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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 상서에게 드리는 편지〔與紀尙書書〕
작년 연공행(年貢行) 사절이 돌아오는 편에 정동지(鄭同知)가 아름다운 편지를 가지고 왔습니다. 직접 쓴 편지 여러 장은 합하(閤下)의 정신이 담뿍 담겨 있어 성의(誠意)가 지극하니 고아한 풍모와 목소리를 가까이에서 모시고 듣는 것과 다르지 않았습니다. 칭찬하고 인정해주심은 실제보다 지나치고 기대하고 권면함은 정중하고 두터우니, 비루한 제가 감당할 수 없는 점이 있습니다.
보내주신 각종 문방(文房)은 하나하나가 진귀하고 아름다워서 삼가 손을 씻고 사랑스레 어루만지니 마음으로 주신 것임을 더더욱 느꼈습니다. 오언절구 여러 편은 음운과 격조(格調)가 옛것에 가까워서 소리 높여 읽기를 그치지 않았습니다. 게다가 전후로 보낸 졸필(拙筆)을 영손(令孫)에게 주어서 책갑에 넣어 집안에 전하도록 하셨다니, 이 얼마나 지극한 뜻이고 성대한 관심인가요. 저의 손주 조영(祖榮)도 이제 약관의 나이로 거칠게나마 문묵(文墨)을 아니, 이 아이도 합하의 성대하신 문장을 삼가 갈무리하여 영원한 우호를 닦도록 하겠습니다. 편지를 받은 뒤로 이미 한 해가 저물었는데, 존귀하신 합하께서는 더욱 많은 복을 누리고 계시리라 멀리서 생각합니다.
저는 일찍이 육서(六書)의 학문이 결락되어 전해지지 않는 것을 한탄하고, 망녕되이 어리석은 견해를 그러모아 책으로 만들어서 이름을 《육서경위(六書經緯)》라 하였는데, 점획에 대한 주해가 지나치게 분석적이어서 천착한 폐단이 없지 않으니 감히 자신할 수는 없습니다. 그렇긴 하지만 만약 취할 만한 점이 있어 책상자에 별도로 한 종류의 글로 비치하고 문생에게 널리 보여주어서 해외의 관견(管見)이 중국의 서사(書肆)에 전해질 수 있게 해 주신다면, 어찌 크나큰 행운이 아니겠습니까. 종자(從子) 낙유(樂游)가 서장관에 임명되어 연경에 가게 되었으므로 감히 문안의 예를 올리니 친구의 아들을 보는 것처럼 기뻐하시리라 생각합니다.
별폭에 있는 서학(西學)에 관한 일은 제가 말하고자 했던 것인데 지난번에는 바빠서 편지를 주고받을 겨를이 없었고, 지금은 또 병을 앓은 뒤에 손이 불편하여 긴 편지를 쓰지 못하므로 손주를 시켜 대신 쓰게 해서 올립니다. 명쾌하게 근원을 분별하고 분명하게 변석(辨析)하여 보여주신다면 이단을 물리치고 사설(邪說)을 막는 공적에 크게 빛남이 있을 것이니, 바라건대 집사께서 유념해주십시오. 천만 가지 하고 싶은 말이 많으나 말이 너무 길어서 다시 일일이 말씀드리지 않습니다. 마음으로 이해해주시리라 생각합니다.
