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방사우쟁론기(音房四友爭論記)
장석창
베르디 오페라 <리골레토> 3막의 4중창이 흘러나온다. , 이 오페라의 백미다. 호색한 만토바 공작(테너)이 매춘부 막달레나(알토)를 유혹하는 장면과 이를 목격한 광대 리골레토(바리톤)와 공작을 사랑하는 딸 질다(소프라노)가 분노와 절망의 대화를 나누는 장면이 동시에 그려진다. 서로 다른 성부인 네 명이 희로애락 다른 감정을 다른 가사로 제각기 노래하는데도 절묘하게 어우러진다. 희곡 원작자인 대문호 빅토르 위고는 오페라 감상 후 ‘내 연극에서도 오페라처럼 네 사람이 동시에 말을 할 수 있다면 얼마나 효과적일까?’라며 감탄했다고 한다. 음악이 가지는 힘이다.
우리 집에는 ‘음방(音房)’이 있다. 기타 연주가 취미인 내가 방 하나에 방음 시설을 갖추고 붙인 호칭이다. 기타는 볼륨을 올리고 쳐야 제맛이 난다. 몇 년 전 기타 연주에 몰입하고 있는데 이웃에게 항의를 받고 고심 끝에 설치했다. 바깥 일로 심신이 피곤하거나 머릿속이 복잡할 때, 시끄럽게 기타를 치고 나면 스트레스가 풀리곤 한다. 밖에서 들어오는 소리도 차단된다. 음방 안은 고요하다. 가끔 커피 한 잔을 들고 음방을 찾는다. 홀로 사색에 빠지거나 음악 감상을 한다. 음방은 나만의 공간이다. 오랜만에 음방에 들어선다.
‘음방사우(音房四友)’가 나를 반긴다. 나의 애기(愛器)인 기타 네 대이다. 각 기타에는 저마다의 특징이 있다. 각자의 별칭을 지어준다. 펜더 스트라토캐스터* 기타에는 파바로티(테너, 루치아노 파바로티), 깁슨 레스폴** 기타에는 바스티(바리톤, 에토레 바스티아니니), 베이스 기타에는 시에피(베이스, 체사레 시에피), 통기타에는 므라즈(싱어송라이터, 제이슨 므라즈). 통기타를 제외하고는 앰프에 연결해야 소리가 난다. 애칭을 하나씩 부르자 자기를 먼저 연주해달라는 듯, 온갖 아양을 떨어댄다. 그들과 무언의 대화를 시작한다.
“오, 나의 벗들아. 그동안 잘 있었니? 이렇게 반갑게 맞아주니 고맙다. 가만있자, 누구를 먼저 안아줄까? 그래! 이렇게 하자. 돌아가면서 자기 홍보를 해봐. 전부 들어본 후 결정할게.”
파바로티가 망설임 없이 먼저 나선다.
“친구들, 내 말을 한번 들어보게나. 내 음색을 한마디로 말하면 맑고 청아하다는 거야. 특히 고음을 내면 소리가 쭉쭉 뻗어 나가 청중의 가슴에 비수를 꽂아버려. 그것뿐이겠나. 내 바이브레이션은 어찌나 애달픈지 듣는 이의 애간장을 녹인다고. 나의 레가토는 너희들이 범접하지 못하는 경지야. 그래서 나는 대부분 음악에서 리더 역할을 하지.”
그 말을 듣고 있던 바스티가 황당하다는 듯 반박한다.
“여보게 파바로티. 너의 입담은 화려하지만 경망스럽구나. 너의 소리처럼 말이야. 나로 말할 것 같으면 일반 남성의 목소리와 유사하다. 나의 소리는 뭉글뭉글 달콤하면서 묵직해. 너의 찌르는 듯한 고음은 인정하지만, 내가 고음을 내면 두텁고 힘차 너의 소리쯤은 단번에 묻어버릴 수 있어. 그래서 많은 록, 블루스, 재즈 기타리스트들이 나를 애용하고 있지. 그리고 S자형의 내 몸매를 보게나. 주인께서는 나를 가장 먼저 안고 싶을 걸세.”
이번에는 시에피가 자신의 의견을 피력한다.
“여보시오, 잘난 기타 친구들. 너희들이 음악을 이끌어감은 인정한다. 그런데 이것은 아니? 동굴 깊은 곳에서 퍼져 나오는 짐승 같은 저음의 매력을. 내 소리는 수사자가 포효하듯 멀리까지 퍼져나가지. 내가 밑에서 받쳐주지 않은 음악을 상상해봤니? 너희들이 자랑하듯 질러대는 소리만 들리면 얼마나 귀에 거슬리는지 말이야. 그래서 밴드에서 기타는 없을 수 있지만 내가 빠지는 법이 없다네. 나는 튀지는 않지만, 없어서는 안 되는 존재야.”
