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동차의 엔진은 두 가지의 상반된 속성을 가지고 있다. 한 가지는 차가움이고, 나머지 하나는 뜨거움이다. 이렇게 두 가지의 상반된 속성을 갖는 이유는 금속으로 만들어지기 때문이다. 증기기관으로부터 시작된 엔진의 역사이래, 인류는 항상 금속으로 엔진을 만들어 왔다. 최근에는 재료역학의 발달로 인해, 금속 외의 다른 합성 재료를 사용하는 시도가 나타나고 있지만, 여전히 지구상의 모든 엔진의 주류는 금속이다. 강철과 알루미늄 등의 금속은 엔진이 잠에서 깨어난 시점부터 가동 시간 내내 발생하는 고열과 마찰 등의 모든 부담을 감당할 수 있으며, 대량생산에도 적합하기 때문이다.
금속으로 만들어진, 차가우면서도 뜨거운 자동차의 심장, 엔진의 세계로 독자 여러분을 초대한다. 본 기사에서 다룰 수많은 자동차의 엔진들 중 그 서른 두 번째 이야기는 디젤 엔진에 관한 이야기이다. 이 디젤 엔진은 현재 한국지엠 쉐보레 브랜드의 주력 디젤엔진으로, 작게는 트랙스부터 크게는 이쿼녹스까지 사용 중인 심장이다. 이 엔진의 이름은 ‘GM LH7’ 엔진이다.
트랙스부터 이쿼녹스까지 사용하는 주력 디젤 엔진
GM LH7 엔진은 ‘GM 미디움 디젤 엔진(GM Medium Diesel Engine, MDE)’이라고도 불린다. 미국 제너럴 모터스(General Motors, GM)가 2013년도부터 도입을 개시한 승용형 디젤 엔진이다. 이 엔진은 기존에 GM이 피아트와 공동개발하여 사용 중에 있었던 제트로닉 터보 디젤(Jetronic Turbo Diesel, JTD) 엔진과 폴란드의 GM 파워트레인 부문에서 개발한 서클L(Circle L)엔진을 대체하기 위해 만들어졌다.
GM LH7은 GM이 오랫동안 자회사로 두고 있었던 독일계 자동차기업, ‘오펠(Adam Opel AG)’에서 개발되었다. 오펠이 PSA 그룹으로 넘어가기 전에 개발이 완료된 GM LH7은 GM의 에코텍(Ecotech) 브랜드명을 달고 세계 각지의 GM 계열 차종에 실리고 있다.
이 엔진은 총배기량 1,598cc(1.6리터)에 직렬 4기통 레이아웃을 갖는 디젤 터보 엔진이다. 실린더 헤드와 블록은 모두 알루미늄 합금으로 제작된다. 이 때문에 GM LH7는 오펠 최초로 실린더 헤드와 블록에 모두 알루미늄을 적용한 디젤 엔진이기도 하다. 실린더 보어(실린더 내경)는 79.7mm, 스트로크(행정 길이)는 80.1mm로, 스퀘어형에 근접한 구조를 가지며, 헤드는 실린더 당 4밸브의 DOHC(double OverHead Cam) 형식으로 만들어지며, 캠 구동에는 타이밍 체인이 사용된다. 연료 공급은 오늘날 디젤엔진의 필수요소인 커먼레일(Commonrail)을 사용한 직접 분사 방식을 취하고 있다. 터보차저는 세부 사양에 따라 가변 지오메트리 터보차저(Variable Geometry Turbocharger)와 바이터보를 사용하는 모델로 나뉜다.
GM은 LH7 엔진의 승용형 디젤 엔진으로서의 경쟁력 확보를 위해 ‘중량절감’과 ‘N.V.H 대책 강화(Noise, Vibration, Harshness)’에 공을 들였다. 엔진의 중량에서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는 실린더 헤드와 블록을 알루미늄 합금으로 제작한 것을 시작으로, 피스톤, 그리고 실린더 블록 하단의 베드플레이트(Bedplate)까지 알루미늄으로 만들었다. 단, 커넥팅 로드는 단조 강철로 제작된다. 거의 전(全)알루미늄제에 가까운 구조라고 할 수 있다. 여기에 내부의 중공 구조 최적화를 거쳐, 경량화를 도모했다.
GM LH7은 N.V.H 대책에도 공을 들인 엔진이기도 하다. 가솔린 엔진 대비 디젤 엔진의 가장 큰 약점이라 할 수 있는 N.V.H의 개선을 통해 승용 디젤 엔진으로서의 경쟁력을 갖추기 위함이었다. GM LH7는 진동을 상쇄하기 위해 크랭크축에 4개의 카운터웨이트(Counter Weight, 균형추)를 사용한다. 또한 캠커버 등의 일부 부품에 GRP를 사용하는 한 편, 흡기 매니폴드의 형상을 최적화함으로써 엔진 자체의 소음 및 진동 저감을 꾀했다. GM LH7의 개발 주체인 오펠은 이 엔진을 ‘속삭이는 디젤(Whisper Diesel)’이라는 표현까지 사용해 가며 강조했다. 이는 대한민국에서 GM LH7 엔진의 첫 주자라 할 수 있는 쉐보레 트랙스(Trax) 디젤 모델의 미디어 공개 당시에도 등장한 바 있다.