與紀尙書書
昨年貢使之回。鄭同知賷來華牘。手墨累紙。精神灌注。誠意勤摯。無減昵近崇範。親聆雅音也。推許之過情。期勉之隆厚。有非淺陋所敢當者。至於文房各種。箇箇珍美。盥手愛玩。益感中心之貺也。五絶諸篇。韻格逼古。莊誦不已。况敎以前後拙筆。付諸令孫。使之藏篋而傳家。此何等至意盛眷耶。賤孫祖榮。年方弱冠。粗解文墨。亦使此兒。擎收盛蹟。以修永世之好也。書後歲已暮矣。遠惟尊體益膺諸福。不佞嘗恨六書之學闕而不傳。妄以謏見。裒輯成書。名之曰六書經緯。而點畫註解。支分縷析。不無穿鑿之弊。未敢自信。若有可取。則置之書廚。以備一種文字。布示門生。俾此海外管見。得傳於中國書肆。則庸詎非大幸歟。從子樂游充書狀官赴京。敢伸起居之儀。竊想欣然如見故人之子也。別幅西學事。卽區區所欲言者。而向時怱怱未暇往復。今又病餘手澀。不能作長箋。使孫兒替書以呈。如賜洞劈源頭。明示辨析。則大有光於闢異距詖之功矣。惟執事留意焉。千萬意不盡而言太長。不復乙乙。伏惟神會。
별폭(別幅)
태서(泰西) 사람들이 만력(萬曆) 말년부터 중국과 통하기 시작하였는데 천체를 측량하는 방법이 가장 정밀하므로 흠천감(欽天監)에 두고서 지금까지 쓰고 있습니다. 그러나 주천(周天)의 도수(度數)는희화(羲和)의 범위를 벗어나지 않으며,추보(推步)의 기술은 전적으로 황제(黃帝)의구고(句股)를 사용하니, 바로 우리 유학이 남긴 것입니다.
이른바 하늘을 받든다는 설〔奉天之說〕 또한 본디‘상제를 밝게 섬긴다.〔昭事上帝〕’는 말에서 온 것이니 이치가 없다고 말할 수는 없겠지만, ‘조물주(造物主)’라고 칭하고 만물(萬物)을 재성(裁成)한 일을 야소(耶穌)가 했다고 하니, 그 참람하고 불경(不經)함이 심합니다. 게다가 또한 인도(人道)를 멸절(滅絶)시키고 성명(性命)을 가벼이 버리며 인륜을 무너뜨리고 이치를 어그러뜨려 단지 석씨(釋氏)에 비할 바가 아니니, 실로 이단 중에서도 심한 자입니다.
제가 지난해에 연경에 가서 천주당을 보았는데 모습을 그리고 숭상하는 것이 일체가 불교의 사찰 같아서 괴이하고 사특하여 볼 만한 것은 없었으나, 오직 그 천상(天象)을 측량하는 의기(儀器)는 지극히 정밀하고 교묘하여 자못 사람의 힘으로 미칠 수 있는 바가 아니었으니, 기예(技藝)가 거의 신묘한 경지에 이르렀다고 할 만합니다. 근래에 듣자 하니 그들의 설이 천하에 성행한다고 하였는데, 잘 모르겠습니다만 중국의 사대부 또한 그들의 학문을 높이고 믿는 이가 있는지요?
수ㆍ토ㆍ화ㆍ기(水土火氣)의 설같은 경우는 홍범(洪範)과 오행(五行)을 쓰지 않았고 복희(伏羲)의 팔괘(八卦)도 적용할 곳이 없으니, 아아 괴이합니다. 다만십이중천(十二重天)과 한대(寒帶)ㆍ열대(熱帶)ㆍ온대(溫帶) 세 가지 기후대가 있다는 말과 해와 달과 별의 크기와 둘레를 말한 것은 곧 우리 유자들이 말하지 않은 것입니다. 그런데 저들은 모두 의기를 써서 천상을 측정하고 배를 타고 바다 끝까지 항해하여 그들의 말에 모두 근거가 있으니 이교(異敎)라고 해서 모두 폐할 수는 없는 것이지요. 참으로 이는 사물의 이치가 무궁하여 사람의 생각으로는 헤아려 알 수 없는 것입니다. 저는 그 책을 본 적이 없으므로 득실을 논할 수 없습니다만, 집사께서는 고명하고 박식하시니 필시 마음속으로 헤아려본 것이 있으실 겁니다. 원컨대 그에 대한 설을 듣고 싶습니다.
