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8년 8월에 입적한 법등(法燈) 홍화두 조불련 중앙위원회 고문은 “일제 강점기에 부모를 모두 잃은 후 세속의 인연을 끊고자 29살의 나이에 평안북도 묘향산 보현사로 출가하여 김법룡(金法龍) 스님으로부터” 계(戒)를 받았다.<조불련중앙위원회, 『태양의 따사로운 품』, 1995. pp.30~33>
“눈발이 날리던 어느 초겨울 날, 묘향산 관음봉(觀音峯) 앞에서 주지스님과의 작별을 아쉬워하며 발길을 돌리던 기억이 유난히 생생하다. 기도를 회향하고 돌아가는 보살 한 분과 하산 길을 동행했다. 무슨 이야기를 심심치 않게 주고받았는지 보현사까지 그리 가까운 거리가 아니건만 중간에 상원사(上元寺)를 거쳐 단숨에 내려왔다. 기차를 타고 동룡굴까지 지나오면서도 법왕대(法王臺)에서 지내던 일들이 주마등처럼 뇌리 속에 몇 차례고 거듭되었다. ...(중략) 나는 한창 감수성이 예민한 10대 후반이었다. ...(중략) 법왕대는 서산(西山)대사께서 주석하던 사암으로 유명하여 겨울철을 빼놓고는 성지를 순례하는 참배객들의 왕래가 드물지 않았다. ...(중략) 법천(法泉) 노스님께서는 나보다도 먼저 와 계셨다.”<조홍식,『달처럼 매화처럼』, 도서출판 도피안사, 2002. pp.261~265> 이 글은 성균관대 교수를 지낸 대한불교조계종 중앙신도회 조홍식 고문의 회고록에 실려 있다.
독일의 여류 소설가로서 『생의 한가운데(Mitte des Lebens; 1950년)』, 『다니엘라(Daniela; 1953년)』등을 쓴 루이제 린저(Luise Rinser, 1911~2002년 3월)가 1980년대 초 평양에서 김일성 주석을 처음 만나는 등 북한을 방문한 다음, 『또 하나의 조국-루이제 린저의 북한방문기(Nord-koreanisches Reisetagebuch, 1980년)』를 출간했고, 이를 다시 1983년에 증보판으로 냈다. 그 후 그녀는 1982년과 1983년에 이어 10여 차례나 북한을 방문했다고 한다.
루이제 린저가 “우리를 맞은 그 승려는 깊은 산 중에는 아직도 수도승들이 있다고 말했다”<루이제 린저·한민 역,『또 하나의 조국-루이제 린저의 북한방문기』, 도서출판 공동체, 1988. p.184>고 기술하면서부터 분단이후 북한불교의 수도승이 세상에 처음으로 공개되었다. 그 당시 루이제 린저를 맞이하고 안내한 북한 스님은 아마도 2011년까지 묘향산 보현사 주지를 맡았고, 한국의 00사 조실과 같은 지위로서 보현사 고문을 맡고 있는 청운(靑雲) 최형민 스님일 것이다.
그러나 “김일성 주석이 1981년 5월 묘향산과 그 산의 사찰들을 다시 찾았다”<조불련중앙위원회, 『태양의 따사로운 품』, 1995. p.18>는 것으로 보아 조불련 고문으로서 북한을 방문한 주요한 인사들의 안내와 사찰 등 불교에 대해 소개를 맡았던 홍화두 고문이 평양에서 보현사로 직접 가서 설명했을 수도 있다. 그것은 1998년 거의 한 해 동안 북한지역의 사찰을 대부분 참배한 바 있는 고 윤이상 선생의 부인 이수자 여사의 경우에서도 주로 평양에서 활동하고 있는 조불련의 스님들이 직접 사찰 안내 등을 맡았던 사례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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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도서출판 공동체, 1988년 刊 | 이와 같은 몇몇 사례를 통해서 북한불교의 법맥(法脈)이자 문중을 가늠해 볼 수 있다. 특히, 홍화두 고문이 1915년 출생하여 1944년(속세 29살)에 묘향산 보현사 법룡스님을 은사로 출가 득도한 기록을 통해서 해방 이후까지도 북한불교의 전법체계가 통상적으로 이루었음을 알 수 있다.