마지막으로 므라즈가 가소롭다는 듯 열변을 토한다.
“하하하, 친구들아. 너희들은 하나만 알고 둘은 모르는구나. 당신들은 소리의 탁월함을 자랑하지만, 그 뛰어남도 곡이 없으면 무슨 소용인가. 나를 이용해서 곡을 쓰는 작곡가가 많다는 사실은 너희들 모두 알 거야. 그리고 주인께서 꼭 음방에서만 연주하라는 법이 있나? 때로는 거실에서 혹은 야외에 나가서 노래 부르며 연주하고도 싶겠지. 그때마다 주인은 나를 가장 먼저 찾는단 말이다.”
음방사우의 자화자찬을 듣고 있으니 은근히 부아가 치민다. 나도 한마디 한다.
“너희들 모두 자기 자랑만 하는구나. 너희들은 손맛이 뭔지 아느냐? 자네들이 아무리 가진 소리가 좋다 하더라도, 연주자가 혼을 실어 연주할 때 그 진가가 발휘되는 거야. 결국은 내 손끝에 모든 것이 달려있단 말이다.”
잠시 정적이 흐른다. 초록은 동색이던가. 나도 내 자랑만 하다니. 머쓱해진다. 그들에게 타이르듯 제안한다.
“그대들 말만으로는 누가 최종 승자인지 모르겠다. 이렇게 하자. 미국의 록밴드 이글스의 곡 <호텔 캘리포니아>에는 자네들이 모두 나오니, 이 곡을 연주해보자. 나오는 순서대로 해야 모두 불만이 없겠지. 가만있자, 그럼 므라즈부터인가?”
음방사우를 차례로 들고 연주한다. 모두 특색 있는 좋은 소리를 가졌다. 그런데 뭔가 허전하다. 한 가지 악기 소리만 들리니 이게 음악인가 싶다. 이글스가 연주하는 <호텔 캘리포니아> 라이브 동영상을 켠다. 귀에 익은 기타 전주가 들려오자 관중이 환성을 지른다. 이글스의 구성원들은 각자 그 분야의 대가이지만 나설 때와 물러설 때를 안다. 마지막 하이라이트인 트윈 기타 솔로가 시작된다. 두 기타리스트가 연주를 통해 대화를 주고받는 듯하다. 동영상이 끝나자 음방사우가 일제히 소리친다. “최고다! 역시 중요한 건 균형과 조화야.”
음방사우를 앞에 두고 우리 사회를 톺아본다. 인간은 사회라는 테두리 안에서 무엇이든 역할을 하며 살아간다. 사회라는 가사에 바람직함이라는 선율을 입혀 곡을 만드는 사람, 고유의 음색으로 곡을 이끌어 가는 사람, 묵묵히 밑에서 곡을 맛깔나게 하는 사람… 이들이 유기적으로 조화를 이룰 때 이상적인 사회로 나아간다. 조연 없는 주연은 없다지만, 조연에 머무르고 싶은 사람은 드물지 않을까. 지금 우리 사회에는 이른바 관종들로 넘쳐난다. 특히 정치인은 대중의 관심으로 살아간다. 하지만 막장으로 치닫는 그들의 이전투구는 우리의 눈살을 찌푸리게 한다. 일부 정치인들의 도가 넘는 자기 현시욕 때문에 대중의 피로감이 더해간다면, 결국 그들은 관중 없는 무대에서 홀로 공연하게 될 것이다.
음방사우. 누구에게나 애장품이 하나쯤은 있으리라. 중학생 때 통기타를 튕기는 친형의 어깨너머로 배웠던 기타는 막연한 동경의 대상이었다. 의대 밴드 동아리에서 록 음악에 심취해 동기들과 함께했던 기타 연주는 과중한 학업에 억눌린 젊은 혈기의 발산이었다. 이제 중년의 끝자락에서 나는 다시 기타 끈을 둘러맨다. 기타는 젊음을 뒤로 하고 그 시절로 회귀하고픈 나의 손끝을 그대로 받아준다. 그리고 원숙한 울림으로 나의 바람을 보듬는다.
* 펜더(Fender)사(社)에서 생산하는 기타 모델 중 하나
** 깁슨(Gibson)사(社)에서 생산하는 기타 모델 중 하나
<<에세이문학 2022년 겨울호>>
서울출생
의학박사, 비뇨의학과 전문의
2021년 에세이문학 등단
2020년 한국산문 등단
제16회 보령의사수필문학상 대상
제19회 한미수필문학상 대상
제15회 보령의사수필문학상 금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