그 나라의 역사책이 혹 중국에 들어온 것이 있다면 그들의 규모와 법도는 과연 어떻습니까? 그들의 풍속은 죽고 사는 것을 가벼이 여기고 사물을 버려둔다고 하는데 그렇다면 무엇으로써 상하(上下)를 유지하는지요. 영락(永樂) 때에정화(鄭和)가 절해(絶海)를 두루 유람하였습니다. 듣자 하니 일찍이 서국(西國)의 땅에 당도했다고 하는데, 그 여행을 기록한 책이 분명 중국에서는 인쇄되어 전해지는 것이 있을 것이니 한 번 눈으로 보기를 원합니다.
무릇 이단의 설은 나중에 나온 것일수록 더욱 교묘합니다. 천지가 생긴 지 오래되었으니 어찌 놀랍고 괴이하여 범상치 않은 일이 없을 수 있겠습니까마는 혹 성인이 일어난다면 반드시 경상(經常)의 이치로써 판단할 뿐입니다. 명물도수(名物度數)는 지극히 오묘하고 지극히 넓어서 성인이라고 해도 또한 알지 못하는 바가 있을 것이니, 그런 것은육합(六合) 밖에 그냥 두고 논하지 않는 것도 좋습니다.그렇지만 우리 유학의오상(五常)과 사덕(四德)은 바로 천지의 상경(常經)이요 만세토록 바뀌지 않는 대도(大道)이니 고금(古今)도 없고 내외(內外)도 없습니다.
저들에게 비록 신기하고 굉활(宏濶)한 설이 있기는 하지만 선왕의 법언(法言)은 아닙니다. 정자(程子)가 석씨(釋氏)에 대해 논하여“신묘함을 다하고 오묘함을 다한다고 하였지만 요순의 도에 함께 들어갈 수 없다.〔窮神極妙, 而不可與入堯舜之道.〕”라고 하였으니 바로 이것을 말한 것입니다. 우리 유학을 위해서는 마땅히 그들의 재주는 취하고 그들의 학설은 배척하여 혹시라도 세교(世敎)에 해를 끼치지 못하게 해야 할 것입니다. 집사께서는 어떻게 생각하시는지 모르겠습니다.
別幅
泰西之人。萬曆末始通中國。步天之法。最爲精密。故置諸欽天監。至今用之。然其周天之度。不出羲和之範圍。推步之術。全用黃帝之句股。乃是吾儒之緖餘也。所謂奉天之說。亦本於昭事上帝之語。則未可謂無理。而稱以造物之主。裁成萬物。乃以耶穌當之。甚矣。其僭越不經也。况又滅絶人道。輕捨性命。斁倫悖理。非直釋氏之比。實異端之尤者也。不佞於曩歲赴京。往見天主堂。則繪像崇虔。一如梵宇。荒詭奇衺。無足觀者。而惟其測象儀器。極精且巧。殆非人工所及。可謂技藝之幾於神者也。近聞其說盛行於天下。未知中州士大夫。亦有崇信其學者耶。至若水土火氣之說。不用洪範五行。而伏羲八卦。無所湊泊。噫其恠矣。第其十二重天。寒熱溫三帶之語。日月星大小廣輪。卽是吾儒之所未言。而彼皆操器而測象。乘舟而窮海者。其言皆有依據。則不可以異敎而廢之。眞是物理之無窮。不可思議者也。愚未嘗見其書。則不可論其得失。以執事高明博雅。必有權度於中者。願聞其說。其國史記。或有入中國者。而䂓模法制。果何如也。其俗輕死生遺事物。則何以維持上下耶。永樂時。鄭和遍遊絶海。聞嘗到西國之境云。其紀行之書。必有印傳於中國者。願得一寓目焉。大抵異端之說。後出者愈巧。天地之生久矣。安得無驚恠非常之事。而倘聖人有作。必斷之以經常之理而已。名物度數之至賾至廣者。聖人亦有所不及知者。置之六合之外。存而不論可也。雖然。吾儒之五常四德。乃天地之常經。萬世不易之大道。無古今無內外。彼雖有神奇宏濶之說。非先王之法言也。程子之論釋氏曰。窮神極妙。而不可與入堯舜之道者。正謂此也。爲吾儒者。惟當取其才而斥其學。毋或貽害於世敎可也。未知執事以爲如何。
부(附) 답서(答書)
기윤은 거듭 머리를 조아리며 이계 선생 합하께 삼가 아룁니다.
