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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 우리 옆에 있는 분들 보면서 인사합니다.
사랑하고 축복합니다.
정말 무더위가 너무 극심해서 얼마나 고생이 많으셨습니까?
지난 한 주간 여름 행사들을 이렇게 준비하고 진행하는 과정들을 같이 하면서도 구슬땀을 흘리며 수고하고 애쓰는 이들을 보았고요. 또 우리 동력자들도 그 일들을 위해서 함께 기도해 주시고 관심 가져주시고 후원해 주셔서 은혜 가운데 그 일들이 잘 진행 되고 있음을 말씀드립니다.
아직 끝나지 않았는데요. 끝까지 함께 기도함으로 또 관심 가져주시고 함께해 주시기를 부탁드립니다.
네 오늘 말씀 안에서 우리는 참된 자기 사랑이라고 하는 제목을 가지고 함께 말씀을 나누려고 합니다.
여러분 한번 여러분들 자신에 대해서 나는 나를 어떻게 생각하는가라고 하는 생각을 한번 해보시기 바랍니다.
여러분은 여러분들 자신을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나 자신을 사랑하고 계십니까?
보통 우리는 자기 중심적인 삶을 살아간다 또 자기를 굉장히 사랑하는 삶을 살아간다 이렇게 많이들 표현하세요. 지금 보니까 우리 성도들 가운데도 굉장히 자기 사랑이 강하신 분들이 몇 분 보입니다.
그런데 생각 외로 많은 그리스도인들 가운데 자기 자신에 대하여 굉장히 부정적으로 보는 시각을 가지고 상처로 살아가는 이들이 굉장히 많이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구원해 주시는 것만으로 끝낸 것이 아니라 우리를 변화시켜주시고 우리가 완전히 새로운 존재가 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여전히 믿음 안에 거한다고 하면서 우리는 죄를 짓고 그 죄 가운데 열등감에 빠지고 흔들리는 삶을 살아갑니다. 그러다 보니까 자기 자신에 대하여 돌아보는 거를 좀 어색해해요. 심하면 자기 혐오에 빠지기도 하고 자기 학대에 빠지기도 합니다. 나 같은 사람이 뭘 찬송가 가사에도 보면 이 벌레 같은 날 위에 물론 그 적인 이 고백이 좀 다른 고백이기는 하지만 이런 고백 속에 나를 마치 벌레 같은 존재로 죄를 자주 짓다 보니까 나 같은 사람은 벌레 같은 존재구나라고 하는 그런 생각에 늘 죄책감에 빠져 있는 분들이 계세요.
마태복음 16장 24절 말씀을 보면 이렇게 이야기를 하죠.
예수께서 제자들에게 누구든지 나를 따라오려거든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를 것이니라.
여기서 자기를 부인하고라고 하는 이 말에서 자기라고 하는 이 말을 내 모든 것이라고 잘못 해석을 해버리면 우리는 나 자신에 대하여 사랑할 것이 전혀 없는 늘 연약하고 사고 치고 부족한 투성이인 그런 나라고 생각을 할 수 있습니다.
근데 여러분 우리는 누구의 형상으로 창조된 사람들이에요?
하나님의 형상으로 창조된 사람들입니다. 그리고 여러분들을 예수 그리스도의 핏값으로 여러분들을 치르시고 하나님께서는 여러분들을 구원해 주셨어요. 십자가를 지시기까지 여러분들을 구원하셨습니다. 그런 우리가 하나님의 형상으로 만들어졌고, 예수 그리스도의 피값으로 구원받은 우리가 벌레 같은 존재로 여기고 우리 자신을 그렇게 폄하하는 삶을 살아가는 것은 뭔가 잘못되어 있는 것 이건 성경적인 내용이 아니라는 걸 다시 한 번 기억하기를 원합니다.
