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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라오스 관광 ◑
2016.01.01~05
루앙프라방에서 빼놓지 않고 가 봐야할 관광명소로는 꽝시폭포와
팍오(Pak Ou)동굴을 꼽을 수 있다. 꽝시폭포는 루앙프라방에서
남쪽으로 30여km 떨어진 꽝시산 계곡에 있다.
계곡을 오를수록 석회암지층 특유의 아름다운 지형과 물빛이
발길을 멈추게 한다. 중국 구채구 옆 황룡의 일부를 떼어다 놓은 것 같은
아름다운 경관이다. 열대 거목이 울울창창한 계곡의 숲속에 크고 작은
폭포와 계단식의 칸막이 지층이 선경을 이루고 있다.
물가 주변에는 소풍을 나온 듯 돗자리를 깔고 싸온 음식을 먹으며 휴식을
취하는 사람들이 많다. 우리네 유원지 모습과 크게 다를 바가 없다.
가족 단위가 대부분으로 이곳이 루앙프라방 시민들의 주요 휴식처인 것 같다.
계곡 맨 위쪽으로 꽝시 폭포가 절벽50여m 아래로
비단결 같은 물줄기를 쏟아낸다.
계곡을 따라 폭포사이에 층층으로 걸려있는 다랑이 논 모양의 연못은
오묘한 옥색의 아름다운 물 색깔로 황홀경을 자아낸다.
서양처자들이 비키니 차림의 팔등신 몸매를 자랑하며 옥색의
계곡물에서 물놀이라도 하면 말 그대로 금상첨화다.
계곡을 오를수록 석회암지층 특유의 아름다운 지형과 물빛이
발길을 멈추게 한다. 중국 구채구 옆 황룡의 일부를 떼어다 놓은 것 같은
아름다운 경관이다. 열대 거목이 울울창창한 계곡의 숲속에 크고 작은
폭포와 계단식의 칸막이 지층이 선경을 이루고 있다.
나무가지에서 뿌리줄기가 땅으로 내려와 땅밑에 뿌리가 내려 거대한 나무로 성장하는 특이한 나무
불루라군의 천연주영장
에나멜 빛 물속에 잠겨 사색에 젖어있는 이방인 여자
숲속에 들어서니 서늘하면서도 축축한 바람이 땀에 젖은 몸을 식혀준다.
10여분 올라가다 멸종위기에 놓인 흑 곰 20여 마리가 보호 사육되고
있는 곰 방사우리를 만난다. 송아지만한 흑 곰들이 나무에 매달려 재롱을 떤다.
라오스 왕궁 박물관은 라오스의 궁정이자
박물관으로서 공식적인 이름은 하우 캄(Haw Cham)이다.
1904년 루앙프라방 지방에 왕족을 위해 지어졌다.
궁전은 외부 인사가 왕가를 방문했을 시 인근강가에서 바로 머물 수 있도록 하기 위해
만들어졌다. 당대의 왕이었던 시사왕웡(Sisavang Vong)이 승하하면서 왕자였던
사방바타나(Savang Vatthana)가 최후의 주인이 되었다.
1975년 공산주의자들에 의해 왕정이 붕괴하였으며
가족들은 따로 유폐되었고 박물관으로 용도변경되었다.
사실상 지어질 당시 프랑스 식민시기였으므로 궁전은 라오스 전통 방식과 프랑스의
미술 양식이 접목되어 쌍의 십자형 모양을 출구부터 이루고 있다.
계단은 이탈리아 대리석으로 만들어졌으며 전체에 전통 조각이 놓여 있다.
입구 오른쪽에는 왕의 응접실이 있으며 지금까지의 왕들 흉상이 벽에 있다.
프랑스의 화가가 그린 전통 양식을 담은 그림도 있으며 각 벽에는 매일매일의
시간마다 빛에 따라 색깔이 달라진다. 한쪽 측면에서 들어오는 빛 때문으로
이 색이나 느낌이 시간을 알려주기도 한다.
