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찬샘편지 80신]아하, 유쾌하고 유익했던 TV 출연
아주 오래된 ‘익산의 여친女親’ 김쌤에게.
얼마 전 ‘TV 진품명품’에 의뢰인으로 출연하여 녹화찰영했다고 하니까
“뭘로? 집안에 대대로 내려온 무슨 고가구나 필적筆跡?”이라고 카톡으로 물었지.
“나야 물론 책이지”“와우- 무슨 책?”“5월 30일 11시 10분에 보셔”
이런 카톡대화가 오고 갔지.
방영될 날이 마침 오늘이므로, 이제 이 새벽에 살짝 알려줘도 될 것같네.
스토리를 한번 들어봐! 굉장히 흥미로워.
국사책에 나오는 홍종우(1854-1913) 하면 누구인 줄 알지?
1894년 중국 상해 호텔에서 갑신정변의 주역 고균古筠 김옥균金玉均(1851-1894)을 권총 세 발로 암살한 사람이야.
고종의 특명이라는 설도 있지만, 왜 죽였는지는 잘 모르겠고, 그 사람이 우리나라 프랑스 유학생 1호라는 거야.
당시 40세쯤 되었다는데 프랑스에서 상투를 하고 두루마기를 입고 다녀 화제가 되었으며,
한국에서 온 유일한 동양학자로 대접을 받았다는 거야.
그가 ‘로니’라는 작가를 만나 소설 ‘춘향전’과 ‘심청전’이라는 작품을 알려주었대.
작가와 공동으로 번역하여 출간한 ‘춘향전’책(손바닥 크기의 문고판) 3권을, 내가 2010년인가 현지에서 구했다니까.
어떻게 샀냐고? 그 얘기가 오늘 TV에 나오니까 ‘본방 사수’해보셔.
2000년도 중반인가 어느 신문에서 그 기사를 읽었지. https://www.donga.com/news/article/all/20080823/8621471/1
솔직히 동아일보 후배기자가 쓴 건데, 당시 기사제목이 ‘116년 전의 불어판 춘향전 원본 찾았다’였지.
원제목은 <Printemps Parfum’e(프렝땅 파르퓌메)>이고. ‘봄의 향기’ 또는 ‘향기로운 봄’이라는 뜻이지.
‘춘향春香’의 한자 뜻을 풀이한 거지. 고유명사 ‘춘향’이라면 누가 알겠어? ‘프렝땅’은 백화점 이름으로 잘 알겠지.
그런 책이 있다는 것을 이미 알고, 파리 세느강변 헌책방을 돌면서(청계천 등 헌책방 도는 게 나의 특기였잖아) "한국에서 왔다"며 그 책을 찾은 거야. 흐흐.
얼마에 샀냐고? 그건 녹화하면서 명창 박해리(문어처럼 이상한 춤을 추는 팝핀현준의 귀여운 아내)가 물었는데도
‘영업 비밀’이라며 안알려줬지. 흐흐.
TV에서는 귀향한 고향 임실이 남원 인근인데, 광한루에 친구들과 놀러갔다가 오래 전에 구입한 그 책이 떠올라,
내용이 무엇인지, 지금 구하면 얼마나 되는지, 우리 문학사에 어떤 가치가 있는지 궁금하여 의뢰하게 되었다고
약간 ‘살’을 붙였지. 하지만 그건 팩트야.
미스 춘향을 뽑는다고 하고, 춘향이 영정을 친일화가가 그렸다고 철거하는 등 관련뉴스가 계속 나오자 그 책이 떠올랐던 거지. 그날 출연자는 박해리 외에 김선근이라는 아나운서와 개그우먼 김승혜가 나와 3시간 동안 까부어대더라.
앞의 두 출연자 것까지 다 보며 기다려야 했으니 2시간 반을 꼬박 스튜디오에서 있는데 재미있었어.
명창이 불러제키는 <사랑가>도 직접 듣고. 무엇보다 내가 궁금한 것들이 그날 다 풀렸으니 유익하기도 했으니.