자존감이 낮고 늘 죄의식에 눌려서 나는 절대로 어떤 이들처럼 진정한 그리스도인이 되지 못할 거야. 마치 이걸 신앙같이 붙들고 계신 분들이 계세요. 어떻게 저 사람들은 저렇게 늘 기쁘고 늘 감사하고 저렇게 살아가지 나는 절대 못해 그런 확신을 가지고 있는 분들을 간혹 봅니다. 입으로는 표현하지 않아요. 그런데 그들의 신앙의 모습을 보면 알 수 있어요. 그런 분들은 자신을 돌보는 일조차도 죄로 여기는 분들이 계십니다. 그러니까 좀 자기를 사랑하고 자기를 챙기고 이런 것들에 대해서 그게 죄라고 생각하는 분들이 계시다.
여러분 많은 그리스도인들이요. 지금 시대를 살아가면서 자기 비하 자기 멸시 심하게는 자기 학대 가운데 살아가는 이들이 있다는 것입니다. 자존감이 매우 낮고 죄의식에 빠져서 늘 죄를 짓고 실패할 수밖에 없다고 하는 아주 강력한 확신을 가지고 살아간다는 거예요.
그래서 늘 기도의 자리에 오면 늘 저는 죄인입니다. 늘 죄인입니다는 고백만 반복해요.
본문 에베소서 2장 말씀을 통해서 우리가 어떤 존재인지를 다시 한 번 기억하기를 원합니다. 그리고 우리가 어떠한 존재가 되었고 그러한 우리를 우리는 어떻게 사랑해야 되는지에 대해서 오늘 말씀을 통해서 함께 나눠 보려고 합니다.
먼저 우리가 지금 어떤 존재가 되었는지에 대해서 알려면 먼저 우리가 어떤 상태였는지를 분명히 알아야 지금 우리의 모습이 어떤지를 분명히 알 수 있습니다. 오늘 1절에서 3절까지 말씀을 보면 우리가 어떤 상태였는지를 정확하게 말하고 있는데요. 한번 다시 한 번 읽어보겠습니다. 1절부터 3절까지 시작
그는 허물과 죄로 죽었던 너희를 살리셨도다. 그때에 행하며 이 세상 풍조를 따르고 공중의 권세를 잡은 자를 따랐으니 곧 지금 불순종의 아들들 가운데서 역사하는 영이라 전에는 우리도 다 그 가운데서 우리의 육체의 욕심을 따라 지내며 육체와 마음에 원하는 것을 하여 다른 이들과 같이 본질상 진노의 자녀이었더니
아멘 여러분 1절에서 우리가 어떤 존재였는지를 말하고 있죠. 우리는 죽었던 존재 우리는 죽었던 존재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우리는 그리스도 밖에 있을 때 우리가 신앙을 갖기 전에 우리의 모습은요. 죽은 사람들이었다는 거예요. 영적으로 물론 죽었다는 거겠죠.
여러분 우리의 다른 장기들은요. 잘려져 나가고 좀 대체를 해도 살 수 있습니다. 그런데 뇌나 심장은 대체가 안 돼요. 그렇죠 이것들이 떨어져 나가는 순간 멈추는 순간 우리는 회복할 수 없는 죽음을 맞이하게 되는 것입니다. 영적으로 하나님과 우리와의 관계가 우리 안에 있는 심장과 뇌와 같은 거라고 하는 거예요.
그러니까 하나님과의 관계가 끊어졌다. 그러면 내가 아무리 착하고 아무리 선한 삶을 살아도 아무리 누군가를 돕는 삶을 살아도 나는 죽은 존재라는 거예요. 그렇죠 아무리 내 지체들이 막 막 이렇게 움직이는 것 같아도 내 안에 심장이 딱 멈춰버리면 죽은 거잖아요. 그랬던 우리가 2절에서 3절의 말씀을 보면 그 죽었던 우리가 어떠한 모습으로 살았는지를 자세하게 말씀해 주고 있습니다.