대개는 순금이나 은, 청동 합금으로 된 것이다.
프라 방이라고 하는 부처상은 83cm이며 무게만 50kg에 달한다.
왼편에는 갖가지 회화 작품이 있는 또다른 응접실이 있다.
은제품이나 도자기가 있는데 이것들은 미얀마, 캄보디아, 폴란드, 헝가리, 일본, 베트남,
미국, 캐나다, 오스트레일리아 등의 국가원수가 선물한 것이다.
사회주의 국가와 자본주의 국가가 따로 진열되어 있다.
왼쪽으로 가면 여왕의 방이었던 곳이 나온다. 큰 왕실 초상화가 그려져 있으며
이것은 1967년 러시아의 화가 일랴 글라즈노브가 그린 것이다. 또한 중국,
베트남과의 친선을 표시하는 우호기도 걸려져 있다.
안으로 더 들어가면 침실이 나오며 1975년 왕이 승하하기 전까지 왕가가 머물던 곳이다.
왕가 훈장와 트로피도 전시되어 있다. 왕좌에는 라오스의 왕관 옥쇄가 있다.
총길이가 약 4,350㎞에 이른다. 전체 유역면적이 81만 600㎢가 넘는 메콩 강은
중국 칭하이 성[靑海省] 티베트 고원의 해발 4,900m가 넘는 곳에서 시작되며,
현지에서는 팜(Pam) 강 또는 지추(Dzi Chu) 강이라고 부른다.
전체 길이의 약 1/4을 차지하는 상류는 길고 좁은 골짜기들을
깊이 형성하며 윈난 성[雲南省] 고지대를 가로질러 남쪽으로 향한다.
이어 라오스와 타이의 국경, 미얀마와 라오스의 국경 일부를 흐르다가 라오스·
캄보디아·베트남을 거친 뒤 베트남 호치민 시(옛 이름은 사이공)
남쪽 넓은 삼각주에서 남중국해로 흘러들어간다.
미얀마와 라오스 국경 남쪽에서 타이의 코라트 고원, 캄보디아의 대부분 지역,
라오스와 베트남의 안남 산맥 서쪽 경사면에서 흘러나오는 물줄기와 합쳐져 흐르는 메콩 강 하류부분은
삼각주 지역에서 메콩 강과 바사크 강으로 나누어진다.
메콩 강이 지나는 윈난 성 남쪽 대부분 지역은 지형·토양·수종(열대 활엽수) 면에서 비슷한 양태를 보인다.
라오스 수도 비엔티안(비앙찬)과 캄보디아 수도 프놈펜이 메콩 강 둔덕에 자리잡고 있다.
캄보디아 중부 크라체에서 측정한 메콩 강의 연평균 방출량은 1만 4,000㎥/s이다.
유량(流量)은 주로 하류에 내리는 비와 관계가 있으며 계절풍의 영향을 받기 때문에
철에 따라 강우량의 변화가 나타난다.
7~10월까지 습기찬 남서 계절풍이 불 때 수면이 최고로 높아지며 강 상류 쪽에서는
8월이나 9월에, 남쪽 유역에서는 느지막이 10월에 최고 수준이 된다.
11~5월까지 북동 계절풍이 불어 날씨가 건조해지는 동안 수면이 가장 낮아진다.
라오스 정식 명칭은 라오인민주의 공화국(Lao People's Democratic Republic)으로,
면적은 23만 6800㎢, 인구는 667만명(2008년 현재), 수도는 비엔티엔(Vientiane)이다.
종족구성은 라오족이 인구의 50%를 차지하고 있으며, 랴오퉁 22%, 랴오숭 9%, 베트남계 1%이다.
공용어는 라오스어이며,종교는 전체 인구의 약 95%가 소승불교를 믿고 있고 나머지는 토착종교를 신봉한다.
기후는 온난동기과우기후로서 국민의 90%가 농민이고, 자원은 주석·목재·커피 등을 수출하고 있다.