멀리 이별한 지 오래되었으나 회상해보면 마치 아침저녁 사이의 일 같아서 서글퍼하지 않는 때가 없으니,원도(元度)를 그리워함이 단지 밝은 달빛과 맑은 바람 사이뿐만이 아닙니다.
지난해 10월에 일찍이 소시(小詩) 두 수(首)를 부치며 삼가 그리워하였는데, 세모(歲暮)에 공사(貢使)가 경사(京師)에 들어온 것을 물어 알고서 시헌서(時憲書)를 수령하러 온 관원과 중도에 서로 만나 세전(歲前)까지도 여전히 제가 보낸 시가 합하의 맑은 눈을 어지럽혀드리지 못했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시독관(侍讀官)인 조카를 시켜서 아름다운 편지와 대작(大作)인 자설(字說)과 잡문(雜文)을 부쳐주시니, 기쁘게도 큰 바다 너머에서 오히려 옛 친구에게 생각이 미쳐 매우 위로가 되었습니다. 추운 밤에 등을 켜고 저술을 자세히 살펴보니 참으로 마주하여 열흘간 담소를 나눈 것과 같을 뿐만이 아니었습니다. 잡문은 부화(浮華)함을 덜어버리고 정수(精髓)만을 보존하였으니 진실로 배움이 깊으면 식견(識見)이 안정되고 식견이 안정되면 말이 반드시 이치에 합치됩니다. 그러므로 문(文)은 간(簡)하여도 이(理)는 넉넉하니 이는 절로 독서의 원숙한 경지이지 억지로 힘을 써서 도달할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자설(字說)은 깊고 넓은 생각으로백관(百官)을 다스리고 만민(萬民)을 살피는 본의(本意)에 거슬러 가닿되 옛사람과 합치될 것을 구하지 않고 옛사람과 다르게 할 것을 구하지도 않아서 본래부터 있는 것을 인하여 마땅히 없어야 할 것을 알았으니, 이 한 편이 있음으로 해서 비로소 서계(書契)에 달린 의의가 크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더욱 이치에 맞는 점은 완전히 해설을 하지 않고 또 억지로 해설을 하지 않았다는 데에 있습니다.형공(荊公)의 《자설(字說)》은 지금 전해지는 책이 없고 오직《주례신의(周禮新義)》안에 드문드문 보이는데〈고공기(考工記)〉를 주석(註釋)하지 않았기 때문에 송(宋)나라 사람이 그 자설을 채택하여 보완하고 완성하였으니,이 한 편에 실린 내용이 더욱 상세합니다. 반복하여 살펴보면 모두 취할 만한 것이 없지는 않지만, 송나라 사람들이 서로 공격한 것은 하나는원우(元祐)의 문호(門戶)여서이고 하나는 반드시 완전히 해설하고자 하여 끝내 억지로 한 해설이 서로 어긋나버리는 것을 면치 못해서이니, 장점을 버려두고 전적으로 단점을 공격하여 끝내는 후세 사람들의 입방아에 오르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진실로 선생의 이 책은 장점만 있고 단점은 없습니다. 이는 기질과 학문의 순수하고 잡박함이 같지 않은 데에서 말미암은 것이니, 참으로 선생께서 기른 바가 깊습니다. 고우(高郵)의왕 급사(王給事) 회조(懷祖)는동원(東原)- 한림(翰林) 대구형(戴衢亨)의 호(號)이다. -의 뛰어난 제자로, 소학(小學자학(字學))에 가장 연원(淵源)이 있습니다. 어제 책을 보여주자 그가 깊이 탄복하였으니, 제가 선생을 좋아하여 아첨하는 것이 아님을 아실 것입니다.