일제 강점기에 31본산제도가 시행되면서 박보봉(朴普峰) 스님이 처음 보현사 주지에 취임·재직(1915. 6~1932. 7)한 후로 1932년 7월 28일 보현사 주지직에 취임한 김법룡(金法龍=香川法龍) 스님은 홍화두 조불련 고문이 출가할 때인 1941년과 1944년 등을 비롯하여 그 이전에 이미 보현사 주지직에 취임하고 수행하던 스님이다.<『조선총독부관보』제4343호, 5264호 : 유근자,「일제강점기 조선총독부 관보의 통계로 살펴본 북한의 종교현황-특히 불교를 중심으로」,『통일종책연구조사 토론자료집』, 대한불교조계종 총무원 사회부, 조계종출판사, 2008. p.82>
그동안 조불련의 중흥조로 불리는 박태화 위원장의 은사스님이 누구인지 구체적으로 알 수 없지만, 학림당(鶴林堂) 박태화 대선사가 1919년 10월 15일 함경북도 길주군에서 출생하여 1937년~45년까지 묘향산 보현사에서 수행한 이력을 통해 유추해 볼 때, 학림 대선사의 은사가 보현사의 김법룡 스님 또는 박보봉 스님일 가능성이 매우 높다. 이것은 고 박태화 대선사가 남북불교 교류회의 등에서 여러 차례 ‘보현사에서 출가했다’고 밝힌 대목과 일치한다.
그래서 분단 이후 오늘날까지 북한불교의 모든 계보의 중심에 있는 묘향산 보현사의 경우, 보현사 주지스님들 이외에도 산내 암자에 법천스님 등이 계셨다는 기록과, 그 밖에도 금강산 유점사 등 일제 31본산제의 큰 사찰에서 수행했다는 스님들의 명단에 적힌 관련 문헌을 살펴보면 그 당시 수도승들이 존재하고 있었다는 것을 다시 확인할 수 있다.
또한 조불련 중앙위원회가 오늘날까지 시행하고 있는 법계자격고시 제도와 불학원 등 승가교육 체계를 통해 이루어진 북한불교의 법맥과 문중을 재구성해 보았다.
북한불교의 문중
사전적 의미로 문중(門中)은 성(姓)과 본(本)이 같고 촌수(寸數)가 가까운 집안을 나타낸다. 그래서 문중에서는 예의범절을 아주 중시하고, 제사 등 문중에서 지내는 대소사 일에 자손들까지 참석시켜 대를 이어간다. 불교에서의 문중은 부처님과 그 가르침을 통해 형성된 불가(佛家)를 가리킨다. 크게 보면, 석가족(釋迦族) 또는 일불제자라 할 수 있다. 다르게는 종파(宗派)이다. 불교가 숲이면 그 숲을 아우르는 각 구성원이 종파라 할 수 있다. 부파불교와 중국 등을 거치면서 생겨난 화엄종, 천태종, 법화종 등이 큰 문중의 틀을 갖추고 있는 셈이다. 오늘날 북한불교의 문중은 <표1>과 같이 시기적으로 해방 이전과 분단이후에 형성된 문중으로 구분된다. 일제 31본산제 시기에 만들어진 시기의 문중과 조불련의 등장으로부터 형성된 문중을 그 예로 들 수 있다.
표1 : 북한불교 문중의 형성 시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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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조불련은 1972년 9월 3일 전쟁 후 공식적인 활동을 재개했음.(《로동신문》1972년 9월 4일자) | 위와 같이 북한지역의 불교 문중은 일제 31본산제 및 독립운동 계열, 월북승려 등의 참여계열 등으로 형성되었다. 금강산 유점사, 구월산 성불사, 패엽사, 법흥사, 평양 금수산 영명사, 묘향산 보현사, 안변 석왕사, 함흥 귀주사 등 일제 31본산제로부터 이어진 북한불교계의 계보는 독립운동 계열과 한국전쟁 전후의 월북 승려계열 등에 의해 다시 전승되었다.