성급하게 시행한 농업집단화의 폐해를 극복하고자
1979년 12월에 시장유통을 자유화하고 개인경영을 인정하는 자유경제정책을 채택하였다.
2007년 현재 국민총생산은 40억 2800만 달러, 1인당 국민소득은 656 달러이다.
이 나라는 1당독재체제의 사회주의 공화제로서, 의회는 임기 5년의 단원제(115석)이다.
정당으로는 인민혁명당이 유일하다.
1893년 프랑스의 보호령이 되었다가 1949년 7월 19일에 프랑스로부터 완전 독립하였다.
건국 이후 좌파와 우파 그리고 중립파간의 대립과 갈등이 계속되다가 내전으로 발전하였다.
이 내전에는 외세가 개입하여 우파는 미국의 지원을 받았고 좌파는 베트남의 지원을 받았다.
1974년에 연립정권이 세워졌으나, 베트남과 캄보디아가 공산화되자
그 여세를 타고 좌파인 라오스애국전선(파테트 라오)이 1975년 8월에 정권을 잡았다.
1975년 12월 라오스애국전선은 전국인민대표대회를 개최,
600년간의 왕정에 종지부를 찍고 라오스인민민주공화국을 선포했다.
사회주의 체제 이행 후, 1989년 3월 처음으로 직접투표에 의한 최고인민의회 선거를
실시하여 1991년 8월 국회에서 80조로 이루어지는 신헌법을 제정하였다.
이 헌법은 마르크스-레닌주의를 표방하며 인민혁명당의 지도적
역할(1당 독재)과 사회주의 체제의 확립을 목표로 하고 있다.
실권은 인민혁명당이 장악하고 있으며,
2006년 6월에 취임한 춤말리(Choummaly Saignason) 대통령이 정부를 이끌고 있다.
대외정책은 비동맹중립노선을 따르고 있지만 공산국가와 가까우며,
1955년 유엔에, 1964년 비동맹회의에 가입하였다.
과거 7만 명의 화교를 축출하여 중국과의 관계가 소원했으나 사회주의 종주국 소련이
붕괴함으로써 라오스는 또 다른 사회주의 종주국인 중국에 접근을 시도하고 있다.
또한 같은 문화를 공유하고 있는 타이와는
1982년 2월 우호협력조약을 체결하였으며, 같은 해 8월 이후 동남아시아
우호조약(파리조약)에 가맹하였다.
1962년 3월 외교관계 수립에 관한 공동성명을 발표하고, 같은 해 7월 주 태국대사를
라오스주재 겸임대사로 임명하기 위해 아그레망을 요청했으나 국교가 수립되지 않았다.
그 뒤 1973년 11월 잠정조처로 비엔티안에 통상대표부가 개설되었고,
다음해 6월 연립정부와 외교관계를 수립하였다.
그러나 1975년 7월 라오스는 우리나라와의 외교관계를 단절하였다가
1995년 10월 25일 외교관계를 재개하였다.
양국은 1996년 5월 투자보장 협정과 경제과학기술협력
협정을 체결한 이래 1997년 10월 EDCF
기본 협정, 2006년 2월 , 2007년 7월 자원개발협력 협정을 체결하였다.
우리나라의 대 라오스 수출액은 2007년 현재 5560만 달러로 자동차와 의류,
섬유제품이 주종목이며,
수입액은 7030만 달러로 기초식품과 완구, 목재가 주종목이다.
현재 서동·부림 등 업체가 진출해 있고, 450명의 체류자가 있다.
한편, 북한은 1974년 6월 24일 외교관계를 수립하였으며,
같은 해 9월 라오스에 상주공관을 개설하였다.
양측은 1968년 6월 과학기술 협정, 1974년 10월 경제 및 기술협조협정, 1977년 10월
항공 협정을 체결한 이래, 1990년 5월 통신사간 과학기술협조위원회 창설에 관한 협정,
1992년 7월 영사 협정, 1994년 3월 공보분야협력 협정,
1994년 6월 경제·과학·기술협조 협정, 1995년 9월 정보협력 각서,
1997년 5월 무역 협정, 1997년 8월 투자촉진·보호 협정,
1998년 11월 외교대표부 및 건물이용에 관한 합의서, 2001년 7월 보건복지협력 협정을
체결하고, 2007년 11월에는 2007-2009 문화교류계획서를 교환하였다.
