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주 다시 샛골 봄나들이(1)
2017. 4. 금계
우리 집에서 100미터 위. 목포사범학교였다가 목포교육대학이었다가 현재는 목포대학교 송림캠퍼스. 개나리가 흐벅지게 피었다.
시멘트에 지친 나는 세월이 흐를수록 석조건물이 정겹다. 시멘트보다 훨씬 기품 있고 훨씬 우아하고 훨씬 멋스럽다. 나는 저 석조건물 주위를 거닐 때마다 숭늉을 마신 뒤끝처럼 마음이 은근하고 개운해진다. 옛것이 지금보다 좋은 것이 여러 가지겠지만 석조건물도 나한테 평안함과 위안을 주는 아주 멋진 건물이다. 내 가까이에 마음만 내키면 언제든지 올라가서 위안을 받을 수 있는 석조건물이 버티고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나는 충분히 행복하다.
전남 참교육 동지회. 전교조 회원이었다가 퇴직한 교사들의 모임. 의무 방어전은 아니고 희망하는 사람들만 가입한다. 작년에는 고흥 대서면 이재석 선생 집에서 처음으로 모이고, 진도 접도 곽재경 선생 별장에서 두 번째 모임을 가졌다. 이번에는 나주 다시면 샛골 김옥태 선생 집이다.
4월 4일 오전 아홉 시. 카메라를 들고 나서는 기분이 풋풋하고 상큼하다.
새봄이다. 삼천리금수강산에 봄기운이 가득하다. 참으로 바람피우기 좋은 날이다. 하늘과 땅과 공기가 뜨뜻미지근하고 눅눅하고 축축하고 몽롱하게 어우러졌다.
김 선생의 차를 기다리는 동안 살짝 교문 안으로 들어서서 봄빛에 표정이 누그러진 석조건물과 노란 개나리를 카메라에 담는다.
나는 아주 어려서부터 역마살이 끼었나보다. 나들이만 나서면 발걸음이 가벼워지고, 옷핀으로 가슴에 손수건을 매달고 초등학교 입학식에 선 코흘리개 아이처럼, 주례 앞에 선 신랑처럼 심장이 콩콩 뛴다.
교문 앞에 노란색 어린이차가 도착한다. 광주교육대학 목포부설초등학교 일학년 학생들일까. 샛노란 체육복을 입고 우르르 버스로 몰려든다. 나는 노란 옷을 입은 아이들의 천연덕스러운 미소에서 어미 닭의 꽁무니를 종종걸음으로 따라다니는 햇병아리들의 샛노란 주둥이를 연상한다. 삐악삐악!
이 찬란한 봄에 어디로 체험학습이라도 떠나는 것일까. 아이들을 주워 담은 꼬마버스는 왜앵, 보드라운 엔진소리를 뒤꽁무니에 남기고 횅하니 사라져버린다.
사람은 언제까지 행복한가. 아마 저 아이들 때까지가 가장 행복하지 않겠나 싶기도 하다.
우리 부모님은 첫아들이었던 나를 끔찍이도 아끼고 사랑하셨던가 보다. 66년 전, 전란으로 어수선한 1951년에 나주에서 하나뿐이었던 나주교회 유치원에 입학시켰다. 비록 횟배를 자주 앓고 얼굴에 버짐이 핀 약골이었지만, 저 노란 아이들처럼 건강하고 싱싱하고 잘 사는 나라의 아이는 아니었지만, 교회 정원에 하얗게 피어난 태산목 꽃향기가 은은하게 휘감아 돌던 유년의 뜰은 얼마나 행복했던가.
나는 그 해 가을 나주극장에서 열린 학예회 때 무대에 올라 독창을 했다. 지금은 있으나 마나 존재가 희미한 얼간이가 되어버렸지만 그 때까지만 해도 꽤 야무지고 똑똑해서 노래도 또록또록 잘 불렀던 모양이다. 나보다 몇 살 위인 골목대장들은 진고샅(긴 고샅)에서 나와 맞닥뜨리기만 하면 차려를 시키고 노래를 부르라 했다. 나는 사양하는 법이 없었다. 만날 때마다 큰 목소리로 이런저런 노래를 거침없이 불러 젖혔다.
“쯧쯧쯧, 너는 유치원 때 목소리 다 베레부렀시야.”
아버님은 내 걸걸하고 탁한 목소리가 다 유치원 때 너무 큰 소리로 노래를 많이 불러서 목청이 상한 결과라고 애석해하셨다.
동강대교를 막 지난 곳에 차를 세우고 담배를 하나씩 꼬나문다.