그러나 1945년 12월 26일 조불련 중앙위원회가 창립하면서 북한지역의 불교 문중과 계보는 조불련이라는 하나의 조직으로 통합되었다. 그 후 문중과 법맥은 <표2>와 같이 조불련의 각 위원장을 중심으로 한 ‘은사-상좌’로 이어지는 법계가 전승되거나 묘향산 보현사, 내금강산 표훈사 등 일부 사찰을 통해 유지하고 있다고 볼 수 있다.
표2: 북한지역의 불교문중 계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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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북한불교의 문중은 조불련 창립 이후부터 각 위원장 중심의 상좌제와 일부사찰 중심으로 형성됨.위의 정리자료는 필자가 2000년 10월 9일~13일까지 노동당 창건55돌 기념 참관단으로 방북하고,당시 심상진 조불련 서기장과의 인터뷰와 그후 교류회의, 행사 등에서 확인한 것을 재정리하였음.다만, 평양 광법사의 광선, 금암스님과 내금강 표훈사의 금송, 금선스님은 박태화 위원장의 상좌로 알려지기도 하였음.※ 월북 승려 등에 관한 기록(법보신문 2008.4.2 기사) 참조, 조불련,「한보국 보고서」(법보신문 2004.8.10 기사) 참조 | 이와 같이 북한불교의 문중은 곧 상좌(上佐)제도가 있기 때문에 가능하다. 이 제도는 남북한의 불교가 가장 동질성을 갖는 분야이기도 하다. 어떤 스님이 부처님의 가르침을 받고, 깨우친 바를 다시 이 법을 이를 제자에게 전하는 형태의 상좌제도가 전승되는 것은 남북한 불교의 공통분모이다.
오늘날 북한불교에서 가장 많은 상좌를 둔 승려는 조불련 제3대 위원장을 역임한 박태화 대선사와 조불련 고문을 역임한 법등 홍화두 대선사이다. 2005년 11월 11일 갑자기 열반한 박태화 대선사를 조불련의 중흥조로 명명되는 이유도 그런 연유에서 비롯되었다. 또한 이 두 분을 은사로 모신 북한불교 대부분의 스님들은 그 이유로 “불교의 전통과 역사 그리고 북한불교의 강령, 지침 등에 대해 가장 잘 알고 있기 때문에 은사로 모시고 불가에 입문했다”고 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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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묘향산 보현사 관음전의 승려 모습, 2007년 10월 15일 이지범 촬영사진 |
북한불교의 법계제도 북한에서 승려가 되는 절차는 김일성종합대학 종교학과를 졸업하거나 각급 기관에서 간부로 활동을 한 사람 중에서 불교학원, 지방순회 강습소에서 불교교육을 이수한 경우이다.
불학원(佛學院)의 입학 자격은 고등중학교 이상의 학력을 소지하고 각 도와 시, 군, 노동자구에 속한 지역사찰과 연관이 있거나 조불련의 도·시·군 위원회에서 추천하면 조불련 중앙위원회가 최종적으로 선발을 하게 된다.
그러나 예비승려(교역자)가 불학원을 마치고 조불련의 공식 승려로 활동하기 위해서는 법계자격고시위원회가 주관하는 자격심사를 거친 다음, 비로소 조불련의 임원 내지 사찰의 주지 등에서 승려의 자격으로 활동을 할 수 있다. 이런 과정을 통해 자격고시에 합격한 자에 한하여 승려증을 발급하는데, 여기에는 교구본사명 대신에 ‘조선불교도련맹중앙위원회’와 함께 ‘은사 000(이름은 속명 표기방식)’라는 내용이 적혀있다. 조불련 중앙위원회가 주최하고 법계자격고시위원회가 주관하는 ‘법계자격고시’는 부정기적이지만 통상적으로 4년마다 열린다.
