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11.6.20이후 적용 자세한사항은 공지확인하시라예
출처: 여성시대 Au revoir
▼이렇게 시리즈로 나가게 될 줄 몰랐지...
나는 왜 이걸 하고 있는가...
난 지금 잠이 안와서 자다가 일어나서
이짓하고 있음ㅋㅋㅋㅋㅋㅋ
닥치고 본론으로 넘어 가겠음.
바로크는 포르투칼어 바로코에서 나온 말로
불규칙적이다, 이상하다 등의 뜻으로
비전형적인 것이 특징임.
바로크 시대 초기에는 르네상스 스타일과
네델란드 시민 복장의 교체시기로 실질적인 복식이 유행하였음.
그 이유가
16세기에 이어오던 스페인 풍의 화려하고 거추장스러운 귀족적 패션은
오랫동안 계속되는 전쟁뿐만 아니라 해외시장 개척에 적합하지 않았고
전쟁으로 인해 궁핍하고 거칠어진 대다수의 국민들이
다시 교양있는 행동을 좋아하기 시작하였으므로
시기적으로 유일하게 전쟁에서 벗어나서
경제적 강국이 된 네델란드의
과장하지 않고 간편하며 실용적인 복장인
네델란드식 서민풍의 의상을 추구하게 되었음.
그리하여
한동안은 네델란드 서민풍이 유행이었으나
17세기 중엽에 들어서면서 부터
놀랍게도 프랑스가 상업적, 경제적으로 발전을 하니
이로인해 네델란드 서민풍의 복식은 쇠퇴를 하게 됨.
이후 루이 14세가 통치하면서 절대왕정의 시기로 접어든
이때에는 극도로 바로크가 최고의 절정을 이루던 시기였음.
절대왕정 시기이다 보니 모든게 왕의 중심으로 돌아가니
자연히 남성적인 분위기의 조금 과장된 바로크 스타일이 도입되었고
(이때는 여자보다 남자들이 더 화려했음)
전체적으로 조화와 관계없이
아름다운 장식들을 무조건 끌어다 모았으니
(한마디로 이쁘면 죄다 같다 붙였음)
부조화나 황당, 무괴함, 이상함이 특색이었음.


프랑스 왕 앙리 4세의 왕비 마리 드 메디시스 (위)와
프랑스 왕 루이 13세의 왕비 안 도트리슈 (아래) -두사람은 고부지간임-의
초상화를 보면 바로크 시대 초기의 여성 복식을 알 수가 있음.
(근데 내가 알기로는 위에는 마리 드 메디시스고
밑에는 안 도트리슈인데 둘이 욀케 똑같아????? 알고 있는 여시 손!)
초기에는 16세기 르네상스 시대 복식에서 크게 벗어 나지 않아
스페인의 비활동적이고 귀족적인 원추행이 유행이었음.
또한 르네상스 복식에서 크게 벗어 나지 않았다는 걸
증명해주는게 하나 있는데
초상화에서 보여지는
머리 뒷쪽으로 뻗힌 위스크 칼라와 목을 감싸고 있는 러프 칼라임.

엘리자베스 1세 초상화에서 볼 수 있는 위스크 칼라
특히나 러프칼라는
16세기 르네상스 말부터 시작해서
17세기 바로크 초까지 유행하였는데
중엽에는 러프칼라는 어깨를 내리덮는 폴링밴드로 변형되고
말기에는 폴링밴드가 사라지고 네크라인이 깊게 파인 현상까지 됨.

이 역시 마찬가지로
잉글랜드, 스코틀랜드왕 찰스 1세의 왕비 헨리에타 마리아 (좌)와
잉글랜드 왕 제임스 1세의 딸 엘리자베스 스튜어트 (우)의
초상화를 보면 1630년대 이후의 바로크 여성 복식을 알수가 있음.
(참고로 말하자면 제임스 1세는 스코틀랜드 여왕 메리 스튜어트의 아들이며
스코틀랜드 왕이기도 하였음.)
초기에는 코르셋을 사용하여
허리를 꽈악 쪼여서 몸에 딱 맞게 밀착이 되었다면
허리선이 본 위치로 돌아가면서 (올라감) 딱딱한 스토마커가 없어지면서
몸에 자연스럽게 맞는 형태로 변하게 됨.
+) 스토마커 - 로브의 가슴과 아랫배에 걸쳐 역삼각형으로 붙인 가슴받이 장식.
(안 도트리슈 초상화 보면 역삼각형 모양이 아니라
굳이 따지자면 트럼프 카드 세잎클로버 모양 뒤집어 놓은 것 같지만;)
이때는 여러가지 형태의 네크라인 칼라가 생기는데
앞서 말했듯이 어깨를 내리 덮는 폴링밴드,
케이프처럼 어깨를 내리 덮는 레이스 칼라 등 다양한 형태가 생김.
스커트는 초기에는 드럼통(;)같이 과장 되었던 것이
점차 줄어 들면서 1620년대 부터 사라지고
엉덩이 둘레에 주름을 잡아 자연스럽게 늘어지게 하였음.
(그나저나 어딜가나 어깨뽕은-_-;;;)

