지나 대화, 오른쪽은 외솔배기로 내린다. 휴식한다.
여기에서 몸 컨디션이 그다지 좋지 않다는 광인 님과 상고대 님, 연어 님이 대화로 탈출한다.
등용봉 등로는 산모퉁이 돈 임도 고갯마루에 빛바랜 산행표지기 한 장이 안내한다. 울창한
낙엽송 숲속 조용한 설원이다. 서산대사의 말씀-눈 내린 들판 길을 걸어갈 때, 발걸음을 함
부로 어지러이 걷지 마라(踏雪野中去 不須胡亂行)-대로 살펴 걷는다.
낙엽송 숲 벗어나 설벽으로 변한 가파른 오르막과 맞닥뜨린다. 눈 쓸고 낙엽 쓸어 한 발 한
발 디딜 곳 마련해가며 오른다. 이때는 손 시린 줄을 잊는다. 그저 달달 긴다. 이렇게 얼얼하
게 두 피치 오르고 암릉지대에 진입하기 전인 890m쯤 되는 고지에서다. 캐이 님과 더산 님
이 왼쪽 사면 돌더니 동쪽 지능선을 타고 하담원 쪽으로 하산하겠다고 한다.
갑자기 내 앞길이 불안해진다. 두루 님에게 우리도 캐이 님따라 그만 하산하자고 했더니 대
뜸 정색한다. 등용봉이 500m 남았는데 그만 둘 수 없다며 함께 갈 것을 종용한다. 나도 가오
가 있지. 그래, 간다! 어느 해 봄날 직등했던 암릉지대가 궁금하고 한편으로는 겁이 난다. 이
제는 아이젠 맨다. 큰 숨 한 번 들이쉬고 이 앙다문다. 날 무딘 릿지에 올라선다. 뒤돌아보는
지나온 산릉이 준엄한 설산이다.
1,039.4m봉 암릉지대는 오를 때보다는 내릴 때가 약간 더 까다롭다. 가파른 슬랩을 가야 할
방향 조준하여 엉덩이로 밀어 내린다. 등용봉이 가까이 다가갈수록 더욱 첨봉이다.
1,007.3m봉 넘고 등용봉을 한껏 높인다. 이정표에 ┫자 갈림길 안부 왼쪽은 산골산나물 마
을로 간다. 거기는 우리 길이 아니다. 직진 350m 남았다. 아이젠에 힘주어 설벽 찍는다.
등용봉. 대화 건너 백석산 연릉을 조망하는 경점인데 이 역시 지척도 안개와 눈보라에 가렸
다. 하산! 어디로 내릴까? 좀 더 남진하여 1,020m봉에서 동진하고 그 안부에서 임도로 내리
자고 한다. 그런데 너무 성급했다. 등용봉을 남진하는 능선을 따라 내리다 보니 왼쪽 사면이
넙데데한 설원으로 보이기에 거기를 지쳐 내리고 싶은 충동이 일었다. 덤볐다.
착시였다. 설원이 아니라 설벽이다. 갈지(之)자를 한일(一)자로 그리면서 내린다. 자빠지고
넘어져 눈 속에 묻히기 부지기수다. 그때마다 눈사람이 되어 일어난다. 하도 허우적거리다보
니 불과 수 미터 앞이 아득히 멀게 느껴진다. 다리는 후들거리고 등줄기에는 식은땀이 밴다.
어렵사리 산자락 덤불숲 뚫어 엄나무밭에 내려서고 농가 뒤뜰 지나 임도다.
정작 오늘 산행의 험로는 이제부터다. 산골짜기 임도 4.5km, 그리고 대화교에서 대화터미널
까지 31번 도로 1.2km를 가야 한다. 너울너울 춤추는 함박눈이 우리의 벗이다. 이렇듯 내리
는 눈을 보면 눈물의 시인 박용래(朴龍來, 1925∼1980)가 생각난다. 이문구(李文求,
1941~2003)의 『글밭을 일구는 사람들』의 ‘박용래 시인 편’에서다. 박용래 시인은 시인으
로 등단하기 전에 조선은행에 다녔는데 블라디보스독으로 열차로 현송을 가기도 했다.
“이까짓 눈두 눈인 중 아네? 눈인 중 알어? 너두 한심허구나야. 원산역을 지날 때 눈발이 비
치더니, 청진을 지나니께 정신웂이 쏟아지는디, 아 ― 그런 눈은 처음이었었어…… 그 눈……
그 눈…….”
그는 이미 떨리는 음성이었고 두 눈시울에는 벌써 삼수갑산 저문 산자락에 붐비던 눈송이가
녹으며 모여 토담집 부엌 두멍처럼 넘실거리고 있었다.
이문구는 박용래 시인의 아래 시 「저녁눈」이 시인의 얼굴이었다고 한다. 시인의 정감이 넘
치는 관찰과 표현이 절묘하다. 대화 가는 산골짜기 임도에서 만난 이 함박눈이 그러하다.
늦은 저녁때 오는 눈발은 말집 호롱불 밑에 붐비다
늦은 저녁때 오는 눈발은 조랑말 발굽 밑에 붐비다
늦은 저녁때 오는 눈발은 여물 써는 소리에 붐비다
늦은 저녁때 오는 눈발은 변두리 빈터만 다니며 붐비다.
26. 저 산 뒤에 등용봉(절구봉)이 있다
27. 등용봉(절구봉) 가는 길의 초입
28. 가운데로 거문산 정상이 약간 보인다
29. 앞이 등용봉(절구봉), 오른쪽 뒤는 보섭봉
30. 등용봉(절구봉)의 눈꽃
31. 등용봉(절구봉)에서
32. 등용봉 내린 임도에서 바라본 남병산에서 청옥산으로 이어지는 능선
33. 대화 가는 길
34. 대화에서 바라본 서쪽 산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