이 세상의 풍조를 따르고 공중의 권세 잡은 자를 따르고, 그리고 육체의 욕심을 따르고 그런 따르는 삶을 살았던 그래서 우리는 본질상 진노의 자녀라고 말을 하고 있죠. 우리는 본질상 진노의 자녀였던 사람들이 세상의 풍조를 따르고 공중의 권세 잡은 자를 따르고 육신의 정욕을 따르는 그래서 마치 하나님을 모르는 사람들은요. 우리 믿는 사람들 보면서
야 니는 니네 의지가 없어 뭐 뭐든지 다 하나님의 뜻을 따라야 된대. 야 우리는 다 자기 의식을 가진 사람들인데 내 뜻대로 내가 하고 싶은 대로 한 번 사는 인생인데 그렇게 살아야지
막 이런 말들을 하시는 분들이 계세요. 그런데 여러분 하나님과 관계없는 사람들이 마치 자기 중심적으로 가 자기 뜻대로 살아가는 것 같아 보이잖아요. 근데 그 사람들의 지금 모습이 이런 거예요. 자기 의식대로 살아가고 있는 것 같지만 실제로는 자기의 주도권이 세상의 풍조에 공중에 권세 잡은 자에게 육신의 욕심에 빼앗긴 채 살아가는 그러한 인생이라는 겁니다.
그러다 보니까 세상 사람들 살아가는 거 따라가느니라고 바빠요. 사람들이 이렇게 가면 자기도 이렇게 가야 되고 이런 거 사면 이런 거 사야 되고 이런 거 하면 저런 거 해야 되고 그래서 늘 비교 의식 속에 살아갑니다. 흉내내고 따라가느라 정신이 없어요.
여러분 한번 자신을 살펴보십시오.
내가 정말 내 의지대로 살아갈 수 있는 존재인가?
저는 365일을 다이어트를 하고 살아갑니다. 먹기 위해서 다이어트를 해요. 근데 정말 다이어트가 쉽지 않구나. 예전에는 그래도 마음먹고 좀 이렇게 감 먹고 뭔가 이렇게 하면 5kg 10kg가 쉽게 빠졌거든요. 근데 이제 나이가 들어가니까 그것도 이제 쉽지가 않다라는 걸 더 느껴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매일 저녁 이제 끌려나가는 겁니다. 맛있게 먹고 건강을 유지하려면 운동을 해야 돼요. 근데 이것도 내 의지가 아니더라고요.
요즘 이제 수험생인 우리 자녀들이 이렇게 있는데 우리 수험생인 자녀들 여러분들 공부가 내 의지대로 됩니까?
오늘은 내가 이제 수능이 며칠 남았으니까 이제부터는 내가 요만큼 무조건 공부하리라 결단을 해도 안 되죠. 어른들도 마찬가지잖아요. 여러분들이 뭔가 결단했다고 그 일대로 지금 다 하고 계세요?
아니요. 우리는요. 우리의 의지 뜻대로 뭔가를 하려고 해도 잘 못하는 부분이 너무 많습니다. 정작 하고 싶은 것도 못하면서 살아가는데 우리는 가끔 착각해요. 나는 내가 원하는 대로 내 뜻대로 살아가는 사람이야 착각합니다.
특히 믿음 없는 사람들은 더 그래요. 다른 사람들이 어떻게 사는지 끊임없이 살피면서 뒤떨어지지 않으려고 애쓰는 모습들 그거는 우리의 삶의 주도권이 나에게 있는 게 아니라 다른 사람에게 있는 거예요. 그래서 우리를 본질상 진노의 자녀다라고 표현을 성경은 하고 있는 것이죠.
이게 바로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를 알기 전 우리의 상태 였다는 것입니다. 이 상태였다는 걸 다시 한 번 분명히 확인해야 이제 이 이후에 변화된 우리의 상태가 어떤 것인지를 분명하게 알 수 있어요.
여러분 혹시 다른 사람의 눈치 보느라 세상이 정해놓은 어떤 성공의 기준을 따라가느라 정작 내 마음이 무엇을 원하는지, 내가 무엇을 좋아하는지 무엇을 하고 싶은지조차도 깨닫지 못한 상태로 살아가고 있지는 않습니까?
그게 바로 본질상 진노의 자녀의 삶의 형태라는 사실을 기억하기를 원합니다.
그런데 이어지는 말씀에서 하나님이 이런 우리에게 어떤 일을 하셨는지를 4절에서 6절까지의 말씀에서 이야기를 하는데요. 다시 한 번 읽습니다. 시작
이어서
아멘 여러분 혹시 부모의 말을 정말 안 듣던 아들이 뛰쳐나갔어요. 그리고 그 아들이 뛰쳐나가가지고 온갖 고생을 하고 살아갑니다. 그러면 일반적인 부모들이 이놈 참 고소하다 그래 니가 내 말 안 듣고 나가서 그렇게 네 마음대로 살아가니까 고생 좀 해 봐라 이런 식으로 생각하는 부모가 과연 얼마나 될까요?