라오스의 가장 큰 상징물은 비엔티엔 탓루앙 사원의 대불탑입니다.
라오스 사람들에게 탓루앙은 국기와 화페에 이미지로 사용될만큼 중요한 국보입니다.
탓루앙은 1556년에 조성된 불탑사원으로 부처님의 유골사리가 봉안되었다고 전합니다.
세개의 층은 불심 깊은신자들이 한층,한층 오르면서 각 층마다 여러가지
형태로 조형된
부처의 상과 불교 불교 교리를 체들할 수 있도록 조성되었다고 합니다.
탓루앙이라는 공식 명칭은 셋타티랏 왕이
지난 1560년에 라오스의 수도를 시엥통(현재의 루앙프라방)에서
비엔티안으로 옮긴 후 칭해졌으며1566년에 탓루앙 대불탑의 모습이 완공되었다고 합니다.
'루앙'이라는 말은 크다.공동적이다 라는 뜻이고 '탓'은 탑이라는 의미로 즉 큰탑 또는
'공동적인 탑'이라는 뜻이라고 합니다.
빠투사이
1958년 프랑스로부터의 독립을 기념하기 위해 세운 시멘트 건축물로
프랑스 개선문의 디자인을 모방하여 만들었으며 승리의 문이라는 뜻을 가졌다합니다.
한쌍대로의 북쪽끝에 위치해있으며
꼭대기로 올라가면 비엔티엔 시내를 한눈에 내려볼 수 있다합니다.
우리는 야간에 방문하여 야경만을 구경하였습니다.
비엔티안에서 차로 한 시간 거리에 있는 소금마을도 들려볼만한 명소다.
대개 남늠강의 탕원유원지와 묶어 다녀오는데 방비엥 가는 길에 있다.
관광지로서 거의 개발이 안 된 풋 것 그대로의 모습이지만 관광객들이 제법 찾아든다.
몇 차례 묻고 헤매다 간신히 찾아간 소금마을은 안내 표지판도 없는
빈 공터가 많은 판자촌 같은 동네다.
입구 모퉁이에 콕싸앗 소금공장(Khoksaath Lodized Factory.Co)
이라는 조그만안내간판이 보인다.
바다가 없는 내륙의 염전이라는 희귀성과 함께 몇 백 년 내려온
고유의 전통방식으로 소금을 만드는 과정이
호기심을 불러일으킬 정도로 낯선 볼거리를 제공한다.
이 소금마을은 라오스 사람들의 고단하게 살아가는 민낯 그대로의 삶의 현장이다.
불볕더위 아래서 장작불이 지글거리는 용광로 같은 가마 안에서
일을 하는 모습을 지켜보면 가슴이 아릿해진다.
이들은 1년 365일 불볕더위에 장작불과 끓는 소금물과 씨름하며
뜨거운 열탕 속에서 온 시간을 보낸다.
공장 근처 마을 주민 30여명이 작업인부로 일하는데 하루 일당이 10시간 일해
고작 2만 낍. 공휴일 과외근무까지 합쳐 한 달에 70만 낍 안팎을 받는다.
이는 우리나라 돈으로 9~10만 원 정도.
우리나라 고급 음식점의 한 끼 식사 값이 이들의 한 달 생활비다.
지하 200m의 소금 암반층을 지나는 땅 밑 소금물을 끌어올려 염전에서는 천일염을,
가마에서는 제재 염을 생산한다. 염전 식 천일염은
3~4일 걸리는데 가마 식 소금은 하루 만에 생산이 가능하다.
가마식은 돗자리 2~3배 크기의 흙과 소금을 섞어 만든 가마에 소금물을 넣고
장작불을 때 졸임 과정을 거쳐 소금을 만든다.