저는 올해 나이 일흔다섯으로 학문이 거칠고 부박해서 감히 자신할 수가 없습니다. 지은 시문들은 대부분 손 가는 대로 던져두어 원고를 보존하는 데 그다지 신경을 쓰지 않았습니다. 근래에 작은 손자 수형(樹馨)이 비로소 대략 모으고 초록(抄錄)하고 있지만 장래에 책으로 만들어질지는 모르겠습니다. 만일 책이 이루어지면 마땅히 한 본을 보내드릴테니 바로잡아주십시오.
별지에서 말씀하신 서양교(西洋敎)에 관한 일입니다. 이들이 구만 리를 배를 타고 항해해서 오는데 앞서 온 사람이 죽으면 대신할 사람이 계속해서 도착하니, 그들의 의도는 반드시 그들 가르침을 중국에 행하고자 하는 것이지만 그것을 따져보면 전혀 행해질 이치가 없습니다. 저들이 여송(呂宋필리핀)에서 행할 수 있었던 까닭은 여송 사람들이 오로지 이익만을 좋아하였기 때문에 받아들여진 것이지요. 중국은 본래 성현의 가르침이 밝으니 누가 부모의 신주(神主)를 훼손하고 조종(祖宗)의 제사를 끊으며 천주(天主)를 부모와 조종(祖宗)으로 삼으려 하겠습니까. 이것이 바로 저들의 교법(敎法) 중 제일의(第一義)이면서 바로 저들의 교법 중에 가장 큰 장애〔第一礙〕입니다. 그러므로 사람들은 서양사람들이 교활하다고 하지만, 제가 보기에는 그저 그들이 도모하는 것이 반드시 이루어지지 않을 것이니, 실로 큰 어리석음일 뿐이라고 하겠습니다.
그들의 책으로 중국에 들어온 것은 비각(秘閣)에 모두 있습니다. 산법서(算法書)를 제외한 나머지는 모두 논박하고 배척하였으니 존목(存目)이 이미 《사고전서총목(四庫全書總目)》에 나열되어 있습니다. 인본(印本)이 새로 나왔는데 선생께서는 아마도 보지 못하셨을 듯하니 지금 몇 편을 초록(抄錄)하여 보시도록 보내드리겠습니다. 그들의 법이 고법(古法)에서 나왔다는 것에 이르러서는 선생의 소견이 명백하여 틀림이 없습니다. 이 또한 《사고전서총목》에 대강을 드러내었으니 〈주비(周髀)〉 조목 이하를 아울러 초록해서 보시도록 보내드리겠습니다. 이 이치는 중국과 외국이 서로 같음을 볼 수 있습니다.
멀리서 풍모를 그리워하기만 하니 글로는 생각을 이루 다 쓸 수 없습니다. 때때로 역관(譯官) 편에 좋은 말씀을 전해주시기를 기대합니다. 모두 밝게 살펴주시기를 바랍니다. 격식을 갖추지 못합니다. 기윤이 머리를 조아리며 이계 선생 합하께 삼가 아룁니다.