보통 그 떠난 아들, 그 떠난 아들에 대해서 늘 애처로운 마음을 가지고 밤낮 괴로워하는 게 부모의 심정이지 않겠습니까? 특별히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하나님의 자녀로 우리를 창조하셨는데 우리가 본질상 진노의 자녀로 하나님의 품을 떠나 살고 있으니 하나님은 얼마나 안타까우셨을까요?
그러니까 그 문제의 해결책으로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를 내어주심까지 하면서 우리를 다시금 회복해 하기를 원하셨다는 거예요.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말씀 가운데 보세요. 5절에 그리스도와 함께 살리셨고, 아까 본질상 진노였던 우리를 그리스도와 함께 살리셨고, 그다음에 6절 말씀에 보니까 일으키사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늘에 앉히셨다.
그런데 여기에서 나오는 살리셨고 일으키다 일으키사 앉히셨다. 이 말이요. 현재 여기 왜 이렇게 두 개씩 넘어가요? 네 이미 성취되었다고 하는 완료형으로 기록되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이미 이 일들은 이루어졌다는 거예요. 이미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이 세 가지의 일들은 이루셨다는 거예요. 함께 영적인 죽음에서 생명으로 살려주셨고 그리고 함께 세상의 풍조가 아닌 하나님의 뜻대로 살아갈 수 있도록 일으켜 주셨고, 그리고 하나님의 나라의 상속자로서 하늘 보좌에 앉혀주셨다. 우리에게 확실한 하나님의 자녀로서의 신분을 주셨다. 이 세 가지는 이미 이루어졌다고 성경이 선언하고 있는 것입니다.
여러분 우리는 아직 우리는 부활도 안 했고요. 우리가 지금 뭔가 하늘에 앉아 있지도 않은데 마치 성경은 이미 이루어졌다고 말씀을 하고 있으니까 이게 무슨 말입니까?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우리가 그 안에 거하면 이 일들은 이미 이루어진 사건이라는 거예요.
이걸 도표화시켜봤습니다. 아까 1절에서 3절과 4절에서 6절을 비교해 놓은 거예요. 우리가 기존에 그리스도 밖에 있을 때 우리는 죽었던 존재가 이제는 그리스도 안에 들어오면서 완전히 살아있는 존재가 되었고 그리고 세상의 풍조와 육신의 정욕을 따라다녔던 우리가 주도권이 그렇게 빼앗겼던 우리가 이제는 세상에 휘둘리지 않고 일으킨 바 되었다는 거예요. 그리고 본질상 진노의 자녀였던 우리가 하나님 나라의 상속자가 되었다.
그래서 이 말을 사도 바울은 고린도후서 5장 17절에서 이렇게 말하죠.
누구든지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으면 새로운 피조물이라 이전 것은 지나갔으니 보라 새 것이 되었도다.
여러분 우리 신앙생활을 하는 우리 실수해요. 안 해요. 넘어져요 안 넘어져요. 근데 여러분 우리는 넘어지고 실수할 수 있어요. 그런데 그런 날에도 하나님은 우리에게 이미 정해주신 이미 완성된 그 신분을 흔들리지 않는다는 거예요. 하나님의 선언 이 선언이 바로 우리의 정체성의 기초입니다.
그러니까 여러분들은 지금 이런 존재라고 하는 사실을 다시 한 번 기억했으면 좋겠어요. 이 사실을 믿음으로 받아들이고 나면 이제 나 자신이 어떤 존재인지를 알게 되면 그때부터 이제 나에 대해서 사랑하는 마음이 일어날 수 있습니다.
여러분 어떤 학생이 가난한 학생인데 열심히 열심히 공부를 했습니다. 그리고 드디어 학교에 가게 되었는데 너무 공부를 열심히 해가지고 장학증서를 받았어요. 근데 초특급 장학 증서입니다. 이 장학 증서는 졸업할 때까지 학비뿐만 아니라 생활비까지도 지원해 주겠다라고 하는 그 약속이 담겨져 있는 이 장학 증서입니다.