일정한 고온을 유지, 소금이 눌지 않게 계속 저어주며 불 조절을 잘해야 한다.
20시간 남짓 꼬박 가마 옆을 지키며 불조절과 소금물 정제과정을
지켜봐야하는 고된 작업이다.
펄펄 끓는 가마 옆에서 여인네들이 긴 삽으로
소금물을 젓고 결정된 소금은 삽으로 건져 올려 큰 대나무 바구니에 담는다.
소금바구니는 창고로 옮기는데 무게가 웬만한 어른 몸무게인 40~45kg에 달한다.
창고의 소금은 불순물 제거, 포장, 판매의 작업과정을 거친다.
일주일에 한번 씩 하는 가마청소가 가장 힘든 작업이다.
가마 화구 앞에는 통나무 등 땔감들이 산더미같이 쌓여있다.
하루 수 톤의 땔감이 소비된다. 작업인부들은 중년의 여자들이 대부분이다.
백여m 길이의 긴 일자형 간이건물이 간격을 두고 세 줄로 늘어서 있고
그 안에 직사각형의 가마들이 들어서 있다.
모터를 이용, 소금물을 끌어올리는 취수탑 옆으로는 바둑판 모양의
운동장만한 염전들이 몇 개 줄지어 있다.
검은 비닐이 깔린 염전바닥에는 햇빛에 증발된
다이아몬드 같은 새하얀 소금결정체들이 반짝인다.
소금가마는 위험하기는 하나 아이들의 좋은 놀이터다.
동네 꼬마들이 신기한 듯 쫒아 다니며 카메라를 들이대면
익살스런 표정과 포즈를 취하며 까불댄다.
영락없는 천둥벌거숭이 같은 천진난만한 장난꾸러기들이다.
초코릿이나 과자 등을 바라는 눈치인데 미처 준비를 못해 찍은 사진만 열심히 보여준다.
늘어나는 관광객 수에 비례해 그만큼 아이들이 영악해지고 충치가 늘어난다는데....
세계적으로 티베트 엔징(鹽井)과 고원 곳곳의 소금호수 및 소금광산,
남미 볼리비아(유우니 소금사막), 폴란드, 터키 등 내륙에서
소금을 캐내거나 만드는 곳이 많다.
젓갈인 빠덱(padaek)은 라오스를 대표하는 전통음식으로
거의 모든 음식에 빠지지 않고 들어간다. 샐러드나 각종 찌개, 간맞춤이나
조미용으로 라오스 음식에 안 들어가는 데가 없을 정도다.
우리의 김치격인 땀막훙(파파야 샐러드)이나 민물고기에 쌀을 넣어 삭힌
쏨빠 역시 라오스의 젓갈음식이다.
바다생선으로 만든 액젓인 남뿔라도 태국의 간판급 젓갈이다.
라오스 빠덱은 바다가 없다보니 민물고기로 젓갈을 담는다.
민물생선을 소금과 쌀겨를 섞어 단지에 넣어 최소 1년에서 3년을 절이고 삭혀 만든다.
꼭 우니나라 소 돼지 운반 차량같아요^^
탐남동굴
수중동굴로 입구가 물속에 있어 튜브를 타고 굴속에 설치하여놓은 줄을 잡고 이동 관광합니다.
원래의 모습을 잘 간직한 종유석 동굴로 신기하고 재미있는 체험이었습니다.
탐낭동굴 근처의 코리리 석상 동굴
카야킹을 준비하는 모습
루앙프라방 시내 전경
푸시산에서 루앙프라방의 석양
전통 재래시장, 한 노인의 좌판에서 죽은 다람쥐 한마리가 이색적이다.
첫댓글 언젠가는 동남아시아도 가보아야 할 곳인데 자세한 설명 도움이 되겠습니다
자세한 설명과 사진에 눈과 귀가 즐겁습니다.
글을 잘 쓰는 모춘원친구 여행도 많이 하면서 재미나게 사시는구려 복을 많이 받았음이라 여겨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