동강대교가 세워지기 전에는 나주군 동강면에서 무안군 몽탄면으로 나룻배를 타고 다녔다. 몽탄(夢灘) -꿈여울. 왕건이 꿈을 꾸었더니 이쪽 여울로 건너라는 계시가 있었더란다. 꿈여울을 건너서 견훤의 군사를 물리쳤더란다.
낡은 회색 기와지붕이 정겹다. 마당에 선 정원수도 균형이 잘 잡히고 늠름하다. 주황색 건물의 생울타리에도 개나리꽃이 만발했다.
동강대교 옆에 새 다리를 건설 중이다. 머지않아 광주에서 빛가람 혁신도시를 거쳐 남악 도청으로 이어지는 도로가 완공될 예정이다.
나주시 다시면 샛골. 보리가 푸릇푸릇하다.
이 비 그치면 내 마음 강나루 긴 언덕에 서러운 풀빛이 짙어오것다.
나주시 다시면 죽산보.
명박이 대통령은 뜬금없이 불요불급하고 시비가 끊이지 않는 4대강 사업을 벌이지나 않았는지 모르것다. 강은 생긴 대로 구불구불 여유만만 느릿느릿 천연덕스럽게 흘러가야 바람직할 것 같기도 한데.......
샛골. 염색장 정관채 전수관 입구.
명자나무 꽃인가. 꽃 너머 정자와 아스팔트 포장도로에도 무르녹은 봄볕이 살포시 내려앉았다.
주요 무형문화재 염색장 정관채 전수관 앞마당.
안과 밖이 소통하는 자연친화적 항아리들이 쪽물을 담은 채 봄볕을 온몸으로 일광욕하고 있다.
찬란한 봄을 만끽하는 축복받은 항아리들이여, 축복받은 인생들이여!
전수관 앞마당. 옛날 집집마다 필수품이었던 도구통(절구통)이 반갑다.
왼쪽이 광주지부 은빛참교사회 이종진 회장. 전남지부 참교육동지회가 어떻게 모이는지 구경하러 오셨단다. 오른쪽은 전교조 목포지회 전 지회장 김홍수 선생.
나주 다시 샛골나이에 물들인 쪽 염색.
구릉과 구릉 사이에 있는 마을을 ‘샛골’로 부르며 아낙네가 무명을 내는 길쌈을 ‘나이’라고 한다.
10새도 고운 세목(細木)이라 했는데 15(보름)새까지 냈으니 비단보다도 곱다.
①목화 재배 및 수확 ②솜 타기와 솜 잣기 ③실 잣기 ④날실 씨실 준비 ⑤베틀 짜기 ⑥무명천 물들이기 등의 힘든 작업과정이 아낙네들을 지치게 했단다.
게다가 방직공장에서 대량생산하고 질긴 화학섬유가 등장하면서 샛골나이는 차츰 하향세에 들어섰다.
그러나 요즘은 중국 일본 미국에서까지 그 전통적 가치에 매료되어 주문생산을 하고 있단다.
염색장 정관채 전수관에 전시된 샛골나이 쪽 염색!
전수관 안 휴게실 풍경
천년의 빛깔 쪽빛을 보둠다. 염색을 하다가 염색이 된 고무장갑들
쪽 염색 전시관 안.
전시관에 전시된 작품들.
한국 전통 쪽 염색 방법 (인터넷에서 발췌)
- 중요무형문화재 제 115호 염색장 정관채
쪽빛하늘, 쪽빛바다. 남빛. Indigo라는 Dark Blue의 염료. 감색(紺色)
라틴어 인디컴(Indicum)이란 쪽 물의 명칭. 인도로부터 수입되었다는 의미.
후에 인디고(Indigo)라고 하여 청색 염료 지칭
쪽: 마디풀과(Polygona ceae)에 속하는 1년초 염료식물.
학명 Persicaria tinctoria Gross
인류 역사상 식물 염료로는 가장 먼저 사용
나주(샛골) 쪽(藍)염색
나주 재배 품종은 대부분 여뀌과 식물. 3월 파종, 키 60~70cm, 7~8월에 이삭형 꽃이 필 무렵 잎에서 남빛 색소를 분리 추출하여 자연염료로 사용.
영산강 물줄기와 바닷물이 합류했던 나주는 지리적 환경이 쪽 재배지로 적당
쪽 색은 다른 색과는 달리 자연에서 바로 재현할 수 없다는 것에 그 가치가 있고 석회와 잿물로만 만들어지는 자연염료로 산화와 환원이라는 화학적 변화를 거쳐 살아 있는 미생물의 발효작용으로 만들어지기 때문에 시간과 노력이 필요하고 고도의 숙련과 매우 복잡한 과정을 거쳐야 쪽 염료를 얻을 수 있다.