그런데 이 자각증서를 받았어요. 그리고 주머니에 이렇게 넣었습니다. 근데 이 학생이 집에 돌아가고 또 이렇게 자기 일을 하면서 계속 걱정을 해요. 등록금을 어떻게 하면 낼 수 있을까 어떻게 하면 학교 다니면서 내가 할 일을 할 수 있지 여러분 지금 여기에 있는 게 뭐라고요?
장학증서 그 모든 걸 다 주겠다고 이미 약속된 장학증서인데 이걸 가지고 있는데 그걸 가지고 고민하고 있는 이 학생이라면 이건 말도 안 되는 거죠. 근데 지금 우리 그리스도인의 삶이 마치 이와 같다는 거예요. 이미 하나님께서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는 사람들에게 이런 것들을 주셨다고 이야기를 하셨는데 우리가 그러한 삶을 살고 있다고 이야기를 하고 있는 것입니다.
에베소서 2장 8절과 9절 말씀 같이 한번 읽어봅니다. 시작
하나님의 선물이라 행위에서 난 것이 아니니 이는 누구든지 자랑하지 못하게 함이라.
아멘 여러분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에게 일어난 놀라운 일을 우리가 뭔가 경험하고 나야지 믿어지는 것이 아니라 먼저 우리가 믿음으로 받아들여지는 것, 믿음으로 받아들이고 나면 그 사실이 온전하게 내 것이 되는 거예요. 하나님의 선물이라고 말하고 있잖아요. 예수 그리스도가 나를 위하여 죽으셨다는 사실을 받아들이면 그 예수 그리스도를 보내시기까지 나를 사랑하신 그 하나님의 사랑을 느끼게 되고 하나님의 사랑을 느끼면서 이제 내가 새로운 존재가 되었고 또 나에게 하나님께서 새로운 공동체를 허락하셨다고 하는 사실을 받아들이게 되는 것이에요.
이미 하나님이 다 이루셨답니다. 우리는 그걸 받아들이기만 하면 되는 이게 바로 믿음이에요. 믿음은 내가 뭔가를 막 해야지 이루는 결과물을 받는 그런 게 믿음이 아닙니다.
여러분 이런 과정 속에서 우리가 부인해야 할 것은요. 내 모든 것이 아니에요. 내 모든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와 관계없었던 삶 옛 모습 그것을 부인하라고 성경은 이야기하고 있는 것입니다. 세상의 풍조를 따르고 육신의 정욕을 따르고 그렇게 살아갔던 나의 옛 모습을 부인하라고 말씀하고 있는 거예요.
반면에 우리가 사랑해야 할 우리의 모습이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새롭게 된 나, 그리고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특별하게 지어진 나 나를 사랑해야 돼요. 뿐만 아니라 하나님께서 처음부터 우리에게 주신 건강한 욕구들도 사랑해야 할 부분입니다.
여러분 음식을 맛있게 먹는 것 속된 것이 아니고 하나님께서 주신 우리에게 주신 욕구이고 거룩한 것입니다. 하나님이 기뻐하는 거예요. 그런데 그것이 이게 도를 지나쳐서 다른 사람이 먹어야 할 것까지 빼앗고 그리고 먹지 말아야 할 것까지도 먹고, 그리고 적당한 한도를 넘어서 과도하게 먹는 것 그것은 부인해야 될 모습이라는 거예요.
한 예지만 우리 그리스도인들은요. 이제 새롭게 된 사람으로서 우리가 부인해야 될 것과 우리가 사랑해야 될 것을 구분하면서 살아가는 사람입니다. 그러니까 가치관도 우리가 오늘 뭔가를 할 때 이 일을 할 것인가 이 일을 할 것인가 뭔가 우리가 선택을 하게 되잖아요.
그런데 이 선택의 가장 기준이 무엇인지를 분명히 깨닫고 알아가는 사람들이 그리스도인이라고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새롭게 우리에게 부여하신 새로운 신분에 맞게 하나님을 알기 전의 모습, 그러한 습관, 잘못된 모습들은 내어놓고 새롭게 된 나로서 건강하게 나를 사랑하는 그런 우리가 필요하다는 것입니다.