무오년(1798, 정조22) 정월 27일
附答書
紀勻頓首頓首。敬啓耳溪先生閤下。濶別久矣。回憶如朝夕間事。蓋無時不悵懷元度。不但朗月淸風間也。客歲十月。曾寄小詩二首。奉懷歲暮貢使入京。詢知與領時憲書官。中途相遇。知歲前尙未塵淸觀也。令姪侍讀。寄到華札及大作字說雜文。喜滄溟以外。尙念及故人。深爲慰藉。寒夜篝燈。細披著述。眞不啻對作十日談矣。雜文刊落浮華。獨存精液。信學深則識定。識定則語必中窾。故文簡而理足。此自讀書老境。非可勉强而至者。字說以深湛之思。㴑治官察民之本意。不求同於古人。亦不求異於古人。因所固有。而得其當無。有此一編。始知書契所繫之大。其尤當理者。在不全爲之說。亦不强爲之說。荊公字說。今無傳本。惟周禮新義。中散見之。以其未註考工記宋人采其字說。補成之。此一篇所載尤詳。反覆觀之。亦非並無可取。宋人所以交攻之者。一以元祐之門戶。一以必欲全爲之說。遂不免强爲之說。致相軋者。置所長而專攻所短。遂爲後世之口。寔先生此書。有其長而無其短。此由氣質學問粹駁不同。信先生之所養深也。高郵王給事懷祖。東原高足也。於小學。最有淵源。昨以示之。渠深珮服。知弟非阿所好矣。弟今年七十有五。學問粗浮。不敢自信。凡有詩文。大抵隨手置之。不甚存稿。近小孫樹馨。始畧爲摭拾抄錄。未知將來能成帙否。儻其成帙。定當奉寄一本。刊正也。別簡所言西洋敎事。此輩九萬里航海而來。前者甫死。替者續至。其志必欲行其敎於中國。而究之萬萬無行理。彼所以能行於呂宋者。呂宋人。惟利是嗜。故爲所餌。中國則聖賢之敎素明。誰肯毁父母之神主。絶祖宗之祭祀。以天主爲父母祖宗哉。此是彼法第一義。卽是彼法第一礙。故人曰西洋人巧黠。弟直謂其謀所必不成。眞一大愚而已矣。其書入中國者。秘閣皆有。除其算法書外。餘皆闢駁。而存目已列入四庫總目。印本新出。先生諒尙未見。今抄錄數篇呈閱。至其法出於古法。先生所見。灼然不誣。亦發其凡於四庫總目。周髀條下。一倂抄錄呈閱。見此理中外相同也。臨風馳㴑。書不盡言。時因譯史。冀接德音。統惟鑑照不備。紀勻頓首。敬啓耳溪先生閤下。戊午正月廿七日。
耳溪集卷十五終
[주-D001] 희화(羲和):
요(堯) 임금 때 천문 역법을 관장하던 희씨(羲氏)와 화씨(和氏) 형제를 일컫는 말이다. 희씨는 해, 화씨는 달을 관장했다고 하며, 후대에는 천문 역법을 관장하는 관리를 일컫는 말로도 쓰인다. 《서경》 〈우서(虞書) 요전(堯典)〉에 “이에 희씨와 화씨에게 명하여 하늘을 공경히 따라서 일월성신을 역서로 만들고 관상(觀象)하여 삼가 사람들에게 때를 알려주게 하였다.[乃命羲和, 欽若昊天, 曆象日月星辰, 敬授人時.]”라고 하였다.
[주-D002] 추보(推步):
천체의 운행을 추산(推算)하는 방법을 말한다.
[주-D003] 구고(句股):
서광계(徐光啟)가 쓴 〈구고의서언(句股義緖言)〉에 따르면 구고는 직삼각형이다. 밑면을 구(句),아래로 그은 선을 고(股)라고 하며 직각에 마주한 변을 현(弦)이라고 한다. 구고현법은 피타고라스의 정리라고도 하는데, 이러한 방법은 《구장산술(九章算術)》과 《주비산경(周髀算經)》에도 기록되어 있다. 《구장산술》은 황제가 당시 수학자였던 예수(隸首)에게 명하여 쓴 것이라고 전하므로 황제의 구고를 사용한다고 말한 것이다. 뒤에 실린 기윤의 답서에도 《주비산경》이 언급된다.
[주-D004] 상제를 밝게 섬긴다〔昭事上帝〕:
《시경》 〈대아(大雅) 대명(大明)〉에 “오직 문왕이 조심하고 공경하여 상제를 밝게 섬겨서 많은 복을 오게 하셨다.[維此文王, 小心翼翼, 昭事上帝, 聿懷多福.]”라고 하였다.
[주-D005] 수ㆍ토ㆍ화ㆍ기(水土火氣)의 설:
세상의 만물이 물과 흙과 불과 공기로 이루어졌다는 사행설(四行說)을 말한다. 그리스의 헤라클레이토스가 처음 주장하였고 플라톤의 저작을 통해서 천주교 신학에 수용되었다. 마테오 리치의 《천주실의》 상권에 “무릇 천하의 사물은 모두 불ㆍ공기ㆍ물ㆍ흙이라는 사행(四行)이 결합되어 형성된 것이다.”라고 하였는데, 이계는 이 내용을 말한 것이다.
