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상급 등심을 싼값으로 맛볼 수 있어 이름높던 이곳이,개점 1년을 못넘기고 결국 휴업하시게 되었다고 합니다.인터넷에 글을 올려 주셨네요.좋지 않은 구석진 위치에다,늘 최고급육만을 고집하시던 사장님의 정성은 결국 이곳의 경영을 어렵게 했다고 합니다.쓰더군요.
사실은 저도 전부터 가보고 싶었지만 혼자 사는 결코 부유하지 않은 살림에,아무리 싸다 해도,요즘같이 불황한 시절에 쇠고기를 먹는다는 것 자체가 마음에 걸려,다음에 다음에 하면서 기다리다가,저 소식을 보고,오늘 점심에 아르바이트가 끝나자마자 부랴부랴 달려갔습니다(여담이지만,지금 하는 알바는 오전에 끝난답니다^-^;;).
시장 내 골목길에 있어 찾기 어려운 집으로도 유명했는데,저는 다행히도 헤매이지 않고 쉽게 찾았습니다.5호선 영등포시장역 2번이나 3번 출구로 나가셔서,영등포 중앙시장으로 들어가서,한강성심병원을 물어서 찾아가시다가,기계공구들을 파는 골목을 만나시면 바로 거기 있습니다.
사람은 없고 썰렁하더군요.덩달아 제 마음도 스산해졌습니다.겨우 두분이 고기를 드시고 계실 뿐이더군요.사방팔방의 벽에,심지어 유리문에도 걸린 건 낙서인데.고기를 드신 감격으로 채워진 게 상당수였습니다.인테리어는 보통 고깃집과 크게 다르지 않지만 비교적 깔끔한 편이에요.
메뉴는 1인분 22,000원의 등심,한접시 16,000원인 차돌박이가 있고요,끝나면 볶아주시는 볶음밥이 1인분 2,000원입니다.동치미국수도 있다는 소문인데 먹지 못했어요.와인도 있는데,제가 공부가 부족해서 아직 빈티지를 읽지는 못했습니다.
일단 특별제작했다는 두꺼운 불판이 나옵니다(왕십리 대도식당 정도의 양식이라더군요).반찬은 수북이 담아주는 파채하고,깍두기.생양배추와 고추장,썰어놓은 생마늘.거기서 The End입니다.
등심을 주문했습니다.1인분이었지요.한접시 1cm가 조금 안되는 두께로 잘 썰어낸 등심들이 나왔습니다.소금을 조금 뿌렸더군요.등심을 보는 기준은 흔히 마블링이지만,실로 훌륭하더군요.사장님(자칭 창고지기)께서는 적어도 고기 질만큼은 최고라고 자부하고 계신답니다.
달궈진 철판에,네모진 소지방을 녹여서,양파와 고기를 얹어 주셨습니다.
직접 구워 주셨는데,그야말로 살짝 한번,뒤집어서 살짝 한번.그게 다더군요.
핑크빛으로 물든 가운데층이 마치 미디엄이나 레어로 잘 구워진 스테이크를 연상하게 하는 육질이 일품.쇠고기를 바싹 익혀 먹는 건 개인적으로도 싫어해요.
입에 넣었습니다.어느 분이 슈크림이 녹는 것 같다고 하셨는데,상당히 동감이네요.
그야말로 살살 녹습니다.고기의 질이 100% 드러나는 맛이에요.살코기 부분이 완벽하게 기름을 흡수해주어서,씹는 맛을 느낄 새가 거의 없습니다.
같이 나오는 파채 썬 것이랑 싸서 먹으면 좋아요.
파채는 보통 것보다 굵은 편이고,보통 고깃집의 파채처럼 매콤달콤하지 않고,일체의 조미료 맛이 나지 않습니다.훌륭하지요.그냥 순수하게 싸한 매운맛이 입안에 퍼져서,고기랑 잘 어울립니다.
하지만 개인적으로는 그냥 아무 양념없이 그냥 먹는 게 최고라고 생각합니다.
깍두기도 맛있고,소박한 느낌이에요.무가 참 부드럽습니다.
끝나면 잘게 썬 깍두기와 국물을 부어서,볶음밥을 만들어 주시는데,이게 또 상당한 별미더군요.밥맛도 좋은 편인데,철판 위에서 튀는 밥알을 보는 것도 상당히 재미있었어요.보통 닭갈비라던가하고 볶아 주는 철판볶음밥과는 달라서,식용유를 쓰지 않아서 그런지 전혀 느끼하지 않고 입안이 개운해지는 듯한 느낌이었어요.
볶음밥을 주문하면 같이 내주시는 동치미도 역시 이집의 다른 음식들처럼 맛이 순수하고 꾸밈이 없습니다.두그릇 마셨어요.깍두기도 그렇고,무의 맛이 상당히 뛰어났습니다.
나오면서 창고지기님께 명함 한장을 받아 나왔더니,문닫는다고 말씀해 주시면서,연락처를 적어주면 이전하는대로 연락하겠다고 하시더군요.
내일 마침 군에 가 있는 친구가 나오길래,아까 예약을 했습니다.한번 더 먹기로요.
돼지고기가 쇠고기보다 훨씬 맛있다면서 쇠고기를 폄하(까진 아니라도^-^)하는 친구들에게 품위 넘치는 쇠고기의 진짜 맛을 보여주고 싶어요(아마 1주일치 알바비가 다 들어갈 것 같지만-▽-;;).그렇다고 제가 돼지고기를 밑줄로 보는 건 아닙니다만,서로간에 육질이 최고가 되면 그래도 쇠고기의 품위있는 맛이 우위라고 개인적으로 확신하고 있습니다.
마지막 기회니까,달착한 양념갈비의 맛이나,퍽퍽하고 미묘한 냄새가 혀를 어지럽히는 수입구이의 맛을과는 차원이 다른 걸 보여주고 싶어요.뭐랄까 건투를 빌어주시길(탕).
냉정하게 말해서,입지선정도 실력이니까 어찌보면 `결과`겠지만은요,이렇게 맛있는데,닫게 된다는 건 정말 서글픈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기회는 이제 내일뿐인 듯합니다.그렇게 맛있는 집이 문을 닫게 내버려두다니,약간이지만,죄책감마저 느껴지고 있습니다.
혹시 아직 안 드셔 보셨거나,한동안 안 가셨던 분이거나,살살 녹는 진짜 쇠고기 맛이 그리운 분은,아마 내일 하루뿐일 기회를 놓치지 말아 주셨으면 해요.전화는 02-2635-1697번입니다.
덧으로 혹여나 하는 노파심에서 붙이지만,당연한 이야기로 저는 그집에 오늘 처음 간 객이지 창고지기 분과 일체의 관련도 없음을 분명히 해두는 바입니다.
마지막으로 창고가 반드시 훌륭하게 다시 일어서기를 바라는 마음이고,이렇게 맛있는 집이 경영 때문에 쉬는 일이 다시는,다시는 없기를 기원해 봅니다.우리가 관심을 가져줘야 할 문제기도 하니까요.
첫댓글 세상에~빨리 가봐야겠네요!
아으.. 너무 아쉽네요. 1.31일이면 오늘인데 ㅠ_ㅠ
아..그렇게사람이 발길이 많차 않은 곳까지.. 으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