매염재 소석회 만들기
석회는 굴 껍질이나 조개껍질을 장작불에 1000℃ 이상 구워서 아직 불기운이 남아 있을 때 공기가 통하지 않도록 항아리에 넣고 밀봉한다. 산화가 된 가루 분말 사용
매염재 잿물 만들기
콩대, 쪽대, 메밀대를 태워 불씨가 남았을 때 시루에 넣고 끓인 물을 부어 잿물을 만든다.
나주 샛골 쪽(藍)염색 방법
삼복더위에 진한 초록색 잎과 줄기를 베어 큰항아리에 차곡차곡 넣고 빗물로 가득 채워둔다. 10시간이 지나면 물은 연한 녹색에서 청록색으로 색소가 잎에서 분리되기 시작한다. 48시간이 지나면 심한 악취가 나면서 쪽 풀에서 색소가 완전히 분리된다.
이틀이 지나 맑은 청록색 300ℓ물에 약 2Kg의 소석회를 넣으면서 횟대로 힘차게 젓는다. 노랑에서 -회색 - 보라 - 연두 - 녹색 - 초록 - 청록색 - 파랑 - 남색으로 변화된다. 색소는 석회와 같이 남색의 쪽 물로 침전된다.
항아리 밑에 남은 침전물은 헝겊을 깔고 시루에 넣어 고체 상태가 되도록 물기를 완전히 제거한다.
꽃물 만들기
100L의 잿물에 20Kg의 쪽 침전물을 항아리에 넣고 25~30℃에서 1일 2~3회 힘차게 저으면 대추알 크기의 꽃 거품이 생긴다. 1주일부터 10일 후면 꽃물이 형성된다. 이때 저어주면 보랏빛 거품이 일고 석회는 노랑 색조를 띠고 남색 띠의 물발이 형성된다.
꽃물에 1~20회 반복염색하면 한국전통 쪽 색을 얻을 수 있다.
왼쪽 초상화는 그냥 그림이 아니라 자수를 놓았는지 실을 오려 붙였는지 아무튼 실로 만든 작품이라 한다.
정관채
1959년 나주 출생. 미술과를 졸업하고 선대로부터 이어 온 전통 쪽 염색에 매진하기로 결심. 현재 중등학교 교사, 전교조 회원.
2001년 젊은 나이에 중요 무형문화재 제 115호 염색장 기능 보유자 지정. 고향에 쪽 염색 전수관을 세우고 천 년을 이어 온 천연 염색의 전통을 계승 발전 시키는 데에 전력을 기울이는 중.
나는 입으로 사는 사람보다는 손발을 놀리고 땀을 흘리는 사람을 선호하고 존경한다. 그런 뜻에서 미량의 라듐을 얻기 위하여 엄청난 양의 우라늄 광석을 처리하느라 여자의 손이 흉하게 찢기고 갈라진 퀴리부인을 존경한다.
전수관에서 텔레비전으로 쪽 염색 과정을 지켜보니 푹푹 찌는 삼복더위에 쪽 줄기를 베어내는 일부터 소석회 만들기, 잿물 만들기, 꽃물 만들기, 스무 차례씩이나 반복하여 꽃물에 천을 담가서 널어 말리기 등 염색하는 과정이 얼마나 지루하고 어렵고 힘든 일인지 상상이 가지 않는다.
나한테는 거장 정관채 선생이 이 시대를 이끌어가는 거인으로, 슈퍼맨으로 보였다. 이토록 희생 봉사정신이 투철하고 자부심과 의지가 확고한 분들 때문에 우리 인류 문화가 면면히 이어지는 것이 아닐까 그런 생각도 들었다.
청출어람청어람(靑出於藍靑於藍) 푸른색이 쪽에서 나왔지만 쪽보다 푸르다.
제자가 스승보다 낫다. 정 선생은 선대부터 내려온 쪽 염색을 물려받았지만 선대보다 더 쪽 염색을 발전시킬 것이 틀림없다.
정 선생이 쪽 염색을 한 명품 목도리를 참교육 동지회 대표로 고 선생한테 선사했다.
아무나 함부로 걸칠 수 없는 명품이었다.
키도 늘씬하여 명품 목도리하고 잘 어울린다.
나주가 고향이면서도 70이 넘어서야 나주의 자랑 샛골 쪽 염색을 알게 된 나 자신이 매우 부끄러웠다.
우리 것이 좋은 것이여 (전수관에 전시된 작품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