[주-D006] 십이중천(十二重天):
중국에는 굴원의 《초사(楚辭)》나 주희(朱熹)의 우주관에서 나오는 구중천설(九重天說)이 오래전부터 있었다. 서양의 십이중천설은 선교사 디아즈(Diaz)가 1615년에 지은 《천문략(天問略)》을 통해 소개되었다. 이 책이 조선에 알려진 것은 1631년 북경에 다녀온 정두원(鄭斗源)이 예수회 선교사 로드리게스에게 이 책을 받아오면서부터이다. 한편 마테오 리치의 《건곤체의(乾坤體義)》에는 11중천설이 나오는데 지구와 9중천 사이의 거리와 크기를 비교, 설명해놓고 있다. 홍양호가 일월성의 크기와 둘레 운운한 것은 마테오 리치의 책과 관련이 있어 보인다.
[주-D007] 정화(鄭和):
정화(1371?~1433?)는 명나라의 태감(太監)이다. 영락제(永樂帝)가 해외로 보낸 원정 함대의 지휘관이 되었고 1405년부터 1430년까지 7차례에 걸쳐 말라카해협, 인도의 캘리컷, 이란의 호르무즈, 아라비아반도의 아덴, 동아프리카의 모가디슈까지 항해하고 귀환하였다. 이 원정은 이후 외교적ㆍ경제적 측면에서 명나라와 인근 여러 나라에 많은 영향을 미쳤다.
[주-D008] 육합(六合) …… 좋습니다:
《장자》 〈제물론(齊物論)〉에 “육합 밖의 일은 성인은 그냥 두고 논하지 않으며, 육합 안의 일은 성인은 논하기만 하고 따지지 않는다.[六合之外,聖人存而不論, 六合之內,聖人論而不議.]”라고 하였다. 육합은 천지(天地)와 사방(四方)을 합친 개념이다.
[주-D009] 오상(五常)과 사덕(四德):
오상은 인의예지신(仁義禮智信) 혹은 오륜(五倫)이고, 사덕은 맹자가 말한 인의예지(仁義禮智) 혹은 원형이정(元亨利貞)을 말한다.
[주-D010] 신묘함을 …… 없다〔窮神極妙, 而不可與入堯舜之道.〕:
《이락연원록(伊洛淵源錄)》 권2 〈명도선생행장(明道先生行狀)〉에 “깊고 미묘하지만 요순의 도에 들어갈 수는 없다.[窮深極微, 而不可以入堯舜之道.]”라는 구절을 가리키는 것으로 보인다.
[주-D011] 원도(元度)를 …… 아닙니다:
이 부분은 《세설신어(世說新語)》 〈언어(言語)〉에서 “바람이 맑고 달이 밝으면 문득 현도를 생각한다.[淸風朗月, 輒思玄度.]”라는 유윤(劉尹)의 말을 따온 것으로 보인다. 현도는 동진(東晉) 때의 청담 명사인 허순(許詢)의 자(字)인데 《세설신어》 판본에 따라 ‘원도(元度)’로 쓰인 본도 있다.
[주-D012] 시독관(侍讀官)인 조카:
조카는 홍낙유이다. 시독관은 임금에게 경서(經書)를 강의하는 관직으로 홍문관의 5품관인 교리(校理)와 부교리(副校理)가 겸직하였는데, 홍낙유가 서장관이 되어 연경에 가기 전에 부교리였기 때문에 이렇게 말한 것이다.
[주-D013] 백관(百官)을 …… 본의(本意):
성인이 문자를 만든 취지를 말한다. 《주역》 〈계사전 하(繫辭傳下)〉에 “상고 시대에는 노끈을 매어 다스렸는데 후세에 성인이 서계로 바꾸어 백관은 이로써 다스리고 만민은 이로써 살폈으니 쾌괘(夬卦)에서 취한 것이다.[上古, 結繩而治, 後世聖人, 易之以書契, 百官以治, 萬民以察, 蓋取諸夬.]”라고 하였다.
