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철수 교수가 서울대 1년 후배였던 부인과의 캠퍼스 이야기를 꺼냈다.
17일 MBC 황금어장-무릎팍도사에서 MC들이 "바쁜 와중에 사랑에 들어가게 된 것 같은데 어떻게 된 거냐고 묻자
안철수는 "같은 캠퍼스 커플이었다. 서울대 의대 1년 후배이고 재학 당시 봉사 진료를 갔다가 우연히
만났다고 첫 만남을 소개했다.
안철수는 "같이 도서관에서 자리 잡아주고 쉬는 시간에 커피 마시다가 연인으로 발전했다며 우리도 모르게
학교에서 유명한 커플이 되어 있더라"고 밝혀 웃음을 주었다.
안철수는 프러포즈에 대해서 "그때 돈도 없는 학생 때였으니까 '같이 살자'고 했다"며 "생각도 비슷하고 가치관도
비슷하고, 같은 서클에서 봉사하다 보니 많은 것을 알게 됐다"고 고백했다.
안철수 카이스트 교수가 군입대 전 가족에게 인사를 하지 못했던 사연을 털어놨다.
17일 방송된 MBC '황금어장-무릎팍도사'에 출연한 안철수 교수는 의사 생활을 그만두고 돈벌이가 안되는
백신 프로그램 개발에 몰입했던 과거를 회상하며 "일에 집중하다보니 아내에게 군대간다는 말도 못하고
나왔다고 말해 놀라움을 샀다.
안철수 교수는 당시 미켈란 젤로 바이러스 때문에 한창 작업 중이었고, V3 최초 버전인 V1을 만들어낸 것.
안 교수는 "아직도 확실히 날짜가 기억난다. 1991년 6월 6일 군의 열차를 타고 가는데 다들 전날 가족들과
헤어진 이야기를 하더라. 그때서야 가족들한테 군대간다는 말을 안하고 나온 것이 생각났다"며 "아직도
미안한 마음에 잡혀살고 있다"고 웃음을 지었다.
또 안 교수는 "자녀들에게 존댓말을 사용한 어머니의 영향으로 자신도 존댓말을 쓰게 됐다"며 "군대 장교로 있을 때
사병들에게 반말을 써야하는데 ‘이것 좀 해줄래... 요?’라고 말했다"고 밝혀 웃음을 자아냈다.
이 밖에도 안교수는 의사로 일하며 컴퓨터 바이러스를 발견하고 7년간 백신을 개발을 병행해 온 일, 의사의 길을
포기하고 CEO로 변신하게 된 배경, CEO자리를 내주고 또 다시 유학길에 오른 사연을 비롯해 학창시절 에피소드,
가족에 대한 이야기 등을 진솔하게 털어놓았다.
한편, 방송이 끝난 후 프로그램 게시판에는 "역대 최고의 게스트였다", "안철수 교수는 정말 보석같은 분,
대한민국 인이라는 것이 자랑스럽다", "방송을 보면서 '존경'이란 단어만이 떠올랐다. 정말 감동했다, 방송을 보고
스스로 반성하는 시간을 가지게 됐다. 최고의 명언들 가슴속에 새기겠다" 등 시청자들의 호평이 이어지고 있다.
무릎팍도사’에 출연한 안철수 교수는 책을 유난히 좋아했던 어린 시절, 의사를 그만두고 벤처기업 CEO로
변신하게 된 계기 등을 솔직하게 털어놨다.
이날 안 교수는 의대에서 심장전기 생리학을 연구하고 있던 시절 컴퓨터 바이러스라는 것을 알게 돼 호기심에
컴퓨터를 뒤져보다 바이러스와 첫 대면을 했던 에피소드를 공개하며 1988년 6월 10일 밤 만든 프로그램이 V3의
버전 1이 탄생하게 된 비화를 소개해 눈길을 끌었다.
또한, 서울대 의대 1년 후배로, 봉사 진료를 하러 갔다가 만난 아내와의 러브스토리를 공개하며 “도서관에서
자리 잡아주고, 쉬는 시간에 커피 마시다 발전했고, 우리도 모르는 사이에 의과 대학에서 굉장히 유명한
커플이 되어 있더라”고 밝혔다.
이어 안 교수는 “돈도 없는 학생이니까 그냥 '같이 살자'고 프러포즈를 했다”며 “생각도 비슷했고, 가치관도
비슷하고, 같은 공부와 같은 동아리를 하다 보니까 많은 것을 알게 돼 결혼을 결심했다”고 전하며 두 사람 다
첫사랑이냐는 질문에 “그런 것으로 믿고 있다”고 말해 웃음을 자아냈다.
