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도 모델
일흔의 고개를 바라보는 나이에, "나도 모델"이라니. 젊은이들의 전유물처럼 여겨지는 그 단어가 내 입술 사이로 새어 나올 때, 낯설고도 묘한 설렘이 번졌다. 거울 속 깊게 패인 주름과 희끗해진 머리카락은 세월의 훈장이라 자위하지만, 화려한 조명 아래 완벽한 몸매를 뽐내는 모델들과는 거리가 멀다. 하지만 내 앞에 펼쳐진 노란 꽃의 바다, 그리고 그 속에서 카메라 렌즈를 향해 환하게 웃는 내 모습이 담긴 사진들을 보며, 나는 비로소 '모델'이라는 단어의 진정한 의미를 철학적으로 곱씹게 되었다.
우리는 흔히 '모델'을 완벽한 아름다움의 전형, 혹은 타인에게 보여주기 위한 이상적인 존재로 생각한다. 플라톤이 말한 '이데아'처럼, 현실에는 존재하지 않는, 도달할 수 없는 완벽함을 상징하는 것처럼 보이기도 한다. 하지만 나는 완벽과는 거리가 멀다. 턱선은 무너졌고, 옷매무새는 젊은이들처럼 세련되지 못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그 어느 때보다 빛나고, 생동감 넘치며, 아름답다. 왜일까?
그것은 아마도 내가 그 순간, 나 자신의 삶을 온전히 긍정하고 즐기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니체는 "자신의 운명을 사랑하라(Amor Fati)"고 했다. 노년이라는 삶의 단계, 쇠퇴해가는 육체, 그리고 다가오는 죽음까지도 피하지 않고 껴안는 태도. 그것이 바로 사진 속 내 미소의 원천이다. 노란 꽃들이 만개한 봄날, 밀짚모자를 쓰고 pigtail 헤어스타일을 한 모습은 소녀 시절의 순수함을 간직하려는 나의 의지이자, 나이 듦에 굴복하지 않겠다는 선언이다.
강렬한 레드 드레스를 입고 도도하게 포즈를 취하는 순간, 나는 내 안에 여전히 뜨거운 열정과 에너지가 살아있음을 온몸으로 증명한다. 보라색 등나무 꽃 아래서의 평온한 미소는 세파를 견뎌낸 삶의 지혜와 여유를 보여준다. 이 모든 순간, 나는 타인의 시선에 맞춘 '모델'이 아니라, 내 삶의 주체로서 가장 나다운 모습을 드러내는 '실존적 모델'이 된다.
카메라 렌즈는 세상을 비추는 거울이기도 하지만, 나 자신을 직면하게 하는 통로이기도 하다. 렌즈 앞에서 나는 수줍음과 어색함을 떨쳐내고, 내면의 깊은 곳에 자리 잡은 자아를 끄집어낸다. "나도 모델"이라는 선언은 단순한 유희가 아니라, 내 삶의 가치와 아름다움을 스스로 인정하고 세상에 드러내고자 하는 용기 있는 행동이다. 사르트르는 "인간은 스스로를 만들어가는 존재"라고 했다. 나는 사진이라는 매체를 통해, 끊임없이 변화하고 성장하는 내 모습을 기록하고, 나만의 독특한 삶의 무늬를 새겨나간다.
사진은 찰나의 순간을 포착하여 영원으로 박제한다. 하지만 그 영원성은 정지된 것이 아니라, 사진을 보는 이의 시선에 의해 끊임없이 재해석되고 생명력을 얻는다. 노란 꽃밭 속의 내 미소는, 그 사진을 보는 누군가에게 봄날의 따뜻함과 희망을 전할 수 있다. 강렬한 레드 드레스의 에너지는, 누군가에게 삶의 열정을 불러일으킬 수 있다. 보라색 꽃 아래서의 평온함은, 누군가에게 위로와 평안을 줄 수 있다. 이처럼 나는 사진이라는 매체를 통해, 내 삶의 의미를 타인과 공유하고, 세상과 소통하는 '상징적 모델'이 되기도 한다.
“나도 모델"이라는 선언은, 나이 듦에 대한 두려움이나 상실감을 극복하고, 매 순간을 아름답게 살아가고자 하는 나의 철학적인 태도를 담고 있다. 우리 모두는 각자의 삶이라는 무대 위에서 가장 빛나는 '모델'이다. 외모나 조건이 완벽하지 않아도, 자신의 삶을 사랑하고 긍정하며, 가장 나다운 모습을 드러낼 때, 우리는 비로소 진정한 아름다움을 발산하는 모델이 될 수 있다.
앞으로도 나는 카메라 렌즈 앞에서 두려움 없이 웃고, 춤추고, 포즈를 취할 것이다. 그것은 내 삶에 대한 예찬이자, 존재의 증명이다. 그리고 언젠가 내 삶의 무대가 막을 내릴 때, 이 사진들이 내가 세상에 남긴 가장 아름답고 철학적인 유산이 되기를 바란다. 나이 듦은 사라짐이 아닌 깊어짐이며, "나도 모델"이라는 선언은 그 깊어짐의 아름다움을 노래하는 나의 찬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