(사진 크기 맞추다 보니 한쪽은 늘어져버렸네;)
스페인 왕 펠리페 4세의 딸 마르가리타 테레사 공주 (좌)와
그녀의 어머니인 오스트리아-합스부르크의 마리아나 왕비 (우)
(같은 벨라스케스 작품인데..
아무리 둘이 모녀지간이라지만 욀케 똑같이 생겼는지;;)
1650년 이후에는 파니에를 착용하여 기형적으로 스커트를 부풀렸음.
(마치 18세기 로코코의 만투아 처럼)
스커트 형태는 소매와 같이 둥글고 너그러운 선을
보여주며 길이는 바닥에 닿을 정도로 길었음.
소매 역시 크게 부풀려서 팔꿈치를 졸라매
리본으로 묶거나 하였음.
그리고 특징적인 것은

이런식으로
목둘레를 많이 판 데콜테 현상이 일어남.
주로 폴링 칼라로 장식을 하였음.
다음은 남자 복식


위에 두 그림은 찰스 1세이고
밑에 두 그림은.. 흠.. 안토니오 반 다이크 그림인데 모르겠음-_-;
뭐, 중요한건 이게 아니고
위 그림에서 17세기 전,중기의
남성 복식을 볼 수가 있음.
기본적으로 남성복은
상의 - 푸르푸앵, 쥐스트꼬르, 베스트
하의 - 오드쇼스로 나뉘는데
푸르푸앵은 17세기 초에는 호박바지 격인 오드쇼스와 입었고
17세기 중반에는 랭그라브와 입었으며
17세기 후반에는 소매달린 짧은 조끼 형태로 변했다가
쥐스트꼬르를 입으면서 점차 사라졌음.
하의인 바지는 오드쇼스가 사라지면서 브리치즈(반바지),
퀼로드(오드쇼스 폭이 좁게 되어 다리에 꼭 맞게 된 옷)를 입게 됨.

펠리페 4세의 아들 발타자르 까를로스
이것도 역시 17세기 중기의 남성 복식
푸르푸앵, 브리치즈의 모습.
쥐스트꼬르는 17세기 후반부터 생겨난 것인데
푸르푸앵이 축소되면서 대신 생겨 난 것으로
1670년경에는 길이가 무릎까지 오게 됨.

17세기 말의 모습
베스트가 긴 것만 빼면 18세기 로코코랑 별반 다를 바 없어 보임.
베스트는 초기에는 소매가 있었느나
후에 소매가 없어지면서 남자 조끼의 원조격이 됨.
남성들 헤어스타일은 중기부터 머리를 길어서
어깨를 덮었으며 왼쪽 머리 다발을 리본으로 묶어
가슴쪽으로 늘어뜨리거나 가발을 착용하기도 하였음.

주로 이런 모습이었음.
신발은 오드쇼드가 유행하던 초반에는 무릎까지 오는 부츠을 신었고
1660년대에는 통넓은 부츠가 기사들 사이에 존속하였으며
일반인들에게는 루이 14세형이라는 실용적인 슈즈가 보급되었음.

다양한 남성용 신발.
솔직히 쓰다가 너무 귀찮아서
휘갈겨 쓴게 없지않나 있지만,
뭐... 무사히 끝났고ㅋㅋㅋㅋ
이로써 서양 복식사는 완전히 끝났고...
그럼.. 담에는
백제, 신라가 남았다란 소리인데-_-
하지말까?
유달리 글자가 커보이는 건 잘못본거야 암 그렇고 말고
아, 그럼 난 마저 잠자러 가야 되겠음.
첫댓글 하지말까? 아 진짜 귀엽닼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해줘요잉~
좋다좋아!!다음편도 부탁해
오 언니 글 프린트해서 찬찬히 읽고 싶다 ><
언니 계속해줘~~~ 스크랩해갈께!!! 캬 ㅠㅠㅠㅠ 좋다 ㅠㅠㅠㅠ
짱재밋어 신기해ㅋㅋㅋㅋㅋㅋㅋ 근데 늘 보면서 느끼는건 옷 불편해 보여 ㅠㅠㅠㅠ
느핫!! 진짜 불편해보인다!! 똥쌀때 어카지........으............. 만져보고싶어 되게 사각사각할거같아 ㅋㅋㅋ
재밌다 헤헤ㅔ헤헤헤 항상 잘 보고 싶엌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우왕 신기하고 재밌땅ㅋㅋㅋㅋㅋ언니 왜이렇게 잘아는거야????신기신기 ㅋㅋ
너무 좋은 정보고 내가 딱 찾고 있던 거야!!!!!진짜 너므 고마워ㅠㅠㅠㅠ
언니 나 잘보고 있숴!! 나 옛날복식 짱좋아함!!
꺆~!!!!!!!!!!!!!!!!!!완전 조아 나는 합스부르크가 가문의 주걱턱에도 관심이 마늠 ㅎㅎ
바로크 복식은 화려함의 극치임ㅋㅋㅋ 왕족들 초상화도 위엄쩐다...
언니글 항상 잘 보고 있어!!! 이런거 좋아하는 나로써는 빛과 소금과 같은 글이얌ㅋㅋㅋㅋ 계속해서 글 써주면 안될까?ㅠㅠㅋㅋㅋ
사실 그동안 폰여시로 보느라 댓글 안달고 간적 많아서....미안해ㅠㅠ
완전 재밌어 계속해줘~~~꼭 볼께 ㅋㅋㅋㅋ
언니 과제때문에 스크랩해가 ^^!!! 정말 잘쓸게여 ㅠ.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