이날 안 교수는 MBA 석사 과정 유학 갔을 때 아내가 나이 마흔에 의사를 그만두고 미국 로스쿨에 들어가 딸도 함께
미국으로 가면서 세 사람 모두 학교 끝나면 도서관에서 같이 저녁 늦게까지 공부를 한 일화를 공개해 눈길을 끌었다.
청소년들이 가장 만나고 싶어 하는 벤처CEO이자 한국의 빌게이츠인 안철수가 자신의 어린시절을 공개,
시청자들에게 웃음과 감동을 안겼다.
17일 방송된 MBC '황금어장 무릎팍도사'에 출연한 안철수 교수는 그의 어린시절을 묻는 질문에 "남다를 것 없는
학생이었다. 초등학교 시절 공부도 못하고 운동도 못했다. 반에서 60명중 30등 정도로 중간 정도 했다고
입을 열었다. 그러나 그가 다른 사람과 달랐던 것은 바로 독서였다.
안철수는 단지 제가 참 좋아했던 것은 책 읽는 것이었다. 약간 병적으로 좋아하는 정도였다"고 말했다.
종이가 바닥에 떨어져있으면 꼭 주워서 글자를 읽어야 직성이 풀렸다는 것. 또한 책을 읽을 때도 내용만 읽으면
뭔가 부족한 것처럼 생각이 되어서 페이지숫자와 저자, 발행연월일까지 읽어야 책을 다 읽었다는 기분이 들었다고.
안철수는 "활자 중독증이었던 것 같다."고 당시를 회상했다. 이어 안철수는 "제가 좋아했던 것은 과학책이나
소설책을 좋아했다"며 "교과서는 별로 안 좋아했다."고 덧붙이며 웃었다.
안철수는 "초등학교 때 작은 도서관이 있었는데 거의 모든 책을 다 봤다."며 매일같이 책을 빌렸다가 다음날
새로운 것을 빌리고 하다 보니 도서관 사서분이 대출카드에 이름 적는 장난치는 줄 알고 나중에는 책도
안 빌려주려고 하더라."고 그의 유별난 독서습관 때문에 겪었던 일화 역시 공개했다.
또한 안철수는 아이의 독서습관엔 부모의 솔선수범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그는 "책을 읽으라고 말만 하면서
부모님들이 한 번도 책을 읽는 모습을 안보여주면 아이들 역시 책상에 앉아서 책 읽는 흉내만 낼뿐 책읽기를
따라서 하지 않는다."며 아이들의 독서습관을 키워주기 위해선 말보다 부모의 습관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무릎팍도사'에서 MC들이 "바쁜 와중에 사랑에 들어가게 된 것 같은데 어떻게 된 거냐"고 묻자 안철수는 우리는
캠퍼스 커플이었다. 서울대 의대 1년 후배이고 재학 당시 봉사 진료를 갔다가 우연히 만났다고 첫 만남을 소개했다.
그는 "같이 도서관에서 자리 잡아주고 쉬는 시간에 커피를 마시다가 연인으로 발전했다며 어느새 우리도 모르게
학교에서 유명한 커플이 되어 있더라고 밝혀 웃음을 자아냈다.
결혼 전 프러포즈에 대해 안철수는 "그 때 돈도 없는 학생 떄였으니까 '같이 살자'고 했다"며 "생각도 비슷하고
가치관도 비슷하고, 같은 서클에 봉사하다 보니 많은 것을 알게 됐다"고 고백했다.
이 때 강호동이 "두 분 다 첫사랑이시죠"라고 묻자 "그런 걸로 믿고 있습니다"라고 말해 폭소를 터뜨렸다.
무릎팍도사'에 출연해 시종일관 겸손한 태도로 출연진과 시청자들의 탄성을 자아내게 만들었다.
의사, 의대교수, 바이러스 백신 개발자, 기업가와 학생을 지나 지금은 카이스트에서 대학교수로 활동하고
있는 안철수. 그는 방송 출연 계기에 대해 "학생들이 이 방송에 출연하라고 권유해 나오게 됐다"며 자신이
고민의 고민에 대해 '평생 직업이 무엇인지 모르겠다'고 전했다.
안철수는 학창시절 공부를 잘 하지 못했는데도 불구하고 서울대 의대를 가게된 사연과 최연소 의대 교수가 된
사연을 전하면서도 시종일관 겸손한 태도를 유지했다.