북한불교의 법계는 1965년 삼수갑산 중흥사에 4년 학제의 불교학원(佛學院)이 공식 설립되면서 품수되었으나, 1991년 평양 대성산 광법사가 총본산으로 건립되고 이듬해에 불학원이 이곳으로 옮겨오면서 불학원의 승려교육 시행과 함께 법계고시위원회 설치로부터 체계화되었다.
북한불교계를 이끌고 있는 승려의 법계는 대선사-선사-대덕-중덕-선덕의 5품계로 나누어져 있다. 법계자격고시 내용은 서류 자격심사, 염불습의, 경전해석, 역사 및 불교교리 이해 정도 등과 개인적인 도덕성과 불교발전에 대한 기여도 등을 같이 포함하고 있다.
선덕과 중덕의 법계 자격의 기준은 연령 25세 이상 남자, 대학졸업자, 불학원 수료자, 승납 10~15년, 3~5년의 안거(선사 5~8년)를 마친 사람에 한하여 자격고시 등과 개인적인 도덕성과 불교발전에 기여한 것을 바탕으로 선덕과 중덕의 법계를 품수한다. 또한 대덕의 경우는 일정한 자격기준에 이르면 법계 응시자격을 부여 받는다.
대선사와 선사의 경우는 중덕과 대덕 법계의 품계를 자진 자에게 응시자격이 부여된다. 특히, 대선사와 선사 법계는 선사의 법계 자격에 해당된 자와 불교발전과 국가발전에 크게 기여한 자로 심사를 하여 이루어진다. 한편 대선사의 경우는 추천 대상이 도덕적으로 윤리적으로 덕망 얻은 자를 선정하여 국가와 불교발전에 기여한 공로를 인정받은 자에 대하여 법계자격고시를 거치지 않고서도 법계를 받을 수 있다. 2012년 11월 19일 조불련 중앙위원회 제6대 위원장으로 선출된 강수린 신임위원장이 국가발전에 기여한 공로를 인정받아 대선사의 품계로 위원장에 선출된 경우이라고 할 수 있다.
1945년 12월 26일 창립한 조불련의 역사에서 신임위원장 강수린 대선사와 비슷한 경우는 제4대 위원장으로 선출된 성보 유영선 대선사가 국가와 불교발전에 기여한 공로를 인정받아 공식 선출된 바 있다. 유영선 위원장은 조불련 중앙위원회 상무의원으로 재직하면서, 1995년 남북불교 교류의 직접적인 계기를 만들었고, 교육성 등 국가기관에서 역할을 수행한 바 있다. 이번 강수린 신임 위원장의 경우도 국가발전과 남북간 교류협력에 의한 불교발전에 기여한 공로가 있어 대선사의 법계를 품수 받고 위원장으로 선출된 경우라 할 수 있다. 조불련의 신임위원장 강수린 대선사는 오는 12월 26일을 기해 열리는 ‘조불련 창립 67돌 기념보고회’를 통해 공식 일정을 수행할 것으로 보인다.
한편, 강수린 신임위원장은 남한의 2012 대선 국면과 더불어 2013년 국제정세에 따라 조불련 중앙위원회의 운영에 있어서도 앞으로 교류분야에 인정을 받은 바 있는 심상진 부위원장의 고문직 위촉과 서기장으로 활동하다가 요양하고 있는 정서정 대선사의 조불련 조기 복귀 등 인사개편을 통해 남북불교의 교류‧협력에 대한 실사구시 정책과 명분화를 모색할 것으로 예상된다.
그러므로 새로이 출범한 김정은 국방위원장의 시대에 강수린 신임위원장이 이끄는 조불련이 남북한 불교의 가장 공통적이고 교의적 체계를 이루고 있는 승려 법계와 불교문중이 지니고 있는 전통적 장점을 활용할 수 있기를 기대하고, 나아가 아직 비구니‧ 사미와 사미니의 법계가 없고, 비구니 스님들의 문중도 남아 있지 않는 북한불교의 개혁과 통일의 새 물꼬를 열어가는 중심으로 자리매김하기를 염원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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