[주-D014] 형공(荊公)의 자설(字說):
형공은 형국공(荊國公)에 봉해졌던 송(宋)나라의 왕안석(王安石, 1021~1086)을 말한다. 《자설》은 현재 전해지지 않고 《주례신의》 곳곳에 인용되어 있다. 소식은 《자설》에 대해서 무리하게 구실을 붙여 천착하였고, 새로운 주장을 낸 후에 그 잘못을 깨달으면 거듭해서 다른 주장을 내어 해석했다고 크게 비판하였다. 《북송도학사, 쓰치다 겐지로 저, 성현창 역, 예문서원, 2006, 419~435면 참조》
[주-D015] 주례신의(周禮新義):
왕안석은 역사적인 요소가 가장 적은 《주례》와 《맹자》를 중시하고, 《춘추좌씨전》 등을 경시한 것으로 유명하다. 《주례신의》는 그의 아들 왕방(王雱)과 공저한 것으로 그의 개혁의 기본틀로 알려져 있다.
[주-D016] 고공기(考工記)를 …… 완성하였으니:
〈고공기〉는 《주례》 〈동관(冬官)〉에 속해 있으며 가장 오래된 기술서로 알려졌다. 도성(都城)이나 궁궐의 건축부터 차량이나 농기구의 제작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내용이 있다. 송나라 사람이 보완하고 완성했다는 말은 《흠정 사고전서(欽定四庫全書)》에 수록된 《주관신의(周官新義)》 제요(提要)에 보인다. 이 제요는 1781년(건륭46)에 올린 것이고, 기윤이 총찬관(總纂官)이었다. 내용을 보면 “왕안석은 본래 〈고공기〉를 이해하지 못하였고 《영락대전》에 갖추어 실은 것은 조공무(晁公武)의 독서지(讀書志)에 의거한 것이니, 대개 정종안(鄭宗顔)이 왕안석의 자설을 찬집(纂輯)하면서 빠진 것을 보충한 것이다.[安石本未解考工記, 而永樂大典乃備載其説, 據晁公武讀書志, 盖鄭宗顔輯安石字説為之以補其闕.]”라고 하였다.
[주-D017] 원우(元祐)의 문호(門戶):
원우는 송나라 철종의 연호이다. 원우 연간에 왕안석(王安石)을 중심으로 한 신법당(新法黨)과 사마광(司馬光)ㆍ소식(蘇軾)ㆍ정이(程頤) 등을 중심으로 한 구법당(舊法黨)의 대립이 격화되었다. 원우는 구법당을 가리키는 말로 쓰이며, 왕안석이 신법당이었기 때문에 그의 저술인 《주례신의》도 구법당 인사들로부터 심한 비판을 받았다.
[주-D018] 왕 급사(王給事) 회조(懷祖):
왕염손(王念孫, 1744~1832)으로, 자는 회조, 호는 석구(石臞)이다. 1775년에 진사(進士)가 되어 공부 낭중(工部郎中)ㆍ직례영정하도(直隷永定河道) 등을 역임하였다. 대진(戴震)의 문하에서 배웠고 서지학과 언어학에 조예가 깊었다. 《광아(広雅)》의 오류 착란과 오탈을 바로잡고 성운(声韻)으로 자의(字義)를 해설한 《광아소증(廣雅疏証)》을 저술하였다.
[주-D019] 동원(東原):
대진(戴震, 1724~1777)으로, 자는 동원, 호는 고계(杲溪)이다. 1762년에 거인(擧人)이 되고 1773년에 사고전서(四庫全書)의 찬수(纂修)에 참여하였다. 경서의 객관적인 연구법을 제창하고 교감, 문자, 음성, 제도, 역법 등의 고증을 중시하여 고증학을 확립한 인물로 평가받는다. 본문의 원주(原註)에서 대구형(戴衢亨)의 호라고 한 것은 오류이다.
ⓒ 성균관대학교 대동문화연구원 | 서한석 (역) | 2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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