방송을 보면, 근현대사 사료 감정위원 김영준님이 여러 가지 새로운 사실들을 알려주지만,
이몽룡이 춘향이를 만나러 가는데 여장女裝을 했다는 게 재밌더군.
그러니까 서양인의 시각에 맞춰 본문을 직역보다 의역, 의역을 넘어 번안과 재창작을 했던 거지.
춘향이 삽화가 들어있는데 서양의 여인처럼 그려놓았어.
더 재밌는 것은 불어판 춘향전을 읽고 영향을 받아 1936년 러시아 출신 미하일 포킨이 <사랑의 시련>이라는 제목으로
발레작품을 만들어 전세계 순회공연을 했다는 거야.
홍종우는 <심청전沈淸傳>도 1895년‘Le Bois Sec Refleuri(다시 꽃이 핀 나무’라는 제목으로 번역해 출판을 했다는 거야.
그 책 갖고 있으면 경매시장에서 돈 깨나 나갈거야.
불어판 춘향전 추정 감정가가 궁금하지? 오늘 방송을 보면 알 거야.
나는 프랑스어를 거의 못하지만, 그 책에서 흥미를 느낀 것은 우리가 알고 있는 한시야.
金樽美酒 千人血 금준미주 천인혈
玉盤佳肴 萬姓膏 옥반가효 만성고
燭淚落時 民淚落 촉루낙시 민루락
歌聲高處 怨聲高 가성고처 원성고
풀이를 안해줘도 알지? 그런데 책 속에서는 당시 관리들의 부정부패를 절절하게 고발한 이 시를
‘전원시田園詩’로 소개했다는 거야.
아무튼 “이 짧은 로맨스가 긴 이야기(역사책)보다 조선에 대해 더 많이 알려줄 것이라고 믿는다”라는
번역작가의 머리말이 인상 깊었어.
문학의 영향은 그래서 정치의 영향보다 백 배 더 유장한 거야.
발레로 재창작돼 세계 공연도 이루어지며, 한국을 알리는 셈이 되었잖아.
이 정도로 줄이고, 그나저나 자네의 건강과 컨디션은 어때?
몇 년 전 큰 수술을 받았다고 해서 많이 걱정했어.
1976년 대학 교정에서 처음 만나 친구가 된 이래 50년이 다 되어가잖아.
서로 알만큼은 아는, 좋은 여자친구와 남자친구로 관계가 지속되었으면 좋겠어.
혹시 내 아내가 이 편지를 본대도 오해는 하지 않을 거야.
그런데 요즘은 우리가 아는 ‘여자친구’를 신조어로 ‘여사친(여자사람친구)’로 한다네.
당연히 ‘남자친구’는 ‘남사친(남자사람친구)’이라 할테고.
그냥 여친, 남친하면 사귀는 것으로 오해하기 쉽다는데.
영어로도 girl friene와 그냥 friend의 뉘앙스가 다르듯.
아무렴 어때?
아프지 마셔. 명상과 멍때리는 시간을 많이 가지셔.
그래도 자네와 나는 복이 많은 편이야.
끔찍이 아껴주고 사랑해주는 남편과 아내가 각기 있으니까 말이야.
줄인다. 이따 텔레비전에서 잠시잠깐이라도 만나자고. 흐흐.
5월 30일
처음 짓는 벼농사에 설레며 논에 물 대러 가는 친구가 모처럼 쓴다
첫댓글 여러가지 탄복하는 아침일세.
뜬금없는
TV 진품명품’에 친구가 출연에 탄복
116년 전의 불어판 춘향전 원본을 소장하고있다니 탄복.
박해리 명창의 사랑가를 직접 코앞에서 들었다니 탄복.
으잉?
숨겨놓은 여사친을 지금껏 고이 간직하고
아웅다웅 우정을 나누고있다니 크게 탄복.
부럽기도하고
존경하기도하고
멋지기도하고
역시 내 친구 누애 똥구녕이 맞구먼
근디 출연료는 돈백만원 주던가?
도랑치고 가재잡고
꿩먹고 알먹고ㆍ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