GM LH7은 오늘날의 디젤 엔진답게, 기본 압축비만 16 : 1에 달한다. 동력 성능은 세부 사양에 따라 크게 달라지는데, 낮게는 95마력에서 높게는 136마력까지 높아진다. 가장 낮은 성능을 지닌 바리에이션은 95마력 사양으로, 28.5kg.m의 최대토크를 낸다. 그 위로는 110마력 사양과 120마력, 그리고 오펠을 넘어 쉐보레에서도 사용되는 136마력 사양이 포진하고 있다. 110마력 사양의 최대토크는 30.6kg.m이고 120마력 사양의 최대토크는 32.6kg.m이며, 136마력 사양의 최대토크는 32.8kg.m에 달한다. 이 외에도 LH7에는 바이터보 사양도 존재한다. 바이터보 사양의 최고출력은 160마력, 최대토크는 36.3kg.m에 이른다.
GM LH7은 싱글터보 사양만 해도 배기량 1리터당 출력 비가 최대 85마력 수준을 기록하는, 디젤엔진으로서는 상당한 고성능을 내는 엔진이다. 바이터보 사양은 같은 배기량의 가솔린 터보 엔진과도 맞먹는 1리터 당 100마력에 달하는 성능을 낸다. 동력 성능 만큼은 기존에 사용했던 1.7리터 배기량의 서클L 디젤 엔진과 2.0리터 배기량의 JTD 엔진조차 뛰어 넘었다.
이 엔진은 개발 주체인 2013년 출시된 오펠의 MPV 모델인 자피라 투어러 C(Zafira Tourer C)에 가장 먼저 사용되었다. 2014년부터는 적용 차종이 확대되기 시작하여 동사의 C세그먼트 해치백인 아스트라(Astra)와 MPV 모델 메리바(Meriva), 심지어는 플래그십 준대형 세단인 인시그니아(Insignia)에도 적용했다.이 외에도 오펠은 2015년도부터 쉐보레 트랙스의 형제차인 모카(Mokka)에도 이 엔진을 탑재했다. 또한 배기량 1리터 당 100마력의 최고출력을 내는 바이터보 사양의 LH7 엔진은 2016년 공개한 최신형 아스트라에 적용했다.
이 엔진은 대한민국에서 한국GM 쉐보레의 주력 디젤엔진으로 사용되고 있다. 이 엔진이 국내에 최초로 도입된 시기는 한국GM이 트랙스(Trax)의 디젤 모델을 선보인 2015년도부터다. 트랙스의 디젤 엔진은 현대 코나의 등장 이전까지 국내 완성차업계의 소형 SUV들 중 가장 강력한 동력성능을 자랑했다. 지금의 쉐보레 트랙스는 출력 현대 코나에 비해 1마력이 뒤지지만 최대토크는 2.2kg.m 더 높다.
한국GM은 트랙스 이외에도 다양한 모델에 이 엔진을 Gen III 6단 자동변속기와 함께 적용해 나갔다. 트랙스에 이어 두 번째로 LH7을 품은 차종은 MPV 모델 올란도(Orlando)다. 올란도의 LH7은 기존 2.0리터 디젤 엔진의 하위 트림으로서 추가된 것이 아닌, 완전히 대체하는 개념으로 도입되었다. 올란도에 이어 이 엔진을 심장으로 삼은 차는 준중형 세단 크루즈(Cruze)다. 정확히는 2017년부터 국내 판매를 시작한 2세대 크루즈(J400)부터 채용되기 시작했다. 올란도와 크루즈에 적용된 LH7은 134마력/3,500~4,000rpm의 최고출력과 32.6kg.m/2,000~2,250rpm의 최대토크를 발휘했다.
GM LH7은 주로 소형~준중형 차종을 중심으로 적용되고 있지만 오펠 인시그니아의 예와 같이 보다 큰 차종에 사용되기도 한다. 그리고 GM에서도 이 엔진을 상대적으로 더 큰 차종에 사용하기 시작했다. 그 주인공은 바로 쉐보레의 신형 SUV 이쿼녹스(Equinox)다. 국내에 출시된 이쿼녹스는 오로지 LH7과 Gen III 자동변속기로 구성된 파워트레인만 판매되고 있다. 이 파워트레인은 미국 시장에서도 선택 사양의 형태로 제공되고 있으며, 이쿼녹스의 형제차인 GMC 터레인(Terrain)에도 제공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