여러분들 가운데는 뭔가 일이 잘 안 풀려서 내가 뭔가를 해도 나는 실패자야라고 여겨지는 분들이 계실지도 모릅니다. 또 나이가 들고 육신의 병이 와서 예전 같지 않아 이렇게 느끼는 분들도 계실지 몰라요. 또 다른 사람과 늘 비교하면서 왜 나는 이렇게 안 될까 비교 의식에 빠져 있는 분들도 계실 겁니다.
근데 여러분요. 우리는요. 우리의 가치를 세상적인 가치에 의해서 이렇게 우리를 평가해서는 안 됩니다. 우리의 모든 정체성은 하나님이 우리에게 분명히 말씀하셨어요. 외형적인 성과나 외모 형편이 아닙니다. 하나님이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에게 먹여주신 정체성이 진짜 우리의 가치예요. 하나님은 여러분들을 이 천하 만물보다 귀하다고 여기십니다.
내 속에 끊임없이 너는 안 돼. 너는 부족해. 너는 안 될 거야. 여러분 그런 말 귀 기울이지 마십시오. 하나님은 여러분들을 위해서 이미 많은 일들을 이루셨고요. 이루었다고 말씀하고 계시고, 그리고 그런 우리가 과거의 우리의 모습들을 부인하고 새로운 하나님의 정체성을 가지고 나를 사랑하며 살아갈 때에 우리는 더욱더 주님 안에서 풍성한 은혜를 누릴 수 있는 거예요.
여러분 신앙생활은요. 천국 가는 티켓을 받는 그런 행태 그런 행위로만 끝나는 것이 아닙니다. 마치 구원을 천국 가는 티켓 정도 받는 수준으로만 여기는 분들 계세요. 그래서 그냥 교회에 다니는 이유가 천국 가기 위함이에요. 그래서 나는 끝자락에 들더라도 천국에만 가면 돼. 그러니까 그냥 나의 일주일의 삶은 좀 엉망이 되더라도 교회는 나와야 되고 혹여라도 그 티켓을 잃어버릴까 봐.
여러분 구원의 실체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그리스도와 함께 우리에게 일어난 일들, 곧 우리가 다시 살림을 받았고 일으킴을 받았고 하나님의 보좌에 앉혀졌다고 하는 그 사실이 바로 구원의 실체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를 사랑하는 법을 배워야 돼요.
내 모습 가운데 연약한 모습들을 하나하나 내려놓으면서 더욱더 나를 사랑해야 합니다. 이번 한 주간 여러분들 매일 아침 일어나서 우리 한번 이런 고백으로 하루를 시작하면 좋겠습니다.
참석자 1 24:46
아멘 여러분들은 이미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완전히 받아들여진 자들입니다.
두 번째
아멘 여러분들은 작품입니다. 한번 옆에 분들 보면서 당신은 작품이십니다. 세상이 여러분들을 판단하게 해 놓지 마세요. 외모로 내가 가지고 있는 걸로 세상이 나를 판단하게 놔두지 마십시오. 여러분들은 특별한 존재들입니다. 세 번째 시작
아멘 여러분 여러분들은 그리스도 안에서 새로운 공동체 안에 속했습니다. 이 공동체가 바로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신 새로운 공동체라고 하는 가족이라고 하는 사실을 분명히 기억했으면 좋겠어요. 제가 이 세 가지를 카톡방에 올려놓을 테니까 이번 주 한 주간에는 아침에 딱 일어나서 이 세 가지를 외쳐보는 거예요. 한번 외쳐보십시오. 이 사실들을 기억하면서 나의 정체성을 분명히 기억하면서 매일매일 이미 새로워진 나를 발견하면서 나를 더욱더 사랑해 보십시오. 그리고 과거에 내가 예수님을 알기 전 버려야 될 나의 삶의 모습들이 있다면 하나하나 내어버리면서 더욱더 하나님의 풍성한 은혜를 누리는 우리가 되기를 간절히 축원합니다.
◈ Messenger’s Note:
“In his heart, a man plans his course, but the LORD determines his steps.”
“Nevertheless, not my will but yours, be done.”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