서울대에 간 비결에 대한 질문에 안철수는 어린시절부터 활자 중독같은 '병'이 있었던 것 같다. 교과서를 제외한
과학책이나 소설책 등을 많이 읽었다며 초등학교때 학교에 작은 도서관이 있었는데 그곳에 있는 책을
하루에 한권씩 모두 읽자 도서관 직원이 나를 의심하더라"며 "학창시절 공부는 잘 하지 못했지만 고 3때 머리가
늦게 깨어 운이 좋게 서울대에 갔다"고 설명했다.
또 "최연소 의대 교수가 된 것은 그 당시 의대 교수 수가 많지 않다 보니 순서대로 교수가 됐다. 단지 운이
좋았을 뿐이라고 밝혔다.
한국 최초 바이러스 백신을 개발한 사연에 대해서 의대 공부에 필요해서 기계어를 배웠는데, 어느날 갑자기
바이러스를 발견하게 됐다"며 "의대 교수로 활동하면서 백신프로그램을 개발해야하는 일은 쉽지 않았다.
그래서 시간을 정해놓고 새벽3시에서 6시까지는 백신을 위해 사용하고 나머지 시간은 병원을 위해 사용했다고 전했다.
이어 "그렇게 10년쯤 지내던 중 한계가 오더라. 의사와 백신 연구가 중 한가지 길을 선택해야했다. 무척 많이
고민했지만, 내가 잘할수 있고 하고 싶은 일을 정하려고 교수직을 포기하고 백신연구에 몰두하기로 결심했다.
내가 계속 교수일을 하면서 백신 연구를 한다면 자기 인생을 걸고 의대에 진학한 학생들이 불쌍하지
않겠느냐며 안철수 연구소의 설립배경을 설명했다.
하지만 비영리 목적으로 백신 개발을 하는 안철수 연구소는 2년동안 적자에 허덕여야 했다.
당시를 회상하던 안철수는 "당시 소원은 2~3달치 급여를 현금으로 보유하고 있는 것"이라고 말할 정도였다.
그러던 차에 안철수는 미국의 실리콘 벨리에 위치한 유명 보안회사로부터 1천만달러의 매각제안을 받게 된다.
보안회사의 회장은 안철수 앞에서 직접 프리젠테이션을 하는가 하면 회사를 매각하면 얻게되는 모든 이점을
앞세우며 안철수를 설득했다. 하지만 안철수는 회사 매각을 단칼에 거절하고 한국으로 돌아왔다.
당시 1천만달러에 회사를 매각하는 것을 거절한 이유를 묻자 안철수는 "그 사람들의 목적은 한국진출이였다.
한국이 진출하려고 보니 안철수연구소가 많이 걸렸나보다"며 "하지만 그 회사에 회사를 팔 경우, 결론은
불보듯 뻔했다. 그 회사는 V3(안철수 연구소의 바이러스 백신 프로그램)을 폐기하고 한국시장을 장악하려했다.
지금 생각해도 안철수 연구소를 팔지 않은 것은 잘 한 일"이라며 백신 연구에 대한 남다른 소신을 전했다.
이후 안철수는 1999년 체르노빌 바이러스로 인해 제기의 발판을 마련하게 된다. 당시 바이러스로 인해 국내 PC
30만대가 먹통이 되고 사람들이 바이러스에 대한 새로운 인식을 갖게 되며 그의 사업은 번창하기 시작한다.
하지만 안철수는 여기서 안주하지 않고 미국으로 건너가 공부를 시작하고 현재는 카이스트에서 교수로
활동 중이다.
지난 삶에 대해 전하던 안철수는 "나는 돈보다 명예가 좋고 명예보다 마음 편한게 좋다.
나는 내가 하고 싶은대로 하는 사람이다"며 "그때 의사를 그만두지 않았었더라면 지금보다 더 행복하게
지낼지도 모른다. 하지만 나는 지난 내 결정에 대해 후회하는 성격이 아니다. 내가 의사를 포기하고 백신
연구를 하기로 결정했기 때문에 나는 더 다양한 경험을 했다"며 "효율성 생각하면 내 인생은 실패한 인생이다.
하지만 스스로에게 가장 맞는 것을 찾는 것은 중요하며 가장 큰 선물이다"고 전했다.
시종일관 겸손한 태도에 대해 출연진의 칭찬에 그는 "내게 '청교도'적인 삶을 산다던 사람도 있었고, '어떻게
그렇게 참고 사느냐고 말했던 사람도 있었다. 하지만 나는 참고 살지도 않았고 청교도 적인 삶을 살지도
않는다. 나는 그냥 내가 하고 싶은대로 하고 사는 것일 뿐"이라고 설명했다.